3. 수행성: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1) 규범과 젠더의 관계
버틀러는 '젠더'라는 용어를 남성성/여성성 이분법과 떼어놓아야만 이 이분법이 '젠더'라는 개념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의미와 실존과 실천의 가능성을 "어떻게 고갈시켜 버리는지"를 폭로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 179쪽
(...)
그러나 이런 논의를 '규범으로서의 젠더' 대 '마냥 자유로운 젠더'의 대립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시중의 버틀러 개론서 중 이런 해석을 하는 텍스트도 있으나 이는 결코 버틀러의 주장이 아니다. -180, 181쪽
모든 젠더 규범을 부정한다는 식으로 버틀러의 이론이 많이 오해되는 모양이다. 저자는 결코 그것이 아니라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누구도 젠더 규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러한 규범은 변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가늠하고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인식틀(인식 가능성의 매트릭스) 없이, 그런 인식틀과 아무런 관계를 밎지 않고서 살아갈 수는 없다.(...)
둘째, 우리가 그 어떤 인식틀과도 전혀 관계 맺지 않고선 살 수 없을지라도, 중요한 건 그런 인식틀, 젠더 규범, 규제적 이상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3쪽
2) 규범과 '나'의 관계: 행위성을 재개념화하기
젠더 규범에 대한 버틀러의 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논의가 전통적으로 권력을 이해해온 방식인 억압/자율의 이분법적 대립 자체를 문제시한다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는 주체과 권력에 대한 미셸 푸코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푸코는 주체 형성 과정을 '주체화/종속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 용어는 권력에 의해 종속되는 과정과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 187쪽
푸코.. 푸코 자꾸 나오네.. 하지만 이 주체에 대한 논의가 뭔지, 주디스 버틀러의 <bodies that matter>에 나온 부분으로 저자가 인용한 아래 부분을 보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담론의 배후에 서서 담론을 통해 의지나 결단력을 실행하는 '나'란 건 없다. 반대로, '나'는 오직 불리어지고, 이름 붙여지고, 알튀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호명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적 구성은 '나'에 앞서 일어난다. (...) 역설적으로 사회적 인식/인정의 담론적 조건은 주체의 형성보다 앞서고 그것을 조건 짓는다. 즉 인식/인정은 주체에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188쪽
저자는 억압과 자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근대적 관점으로는 "성폭력이나 성노동을 비롯해 '온전히 네 선택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행위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190쪽)고 하면서, 유독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만 '선택'의 이유를 묻고 '선택'의 책임을 지라고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다수자들의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많은 성소수자들이 "본질성"을 들고 나오지만, 역으로 "진정성"을 증명하라는 소모적 싸움에 휘말릴 뿐이라고 한다.
=> 이래서 버틀러가 주장하는 것이 "수행성performativity" 논의라는 것. 이 '수행성'이라는 개념이 퀴어이론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므로 별표별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행성이 공모와 전복 두 차원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한편으로는 규범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조건짓고 규범 권력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어떻게 우리가 규범 안에서 그 규범에 맞서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수행성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 193쪽
193쪽 중간, 괄호 안. 여기까지 온 독자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저자의 개그..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