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언젠가 죽고, 함께 산다면 누군가가 먼저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함께 산다고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것이 우주의 순리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약하디약한 존재니까. 사랑이 끝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리고 그때마다 언제나 아프고 쓰라리겠지만, 그것이 꼭 사랑의 절정인 젊은 시절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더 늘어가고, 그래서 '이제껏 하나인 적 없었던 두 가지'가 '온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 그때 찾아오는 이별이야말로 비탄과 고통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48~49쪽
차곡차곡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결심하고 이 책을 써나갈 때, <비상의 죄>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갈 때, 그는 차분하게 이 글을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109쪽의 저 문장을 쓰다가 무너지지 않았을까, 다시 오열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답게, 무척이나 유려하게 이 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추슬렀던 감정이,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는 문장을 쓰면서 폭발해버리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그가 아프게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이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결국 저 문장에 이르러서야 나는, 함께 엉엉 울고 싶어졌으니까. 극도의 사랑 앞에서 그렇듯 극도의 고통 앞에서도,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굉장히 단순하다. 네가 가버리고 난 뒤, 그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이것만큼 상실의 고통을 잘 표현할 만한 말이, 대체 뭐란 말인가. - 51쪽
<잘 지내나요?>의 첫 장에 등장하는 책들 중 하나인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작가 자신의 사별의 아픔을 담은 에세이다. 나는 이 책을, 작가 이름과 제목만 알고 아무 정보없이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그 전에 줄리언반스의 소설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을 읽었던 기억 때문인지 당연히 소설인 줄 알았다. 열기구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이건 대체 무엇..? 하면서도 재미는 있어서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며 배우자를 잃은 경험을 쓴 것임을 깨닫는 순간 앞의 열기구 이야기가 이해되면서 엄청나게 마음이 아팠다. 당시 나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무렵 지인이 교통사고로 배우자를 잃어 조문을 다녀왔던 터라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고.. 그 결과 얼마 후 남편이 죽는 꿈을 꾸고 새벽에 엉엉 울며 남편에게 전화했더랬다..(그땐 떨어져 살았다) <잘 지내나요?>를 읽는 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다. 내가 느꼈던 감상을 잘 표현해준 글을 보니 좋았다.
결혼 후 확실히 실연의 아픔을 다룬 이야기에는 이입을 덜하게 되었고, 배우자 사별을 다룬 이야기에는 이입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오베라는 남자>도 그래서 더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던 소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와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에 많이 이입하게 되는데, 아이를 잃는 등 너무 아픈 이야기는 배우자 사별보다 더 괴로워서 읽기가 힘들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이 많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가을방학'의 노래들을 좋아하는데 그중 '동거'는 이런 가사다.
우편함이 꽉 차 있는 걸 봐도 그냥 난 지나쳐 가곤 해요
냉장고가 텅 비어 있더라도 그냥 난 못 본 척 하곤 해요
나는 부모님과 사니까요
(중략)
내가 어렸을 때 얘길 엄마는 꼭 어제 일처럼 얘기하죠
나는 사실 기억이 없는 일들도
오래 전 옆에 누워서 칭얼대던 아이는
누구보다 당신을 더 사랑했다 확신할 수 있지만
고백할게요 나 거리에서 당신을 지나친 적 있어요
같이 살면서 같이 지내면서 못 본 척 지나친 적 있어요
이 노래 이야기를 하면서 비혼인 지인은 부모님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내가 부모 입장이 되어 생각했다. 지금 내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있지만, 몇 년 지나면 달라지겠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