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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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은 아직 사진의 소년처럼 파열되고 신에게 버림받은 듯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었다. 그들 주변에는 어떤 아우라(Aura)가, 시선이 그것을 파고드는 동안 그 시선에게 충만한 안정감을 주었던 어떤 매질(媒質)이 있었다. 그리고 이 아우라에 상응하는 기술적 등가물도 분명히 있다. 즉 가장 밝은 빛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이어지는 명암의 절대적 연속체가 그것이다. _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p175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1940)은 복제기술에 의해 파괴되는 아우라(Aura)에 주목한다. 일회적인 의식(儀式)과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가치는 복제기술이 만들어 내는 복제물의 반복적인 생산과 일시적 가치로 대체된다는 것은 단순하게 아우라의 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벤야민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예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태도에 주목한다.


 상(像)에서는 일회성과 지속성이 서로 밀접하게 엉켜 있는 데 반해, 복제물에서는 일시성과 반복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오늘날의 지각이 갖는 특징이다. _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p184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 복제기술은 복제를 대량화함으로써 복제 대상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한다. 또한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_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p47


 핵심 부분이란 바로 예술작품의 진품성이다.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가치까지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이다.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가치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제의 경우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되면 사물의 역사적 증언 가치 또한 흔들리게 된다. 이로써 흔들리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 사물의 전통적 무게(의미)이다. _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p46


  의식에 깃들었던 예술이, 복제기술에 의해 파괴된 옛 터전을 떠나 새롭게 자리한 곳은 정치(政治)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재현되어 아우라를 간직했었다면, 사진과 영화에 의해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노출된다는 사실은 관객들이 수용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비평가, 행위가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낙후된 태도가 채플린과 같은 영화에 대해 갖는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진보적 태도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라보고 체험하는데 대한 즐거움이 전문적인 비평가의 태도와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_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3판)>, p134


 이처럼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를 통해 기술복제 시대의 미학(美學)을 대중과 정치에서 발견한다. 지난 20세기 기술복제가 가져온 접점 - 대량생산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와 대중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만남 - 다음에 벤야민은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대결을 예상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의 예상과는 조금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 대신 개인 미디어의 등장, 파시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 대신 민주주의 정체 내에서의 성향 대립은 기술복제시대를 가능케 했던 기술이 이제는 보다 예리한 메스가 되어 우리 사회를 분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보다 심화되는 인간소외의 현실 속에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는 '아우라'라는 단어의 의미를 넘어선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카메라에 비치는 자연은 눈에 비치는 자연과 다른 법이다.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이 의식을 갖고 엮은 공간의 자리에 무의식적으로 엮인 공간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_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p168


 예술 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 _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p53


대중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일체이 전통적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태어나는 모태(matrix)이다. 양은 질로 바뀌었다. 예술에 참여하는 대중의 수적 증가는 참여하는 방식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 P143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더 이상 개인들의 창조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들은 집단적 구성물이 되었고, 너무 강력해져서 그것들을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축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에 걸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계적인 복제방식들은 일종의 축소기술인 셈이고 또 그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작품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러지 않고서는 그 작품들은 전혀 이용할 수 없게 된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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