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1>은 역사를 중심으로 논술과 철학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책의 앞부분은 한국 현대사의 대강이 다루어지는데, 이 중에서 4.3 제주민중항쟁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옮겨본다. 


 1. 제주  4.3


[사진] 제주 4.3 (출처 : https://www.ytn.co.kr/_ln/0103_201804031304184899)


 저자는 본문에서 제주 4.3이 일어난 배경으로 육지와 고립되었지만,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지식인들의 비중이 높았던 제주만의 특징을 언급한다. 해방 이후 여운형(呂運亨, 1886 ~ 1947)의 주도하에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활동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곳이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덕분에 미군정의 지배가 직접적이질 못했고 인민위원회가 상대적으로 뿌리를 깊게 박아 1948년까지 섬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주도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본 본토문명과 매우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했으며 상당한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재일교포사회를 형성했다. 일제 시대를 통하여 농민들의 자립도가 비교적 높았으며, 분화된 직업구조가 본토의 문화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으며 적색농민조합의 조기 형성은 해방 후 인민위원회의 성장에 이상적 환경을 제공했다.(p79)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이러한 환경에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 내에 들어오면서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이후 초토화((焦土化; Scorched eart) 작전을 통해 제주도는 철저하게 파괴되기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제주에서의 유혈참극은 한국전쟁 종료 후인 1954년 9월까지도 계속되는데, 그 사이 기간 일어난 사건이 바로 여수,순천 사건이다.


 2. 여수, 순천 사건과 박정희


 이러한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를 뿌리뽑기 위해 전후 아시아에서 가장 잔인하고, 지속적이며, 철저한 소탕작전이 감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직접 도화선이 된 것은 서북청년단의 학살만행이었다... 서북청년단의 이유없는 양민학살에 대항하여 제주도 인민들은 6년 6개월에 걸친 끈질긴 항쟁을 계속했다.(p80)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명령을 받은 14연대는 항명(抗命)하게 되고, 이를 통해 군대 내 남로당(南勞黨) 조직이 있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군대 내 남로당 조직의 숙청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다. 


 여순항명사건이란 바로 제주도 민중항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 주둔 14연대의 반란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도 약 1만 명의 양민 희생자가 났고, 여수읍의 절반이 소실되었고 인근 지역의 수백 개의 마을이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p80)... 14연대의 반란은 남한의 군대 내에 엄청난 공산당 조직이 침투되었다는 사실이 청천백일 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국군 내에 거대한 숙군의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p81)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3. 이어지는 폭력과 5.18 민주화 운동


 박정희 소령은 전남 광주의 여순항명토벌사령부로 갔다가, 1948년 11월 11일 남로당 가입등의 죄목으로 군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다... 그의 구명 운동에 앞장 선 사람은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이었다... 박정희는 군조직 내 좌익세포들의 상세한 명단을 제공했다. 같은 조직의 동료들의 죽음의 대가로 그는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p82)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박정희는 이 사건으로 사형에 처해질 뻔 했으나, 남로당 간부들의 명단을 제출하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의 만주군(滿州軍) 출신 인맥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여겨진다.


 박정희의 생애의 최후 일단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삶의 폭력성이다. 우적인 전향이 오직 이 땅의 경제도약을 위한 몸부림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제발전이 그의 유신치세기간의 모든 폭력성을 정당화할 길은 없다.(p93)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저자는 박정희의 비극을 그의 '폭력성'에서 찾는다. 인간 박정희의 비극은 대통령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았다. 10.26에 의해 그가 사망한 후에 그 폭력성은 후계자 '전두환'으로 이어졌고, '광주'에서 그 폭력은 잔악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5.18 광주민주항쟁은 그 기나긴 폭력의 역사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악랄하며 가장 의도적이고 가장 조작적인 사건이었다. 그 폭력의 주체는 소위 박정희의 정군운동의 맥을 잇는다고 자부하는 신군부였으며, 신군부의 대표주자는 전두환이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라는 역사적 개인의 모든 가치관의 역사적 화신이었던 것이다.(p94)<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사진] 5.18 민주화운동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2633539)


 한미연합사령관은 20사단의 작전통제권 이양을 요청하자,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Your request is approved). 미국의 허락없이는 움직일수 없는 20사단을 광주코뮨분쇄작전에 사용한 것은 미국의 한국이해의 전형적 한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것은 해방 후 인민위원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미군정의 행동패턴과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다.(p97)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논술과 철학강의 1>에서는 위와 같이 제주 4.3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관계를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연결시킨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저자의 최근작인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 4.3과 여순민주항쟁>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논술과 철학강의 1>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 논술책이라는 한계로 더이상의 현대사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의 짧은 요약본만으로도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을 잡기에는 무리없는 내용이라 여겨져 이를 정리해서 옮겨본다. 덧붙여, 저자의 입장이 너무 편향되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는 이들에게, 같은 책에 있는 북한 비판 내용도 함께 소개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나 도올이 생각하기에, 6.25 한국전쟁이 저지른 최악의 죄악은 독립을 향한 20세기의 찬란한 거족적 항일투쟁의 모든 가치를 무화(無化)시켰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에 있다.(p58)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그토록 피눈물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본민족과 싸웠던 조선의용군과 광복군들이 관동군이 아닌, 바로 해방의 주체인 자신의 동포혈육을 찔러 죽여야만 했던 역사를 과연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김일성은 1953년 7월 28일 평양광장에서 "조선인민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그것은 실질적으로 "조선인민 전체의 전면적 패배"였다.(p59)...1950년 6월 25일부터 전개된 역사에 대하여 김일성은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다. 그는 분명 성급했다.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정확한 판단능력을 결했다.(p61)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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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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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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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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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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