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전편 컬렉션 : HD 리마스터링 (8disc)
케빈 설리반 감독, 콜린 듀허스트 외 출연 / 그린나래미디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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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랑 강릉 신영극장에서 봄.
 아침 일찍 공복에 마신 2000원짜리 커피가 엄청 찐하고 꿀맛이었음.

 1. 길버트랑 앤이랑 화해하고 친해지는 내용 안 나옴 ㅋㅋㅋ 길버트 개불쌍 ㅋㅋㅋ 편집당했구나 ㅠㅠ

 2. 오빠가 눈물을 막 흘림. 특히 매튜가 죽었을 때; 난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왔던 상황이라 무지 당황스러웠음;;; 내가 정말 동심이 많이 시들긴 했구나...

 3. 곧은 한 길로만 갈 줄 알았는데, 살다보면 모퉁이도 보이더라. 난 대학 졸업해서 번역으로 하루종일 힘든 일 안 하고 먹고 살고 어떤 남자랑 결혼할 줄만 알았는데, 땀흘려 노동하고 딴 남자랑 살 준비를 하게 되더라. 인생 내 생각대로 그리 만만히 안 되더라. 원망은 좀 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좀 더 가난하고 좀 더 힘들지만, 떠날 수 없는 땅, 내 모든 걸 희생해도 좋을 장소가 있더라. 앤은 그게 그린게이블즈고 난 그게 강원도인 것 같다.
 
 4. 최종화랜다 ㅠㅠ 아쉬움...

 

 5. 고민 끝에 책은 계속 보기로 결정했다. 비록 작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혼없이 쓴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빨간머리 앤이 만들어진 시기는 어땠는지, 그 나라는 어떤 특색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에 배경이라도 좀 더 캐고 싶어서이다. 게다가 캐나다의 영화나 작품들이 인디장르에서 뜨고 있는 지금은 더욱 이런 게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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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命機 ヴァルヴレイヴ アンソロジ- (コミック)
アンソロジ- 지음 / スクウェアエニックス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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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기 발브레이브는 1편에서부터 사건을 벌인다.

 

 시점은 한 남자애와 한 여자애가 고백하기 직전. 

 

 그러나 고백은 실패하고 여자애가 흙더미에 묻히자, 이에 빡돌은 남주가 멋대로 주차되어 있는 발브레이브를 작동시키고 그 유명한 신체포기각서에 서명을 한다. 남주보고 '동력기관에게 계약서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물어보지 그랬냐'라고 말하는 네티즌들도 있긴 하지만 처음에 남주는 흥분해서 게시글의 존재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 후 적국에서 잠입한 스파이가 (아마 발브레이브를 탈환하려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주인공 심장에 칼담금질하고 총쏘아 죽였는데 주인공이 목을 깨문다. 이야기가 좀 더 진행되어야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 행위는 지구 생명 중 인간에게 제일 풍부하다는 정보원자 룬을 섭취하기 위해서였다. 1호기에 핵이 있고, 이후에 나타나는 나머지 로봇(혹은 파일럿)들도 룬으로 먹여 살린다는 사실도 뒤이어 밝혀진다. 아무튼 여기에서부터 사람들은 '아 얘가 인간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확실시하게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몸을 강탈하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스파이 몸에 들어가고 스파이는 (아마도 주인공의 몸에 들어가) 의식을 잃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하루토, 스파이는 엘 엘프이다. 하루토는 순간 멈칫하지만 개의치 않고 도르시아 연합국의 습격에서 자신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구하려 하고 엘 엘프의 '몸'은 고의치 않게(?) 배신을 하게 되는 형태가 된다. 문제는 2화에 하루토가 고백하려고 했다가 흙더미에 묻힌 그 여자애가 살아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을 알게 된 하루토는 여자아이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여기서 여자아이는 쇼코. 사립학원이 속해있는 국가 지오르의 총리 따님이다.


 한 국가로부터 한 사립학원 정도는 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발브레이브. 하지만 어느 정도 일본을 연상케하는 지오르 중립국을 구하지는 못한다. 원체 군대가 없었고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였기에, 너무나 쉽게 절멸된 것이었다.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남은 자원이란 텅 빈 지오르 국가의 땅, 그 텅텅 빈 땅에 남아있는 자원, 그리고 발브레이브 뿐이다. 이에 쇼코가 재빨리 아이디어를 낸다. 자신을 침범한 도르시아 말고도 또 다른 연합국이 있는데, 만일 자신들을 위협한다면 적국에 발브레이브라는 '무력'을 넘겨버리겠다는 협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들을 토대로 하여 지오르 국가를 재창조한다. 그리고 우주에서 그 사립학원의 모듈을 떼어내어 중립지역인 달나라로 힘든 망명을 떠난다. 그들이 다니던 학교는 곧 정부기관이 된다. 정치 체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들에게 가장 친근한 민주주의로 하기로 암묵적인 의견을 모은 듯하다. (어느 정도 학생회와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쇼코라는 총리가 다수결 투표로 당선된 이후로 아무 탈 없이 고분고분해지는 학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립학원을 지오르 국가로 만들고 그게 일정 기간동안은 잘 돌아간 것으로 볼 때, 쇼코의 정치 능력이 풍부한 것도 사실이다. 선거 때 히든카드로 문화제를 들이밀 때, 내 예상과 너무 정확히 들어맞는 그녀의 판단에 감탄했다. 분명 고등학생일텐데도... 독립과 전쟁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지고 피폐해진 사람들, 특히 극도로 자유로워졌지만 '민주주의'에 따르는 책임엔 직접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모순적인 입장을 해결할 방법은 클럽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웃긴 건 그들이 다수결 투표를 하던 독재를 하던 간에 이 상황이 전부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라는 점이다. 쇼코가 '좋아하는 일 맘껏 해요!'라고 말을 했던 건,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조해주니까 신이 나서 그냥 해 본 말일 수도 있지만 일면에선 소름이 끼치도록 순진한 발언이었다. 하루토처럼 로봇에 탄 파일럿들을 '화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게 불렀던 아이나의 죽음처럼 씁쓸하고 실낱같은 희망의 발현이었음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지오르에선 비밀스럽게 토키시마 하루토의 아버지와 접촉하여 발브레이브를 개발하는 중이었고, 그 사립학원의 모든 학생들은 하루토의 아버지에 의해 처음부터 파일럿 예비후보로 개발된 유전인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보'들의 기반은 한 외계인종이었다. 

 일단 발브레이브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파고 들어가보자.

 

 

첫째, 발브레이브의 코어에 외계인을 가둔다.


 둘째, 발브레이브 파일럿을 만든다. "요즘은 대중매체에서 흔히 나오는 미친 과학자들이란 없다. 과학자들끼리도 다 네트워킹을 하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키시마 하루토의 아버지가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쓴 방법이 있다. 돈이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진술을 유심히 보면 그 사실이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다. 슬픈 일이다. 자본주의란...

 

 셋째, 발브레이브 코어에게 룬이라는 에너지를 먹이면 외계인이 그 에너지를 흡수하여 빛을 내는데, 이 빛은 발브레이브를 방어시킬 수도 있고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그 룬을 사용함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이 지워지고, 제대로 보충하지 못하면 결국 파일럿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런 파일럿들의 부작용과 슬픔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믿는다. 이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대중매체이다. 한동안 지오르를 옳다며 지지하고 격려해줬던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보통 인간들이 죽게 되는 방식으로는 죽지 못하는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자 순식간에 패닉에 사로잡힌다. 원래 그 이전에 외계생물을 배척하기 위해 만든 법률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토 일당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을 숨기고, 하루토의 상태를 이상하다고 여겨 그를 추궁하는 마리에에게 엘 엘프가 주저하지 않고 총을 쏜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언뜻 보면 민주주의 사상에 대해서 사람들이 침묵의 동의를 한 것과도 같다. 비록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우주에 간 인간들은 자기들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다른 미지의 것들을 전부 배척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것을 묵언하고 있던 파일럿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여기서 하루토와 쇼코의 관계가 '복귀 불가'의 상태로 진행되고야 만다. 하루토는 쇼코 때문에 외계인이 되어버렸다는 충격을 아직 회복하지 못해 그 사실을 쇼코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라 본다. 쇼코는 좀 더 복잡하다. 그토록 신뢰하고 있던 하루토가 자신에게 진실을 숨겼으며(사실 하루토가 숨기는 게 또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이전에 이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적도 있기에 그 분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사실 하루토와 엘 엘프를 중립국에 팔아넘겨서 지오르의 평화를 지키려 했던 건 쇼코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묵인'하고 '방관'했던 것이다.

 

 

그 절망 속에서 하루토와 엘 엘프에게 한 가닥 희망을 준 것은 리젤로테라는 존재였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왕족의 몸을 빌린 마기우스라는 외계인이었다. 그녀는 하루토 일당과 같이, 아니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외계의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공존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01인 평의회의 무시무시한 권력에 짓눌리는 자신을 나약하다 힐책하며 엘 엘프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용기를 내달라는 하루토의 짤막한 종용에 다시 마음을 회복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지구로 착지했던 인간들을 우주로 다시 보내기 위해 자신의 온 힘을 쏟았고, 엘 엘프를 사랑하고 싶었다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정보원자 룬이 깨어지는 죽음을 맛본 것이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그녀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구원을 받았으며, 엘 엘프 또한 구원한 것이다. 리젤로테가 마기우스이더라도 그녀를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는 하루토가 원하는 '이상', 즉 마기우스와 인간 사이의 '평화'를 구축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인간과 마기우스를 이간질시키는 101인 평의회를 '파괴'할 계획을 즉시 빠르게 구상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을 보면 알겠지만 그것을 온 우주 외계인과의 '공존'으로 확장시킨 게 지오르 총리 딸.


 과학에 의한 언론조작과 생체실험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파헤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계속된다. 그 모순적인 조화는 '발브레이브'라는 무력과 권력을 갖춘 로봇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비록 판도라의 상자이지만, 어쨌던 끝은 '열어서 그렇게 나쁜 일은 없잖아?'라는 쿨한 결말이었다.

 

 물론 사키에 대한 논란은 있다. 성적인 본능을 이기지 못한 하루토의 겁탈. 뭐 하루토가 사나이답게 결혼하자고 책임지겠다고 고백하기는 했지만 '사랑하지도 않는데 프로포즈를 했다니 최악이다!'라는 논란도 있고. 나중에 마음씨 착한 황자님을 만나 결혼한 것 같긴 하지만 왠지 200년 후 후계자라고 하는 애기가 나오는데 걔가 왠지 하루토와의 사건에서 나온 애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고;;;;  그러나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어차피 다들 어느 정도 희생과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이 만화영화는 에반게리온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썬라이즈에선 나름대로 구석에 짱박혀 있는 비밀스런 과학자(혹은 신교도?) 집단인 제레를 이렇게 소탕할 수 있다는 멋진 계획을 세운 게 아닌가 싶다. 어둠에 싸여있는 괴물들에 빛을 들이대면 그것은 형체도 없이 녹게 마련이다.

 

 아무튼 본인은 매우 멋진 작품이었다 생각하고 이렇게 기나긴 글을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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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특별편 해를 좀 먹는 그늘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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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괴이야기라기보다는 초자연현상이나 허깨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곤충이라고 하는 것들의 생김새를 봐서는 정말로 그냥 '곤충'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2. 백귀야행같은 요괴물은 친근하고, 귀절도는 무섭고도 슬프며, 충사는 조용하면서도 어딘가 스산하다.

 3. 교훈.
 존재 자체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사라졌을 때 사람은 얼마나 무섭고 허전한가.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평소에 잘하고 잘 살자. 헤어질 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4. 일식의 무서움.
 옛날엔 세상의 기이한 현상들을 신기하다고 보기보단 무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세계적으로 행하는 종교적 의식은 무궁무진했음. 황금가지라는 책을 참조하면 사람을 먹거나 죽여서 바치는 행사도 있었다 함. 카니발과 봄축제에 한정되는 설명들이지만, 일식같이 보기 드문 현상이 발생하고 인간들이 집단멘붕에 빠졌을 때 그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좋은 의식이던 끔찍한 의식이던간에 과학이라는 최근의 현상으로 인해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사라졌음. 그러나 간혹 과학을 이겨내면서 세상에 드러나는 초자연현상들로 인해 과학을 맹신하던 현대인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자연현상들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친다.
 
 5. 이 애니는 줄거리도 재미있지만,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일식의 연장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무기력해지는 군상들의 변화. 시간으로 볼 때 현상은 몇 주밖에 유지되지 않은 걸로 짐작되는데, 히스테리와 신경질과 서로간의 불신과 여자들의 우울증 등등이 연달아서 줄줄이 사탕으로 표출되는 게 재미있다. 구스타프 융의 집단무의식 현상에 대한 예시로 사용가능할 정도. 몸의 사정으로 인해 거의 히키코모리가 된 소녀가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과정도 어쩜 그렇게 섬세하게 그려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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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LE Vol.1 - 한정판 (Blu-ray+CD) - Blu-ray + CD + 12p 해설집 + 클리어 케이스
신보 아키유키 감독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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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친과 속초평생교육원에서.

 여태 저질 화면으로만 보다가 DVD가 나와서 풀화질로 보게 되니 적응이 안 되었다. 이번이 세번째로 보는 건데 마미의 기술 피날레가 저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 저래서 꼴랑 3화에서 개죽음 당해도 시청자들이 마미마미하는 건가.
 
 일단 DVD는 6화에서 끝나며 이후 7화는 현재 애니플러스 유투브에서 무료상영해주고 있다. 최근에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프로 중 하나이니 꼭 보길 바란다. 내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극장판도 있다.

 우로부치 겐을 알게 된 건 그 전이었지만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이 쓴 소설 Fate Zero를 구입하겠다 결심한 계기가 마도카 마기카였다. 마법소녀(보다는 마녀물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은 많이 무겁다. 사실 그 무거움이 우로부치 겐 작품의 특색이라 할 수 있겠다. 전개는 빠른데 결말은 뭔가 사람을 찝찝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 그렇다고 용두사미는 아니며 마무리는 깔끔한데 다만 내용이 그럴 뿐; 약간 처진 순한 눈을 한 여주인공이 기막힌 일을 당하는지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스토리의 개연성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지만 일본에서 한 때 유행했던 타임워프의 개념을 계속 이어주는 연결선이었다 하겠다. (이거 스포일런가?)

 

 여담으로 백합설정도 잘 나오긴 하지만 훈훈한 결말이라거나 직접적인 씬이 나오는 건 아니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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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과 역설 - 장벽을 넘어 흐르는 음악과 정치, 개정판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3
에드워드 W. 사이드·다니엘 바렌보임 지음, 노승림 옮김 / 마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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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하지요. 음악에 벌어진 일은 음악이 가령 피델리오의 트럼펫 소리에서 알 수 있다시피 굉장한 부르주아지인 베토벤에서는 사회를 재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의 시대로 오면 음악은 대신 사회 속에서 아무런 기능도 담당하지 못하는 무능력만을 대변하게 됩니다. (...) 오늘날 음악이 혼을 빼놓을 정도로 복잡해져, 음악으로 하여금 사회의 반대축이나 균형축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도록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 현재 음악이 갖는 의미라는 것이지요.

요즘에는 자꾸 클래식만 듣게 된다. 일단 가사가 있으면 집중력이 엄청 떨어지는데 (요새 일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왠만하면 다 알아들음.) 아예 모르는 이태리어 불어 이런거 나오면 그나마 일하는 데나 책 읽는 데 칩중이 되거든.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내 모든 시간이 독서모임, 책 읽는 시간, 아니면 팟캐스트 듣는 시간이라.

사이드를 보고 싶어 샀는데 자꾸 나는 바렌보임에게 눈길이 간다. 대단한 사람이다. 제목 평행과 역설도 저 분의 말에서 따온 듯. 다니엘 바렌보임이 다른 사람들에겐 좀 괴짜로 보이고 레비가 성자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만은 반대로 보인다. 그렇다고 레비가 히틀러에 대해 노골적인 증오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그 분도 자신이 배운 만큼 침착하게 처신을 하고 있다.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서 명백히 드러나는 인종차별이 나에겐 무척이나 불편했다. 왜 인종차별을 받았으면서 다른 인종을 인종차별하려 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책에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분이 쓴 다른 저서를 읽었을 때도 그랬다. 그런 점에선 '음악을 하는데 훌륭한 음악가가 무슨 인종이던 성격이 괴팍하건 어땠단 말이냐, 난 내 발전을 위해 음악을 하고 있고 니가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되지 왜 나보고 음악하지 말라 그러냐, 너보고 프라이버시를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는 양키놈이라 하면 넌 좋냐?'라고 쏘쿨하게 말씀하시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존내 내 취향이다. 개인적으로 유태인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의 글귀를 하나하나 새겨보면 볼수록 그가 너무 좋아 미치겠다. 이런... 이렇게 보수가 되어 가나 ㅠㅠ 그렇지만 나도 애를 때린다거나 여자를 성희롱 하지 않은 이상 성격을 따지지 않고 음악이나 문학을 좋아하는지라.

팔레스타인 이야기가 간간히 나온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수주의자들이 세련되게 멍청한 소리를 한다는 건데, 멍청한 이야기인 걸 알면 비웃으며 스쳐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첫째, 겉모습은 싸움 없이 깔끔하게 가는 듯하니까. (사이드가 이 말을 꺼냈을 때 대체로 바렌보임은 대화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소 성숙하지 않아 보이긴 하다.) 둘째, 그게 멋져 보이니까. 셋째,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간의 본성. 넷째, 반박하면 내가 싸움꾼으로 보이니까. 다섯째, 주로 나이든 꼰대들이 투쟁하자고 외쳐대는 것 같으니까. 나는 참 젊은이들이 힘들어보인다.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텐데 이에 굽히지 말아야 하겠다.

달에 홀린 피에로 처음 들었을 때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사이드가 베르그와 베베른까지 합쳐서 이방인의 음악이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린다 ㄷㄷㄷ 좀 허무하긴 한데 이 이상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을 듯하다. 조성음악 이후로 쉰베르크의 무조 말고도 여러가지 조성에 대한 대안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다 현대음악의 초석들이지만 그렇게 사이드로 빠져버린게 많이 아쉽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역할 문제로 싸우기도 한다. 지휘자는 엄밀히 말해 현재의 음향 엔지니어링 역활을 사람이 도맡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세라던가 고음 중음 저음 영역대의 분포가 안정 되도록 신경 쓰는게 지휘의 기본 방침이니까. 표현의 역량은 연주자들의 몫이다. 음악에 있어 공연이란 개념을 완성시키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단 나는 수학적, 공학적 접근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소리 자체가 일단 물리적인 현상으로 시작하니까. 실제로 프로듀싱도 그래프+수치로 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이런 정교함보단 더 감정적인 무언가를 이끌어낸다는게 음악의 양면성 아니겠나.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그렇지 음악에 대해 기대 이상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음악 때문에 산 책이 아니라서 굉장히 의외인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바그너가 멘델스존을 욕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하기사 쓸데없이 국뽕만 강한 극보수주의자란 느낌은 있지만 나름 음악은 괜찮은데 ㅋㅋㅋ

한편 알면서 생각도 못해봤던, 바이로이트의 성과 폭력에 관련된 것들이 점점 심해진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좋아하는 오페라는 춘희 아니면 카르멘이고, 못지않게 고어가 나오는(?) 장르를 선호하는지라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이건 앞으로 페미니즘이 뜨면서 자유로이 제기될 문제 중 하나라고 보긴 하는데 워낙 요새 오페라의 인기가 저조해서 말이다. 사이드의 말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어서 이 사람 존경할만 한가 긴가민가했는데 이 글 보면서 갓사이드로 인정한다. 사실 음악사 공부해보면 나오는 거지만 음악만큼 성 역활을 견고하게 잡아놓고 운영된 예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미술이 표현의 분리라는 느낌이라면 음악은 역활의 분리라는 느낌..

갑자기 고전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읽는 방법을 실패할 수 없기 때문이란 명구가 떠오른다. 결국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닦아놓은 해석의 가이드라인과, 그 가이드라인과 다른 해석을 내놓아도 고전이라는 거대한 가치는 그마저도 무차별적으로 포용하기 때문인데, 고전의 문학가치적 정치력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면 사이드의 볼멘소리가 많이 공감간다. 그러고 보면 문단계가 그렇게 지키려 하는 순수문학도 고전에서는 그 입지가 뚜렷하니ㅋㅋㅋ

 

바렌보임: 모난 것에서 둥근 것으로,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영웅적인 것에서 서정적인 것으로, 이 모든 것들을 음악에서는 경험할 수 있지요.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개념들을 총체적으로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음악이 더 좋다라는 걸 말하는 거 아닐까 싶다.


음악 내에서 저런 '표제'들은 언어 의미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모두 하나로 녹아드니까. 하지만 마지막 빼고는 이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는 지금은 음악을 재정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긴 한데. 또한 너무 음악을 서사적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이 나랑은 안 맞는 듯 하다 ㅋㅋ 보수인사로 알고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반면 사이드는 책을 읽어나갈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음악평론가란 사람들이 들으면 개거품 물것같은 말을 많이 하는데 ㅋㅋㅋ 무슨 음악가 관련 자료라던가 국가상황 등등 이거저거 덧붙여서 더 클래식이라거나 이름 그럴싸하게 지어서 가격을 무지막지하게 한 뒤 책을 팔던데. 특히 음악 혐오던가. 제목도 참 그럴싸하지요? 솔직히 실망했음. 소설이나 계속 쓰실 것이지. 그들에게 옛날부터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날렸던 일침이란 느낌이랄까. 아마 사이드가 주장하는 음악의 다양성이 현재 음악계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미술은 딱 한번 보면 인상이 전달되기 때문에 화력(?)이 빵빵한데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보니... 청자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 아직은 라이온킹 OST에 아프리카 음악을 쓴다거나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게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몇 안되는 세상 것들 중 하나가 음악이다보니 희망을 가져본다.

 

팔레스타인 사람에서 이집트인으로, 다시 미국인으로 표찰을 바꾸어야 했던 사이드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강원도 촌놈에서 서울 대학생으로, 다시 주변국 출신의 미국 유학생으로 신분을 바꾸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한 나로서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 강원도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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