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두 남녀가 사이코패스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건 이 녀석들이 아니다. '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에서 이 둘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장면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요 핵심일 듯하다.
단순히 경찰서에서 러브러브하는 애니메이션인 줄 알고 봤다가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진지해지는 데다, 결말을 보면 어쩐지 커플 브레이킹 같아서 살짝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긴박해질 뿐더러 특히 10~11화 땐 마치 폭풍 몰아치듯 상황에 휩쓸리기 때문에 애니에서는
시스템이 그들을 갈라놓은 것처럼 뒷설명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마 2기에서 이걸 제대로 다루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글쎄. 저런 경우엔 어떻게 해결이 안 된다고 보는데(...)
어쨌던 난 사이코패스에
나오는 모든 인물 중에서 츠네모리 아카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녀의 신념에도 공감한다.
2. 일단 사이코패스에서 최고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게 이
마키시마 쇼코이다. 냉철하다기보단 충동적인 감정에 잘 따르는 편이라서 실상은 벌써 죽었어야 마땅한 사람이지만, 이 애니의 특정한 상황 때문에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살아남는다.
- 경찰이 심판의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스포일러이니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 경찰이 지급받는 총은 사람의 정신상태를
측정하여 그에 맞는 벌칙을 부과한다. 그런데 마키시마 쇼코는 유달리 정신상태가 말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비록 살인일지라도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명백하고, 신념이 있으니 곧은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범죄계수를 재도 그만 안 재도 그만인 그는
사이코패스 애니 내부의 검은양이다. 차라리 머리가 비었다면 그냥 자신이 살고싶은 대로 살았을 것이다. 츠네모리 아카네처럼 경찰관이 되었던가 아님
골목의 우두머리가 되었던가. 하지만 그는 희대의 정치범이 되는 길을 택했다.
- 종이책을 매우 좋아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지식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기에 그는 시빌라 시스템의 맹점을 알아차렸어도 세상에 폭로할 방법을 궁리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살인범들처럼 '평범'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
방법을 궁리했을 뿐이다. 포기가 너무
빨랐다.
- 매사에 부정적이다. 성서를 보면서 그는 '가라지'에 대해 언급하는데, 가라지는 독보리를 가리킨다. 예수는 겉보기로는
너무나 비슷한 밀알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대로 냅두고 있으면 둘 다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밀알은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떨어지고, 가라지는 열매가 나도 그대로 붙어있기 때문에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무엇을 가라지라 생각하는지는 애니메이션에선 확실히
언급하지 않지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시빌라가 뭔지도 모른채 그것을 숭배하기 바쁜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
-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사냥을 좋아하는 어떤 인물이 나왔었는데(이것도 스포일러라 이름은 생략하겠다.), 마키시마 쇼코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 마키시마 쇼코에 대한 그의 판단은 상당히 정확했다. 가장 잔혹했지만, 역시나 엘리트 층에 속해서
그런지 사람을 보는 눈은 상당히 정확했던 것 같다. 최구성이 그를 많이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마키시마 쇼코는 그를
파트너로 본다기보단 수하로 다룬다. 그가 죽었어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 아마 최구성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더라면, 10~11화의 설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포함하여, 꼭 이런 혁명가들은 후계자를 남기는 데에 실패한다.
- 극단적이다. 일단
여기서 그의 혁명은 실패했다고 본다. 그는 확실히 여태의 살인범들하고는 다르다. 물론 이 사람은 최구성보다도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리더의 자질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의 인간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인간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느 순간에선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의 혁명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고독에 대한
그의 고찰에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고 일반화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괴로움을
풀 생각을 못한 채 그대로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그 괴로움과 고통을 타인에게 전달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빡세게 일해본 과거가 있는 사람 A가, 고객으로서 레스토랑에 가게 될 때 거기서 근무 중인 웨이터 B에게 생짜를 부리는 식이다. 물론
A와 B는 일면식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걸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게 A이다.
3. 이런 마키시마 쇼코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준 사람이 바로 코가미 신야이다. 그는 마키시마 쇼코에 의해서 동료를 잃었고, 그에 복수할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마키시마 쇼코를 직접 보고 나서는 복수의 목적이 흐릿해져버리고 말았다. '동료를 죽인 놈'이 아니라 '사악한 놈'으로 인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빌라 시스템으로는 그를 처벌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시빌라 시스템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악당을 처벌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신념에 의해 구식 총을 든다. 물론 시빌라 시스템이 맹점을 지닌 건 사실이니 그의 방식 자체가 나쁘다고 하진 못한다.
그러나 카가리는 마키시마 쇼코의 패거리들에게
시빌라 시스템에 맞서서 악의 신이 될 작정이냐고 반박했다. 이 경우는 코가미 신야에게도 적용된다. 사회와 시스템에는 분명 차별과 맹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을 더럽혀가면서까지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 하지만
이전에 자기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신념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더불어 마키시마 쇼코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려서, 목적을 잃은 이후인 2기엔 또
무슨 목적을 찾을지도 상상이 안 된다. 아무래도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그는 다시 상당 기간을 방황해야만 할 것이다.
- 신적 존재 외의 누구도 밀알과 가라지를 가릴 순 없다. 날 때렸다고 하여 남을 때리면 나도 폭력꾼이요, 내게 소중한
사람을 죽였다고 하여 남을 죽이면 나도 살인자다. 내가 사형을 반대하고 전쟁에 회의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무의식으로 빠져든 건 좋다. 하지만 적당한 때 빠져나오지
못했다.
- 증오이던 사랑이던간에 인간 자체가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혁명을 보아야 한다.
애플의 정신과 혁명은 좋지만, 그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혁명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고독은 일시적으로라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고독을
즐긴다니 그 얼마나 독한 사람인가. 인간이라기보단 야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늑대는 무리지어 산다. 애니에선 그를 늑대로 비유하지만 그 비유는
정말 잘못되었다. 고독에 집착하게 되면 그 심연 속으로 빠진다. 그럼 결말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다.
4. 이 애니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이 바로 이 츠네모리 아카네이다. 그녀는 정신감정도 상당히 좋은 상태이고, 종이책을 잘 접해보진 않았지만 상당히 머리가 총명하여 테스트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그녀가 정해진 '지식'만을 섭취했더라도, 통찰력이나 관찰력으로 그 이상의 지식을 섭렵했음을 잘 보여준다. 시스템을 잘 따르고 그 내부에서 잘해나가는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중에서도 집행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녀는 결코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밀고 나간다. 이는 그녀가 상당히 자존심이 높으며, 주도권을 잘 잡을 줄 아는 건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암시한다. 코가미 신야를 상당히 좋아하고 신야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 눈치챌 정도로 그에게 호감을 쏟지만, 신야의 자기 학대()에 결코 휘말려들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서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고독을 '외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괴로움을 타인에게 갚지 않으려 할 뿐더러,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냉정하게 상황을 관찰한다. 방황하고 갈등하되 결코 법과 도를 넘지 않는다. 시스템에 조종당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 거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증거는 그 자신이다. 자신의 신념이 죽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타인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그녀는 행동과 말이 일치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신야는 그녀의 놀라운 변화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좀 더 귀여워지면 좋을텐데." 아카네는 그에 대해서 침묵한다.
아카네가 자신을 그렇게 보이게 하면서까지 몰아붙이는 이유는 그녀가 시빌라 시스템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시빌라 시스템이 워낙 거대하고, 전 일본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으니 츠네모리 아카네가 그것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코가미 신야를 죽게 하지 않기 위해(혹은 그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총을 논리설 패럴라이즈로 고정시킨 건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하다. 좋게 보면 아카네가 시빌라 시스템과 타협을 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조작이다. 분명 이전에 시빌라 시스템은 마키시마 쇼코를 살리고 코가미 신야를 죽이기 위해 한 번 범죄계수를 조작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아카네는 시빌라 시스템의 조작을 묵인했다. 항상 말하지만, 실수는 한 번 묵인하면 신나서 두번 세번 반복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명백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카네의 선택은 과연 이성적인 타협인가, 아니면 감정적인 외면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마저도 마키시마 쇼코의 혁명에 말려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