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맞은 편 벽에는 검정색, 흰색, 빨강색으로 그린 거대한 이 한 마리가 '이 한 마리는 너의 죽음'이라는 구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2행시도 있다.

용변을 본 후나 식사하기 전에
손 씻는 것을 잊지 말 것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은 참 잘 썼다고 생각한다.


나도 책 내용 안 보면 파닥파닥 낚일 듯한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부제 '아유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에 주목하길 바란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태인 프리모 레비는 이과의 우등생이어서 실험실 일꾼으로 발탁당해 살아남게 된다. 그 과정을 적은 이야기다. 실상 다른 유태인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제목만 거창할 뿐. 하지만 독일어가 쓰여져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번역자가 어감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냅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알겠지만 페북에서 문의한 사람이 있으니 설명을 붙여보겠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 유태인이지만 독일로 끌려갔고 독일은 그 당시 선진국(?)이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독일어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분의 다른 책들엔 다시 이탈리아어가 나온다.

 

여자를 못 본 게 몇 달이나 되었지? 부나에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여자 노동자를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녀들은 바지와 가죽점퍼를 입었고 남자들처럼 크고 거칠었다. 그녀들은 여름에는 땀에 흠뻑 젖었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으며 겨울에는 솜을 넣은 두꺼운 옷을 입었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을 해서 옆에 있어도 여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실험실의 여자들 앞에서 우리 세 사람은 깊은 수치심과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나저나 내가 읽은 건 그나마 여자를 존중해주는 책이었군요.
여기서는 완전히 여자를 눈 달린 물건 취급하네.

 

 

1944년 아우슈비츠에 오래 수용되어 있던 유대인 포로(다른 포로들은 언급하지 말도록 하자. 그들의 상황은 또 달랐으니까) 'kleine Nummer'(낮은 번호)는 15만 명이 조금 안 되었는데, 그중 수백 명만 생존했다. 그들 중 일반 코만도에서 정상적인 배급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살았던 일반 해프틀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의사, 재봉사, 구두 수선공, 음악가, 요리사, 매력적인 젊은 동성애자, 수용소 권력자의 친구거나 동향 사람이었다.


아예 생판 이해할 수 없는 문구도 많았다.


아마 그 당시 자기 주변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게 쓴 게 아닐까 짐작한다. 특히 오디세우스의 노래는 배경을 잘 알고 있는 나도 뭔 소린지 감이 안 잡히니 말이다. 차라리 여기에 적혀있는 것처럼 젊은 동성애자가 살아남는 '숨그네'라는 소설책도 있으니 그걸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보단 훨씬 아우슈비츠에 대한 이해가 잘 된다. 우리가 공감이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텍스트 중에선 소설만한 매개체가 없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연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0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파이드로스, 이렇게 나는 무엇보다도 우선 에로스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기에, 그 다음의 것으로 그가 남들에게 있는 이 비슷한 다른 것들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막 뭔가 운율을 넣어 말해 보겠다는 생각이 내게 들었네.

인간들 사이에는 평화를, 바다에는 바람 없는
잔잔함을, 바람들의 안식을, 또 근심 속에 잠을

만드는 자가 바로 이 신이라고 말일세. 이 신은 우리에게서 낯설음을 비우고 친근함은 채우네


읽어보니까 의외로 상당히 재밌는 술파티였다. 단순히 현대에서 말하는 사랑만이 아니라 영혼에서 발원하는 순수한 영적 정관을 다루는 이야기랄까. 아무튼 술자리에서 사랑이야기라니 멋지다.

 

그런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홀로 50대인 소크라테스 뭔데 ㅋㅋ 태양의 정점인 하렘이신 듯.
게다가 처음부터 아폴로도로스가 대뜸 친구 때리기를 시전한다. 자신은 철학 이야기를 말하거나 듣는 게 무척 즐거우며 부유하고 돈 잘 버는 너네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짜증과 동정심이 섞인 감정을 느낀다나 ㅋㅋㅋ

 


사실 할리퀸 소설은 남자 여자 전부 반말을 썼다고 한다.

 

영어문법을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번역에서 하도 여성들이 '당신 ~했어요?'라고 하고 남자는 '~했소.' 라고 말해대니 으레 상상도 그렇게 전개된다. 그러고보면 최근 방영된 러브라이브 뮤즈에서도 전부 반말 쓰자고 하는 게 등장하고 하는 게 젊고 새로운 듯이 보이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50대고 20대고 전부 반말을 썼다는 점.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는 상식이 한동안 막혀있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얼굴도 고운데 사랑하는 사람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아킬레우스 이야기는 역시 원전을 읽지 않으면 자세히 볼 수가 없는 요소이다. (동성애 이야기이니까.) 윤서인과 관련된 일이 생각난다. 보통 잘생긴 사람들은 옛날부터 뭘 해도 성공하고 잘 살게 되는지라,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게 정말 힘들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인품이라도 아주 매우 고와야 중간이라도 가는 것이다. 얼굴이 잘생겼는데 인품까지 고운 사람들, 의외로 많다.

 


향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에서는 평민 남성의 권리를 상당히 인정해주었고 동성애도 공공연히 행했었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엄청났고 마찬가지로 여성의 동성애도 자신들의 동성애와 달리 더럽다고 공공연히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러고보면 지금 남성의 동성애가 여성의 동성애와 같이 하등한 무언가로 추락했고 심지어 같이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니,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발전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랑 이야기들도 그럴듯했지만 위인이니만큼 역시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가장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 듯이 은유를 꾸며대는 데선 예수의 면모가 있다. 그러나 세속적인 유혹(행위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지만)에 넘어가지 않는 건 서경덕을 닮았다. 그의 말대로 인간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작품으로서의 아이들을 낳는 게 사실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아무래도 출산보다 낫다 하는 걸 보면 임신이 이성간보다는 동성간의 교류를 뜻하는 듯하지만. 물론 난 이성으로도 충분히 출산 이상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 했는데, 보통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은 걍 자기비하가 쩔어서 지랑 닮은 자식 낳기 싫어하는 것 같다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빛사냥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2
J.M.바스콘셀로스 지음, 박원복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똑같은 반성문 천 줄을 써야 한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천 줄이나? 차라리 책 한 권을 쓰는 편이 낫겠군. 소설 한 권 말이야. 젠장, 내가 알게 뭐야. 거지 같은 걸로 한 권 쓰고 말지. 그런데 천 줄이나 쓰라니, 한 문장 한 문장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건 연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한 걸 거야. (...) 나는 일부러 그걸 증오한다고 말할 텐데, 그게 받아들여진다면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쓰게 될 것이다.
"문장을 말해요!"
"이삐랑가의 평온한 강변들은 들었노라......."
(...) "이 아이가 완전히 돌았구먼. 애국가를 증오한다고?"

내가 듣기로 이 시기의 브라질은 우리나라의 80년대와 비슷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구절은 유머를 담아서 작가가 현실을 비꼬는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젠장. 내가 너무 소설을 해석하려 드는 건가? 혹시라도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조언을 구한다.

 


보통 혼혈아들은 생김새가 준수하다고 한다.


 혼혈인이 아름답다라고도 하지만 그런 표현은 극히 드물며, 보통은 혼혈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들은 특수한 부모들에게는 인기가 많아 잘 선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그 선택을 좋아하게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귀여움 받는 걸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데도 계속 귀여워하는 건 폭력이라고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를 읽으면서 나는 배웠다. 게다가 귀여워하는 방식이 애정표현도 아니고 공부를 마구 시킨다는 비정상적인 방식이라면 어떨까. 차라리 아주 솔직히 네가 이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체면을 내세우고 훗날 자신에게 베풀어주는 걸 기대하고 투자하는 것 뿐이라 말한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귀여워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 볼 수는 없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제발 귀여워하는 사람에게 할말 못할말 다 말하지 마라... 귀여운 인간은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단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뭐? 아버지가 이사를 가고 우리는 잘 살 거라고 했더니? 웨 입양이 됨? 그럼 가족이 애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겁니까? 너무 열받는데. 평소 애를 죽을 때까지 패놓더니 ㅋㅋㅋ 아니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았으면 다 책임을 져야할 거 아냐 ㅋㅋㅋ 이거 정말 너무하네요 ㅠㅠ 1부도 그렇게 시궁창이었는데. 슈발것들 진짜 그 가족 보면 머리 다 뽑고 싶을 정도의 증오가 올라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제는 어른들을 이해하려 애쓰며 현실과 타협해 나간다. 고도이아의 자동차 사고가 계가가 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도 옛날엔 이런 거 많았다. 가난한 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에 위탁형태로 가서 돈 벌거나 공부해서 잘 살고 집에 원래 집에 돈 가져다 주는 방식. 내 주변에도 그런 어른 있고.

 


제제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게 특히나 슬프다.


 1부에서 돈을 벌어야 하고 죽음과 싸우는 어른들의 심정을 모르고 장난쳤던 제제가 있다면 이 2부에서는 어른들을 배려해주는 제제가 있다. 안돼 제제야 ㅠㅠ 어른의 심정을 안다는 건 늙어간다는 증거야 ㅠㅠ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건 좋지만 얼굴이 이쁘장해서 아버지가 경계하는 걸 보니 역시 3부에서는 여자들이 졸졸 따라다닐 거 같다 ㅠㅠ 옛날에는 제제한테 감정이입해서 어른들을 욕하고 다니면서 제제가 빨리 성장하길 바랬는데 다 커서는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내가 늙었단 증거인가(...) 아님 최애를 애끼는 마음? 애인이 생긴들 분명 제제의 불우한 환경을 버틸리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는 듯하다.

대체로 꼬꼬댁 꼬꼬 하는 암탉 웃음소리를 내는 등 제제 리즈 시절에 비하면 완전 평범하지만 기숙사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장난을 치는 듯하다. 1부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하면 상류층계에 눌려서 기가 죽은 것 같아 매우 짠하다. 전엔 반항이라도 했지 여기선 초반에 찍소리도 못하고 눈물만 질질 흘리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제제에게 점점 말을 거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지혜가 생기면서 전에 없던 완벽범죄(?)가 가능해진다. 그 점이 신박하다. 제제가 하는 짓이 내가 하는 짓 같은데 어른들에게 들켜서 혼날 것 같으면서 들키지 않는 스릴이 있다. 제제가 도시에 와서 생활하다보니 아무래도 상상력이 밍기뉴 때보다 빈곤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실제 인물이었던 뽀르뚜가가 기차에 치여 죽은 게 충격이 커서 거리를 뒀는지도 모르겠다. 햇빛사냥 중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두꺼비 아담도 짐을 쌀 때는 제제한테 쌀쌀맞게 대하는 걸로 나오고. 기타 모리스 아저씨가 자신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고 아담이 자신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등, 일부러 한계를 설정해놓고 가상의 인물들을 조롱하듯이 말한다. 너는 근데 예전에 이 수사님이 말한 것과 어쩜 그렇게 똑같이 말하니? 라는 식으로. 무엇보다 죽음을 무서워한다. 처음 만날 때부터 너도 떠날거야? 너도 죽어? 그러고 물어보는 식.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는 듯해서 불쌍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모리스 슈발리에를 진짜로 만날 때 울었다... 제제가 모리스를 만난 게 꿈인지 아닌지 아직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있는 듯한데, 나는 어린 시절 제제가 만난 모리스는 모리스를 꿈꾸는, 제제가 양자로 들어간 집안과 관련된 어느 배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버드 새벽 4시 반 - 최고의 대학이 청춘에게 들려주는 성공 습관
웨이슈잉 지음, 이정은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하버드의 학생식당, 강의실, 심지어 보건실에서도 그런 학구열은 결코 식는 법이 없다. 학생들은 식사를 하는 자투리 시간까지도 전부 공부를 하는 데 쏟는다. (...) 만일 모든 학생들에게 매일 저녁 두 시간의 여가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이 시간에 맘이 맞는 친구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고 싶어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할 것이다.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누군가는 분명 이 두 시간을 다르게 보낼 것이다. 그는 두 시간 동안 매일 한 주제에 대한 책들을 찾아서 일 년 동안 서른 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울 것이다.



헬렌 켈러도 하버드 학생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새삼 놀랐다. 그런데 모든 위인전의 공통점은 헬렌켈러의 이후의 삶을 이야기 안 한다는 점이다. 공산당활동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딱 자기들에게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하기. 이건 뭐 자기들 입맛대로 하는건지. 언젠가 딱 한번 무슨 책에서 봤던 거 같다. 그녀의 활동 때문에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얘길 굉장히 자세히 얘기했는데. 하긴 미국도 반공이 활발하니까 ㅎ 반공의 주역이 미국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만.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싫어하는 이유는, 책에서 말하는 구절이 아무리 올바르다 해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화장실 가서도 책을 보고 산책하면서도 책을 보고 밥 먹으면서도 책을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비웃는다. 내가 책의 내용을 실생활에 옮기지 못해서 잘 살지 못하는 면도 크지만, 이런 사람들의 비웃음이 독서하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건 사실이다. 만일 하버드에 가면 나는 또라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사실 서울 도심 한복판만 가도 책을 들고 걸어가는 나의 행동이 비웃음을 받지 않는다. 외국인들 중에선  '오히려 한국인이 모두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가? 존경스럽다'라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며 손을 잡고 감탄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 티를 너무 많이 낸다. 일례로 나는 내가 사는 곳에서 걸으면서 책을 읽다가 "이런 식으로 책 광고 하세요?"라고 나에게 묻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은 내가 일하는 곳에서 파는 책은 아니었다. 이 동네에 살면서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슬프지만 어릴 때부터 모든 걸 돈과 장사로밖에 보지 못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내 생각으로는 책을 읽어도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열등감이 아닌가 싶다. (책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긴 싫다.) 내 전 비에푸는 내가 술집에서 책을 읽는 행위를 비웃은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술 마시면서 책을 읽는 독립서점도 있다. 이 글 읽는 사람들도 다시는 책 읽는 사람을 비웃지 말길 바란다. 나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 독서량이 주춤했던 사춘기를 후회하고 있다. 그 때 사람들의 눈치 안 보고 좀 더 책을 읽었으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그냥 책 읽고 있으면 호기심 가득해서 물어보는 거 노이해...에에 역시 문창과. 지랄하지 마세요. 문창과도 아니거든요. 아, 지금은 책 읽는다고 욕하는 인간 등 뒤에다가 당당히 가운데 손가락 세우고 엿먹어라하고 속삭이는 깡이 생겨서 한달에 20권 이상 읽는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는데, 대체 자신만의 시간 혹은 쉬는 시간을 무엇에 쓰는지 궁금하다. 영화보기? 드라마보기? 그러나 만일 하루나 이틀을 쉰다면 그 쉬는 시간을 모두 영화나 드라마보는 데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인터넷 서핑? 이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멍하니 아무것도 머릿속에 담지 않은 채 하잘것없는 인터넷기사를 보면서 부유하다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긴 하다. 그렇지만 눈도 안 좋아지고 취침을 못 하기 때문에 피로가 높아진다. 그렇다면, 핸드폰이나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책을 보는 게 훨씬 알차게 쉬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나 말고도 걸으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동지들을 늘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

서점에서 일할 때 굳이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느 서점직원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서점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려는데 대체 책을 좋아하지 않은 상태로 더 무슨 조건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정리벽이 있으면 혹시 모르겠다. 책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크기를 맞추는 데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고객이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고객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책과 공부를 좋아해도 먹고 살 일을 찾으려는 목표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수십가지 일을 해본 다음에 서점직원이 내 천직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든 사람이 그 재미를 알았으면 싶을 정도다.

하 밍나.
그래도 서점에서 일하면 일하는 시간에 그 서점 책 읽을 수 있을 줄 아시죠? ㅋㅋㅋㅋ
저 레알 금지당했었음. 왜냐.
1. 상품인 책에 본인의 지문이 찍힌다.
2. 열중하다보면 고객이 상담하는 걸 못 알아듣게 된다.
3. 남들 다 일하는 데 놀지 마.
그래서 나도 일할 땐 책 안 읽고 꼭 내 서점에서 책을 사감.
그래도 책 내용은 다 알음. 신간 오면 그래도 대충 훑거든요 ㅋ 사실 하버드 새벽 4시 반도 따지고보면 재탕임. 이미 내 서점에 있음 ㅋㅋㅋ

자꾸 철학자가 어떤 말을 했다 이러는데 정말 철학자의 말 같은 것도 있고, 탈무드에서 나오는 랍비를 자꾸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 같은 말도 있다. 어떤 철학자가 그랬는지 더 정확히 말해줬음 좋았을 듯하다.

하버드에 대한 책을 읽을 때 독자들이 명심해야 될 일은 하버드가 미국에 있다는 점이다. 아마 모두들 지금쯤은 알고 있겠지만 미국은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 끼어들어서 모두를 파멸로 몬 뒤에 자신이 이득을 취한다. 나중에 먹는 인간 리뷰할 때도 다룰 테지만, 미국은 세계의 식량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미친 척하고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생필품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리고 미국의 식량을 사라 하면 쌀은 아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멸종될 수도 있다. 하버드는 그런 동네에 있고, 그들은 지식을 틀어쥔 채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쥐어짜고 있다. 즉 이런 책에선 지금 당장 하버드에 가지 않는 이상 모두의 미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두가 하버드를 갈 수 있진 않다. 그러면 하버드는 탈락된 자들을 비웃으며 그들이 노력하지 않은 탓을 할 것이다. 그게 하버드다. 예를 들어 늑대소년 피터가 인간 세계에 왔을 때가 이 책에 나온다. 저자는 피터가 인간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이유가 후천적인 학습을 받지 못해서 그런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수업에서 내가 듣기론, 사람들이 늑대에게서 키워진 피터의 개인사정을 듣고 처음부터 선입견을 지녀 늑대처럼 취급했기 때문에 피터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의견 때문에 이 이야기는 대표적인 에피소드일 뿐 심리학의 표면에서 다룰만하진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터가 살고 싶은 환경에서 살도록 어느 정도 합리적인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으리란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도 함께였다.

우리나라에서 취직하기 어려운 이유를 분석할 때 사람들은 여러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볼 땐 젊은이들이 굳은 일 하기 싫어서도 맞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다 교육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대해선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직장에서 욕을 먹거나 맞으면 자신이 일을 잘했던 못했던 무조건 저항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요새는 누구나 대학 교육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다시 문제가 되는 게 있으니 바로 '개나소나' 대학을 다니려고 한다는 점이다. 마치 미약한 정신병이 있어도 신체 멀쩡하면 군대에 넣어버리기 때문에 트러블이 있듯이, 회사에서 부딪쳐가며 사회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 사람들도 대학에 가기 때문에 트러블이 생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군대식 사회를 그대로 대학의 선후배관계에 주입하기 때문에 공부하러 대학 간 사람들마저 공부가 싫어지려 한다. 이에 대한 내 답은 이 책과는 좀 다른데, 차라리 그럴거면 공부는 취미로 하고 다른 살 길을 찾으란 것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자신이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고 줄창 공부만 하다 굶어 죽으면 남에게 비웃음 사기 딱 좋다. 만국공통언어 영어도 자신의 취직에 방해가 된다면 일단 과감하게 버리는 게 좋다. 우리나라에서 취직해서 무난하게 살기엔 사실 대학보단 국가자격증을 따는 게 딱 좋다. 대학 간 사람과 가지 않은 사람의 월급차는 있지만, 난 그것도 조만간 좁혀질 거라고 본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월급을 똑같이 받을 날도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그럼 대학을 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소용없다. 정말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대학에 보내고 대학 수준을 올리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대학은 일찌감치 없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없어졌음 좋겠다.

대학을 나왔지만 다른 대학을 다시 가고 싶다. 구하려면 사회복지쪽을 알아보는 중이다.
근데 일단 남자를 만난다 가정할 때 학벌이 너무 높으면 이상하게 여길거라 생각해서 참고 직장을 구했었다. 은근 보수적인 구석이 많다. 근데 솔로다 ㅋ 솔직히 이제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애인 기다리기도 힘들고 원래부터 사람에게 맞춰주는 성질 아니다. 근데 우리 직장은 놀랍게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휴가를 내 맘대로 못 잡는다. 다니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직장이 날 안 자른다. 사실 돈만 많으면 책 읽고 공부만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당장 도전할 수 있는, 논문 쓰기 연습을 할까 생각 중이다. 다행히 도와주겠다 하신 페친 분이 있었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하나 시작하면, 나이가 장애될 리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을 계기로 새로 배울 게 생겼고 무엇보다 빨리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어 신난다 ㅎㅎ 이 책 추천한 분이 트렌드 코리아 2018도 추천했는데 이것도 심심풀이 삼아 페이지 터너로 읽어볼까?

하버드 도서관에선 책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옛날에 무라카미 류의 희귀책 보려고 국회도서관 갔던 거 생각난다. 거기도 책을 가지고 나가는 게 안 된다. 애초에 책을 읽으되 소유욕이 없는 나로선 잘 이해가 안 되는 행위이긴 한데, 이런 데선 책을 전략적으로 읽어야 한다. 처음부터 가격이 무지 비싸거나 독립출판 서적, 혹은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중고책방에서 엄청난 가격을 붙이는 책이 간혹 있음. 그런 걸 빌려서 읽으면 된다 ㅇㅇ 물론 하루에 책을 다 읽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까지 봤는지 페이지를 꼭 기록해야 한다.

책을 보다보면 '노력하라' 다음으로 '지금 당장 실행하라'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오타쿠 여러분들은 이 말을 듣고 좋아하는 캐릭터상품과 피규어를 지금 당장 사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그 상품이 내일 품절될 수도 있고, 당신이 그 피규어를 무덤까지 가져가지 못하고 유서도 못 쓴 채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돈은 무덤에 가져가서 묻어도 아무 메리트가 없죠. 이건 반 정도는 진담임다.

 

온종일 책을 끼고 다니면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딴생각만 한다면 시간도 자연스럽게 당신의 자세를 감지한다. 이렇게 산만한 자세로 시간을 대한다면 시간은 당신을 위해 1분 1초도 더 남기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나버릴 것이다. 반대로 열심히 책을 읽은 사람은 귀중한 감명을 받는다.
(...) 평범한 시민에서 대부호가 되어 인생의 황혼기를 향해 걷던 그는 여전히 깊이 사고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블록버스터 영화인 '아이언맨'을 비롯하여 큰 흥행을 보였던 '트랜스포머'를 제작한 파라마운트사, 세계적인 뮤직콘텐츠 방송사인 MTV, CBS 등을 소유하여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만들었다.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레드스톤은 자신이 언제나 법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좋아했기 때문에 하버드 대학에서도 법률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오호 아이언맨!
명성을 얻을 때의 연령대가 예순셋이었다는데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아이언맨이 부자캐릭이였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통에 반대하며 - 타자를 향한 시선
프리모 레비 지음, 심하은.채세진 옮김 / 북인더갭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물보다 웃음에 대해 쓰는 것이 더 낫다.
웃음이야말로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니까.

역시 이 문인도 나이가 든 남자구나하고 느끼는 대목들이 많았다. 난 여자들만큼이나, 아니 여자보다도 더 남의 뒷담 잘 까는 남자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남자들은 뒷담을 까기를 꺼려한다는 이 사람의 말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가려질 수 없을 것 같다. 아, 이 사람은 보수로구나. 그런 지워질 수 없는 느낌이 확 내리덮치는 느낌이랄까. 하기사 어떤 여자에게 화약을 터뜨려서 샅까지 모조리 불에 그을려버린 남자 이야기에서 징조가 보이긴 했다. 그 남자보다 더 잘 생긴 남자를 택해서 그런다고 여자 탓을 하더라. 기가 막혀서 ㅋ

여성에 대해 좋게 나온 구절도 많다. 벼룩이 뛰는 패턴에 관해 연구한 과학자라거나 여성 연금술사였던 미리암에 관한 게 그 예이다. 미리암은 성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미리암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모세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하느님의 분노를 사서 문둥병에 걸렸다고 쓰여 있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엔 똑똑해서 제거당했던 게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정말 우리가 도달하는 곳이 꿀의 땅일까?'라는 말을 했다거나. 여러모로 모세로서는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겠지.. 가봤자 어차피 중동이니;

아무튼간에 저자가 너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지식이란 것도 조금씩 틀린 게 있으셔서 거슬리고(책 낸 후에 수정하셨지만 꺼려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의견은 정말 누가누가 이쁘고 추한가에 대한 잣대 재기? 이런 걸 보고 있는 것 같아 참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페미니즘이 늦게 들어왔다나? 그런 핑계를 대면서 은근 여성에 대한 비판이 심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쿨하게 에세이 쓴다고 평판 자자했던 미국인 인간이 마지막 부분에 우리나라 승무원 여성을 깠던, 인종차별에 성차별까지 쌍끌이해서 나를 충공깽으로 몰아갔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 책 페미니즘적인 책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었다.) 왜 항상 이런 사람들은 지뢰를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에 깔아놓는가. 앞부분에 있었음 보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작가는 자신이 마초라는 걸 눈치채진 못했을 것 같고 책을 처음 만든 편집자의 소행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 중 두 명이나 추천한 저자라 열심히 읽었는데 실망이 크다.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하는 그 책은 볼지 솔직히 의문 ㅋㅋㅋ

 

우리가 논리적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절대 알 수 없다는, 모든 추측은 임의적이며 현실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증거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이 걸려 있을 때 인간은 논리적인 경우가 매우 드물다. 매번 극단적인 태도를 택한다. 그래서 성격에 따라, 우리 중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서 살 수 없다고, 종말이 가깝고 확실하다고 즉시 확신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 처한 삶이 힘든 만큼 구원받을 가망성이 있고 구원이 멀지 않았으며, 믿음과 힘이 있다면 집과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이 두 부류는 그렇게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불가지론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이 기억이나 대화 상대와 시기에 따라 일관성 없이 두 극단 사이를 떠돌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구절만 읽으면 다 읽은 셈이라 했으니 안 볼 것 같다. 차라리 노벨문학상 탔던 엘리 위젤의 나이트란 소설이나 보려고요...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은 솔직히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추천한다. 다른 책들보단 그거 읽는 게 백번 낫다고 본다;;; 리뷰 쓴 거 다시 봤는데 심지어 이 책이랑 메시지도 똑같네 ㅋㅋㅋ 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까지 기대했을까 ㅠㅠㅠ

그렇다고 모든 글이 싫은 건 아니다. 글이 꽤나 짧지만 고루하고 중후하다. 보수이지만 길이 잘 든 골동품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한 문장 한 문장이 묵직하다. 나 심지어 첫글부터 이해를 못 했딘. 왜 가족의 법칙에 따라서 가장 아끼는 안락의자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옮겨지면 불편한 건데. 아니 아무데나 있음 어때. 글쓰는 자리까지 안락의자를 옮겨야 되서 그러니? 어떤 분에 의하면 안락의자는 고정된 가구 느낌이라 한다. 가구 위치만 바꿔도, 집 인테리어 다시한 느낌 같은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고. 안락의자는 특히 각도가 생명이라는데, 집 채광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진다 한다.

사람이 항상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슬픈 일은 피하면 되고 즐거운 일은 찾으면 된다.
물론 사회적인 행동에서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차별을 당했다면 기분이 나쁘다. 그렇다면 심호흡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래도 잘못이 없다면 내가 차별당한 시스템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두 번 다시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나를 차별했던 사람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남탓을 하면서도 계속 그 사람과 같이 있기까지 한다는 건 벙어리에 장님이요 자신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일과 다름없다.

사실상 지금 상황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헤어졌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건 거리가 멀테니 올 수 있을리도 없다.
연락할 수단 다 차단했고.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면 난 정말 사람보는 눈도 없고 빈틈도 많다.
그에 대한 장점은, 약자를 우습게 보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
이래서 눈을 낮출래야 낮출 수가 없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사람은 깐깐해야 한다.
저자도 좀 깐깐한 편인데 그 예 중 하나가 안락의자도 있지만, 여러모로 또 보인다. 신기하게도 저자는 이 짧고 많은 글들 중 했던 말을 반복하는 실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지간히 같은 말 반복하는 걸 싫어하시는 듯한데 이건 나랑 같은 듯.

 

루치아에 대한 음모를 그만두라고 요청하자 돈 로드리고는 그녀를 설득해 자신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보호라고!' (크리스토포로 수사가) 소리쳤다. 그리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당당하게 체중을 오른발에 싣고, 오른손은 허리에 얹고 왼손은 들어올려 검지로 돈 로드리고를 가리키며, 타는 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당신의 보호라고!'" 이제 수사는 사라지고, 수사의 기괴한 유물만이 남아있다.


죠타로 형님이 왜 여깄음?!

'렌초의 주먹'이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죠죠 5부 배경은 이탈리아다.) 만초니의 소설 약혼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루치아를 둘러싼 렌초와 돈 로드리고의 대결이 그려지고 있는 듯하다. (죠죠 1부를 연상시킨다.) 처음 작품이 나온 시대가 아무리 옛날이라도 죠죠에서 나오는 과장된 포즈는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 과장된 동작을 저자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가톨릭 리얼리즘을 결합시킨 것 같다 말한다. 즉 프로파간다의 목적을 두고 문학적 기교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죠죠가 디오라는 절대악과 대결하는 형태를 띄고 있는 권선징악의 문학인 이유가 여기 드러난다. 두 가지 격정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떠들어 댈 때 이런 서술적 해법이 나온다 하는데, 이는 격정을 싫어하는 데서 나온다 한다. (이는 3부 첫부분에서 죠타로가 스탠드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분노를 억누르는 데서 충분히 표출된다.) 죠죠의 작가는 확대경을 들고 인물들 하나하나를(심지어 곤충의 싸움까지) 섬세하게 담아냄으로서 끝이 없는 작업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분명 레비가 쓴 이 글이나 만초니의 소설을 읽었음이 틀림없다.

 

알다시피 유대인에게는 하느님의 '진짜'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책에 인쇄되어 있는 경우라도 읽을 때는 동의어로 대체해야 한다. 히브리어 외의 언어에서 일반적으로 '신'Dio에 해당하는 단어로 발음하는 것은 허용된다.



자 여기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나오는 디오의 대사를 다시 보죠.

 

그런데 원래 고대 이집트어에서 nitro와 natro는 같은 말이었다.
고대 이집트어의 복잡한 문자에서 모음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자음 ntr은 일반적으로 소금처럼 보이는 하얀 가루를 가리켰는데, 이탈리아어에서는 여전히 '살니트로'라고 부르고 다른 언어에서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살레 디 피에트라' 즉 돌의 소금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벽에 생긴 하얀 가루나, 또는 이집트인들이 특정 채석장에서 캐서 미라를 만들 때 사용한 하얀 가루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축약어는 잘못 축약하면 이렇게 위험합니다. BL이라던지, NTR이라던지. 요새는 제대로 질소는 N으로 나트륨은 Na로 축약하지만 이집트에선 왜 하필 그렇게 모음을 줄였을까요.

 

 

그 기원에는 최소 2천년 동안 태국과 수마트라에서 수입되었고 향기를 내는 동시에 치료를 위해서도 사용되었으며, 향이 나는 수지인 벤조이노가 있다. 치료를 위해 사용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단지 기분 좋은 향을 가진 물질이 '좋은 작용을 한다'는 위험한 추론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들은 벤조이노를 '자바 향료'를 의미하는 '루반 자비'라고 불렀다. 그것이 진짜 향료가 아니고 자바에서 온 것은 더더욱 아닌데도 말이다.


속속들이 놀라고 있다. 자비가 이런 뜻이었나?
하기사 도련님이 건담 인물 중에서 샤아 다음으로 잘생기기는 했지.

 

 

메탄에 이어 '에테르'에 뿌리를 둔 에탄이 나왔고, '첫번째'라는 뜻의 그리스어 '프로토스'가 약간 왜곡되어 프로판이 나왔다. 또 '라코타 치즈'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에 어원을 둔 '부티르'를 뿌리로 부탄이 나왔다.


제가 프로토스를 매우 좋아하는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