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ラコレ DRAMAtical Murder BOX商品 1BOX=8個入り、全8種+特典1種 (おもちゃ&ホビ-)
ム-ビック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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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 죽지 말고 살아.

1. 사실을 밝히자면 난 리뷰를 기분에 따라서 쓰는데,

지금은 상당히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애니의 평가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리뷰의 분량에는 영향을 끼치리라고 본다. 먹고 살 현실에서의 일이 위기에 몰리다보니 애니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애니의 내용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보는 게 반전밖에 없기 때문에(아무리 BL물이었다지만 액션씬에 좀 신경을 써주던가, 최소한 작붕이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스포일러하는 것도 상당히 난감하다. 그러므로 일단 리뷰는 짧게 쓰겠다.

 

 

2. 이 애니는 아오바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여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러나 영웅(?)은 따로 있다.

아오바는 딱히 그 영웅을 찾을 생각을 하진 않지만, 우연히 그 영웅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아픔과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주변과 자신마저 망가뜨린 코우자쿠, 반대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노이즈 등. 여기서 특이한 설정은 기계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고, 사람과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의 스포일러를 향해 나아가는 좋은 힌트가 된다. 아오바는 사람의 무의식을 자신의 말로 통제할 수 있고,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의 맨 얼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이 때 인간하고처럼 기계하고도 대화를 나눈다.

 

 

3. 밍크는 인디언의 분위기가 강하다.

부족이 거의 몰살당하다시피하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 그는 토우에 재벌이 세운 섬을 파괴하고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다.

그러나 사람과 기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아오바를 보고 그는 다시 삶의 의욕을 찾는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이성을 되찾고 이 애니의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튼 이 애니는 여러가지에서 부족하지만 메시지는 의외로 강력하다. 게다가 아까 말했다시피 배경은 디스토피아인데, 과학에 대해 또 무한대로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딱히 엘리트층이나 과학자같은 지식인들이 양심적이어야 한다는 주제도 아니다. 단지 이 애니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은 든다. 모든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소통을 하면서 상처를 지워나갈 수 있다면 시원스럽고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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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G 레드 데이터 걸 1 - 최초의 사자, Novel Engine
오기와라 노리코 지음, 이하윤 옮김, 키시다 메루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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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소설이 있다. 그것도 5권에서 짤려서 최근 나온 6권의 내용은 짤려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즈미코가 미유키를 좋아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이막스를 깔끔하게 내려놓았으니 제법 깔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 소설을 보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원작에 꽤 충실한 편이라고 한다. 

 주제는 자신을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취급해 주길 바라는 이즈미코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이다. 그녀는 히메가미로서 엄청난 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어머니도 제대로 만날 수 없고 신사에 갖혀 살다시피 한다. 그래서 신사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까지 운전기사가 차로 바래다줘야 한다;;; 다행히 친구들은 제대로 사귀고 있는 모양이지만, 간혹 심기가 뒤틀려진 애들이 그녀를 괴롭히는가 보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선 아직 백지상태인지라, 와미야같은 지박령에게 매혹당하는 등 적당히 힘 있는 것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린다. 

 

 2. 이 녀석이 와미야. 본체는 지박령 까마귀였지만, 이즈미코의 운동(춤)에 종속당하여 그녀를 매혹시켜 신사에 붙잡아두려고 하며 자신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도 이즈미코 옆에 남자가 따라다니는 걸 질투하지 않나, 그 이후로도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면 이즈미코를 몰래 짝사랑하는 것 같다. 미유키가 이즈미코에게 '와미야가 인간화한 얼굴이 네 취향 아니냐'라고 했을 때 이즈미코가 반박 못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걸 봐선 일부러 모습을 인간화한 것도 은근 이즈미코에게 먹히길 바랬던 게 아닌지... 나중엔 미유키랑 친해져(자신은 미유키가 철저히 무능이라 불쌍해서 봐줬다고 주장하지만) 그에게 능력을 빌려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즈미코를 사당에서 벗어나 도쿄라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해 준 첫번째 계기가 와미야의 해방이다. 이즈미코하고 같이 얼굴을 나란히 놓고 보면 어쩐지 옛 남친 혹은 학창시절 첫 사랑같은 분위기가 흐르지 않는가? 그 묘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서 이즈미코는 해방의 전환기를 맞는다.

 

3. 그 계기가 된 게 미유키. 

 포즈는 멋있게 보이지만 사실 쥐뿔도 능력이 없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성격 때문에 어릴 적엔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이즈미코를 많이 괴롭혔다. 이즈미코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소심한 성격은 미유키가 원인이라고 함. 그 정도면 심각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쿨하지만 냉정한 성격이라, 아마 이즈미코가 자신을 변화시키려 결심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경호는 커녕 학교를 같이 다니는 것도 거부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고 할까. 마유라가 약혼자인 척 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이즈미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해도 될 걸 '아무리 그 방법이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거짓은 가까운 사람들을 상처입히니까 안 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땐 솔직히 감동받음. 

 기본적으로 이즈미코에게 거리를 두고 1화에서 완전히 이미지를 망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인 듯하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이즈미코와 미유키를 차별한다고 할까. 이즈미코를 딸 이상으로 감싸주고 미유키는 방치하거나 혹은 괴롭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즈미코 앞에서 대놓고 무능하다 까발리고 하찮은 놈 취급하기 때문에 이 셋이 만나면 이즈미코는 골치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만류하질 못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미유키가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 말하지 않으면 몰라.'라고 끈질기게 말한 이유는 그 셋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미 그 때는 이즈미코가 소심한 성격을 벗어던지고 분노의 폭발을 막 표출한 이후였으니 그녀가 속내를 털어놓기도 쉬웠을 거라 계산한 게 아닐까. 원작의 얘기지만 이즈미코가 자신을 좋아하는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고백을 하려 분위기를 잡질 않나 여러모로 무서운 놈이긴 하다;;; 작정만 했으면 타카야나기처럼 여자들 여럿 울리지 않았을까.

 

 4. 이 놈이 타카야나기인데 얼굴은 제로스처럼 생겼으면서 성격은 극도로 비뚤어진 야비한 성격의 인물이다. 겁도 완전 많음;;; 그런데 음양사에 천부적인 기질이 있는지 세계유산을 가리는 학원제에선 모든 학생들에게 주술을 거는 등 제법 선수를 잘 쳤다. 운없게도 그 자리에 히메가미가 있었을 뿐(...) 이 녀석도 히메가미를 장애물이라 인식했는지 강력한 매혹을 써서 학원제가 끝날 때까지 자기네 편으로 잡아두려고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개로 변신하게 되는 수모를 당한다. 악역은 악역인데 좀 많이 모자라다고 할까. 최종보스라 보기엔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 아마 이 스토리 자체의 유일한 단점이 이 녀석일 것이다. 매혹을 쓰려면 주술을 쓰는 본인도 좀 더 매혹적인 캐릭터였어야 하지 않았나?

 아무튼 오랫만에 매우 풋풋한 러브스토리를 봐서 흡족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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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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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지 중에서

2
때로 수컷 뚝지가 쫓아내도, 쫓아내도 떠나지 않는 암컷 뚝지를 기어코 밀어내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안 떠나려고 버둥거렸는지는, 혼자서 풀이 죽어 떠나가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대왕문어의 밥이 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갈가리 찢긴 암컷의 아랫도리엔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알들이 무더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보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할 거지, 바보야

3
또 어느 때는 수컷 뚝지가 눈 껌벅거리며 쉬임 없이 지느러미 놀려 가지런한 알들에게 산소를 불어넣어 줄 때, 제 짝을 못 구한 암컷 뚝지가 두리번거리며 찾아와 연애 한번 하자고, 한 번만 하자고 졸라대지만, 수컷은 관심이 없다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수컷은 막무가내로 암컷을 밀어내지만, 그것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치근덕거렸던가는 그 또한 대왕문어의 밥이 되어 뱃가죽 터지고 사지가 너덜거려야 알 수 있다 아무도, 아무도 애무해주지 않아 쏟아보지도 못한 알들이 무더기무더기 깊은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다

 

멍텅구리는 원래 뚝지를 뜻하는 말이다. 옛날에 자연에 관련된 글을 굉장히 많이 읽었는데 민물고기에 관한 글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뚝지였다. 누구 보기에 찔리라고 이 시를 인상깊은 구절 메인으로 올린다. 그런데 마침 평론가 분도 뚝지가 메인시 같다고 한다.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 기뻐서 이 분 평론글은 끝까지 봤다.

 

이별 없는 세대 시리즈는 뭔가 고독을 즐긴다는 세대들을 일컫는 듯한데 맞나 모르겠다. 아무튼 시인 본인은 굉장히 꼰대란 생각이 드는데 또 이렇게 시로 솔로인 젊은이들의 느낌만 상상해서 적어주니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아 나이드신 분들은 비혼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는 감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그래도 다른 남성 시인들과는 다르게 여성들과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게 상당히 드러나지만, 그나마도 아내와 아내의 4자매들을 다방과 술집의 카운터 여성과 대비시키는 느낌이 난다. 그래도 뭐 동시를 지으면서 자신의 시집에선 다방 레지들과 놀아나는 남성 시인 누구누구와는 달리 상당한 진보를 보이지만 말이다. 이 시집은 팟캐스트에서 상당히 좋은 시집이라고 여러번 이름이 나 있다. 그러나 이런 글들이 나온다면... 페미니즘이 문학의 사조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좀 더 자신의 면모를 돌아보며 생각한 뒤 시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시 이후엔 그랬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시인은 기술한다.

나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나는 사회성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계속 책을 읽으며 현실로 도피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몸이 남들보다 더 잘 아프긴 했지만 사회성이 남들보다 확연하게 떨어지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던 듯하다. 다만 남들이 오락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너무 진지하게 책을 읽은 것이다. 지금은 뭐랄까, 너무 오락에 빠진 나머지 신나서 사람들이 귀중품인 것 아닌 것 가리지 않고 마구 허공으로 던져대는 느낌이다. 차창의 문을 열고 쓰레기를 던지는 것도 문제지만 똑같이 차창의 문을 열고 강아지를 차도에 던지는 걸 보고 나는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도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나중에 자신들도 똑같이 그렇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또한 조각에서 1이란 시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여혐이라고 주장하기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마치 밭은 무처럼 억척스럽고 무식한 여성의 자식이 한 마사지걸을 죽였어도 세상 사람들은 그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내용이다. 이는 마치 가네코 미스즈의 참새의 어머니를 보는 느낌이다. 이 시의 전에 있는 시도 엄마오리의 새끼를 까치가 잡아서 자신의 새끼에게 주는 내용이라서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섞이는 대목이라 볼 수 있는데, 나는 이게 페미니즘을 넘어 세상 사는 이야기에 심도를 더했다고 본다. 잘못 쓰게 되면 시인의 개인적인 주장이 실려 전반적인 내용을 심각하게 망치게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데서 시인의 연륜이 느껴진다. 어머니들이 보통 그런 것이라 본다. 내 가족 내 새끼를 위한다는 맹목적인 사랑이 결국 남의 새끼를 죽인다는 무서운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네코 미스즈의 시도 훌륭하지만, 어머니 둘과 새끼 둘이라는 이슈에서 무관심한 사회로 뻗어나갔단 점에서 이 시는 더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청도시편 2

길 따라 귀두처럼 솟은 망주석 사이로
초로의 유방처럼 꺼져가는 키위빛 무덤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이박사 메들리는 여기서도 끝날 줄을 모른다
길 옆 붉은 칸나는 지나가는 덤프트럭과
레미콘 행렬에 일일이 인사하느라 바쁘고
망혼처럼 떠도는 복숭아 꽃잎, 꽃잎 사이로
우리 업소는 시집 안 간 암퇘지만 고수합니다,
펄럭이는 플래카드 따라 들어가면, 갑자기
너는 고수할 것이 없다 앙앙 깨물고 싶은
식욕은 어느 식육식당 육고기에도 없는 것이다 

 

 

이 청도시편이란 시도 마찬가지이다. 왜 하필 시집 안 간 암퇘지만 고수하는가. 시집 가도 임신 안 한 암퇘지는 안 된단 말인가. 처녀를 고집하는 이런 사회에 대해서 당장 분노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지만, 키위빛 무덤이란 표현에 또 마음이 산뜻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이상한 소리로 들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지니지 않고 있는대로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그가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시의 초행을 읽었을 때, 별안간 놀라고야 말았다.
'귀두'와 '유방'이라는 단어. 아무 생각없이 갑자기 툭 던져져버린 외설적인 느낌.
'이방인'을 내놓은 알베르 까뮈든, '기사단장 죽이기'를 써낸 무라카미 하루키든, 그런 세기의 대문호들도 외설적인 내용을 가미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건 대놓고 하지는 않거나 설령 대놓고 해도 앞의 내용을 봤을 때는 의미있는 것이니...보통 이렇게 첫 문장부터 대뜸 나오진 않는다. 사람들에게 "아니 비유를 해도 왜 저런식으로??"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니.
또한 도살이란 것은 생명을 뺏는 행위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라 볼 수도 있겠다. 고기먹으면서 으허허헝 돼지야 미안해 그러면서 이미 젓가락은 입속에 있게 되니..
그렇게, 처녀만이 고집되어서 그저 정육점에 '상품화'되어 죽임 당하는' 개돼지'들. 그런데 그걸 아는 어느 누군가가 씹어서 자신의 목에 넘길 수 있을까. 복숭아 꽃잎은 그걸 왜 알면서도 그저 망혼처럼 지나가기만 할까. 무덤들은 왜 꺼져가기만 하는지. 칸나는, 어찌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덤프트럭과 레미콘에 애써 웃으면서 인사한다. 매연이 몸에 안 좋다는걸 몰라서 그러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 문장에서부터 치고 들어오는, 그 외설적인 '시어'들을 화자가 왜 처음부터 넣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정선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

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
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너무 교과서에서 나올법한 시지만 그런 만큼 자꾸 눈에 밟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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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한국 대표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만남
김유정 외 원작, 연필로 명상하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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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육방송의 먼치킨 EBS의 후원을 받아서 그런지 고전의 느낌을 정말 잘 살렸다. 봄봄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나레이션을 썼지만, 봄봄의 작가 김유정이 송만갑에게 판소리를 배운 적이 있어서 제법 그럴싸하다. 문제는 성우가 판소리를 하기엔 창법이 좀 부족했다고 해야 하나... 주인공이 우직한 노총각이라는 설정이라 '아무럼 어떠냐'라는 심정으로 뚝딱 만든 듯 쩝쩝... 그래서 0.5점 깎였다. '돼지의 왕' 영화를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우리나라는 유튜브라거나 다른 인터넷 매체에서 스카우트하거나 헤드헌터해서라도 신인 성우를 좀 더 발굴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다른 데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

 

 2.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 소설은 대사는 물론 나레이션에서조차 사투리가 섞인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우들의 대사가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성우들이 연습을 많이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특히 동이 성우가 상당히 잘해줘서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대를 버리고 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작품의 핵심 포인트는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 달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비치는 메밀꽃의 하얀 빛을 잘 잡아내었다. 나귀도 상당히 귀엽게 그렸다 ㅋㅋㅋ 실제의 묘사에선 늙은 나귀에 대한 묘사가 좀 잔인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여담이지만 이효석은 그 당시 한국 작가들이 다 그랬듯이 상당히 가난했다. 그래서 친일파가 되었는데도 그닥 친일 활동은 하지 않아 항상 가난하게 산 듯.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통속 소설도 썼는데, 이는 나중에 서브컬쳐 리뷰로 다룰 예정이다. 워낙 글을 세부적으로 잘 쓰는 작가라서, 그 당시의 성 풍속도 세세하게 다뤘다. 왜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간간히 성적 묘사들이 나오지 않던가. 그걸 캐치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3. 김유정의 봄봄. 워낙 김유정은 유명한 작가이니 1번에서 말한 것 외에 다른 건 생략하겠다.

 

 김유정의 작품 중에서 항상 헷갈리는 게 동백꽃과 봄봄이다. 그런데 이번 애니메이션으로 인해서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백꽃이 가볍고 장난스럽게 신분 차이(?)가 나는 같은 동네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면, 봄봄에서는 갑을관계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당연히 점순이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의 장인어른이 갑, 주인공이 을이다.

 

 뭐 현대에서는 여자도 돈을 버니(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 싫다는 여자들이 많으니) 영화에서의 상황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자나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이나 뭔가를 매개로 하여 어수룩한 사람 이리저리 부려먹는 불한당들은 많다. 주인공도 작품 내에서 계약을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하는데, 이는 현대에서 말하는 '근로계약서'와 다르지 않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로 일을 시키는 회사도 많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도 말장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사회에선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데도 회사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눈다. 장인은 점순이가 '크면' 결혼식을 치룬다고 하지만 점순이의 키는 짜리몽땅하기만 하다.

 

 결국 주인공은 데릴사위로 평생 일해야 할 것인가. 결국 마음씨 착한 주인공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아니면 점순이한테 가오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장인하고 한바탕 싸우다가 장인의 불알(...)을 잡아당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주인공과 장인은 심각하게 분노해있고 가족들은 당황해있는 상황. 봄봄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럽고 한바탕 우스운 해프닝으로 표현하지만,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이 요즘 유행하고 있지만, 실상 진보집회에 나가보면 전혀 싸가지 없지 않다. 진보적인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월드컵 경기 때보다 더 쓰레기를 잘 치우며, 80년대에 투쟁을 겪으신 분들의 어깨운동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높으신 분들은 일본의 가부키를 신파극으로 바꿔온 정신으로 상황을 부러 엽기적이고 심각하게 만드는 듯하다. 봄봄의 장인을 보고 좀 배울 수 없겠는가?

 

영화에선 안 나오지만 일러스트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장가를 가는 듯. 투쟁승리 ㅋㅋㅋ

 

 

4.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첨지가 일베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남자 츤데레'라 불리는 걸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이걸 보고 상당히 깊은 인상이 남았다고 하는데, '모든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음... 일베를 하는 사람들 중 남자이거나 남자같은 사람들이 다수인 걸 볼 때 이 소설은 남자들에게 특히 다가오는 것 같다. 가난함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한 슬픔? 사실 난 남자들이 왜 이 소설에 그렇게 꽃히는지 잘 모르겠다 ㅋㅋㅋ

 

 그런데 내가 딱 하나 현진건의 소설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분의 작품이 읽다보면 육성지원이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술 권하는 사회'는 진보를 표명하는 남자들이 자주 쓰는 변명(?)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보면 현진건의 소설 대사와 그닥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아예 술에 만취해서 페북에 정치글을 남발한 페친분이 다음 날 머쓱했는지 장난스럽게 마지막 부근 대사 전문을 인용한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아무튼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입에 딱딱붙는 대사들이 많음엔 분명하다. "흉장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라던지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던지. 근데 이런 비극적인 대사들이 입에 딱딱 붙는다는 사실이 개탄스럽긴 하다(...)

 

김첨지가 설렁타을 사는 장면에서도 앵돌아서서 기다리는 게 남자 츤데레의 정석이 느껴집니...

 흠흠. 아무튼 영화에서는 설렁탕의 국물도 안 보이는데 이걸 보고 얼마나 설렁탕이 먹고 싶었는지.

 현지건이 자주 찾았다는 '깃자집'도 아직 있는지 궁금한데, 사실 이 집은 설렁탕보다는 선지와 비지가 주 메뉴였다고 한다. 크... 어쩜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있는지.

 

 

 

 어쨌던 여러분 설렁탕은 사랑입니다.

 그 영화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속초 소야촌을 찾아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속초에서 한우 전문 집을 찾으려면 그 집밖에 없음.

 기름기가 잘잘 넘치고 국물도 굉장히 찐하고 고기도 많고 씹는 맛도 연하고 크 지존입니다.

 어째 식당 광고를 한 것 같지만 정말 맛있게 먹어서(...) 정말 추천합니다. 내가 원래 고깃집을 추천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여긴 진짜 하... 기회되면 또 갈 것임. 메뉴가 많지만 가면 또 설렁탕 주문할듯.

 근데 가격이 8000원 비싸... 딱히 옛날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제대로 된 설렁탕은 좀 가격이 있군요.

 

5. 남친과 신영극장 가서 보고 와서 이 책도 빌려왔다.

 요즘 내가 상당히 흥미있어하는 주제라 (서브컬쳐가 우리의 육체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다만 이 책 외에도 밀린 책들이 상당해서 언제 돌려줄지가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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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애장판 1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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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깅코

 

 예전에 리뷰한 적이 있는 귀절도가 도시괴담과 대체로 퇴치해야만 하는 요괴에 대해서 다룬 서브컬쳐라면, 충사는 그 성격이 매우 정반대인 서브컬쳐이다. 물론 만화 쪽도 원작 특유의 메리트가 있으니 좋지만, 애니가 원작의 퀄리티를 120% 살렸고 최근에 나오는 2기가 완결까지 다룰 것 같아 애니로 보게 되었다. 깅코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옴니버스 구성으로 짜여진 내용이다. 언뜻 보면 1인칭 같지만, 깅코 자신도 잘 모르는 깅코의 과거 이야기가 한 화 분량으로 나오는 걸 보면 3인칭 구성이다. 깅코는 하얀 머리칼과 초록색 외눈을 가진 남자 충사인데, 방랑자에게서 났고 벌레가 꼬이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연애플래그같은 건 없다. 어렸을 적 기억이 없는데다 천애고아라 어딜 가도 '외지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는데 본인은 쿨한 척하지만 내심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그래서 항상 마을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표현하기도. 은근 외로움을 타는 그의 모습이 부녀자들에게 상당히 어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용도 제멋대로이고 시간개념도 없는 이 충사라는 애니를 설명하기 위해 몇몇 큰 주제를 키워드로 만들어볼까 한다.

 

2. 벌레

 

 말이 벌레이지 이 녀석들을 어떤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심지어 눈을 감으면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기묘한 무언가까지도 벌레라 부르니 말이다. 어찌보면  인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현상을 뭉뚱그려 벌레로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깅코는 벌레가 분명히 존재하는 생물이라고 단언한다. 지하에는 광맥줄기라는 게 있어서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데(여담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의 온 땅에 말뚝을 박아 이것을 막음으로서 우리나라의 맥을 끊게 하려고 했다.) 벌레는 이 광맥줄기에 인간들보다 더 가깝다고 한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의 존재인 것이다.

 

 이를 대하는 충사들의 태도도 벌레만큼 자유롭다. 깅코처럼 벌레를 내부에 지니고 살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요괴를 퇴치하듯이 벌레를 퇴치하는 데 집중하기도 하는 등. 하지만 대체로 충사들은 떠돌아다니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를 없애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일부는 여행 도중 정착하기도 하고 최대한 벌레를 없애지 않고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사실 보통의 요괴 설정과는 달리 충사의 벌레는 상당히 희안하다. 그들은 단지 살아갈 뿐, 인간에게 어떤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다. 아주 드물게 인간과 같이 살아가면서 인간화되는 벌레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딱히 인간에게 증오를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산짐승과 매우 비슷하게,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긴다고나 할까. 그래서 벌레가 인간의 모습을 하거나 인간이 벌레화될 땐 얼굴이 완전 포커페이스이다. 근데 오히려 그런 점이 오히려 매력포인트랄까. 벌레 자체의 모습도 반짝거리는 것들은 이쁘다. 가끔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귀여운 벌레가 나오기도 한다.

 

3. 아동

 

 충사 1~2화에는 이 아이가 등장하는데, 충사를 본 사람들 중에선 아이의 모습인데도 성격은 털털한 할머니같은 그 갭이 매력포인트라고... (이 글을 페도들이 좋아합니다?!) 하긴 나도 이 애를 봤을 때 기분이 살짝 야리꾸리해지는 게 흠...

 

 이렇게 분위기 묘한 여자애들도 많이 나오지만, 산골 남자애들도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흥미가 가는 건 산골 남자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들이 많다는 것이다. 몇몇 화들은 성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결말이 우울하다.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인지 아니면 내 짐작일 뿐인지는 정확히 조사하지 않아서 모르겠음. 아무튼 벌레를 이용하려 하다가 벌레에게 먹히거나 벌레를 없애려 하다가 큰 화를 당하는 경우들이 아주 많다. 깅코는 언제나 '조사도 안 하고 벌레를 섣불리 없애면 무슨 영향이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고향에 매여있고 각종 사연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섣부르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아직 아무 인과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이라서 깅코의 충고들을 잘 따르는 것일까.

 

 무엇보다 벌레를 쫓는 건 아이들의 특색이니 말이다.

 

4. 마을

 

 충사의 시대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숲과 산, 그리고 마을공동체가 아직 보존되어 있던 시대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깅코가 섬이나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게 되면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쩔어준다 ㄷㄷㄷ 오죽하면 깅코가 '이래서 섬마을은 가기 싫어'라고 말했을까. 가난하지만 화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은 마을도 나온다. 하지만 보통 그 마을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배척할 것을 자꾸만 찾고, 벌레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 낙인이 찍히기 마련이다. 혹은 벌레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애먹은 사람을 왕따시키는 경우도 나온다.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익명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고 상당히 답답해보이겠지만, 이 현상은 우리나라 시골마을에서도 종종 보이기도 한다. 악의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시골 사람들은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태생을 무의식적으로 따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을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마을의 땅에는 그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이 존재하며, 간혹 마을에서 나쁜 벌레가 나올 때 사람들이 합심하여 물리치기도 한다. 그래서 벌레는 항상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은 각각 살아가고 병렬적으로 나열될 뿐, 사람처럼 자식을 낳는다거나 키우는 개념이 없다. 물론 가족공동체나 나아가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현상은 기대할 수 없다. 가끔 몇몇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을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애착을 가지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벌레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깅코가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마을을 위해서 그랬다고 이야기하면 깅코는 한없이 약해진다. 마을을 보존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노력은 욕심일지언정 님비현상이 아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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