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애장판 1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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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깅코

 

 예전에 리뷰한 적이 있는 귀절도가 도시괴담과 대체로 퇴치해야만 하는 요괴에 대해서 다룬 서브컬쳐라면, 충사는 그 성격이 매우 정반대인 서브컬쳐이다. 물론 만화 쪽도 원작 특유의 메리트가 있으니 좋지만, 애니가 원작의 퀄리티를 120% 살렸고 최근에 나오는 2기가 완결까지 다룰 것 같아 애니로 보게 되었다. 깅코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옴니버스 구성으로 짜여진 내용이다. 언뜻 보면 1인칭 같지만, 깅코 자신도 잘 모르는 깅코의 과거 이야기가 한 화 분량으로 나오는 걸 보면 3인칭 구성이다. 깅코는 하얀 머리칼과 초록색 외눈을 가진 남자 충사인데, 방랑자에게서 났고 벌레가 꼬이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연애플래그같은 건 없다. 어렸을 적 기억이 없는데다 천애고아라 어딜 가도 '외지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는데 본인은 쿨한 척하지만 내심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그래서 항상 마을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표현하기도. 은근 외로움을 타는 그의 모습이 부녀자들에게 상당히 어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용도 제멋대로이고 시간개념도 없는 이 충사라는 애니를 설명하기 위해 몇몇 큰 주제를 키워드로 만들어볼까 한다.

 

2. 벌레

 

 말이 벌레이지 이 녀석들을 어떤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심지어 눈을 감으면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기묘한 무언가까지도 벌레라 부르니 말이다. 어찌보면  인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현상을 뭉뚱그려 벌레로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깅코는 벌레가 분명히 존재하는 생물이라고 단언한다. 지하에는 광맥줄기라는 게 있어서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데(여담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의 온 땅에 말뚝을 박아 이것을 막음으로서 우리나라의 맥을 끊게 하려고 했다.) 벌레는 이 광맥줄기에 인간들보다 더 가깝다고 한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의 존재인 것이다.

 

 이를 대하는 충사들의 태도도 벌레만큼 자유롭다. 깅코처럼 벌레를 내부에 지니고 살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요괴를 퇴치하듯이 벌레를 퇴치하는 데 집중하기도 하는 등. 하지만 대체로 충사들은 떠돌아다니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를 없애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일부는 여행 도중 정착하기도 하고 최대한 벌레를 없애지 않고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사실 보통의 요괴 설정과는 달리 충사의 벌레는 상당히 희안하다. 그들은 단지 살아갈 뿐, 인간에게 어떤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다. 아주 드물게 인간과 같이 살아가면서 인간화되는 벌레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딱히 인간에게 증오를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산짐승과 매우 비슷하게,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긴다고나 할까. 그래서 벌레가 인간의 모습을 하거나 인간이 벌레화될 땐 얼굴이 완전 포커페이스이다. 근데 오히려 그런 점이 오히려 매력포인트랄까. 벌레 자체의 모습도 반짝거리는 것들은 이쁘다. 가끔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귀여운 벌레가 나오기도 한다.

 

3. 아동

 

 충사 1~2화에는 이 아이가 등장하는데, 충사를 본 사람들 중에선 아이의 모습인데도 성격은 털털한 할머니같은 그 갭이 매력포인트라고... (이 글을 페도들이 좋아합니다?!) 하긴 나도 이 애를 봤을 때 기분이 살짝 야리꾸리해지는 게 흠...

 

 이렇게 분위기 묘한 여자애들도 많이 나오지만, 산골 남자애들도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흥미가 가는 건 산골 남자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들이 많다는 것이다. 몇몇 화들은 성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결말이 우울하다.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인지 아니면 내 짐작일 뿐인지는 정확히 조사하지 않아서 모르겠음. 아무튼 벌레를 이용하려 하다가 벌레에게 먹히거나 벌레를 없애려 하다가 큰 화를 당하는 경우들이 아주 많다. 깅코는 언제나 '조사도 안 하고 벌레를 섣불리 없애면 무슨 영향이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고향에 매여있고 각종 사연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섣부르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아직 아무 인과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이라서 깅코의 충고들을 잘 따르는 것일까.

 

 무엇보다 벌레를 쫓는 건 아이들의 특색이니 말이다.

 

4. 마을

 

 충사의 시대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숲과 산, 그리고 마을공동체가 아직 보존되어 있던 시대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깅코가 섬이나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게 되면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쩔어준다 ㄷㄷㄷ 오죽하면 깅코가 '이래서 섬마을은 가기 싫어'라고 말했을까. 가난하지만 화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은 마을도 나온다. 하지만 보통 그 마을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배척할 것을 자꾸만 찾고, 벌레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 낙인이 찍히기 마련이다. 혹은 벌레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애먹은 사람을 왕따시키는 경우도 나온다.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익명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고 상당히 답답해보이겠지만, 이 현상은 우리나라 시골마을에서도 종종 보이기도 한다. 악의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시골 사람들은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태생을 무의식적으로 따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을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마을의 땅에는 그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이 존재하며, 간혹 마을에서 나쁜 벌레가 나올 때 사람들이 합심하여 물리치기도 한다. 그래서 벌레는 항상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은 각각 살아가고 병렬적으로 나열될 뿐, 사람처럼 자식을 낳는다거나 키우는 개념이 없다. 물론 가족공동체나 나아가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현상은 기대할 수 없다. 가끔 몇몇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을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애착을 가지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벌레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깅코가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마을을 위해서 그랬다고 이야기하면 깅코는 한없이 약해진다. 마을을 보존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노력은 욕심일지언정 님비현상이 아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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