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저편 - 과거편
이시다테 타이치 감독, 치하라 미노리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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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경 안 쓴 너도 좋아."

 

 

 애니편과 연결된 미래편.
 그러나 역시 개망나니 칸바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미라이는 너무나도 힘들었는지 기억 자체를 닫아버렸다.

 

 그래도 칸바라에게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눈으로는 그를 쫓는다. 이는 사실 기억을 닫은 것이 아니라 '칸바라 때문에 괴롭힘당한' 기억을 무리하게 닫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싶은 미라이의 본능적인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미라이의 능력조차도 지워버린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칸바라가 보기엔 '미라이의 능력이 망각 속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미라이의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라이의 행복은 미라이가 정해야 하므로, 이는 그가 멋대로 판단한 것이 된다. 게다가 머릿 속으로 행복을 생각하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는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칸바라의 친구가 말한 대사. 그리고 정확히 내가 몇 년 전에 들었던 말과 일치한다. 결국 난 머릿 속에 그린 행복을 실천에 옮겨서 지금에 왔지만, 일단 칸바라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마음가는 대로 미라이에게 연락을 한다.

 그러나 사랑은 타이밍인 것을. 자신의 능력을 보고 고민했던 그녀에게 자신을 칸바라라고 속이는 시커먼 악당이 찾아와서 의심과 증오의 요괴를 그녀의 마음 속에 심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징그러운 그 벌레 요괴는 마치 촉수같아 보이는데, 촉수는 심리적으론 집단강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히 미심쩍은 장면이었다. 칸바라의 시점에선 자신 말고 미라이와 사귀는 모든 남자가 그런 요괴로 보일 수도? 아무튼 미라이는 그 촉수같은 것으로 인해 타락하고 미쳐버려서 칸바라를 공격한다. 사랑은 증오로 바뀐다. 이럴 때 정말 여자는 무서워진다. 안경이고 반지고 상관없이 모두 집어던진다. 자신은 물론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특히 그녀가 평소에 강인한 여성이었을 경우, 그 증오는 더욱 압도적이다. 이런 때 칸바라는 어떻게 하는가?

 

그는 불사신이다.

 정말 죽어라고 미라이에게 매달려서 자신에게 돌아와달라고, 자신을 좋아해달라고 사정한다. 어차피 죽지도 않으니 그녀가 증오를 하던 폭행을 하던 살의로 찔러대던 꿈쩍도 안 하고 달라붙는다. 그에겐 미라이에게 맞설 수 있는 아무 방법도 없다. 일단 경계의 저편은 인간적인 칸바라에게 완전히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동시에, 열정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결정적인 자신의 무기를 딱 때려넣는다.

 그것은 바로, 미라이 어머니의 승낙.

 사실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 생겼을 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공략하는 게 맞다. 섣불리 티나게 공략했다가 눈치빠른 어머니에 의해 되려 퇴짜맞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만, 현명한 여성은 사실 결혼할 때 자신의 어머니에게 의견을 묻고 그 조언을 참조한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아버지를 만나 몸도 마음도 다 빨리고(...)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딸이라면 대충 이런 남자를 만나야 잘 산다는 걸 알거든. 물론 자신이 금지옥엽 이뻐하던 딸인지라 '저 놈은 죽여야 할 놈이다' 같은 말도 할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남자는 다 나쁜놈이니까. 하지만 '더 나쁜놈'인지 아닌지는 결혼할 여자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미라이는 어디에 합격점을 줬겠는가?

 나는 칸바라의 "그리고 안경 안 쓴 너도 좋아."에 의미를 뒀다. 그는 미라이의 모든 측면을 봤다. 하얀(의롭고 용맹한) 측면도, 검은(힘이 세서 분노하면 걷잡을 수 없는) 측면도. 안경 쓴 모습과 안경을 쓰지 않은 모습은 단순히 사물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다. 칸바라가 미라이에게 자신이 지니고 다니던 안경을 쓰길 권유했을 때, 미라이는 '선배를 만난 기억이 없다'며 그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칸바라가 안경 권유는 잠정적으로 포기하고 미라이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미라이는 그의 삶으로 걸어들어왔다. 칸바라의 회심에 의해 그녀는 자유롭게 칸바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이 변화하는 건 언제나 흐뭇한 일이다. 그야말로 사랑이 일으키는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남자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뭔가 노골적으로 사랑학개론같은 내용이었지만 정말이지 주변을 보면 사랑에 서툰 사람들이 너무 많으므로, 꼭 이 애니를 보라고 추천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이 4.5점인 이유.

 

 

 P.S 이렇게 생고생하기 전에 정신이 박약하거나 이상해보이는 남자를 목격하면 꼭 정신병원에 상담보내라. 제발 좀 함부로 사귀지 말고. 왜 정신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랑 밀당하면서 그걸 즐기고 있냐. 


 남자들 중에선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랑 다툼하는 게 사랑인 줄 아는 케이스가 다분한데, 편한 연애도 많다. 괜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여자들 집적대지 말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면 차라리 고자인 척이라도 해라. 아님 정신이 불안정한 여자의 그 광란도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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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アニメ 境界の彼方 オリジナルサウンドトラック (CD)
TVサントラ / ランティス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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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구나가 외톨이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좀비가 되려고 하는 인간을 죽이지 못하고 내버려둔다. 한때는 그 인간이 친구였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혹은 그것은 죽여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야 내가 살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막을 수 있다.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도무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인간도 좀비도 아닌 그 존재의 뒤에, 추억과 못 다한 사랑이 보인다면. 그는 불사신을 넘어 거의 무적과 같은 존재다. 평범한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해야만 한다.
 
 명탐정 코난은 안경 너머로 범죄자들에게 냉랭한 폭포같은 시선을 던진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현명하나, 성숙하지 못하다 또한 남들에게 미움받는다. 코가미는 범죄자에게 깊게 끌려, 어느새 소수자들의 편에 선다. 그런다 한들 범죄자가 되긴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만 본다면.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를 구할 수 있다면, 아니 가능성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니. 난 아니다. 사실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경계의 저편은 실체가 확실치 않다. 칸바라도 확실치 않다. 요괴와 인간의 중간. 미라이도 그렇다. 저주받았지만 인간. 그러나 저주받은 피라도 피는 피다. 나를 먹여살려주고 내 몸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피, 그러나 저주받은 피. 그 피는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피를 모두 짜낼 때 자신은 안전하지 못하다. 만약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참된 성인일 것이다. 나는 성인이 아니다. 근접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아니다. 세계가 겪을 위험의 가능성을 감수해서라도 누군가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지옥과 천국의 결혼 가운데 내가 있다면, 나는 머리부분부터 지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블레이크의 이론대로. 내 자기애와 인간사회에 대한 사랑은 생각보다 크다. 아마 내가 미라이였다면 그의 고해성사를 다 듣고 난 뒤 온 피를 다 써서 칸바라를 죽였을 것이다. 설령 미라이와 같은 방법을 쓰더라도 그렇게 되었을 거다. 나는 경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는 물이다. 미라이는 애초부터 칸바라를 죽일 수 없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피는 언제든지 성수로 변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사실 저주받은 피는 없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다. 없다. 피는 언제든지 사람의 선과 도에 따라서 있는 힘껏 실행하면 바꿀 수 있다. 용기를 내야 한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에 의해 노예처럼 부려먹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빼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우리를 최소 먹고 살 수 있었던 그 곳에서 빼왔는가? 이제 우린 다 죽는다!'라고 항의했다. 그들은 결코 모세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다 하지 않았다. 모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리석은 자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들을 의무적으로 돌보았다. 그 때문에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황야에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분노도 불만도 없는 여호수아가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기에서도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 처음에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였을 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가 될 때가 있었다. 매우 순간적이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과 전쟁을 할 때였다. 모세가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있어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팔이 떨어져나갈 듯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아론과 여호수아 등에게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세를 믿고 열심히 싸워서 이겼다. 그들이 같이 지낸 시간에 비하면 매우 순간적인 일이었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통했었다. 찰나에.

 

 

 

여기서 칸바라 아키히토의 문제는 뭐냐.

 

 솔직히 한 9화까지 놈의 성격을 보건대 이런 인간은 연애상대에서만 인기남에 해당될 뿐이지, 절대 진지하게 호감을 가질만한 상대는 아니다.

 모성애를 자아내는 남자, 남자들이 다 좋아하지만 여자들은 다 싫어하는 남자가 이런 부류에 해당.

 그 소름끼치는 융통성 레벨만 좀 낮췄어도 미라이가 이런 고생은 안 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반요라는 게 꼭 경계인의 특성만 있는 건 아니다. 억압된 분노의 표출, 미라이에게 쓴 '폭력'에도 의미가 있다.

 솔직히 이건 칸바라 아키히토를 중심으로 한 성장 애니이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 극장판 나오니 그거 보면서 다시 쭉 이 애니를 재탕해보시길.

 이런 타입이 커서 나쁜 남자' 가면을 쓸 가능성이 농후한데, 가족은 커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인생을 갈아줘도 그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즉, 현실에선 미라이가 자신의 모든 걸 탈탈 털어줘도 불가능.

 물론, 나쁜 여자보다 더 나쁜 여자가 세상에 그득하다는 것도 과제일 것이다.

 미라이같은 여자를 꿈꾸지도 말고, 한발 더 나가 자신이 칸바라라고 착각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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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파노라마섬 기담
지은이 - 에도가와 란포 / 역자 - B급번역클럽 / 에피루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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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미: 죄가 많습니다. 저도 사람들도...

나카무라: 누가 나쁘단 게 아냐.

다같이 적당히 노력해 나가자고.

 

나만 김전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일단 큰 줄거리는 에도가와 란포의 괴인 이십면상을 토대로 해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다른 기상천외한 살인사건도 드문드문 등장하고 있지만, 추리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드무니 일단 스릴러로 생각하고 미스테리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아케치와 그 친구의 중학생 때 계획을 참고로 했으며, 11화에서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중간에 아케치가 탐정으로 나서 그것을 저지함으로서 가로막힐 뻔했지만 반전을 바탕으로 계획이 다시 진행된다는 데선 약간 묵시록을 닮았지만, '하느님이 계획을 가지고 이 세상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어떤 피조물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데에선 전반적인 그리스도교 초반의 이론을 닮았다. 그렇게 되면 아케치 친구가 예수님에 비유된다는 단점이 있나? 그러나 이십면상들이 폭도로 변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단죄하기 시작했다는 데선 그리스도보단 적그리스도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

 

 

아케치의 친구관계(...) 

 

 아케치는 1화에서의 사고를 바탕으로 코바야시와 하시바를 만나고, 그들의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인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암흑성' 운운하면서 중2포스를 막 뿌려대는 친구를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꾸중이 아니라는 것을. 하시바도 괴인 이십면상에 빠져있는 코바야시에게 순간 훈계를 늘어놓을 뻔했지만, 마지막엔 일단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하면서까지 확실하게 친구를 구해낸다. 가족마저도 사랑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기 위해선, 그의 장점에 대한 인정보단 그의 싫은 점도 감싸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그를 지켜보다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며 '네가 나쁜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케치의 친구는 아케치를 기득권 보수파로 몰아붙여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 했으며, 아케치는 계속해서 친구의 이론이 잘못되었다 주장했을 뿐 '네가 세상을 떠나면 나는 외롭다'라고 주장하지 못했다. 이는 그도 그의 친구처럼 그닥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이런 타입은 어딘가 허술한 친구를 챙겨주는 데엔 유용하지만, 삶이 고된 사람에게 위로를 주지는 못한다.


 유아교육에서 보면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네가 이렇게 하면 엄마(혹은 아빠)는 너무 속상해."라고 부모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여 교육을 시키라고 한다. 중고등학생이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네가 잘못한 게 아냐."라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케치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네트워크가 발달한 사회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고, 되려 국가라던가 좀 더 크고 근본적인 차원에 신경을 쓰이게 한다. 그걸 오지랖이라 하진 않겠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상에 부딪칠 확률이 높아지며, 진보에서 크고 작은 단점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사람들의 멘탈이 부서지고 폭도로 변하기가 매우 쉬워진다. 우리나라에 당장 닥친 대표적인 현상으로 일베와 메갈리아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진보 쪽 운동권이라던가 환경 활동가 쪽에서 친구를 사귀고 종교를 믿음으로서 내 자신의 올바른 길을 나름대로 만들어나가고 있지만, 일단 청소년기에 학교를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고 성인이라 하더라도 네트워크에 고립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각자 온갖 중독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질투와 복수심에서 벗어나 괴인 이십면상이 되지 않는 게 큰 과제라 생각된다.

 

 

여기서 로리콘들을 위한 짤방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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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아시아 아르젠토 감독, 샬롯 갱스부르 (Charlotte Gainsbourg)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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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난 유사링 캐릭터 너무 좋았음 ㅠㅠ

 

 1. 주인공과 토모리에 집중하고 제한적인 방영횟수 때문에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를 생략한 사정은 잘 알겠다. 하지만 타카조와 유사링 커플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었는데, 결말로 치달을수록 등장횟수가 적어서 안타까웠다. 타카조는 자신의 능력을 안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애인을 만들지 않은 채 마음을 닫은 설정인 듯한데, 유사링이 따뜻한 마음씨로 그에게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그런 스토리는 정녕 없단 말이냐. 번외편이라도 만들어달라고 우우. 유사링의 언니가 빙의되어 있어 은근히 유머스러운 삼각관계로 나아간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뭐 먹는 장면 굉장히 많이 나온다.

 

 2. 개인적으로 난 이 작품을 키친+안달루시아의 개라고 생각한다. 키친이란 소설도 썸타는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의 죽음을 인정하고 힐링한다는 내용인데, 여기서도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한편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실험영화에서는 면도칼로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찢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토사카 유우가 방황하던 시절 꼬치막대로 남의 눈을 찌르려는 내용이 나온다. 방심하는 사이 갑자기 잔혹한 장면이 튀어나오니(고어를 좋아하는 나도 그 돌발성에 깜짝 놀랐다.) 혹시 피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주의를 요한다.

 

 

여기서 우리 토모리의 귀여운 얼굴 클로즈업을 올려본다.
유사링만 아니면 좋아하는 타입이긴 한데...

 

 3. 난 샤를로트의 급전개도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스토리가 반복되는 게 싫어서 게임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죽음과 기억상실 스토리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웹툰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세브리깡이다.) 유우같은 타입도 좋아한다. 어차피 히로가 너무 올바르기만 해도 좀 재수없지 않은가. 그리고 유우가 불쌍할 정도로, 주변의 사람들이 너무 그에게 많은 걸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전세계 사람들의 능력을 없애면 유우와 사귀어주겠다는 토모리의 말이 난 제일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만약 토오사카 유우였으면 그 순간에 토모리랑 관계 끊었을 듯 ㅋ 이미 유우를 좋아하는 게 티가 다 나는데 사귀고 싶으면 사귀지 무슨 조건을 달고 이리저리 재보는 건지. 하지만 토모리가 결정하고 토오사카 유우가 실행에 옮긴 '초능력자들 평범하게 만들기' 켐페인이 제일 이해가 안 간다. 어차피 일반 인간들만 사는 이 세상에서도 갖가지 사고가 일어나는 판인데, 그 초능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 안 되나? 정세랑의 재인, 재욱, 재훈이라는 소설에서는 실제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초능력을 적절히 사용해 인간들을 도와주는 게 주요 스토리이다. 일본인들의 생각이 너무 짧은건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소위 오지랖이 인간승리로까지 나아가는 건지. 아무튼 결말이 그닥 맘에 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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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 2
치바 사도루 지음, 카이호 노리미츠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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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냇물은 끊임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물은 아니다. 웅덩이에 고인 물거품은 사라졌나 하면 다시 생겨나고, 생겨났다고 하면 다시 사라져 잠시도 머무는 일은 없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거처도 또한 이와 같다.

 

 

 여고생들의 생존 서바이벌 좀비생활.

인근 사람들이 다 좀비가 되어버리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학교를 떠나지 못하면서 생존자들은 학교생활부를 만들어

그곳에서 거주하기 시작한다.

 

 일단 여고생들이 충분히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일단 고전에서 나오는 좀비처럼 걸어다닌다. 28주 후에서 좀비들이 뛰어다니고, 폰이라는 소설에서는 텔레파시(...)까지 쓰는 걸 감안할 때 이는 좀비의 퇴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었던 때처럼 행동한다는 데서 굉장히 섬뜩함을 불러일으킨다. 머리를 베면 죽는다는 설정도 굉장히 고전적. 덕분에 학교에서 나가서 인근 몰까지 차를 타고 간 적도 있지만, 계속 좀비가 없던 과거로 현실도피하는 유키가 걱정되기도 하고 한때 친구였던 애들을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기가 힘든지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유키는 계속 '자신만의 수업'을 받는데, 그 때 읽은 구절이 가모노 쵸메이의 마쿠라노소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모노 쵸메이는 정치가 중요했던 시대에 감성을 주장했던 은둔 수필가이다.

 

 

사쿠라 선생님의 존재가 유키에게만 보이는 것도 사실 감성의 일종일 것이다.

다소 현실적인 성격인 미 군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그녀로 인해 공포를 잊고 좀비에 대해 좀 더 열심히 고찰해본다.

 

 에세이, 시 등의 문학은 확실히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별 도움은 안 된다. 전자책만 봐도 책을 보는 것이니 감지덕지라는 출판사 사람들의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으니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그렇게 클 리가 없다. 하지만 책을 보는 행위는 스트레스가 낮아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학교생활 애니메이션에서는 결말을 변화시켜 유키라는 인물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문학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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