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 한국어 더빙 수록
리치 무어 외, 샤키라 (Shakira) 외 / 월트디즈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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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always works. 공포는 언제나 먹힌다.

 

 

공포가 언제나 먹혀드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고
여기의 주인공들처럼 두려워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캐묻는 인물들이 있다면 통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럽라 콜라보 너무 좋네...
게다가 에리우미라니 애도 생길 거 같은 조화다(응?).

 

 난 토끼 주디가 여우 닉에게 가서 이전에 말실수한 일을 사과한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장연설이라기엔 짧고 일상적으로 하는 사과라기엔 조금 길어서, '닉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데 대한 사과'의 취지에 아주 부합하는 시간대였다. 일단 그녀는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셋째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데 혹평을 아끼지 않았으며(이것은 '내가 원래 멍청해서 그래' 같은 쓰잘데기 없는 자기비하와 천지차이였다.), 넷째로 자신의 잘못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고 닉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며 잘못을 시정하고서도 자신과 교제하기 싫다면 멀리한다 해도 불만이 없을 거라 이야기한다. 흑흑 흐느껴 우는 데도 정말 할 말은 다 한다. 아마 닉도 그녀의 그 당찬 태도 때문에 마음이 돌아섰을 것이리라 짐작한다.

 다들 주토피아가 아주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난 솔직히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겨울왕국보단 더 창의적인 점은 인정하겠다. 굉장히 자기계발서 같다는 느낌이 났는데(누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무한긍정이라거나.) 아무래도 요즈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가벼운 자기계발 에세이라던가 명문장 한줄같은 게 유행하는 거 아닌가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인종차별 문제를 다뤘다고도 거론하는데 그렇게 보기엔 아무리 우화장르라 봐도 차별이 너무 약했다고 본다. 뭐 교훈을 충분히 얻어갈 수 있는 영화란 데선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이 영화 저 영화 보라고 애들에게 등떠밀지 않았음 좋겠다. 괜한 우려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마지막에 닉의 난데없는 고백을 들으면서 비명을 지르던 중고등학생 여자애들을 떠올려보면 그냥 단순히 오타쿠였을지도...) 관객층을 보면 뭔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단체로 끌고온 모양새가 있었다.

 내 역량으론 아직도 역부족이지만(...) 주디가 닉 말고도 다른 동물들을 계속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설령 어떤 동물에게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녀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긍정적인 면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난 그런 게 용기이지 않을까 최근 생각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에 맞는 적절한 도움을 주는 행위라고 할까. 타이밍이 중요한 일인지라 정말 토끼처럼 날렵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일단 적절한 사과에서부터 시작해볼까 ㅠㅠ

 

 

 

주토피아 팬아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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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의 시 95
김언희 지음 / 민음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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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장, 그러엄, 이내

익숙해진대두...... 고옫, 도마는...... 칼, 때문에 있는 거야...... 칼 맞는 재미로 사는 거라구...... 난자당하는 맛에, 그래...... 금방, 익숙해질 테니...... 두고봐, 일단...... 피 맛만 보게 되면...... 그래, 도마는...... 피를, 먹고 사는 거야...... 난도질의 현장에서...... 셀 수도 없는 칼자국들이 피를...... 처가...... 흡반이 되지, 되고 말지...... 그렇게...... 피...... 없이는 못 살게...... 되는 거지, 그러엄...... 이내 익숙해져, 도마처럼......


 


가족극장이라는 연작시에서는 어머니가 나오지만 대체로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꼼짝도 못한다는 이미지이고, 아버지는 이미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를 인공으로 여자로 만들어 인공으로 만든 그것으로 후비는(...) 복수를 한다.


시인이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지는 면이 있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본인의 아버지보단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자신을 시체로 묘사하고 자신 따위가 태어난 것 자체를 좋지 않은 사태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발버둥은 결국 비정상적인 상황 자체가 익숙해지는 걸로 종결된다. 그녀는 아버지를 안으로 들이지도 못하지만 빼지도 못한 채 시를 종결짓는다. 생각해보면 이게 '여자의 일생'이 아닌가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평소에 남동생 밥을 해주던 게 갑자기 지긋지긋해져서 신경질을 내보지만, 그것 또한 한때뿐인.

 


 


일단 대중들에게는 시 패러디로 이름이 나신 분이다.


이 시집에서도 나오지만 진달래꽃에서 즈려밟는다는 의미가 어떤 의민지를 몸소 알려주시는 분이다. (고어이니 주의 바란다.) 그러나 문단과 몇몇 분들에게는 하드고어로 이름이 나 있다. 아, 물론 선정성은 있다. 여느 고어들이 그렇듯이 여성과 남성의 음부가 가감없이 나오고 특히 전자가 노골적으로 나오는 편이다. 그러나 똥이 나온다. 그것도 많이 나온다. 요즘 나오는 깔끔한 고어가 아니라 90년대 똥과 침이 다 튀는 B급 고어이다. 비위가 안 좋은 사람들은 보다가 속이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아무튼 난 90년대부터 제법 19금 문화를 제법 향유한 인간이라 서정성(?!)까지 느껴져 천천히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어보았다.

이 시집을 읽다보면 문득 비지터 Q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가족들이 배경인 고어 영화인데 질척질척한데다 마지막엔 어머니에게서 모유까지 분출된다. 지극히 남성이 만들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어디까지나 배설물(특히 똥)에 충실한 편이고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노골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안 나온다는 이야긴 아니다) 아버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몸 탐색을 주로 한다. 애인 이야기가 나오는 시는 단 둘 뿐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고어영화를 찍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사실 난 이 책을 추천하기 굉장히 난감함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구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힐링 책들은 올바르고 착하며 청량하기 그지없지만, 그래서 재미는 없다. 가끔씩 할 수 있는 음울하고 야하고 비뚤어진 상상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다 준다. 이 책은 굉장히 시원하게 그런 잔소리꾼 같은 책들에게 자학으로 일침을 날린 뒤(사실 '내가 그렇죠 뭐'처럼 강력하게 남의 실수를 지적하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건 없다.), 그러면 안 될 곳에서 에로와 고어로 난장판을 벌이고 있다. 힐링에 질린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책이라 할까.

 

그라베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속에는 그 여자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시취를 맡았다 그 남자의 정액에서 그녀는 그녀의 시즙 맛을 보았다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면 물이 줄줄 흐르는 자신의 성기가 물크레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시간이야 근친 상간이라구 묵계 아래 그들은 서로를 파헤쳤다 손톱 발톱으로 구멍구멍 붉은 지렁이가 기어나오는 각자의 유골을 수습하였다 파헤쳐진 곳을 얼기설기 흙으로 덮었다 그는 그의 파묘 자리를 떠도는 갈 데 없는 망령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파묘 자리를 떠도는 음산한 귀곡성이 되었다


 


약간 이 커플의 미래같아서 올려본다(...)
키리노 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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ペルソナ3(7) (コミック, 電擊コミックス)
アトラス /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發行/角川グル-プパブリッシング發賣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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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이 쓸쓸해지는 건 싫은걸.

 

 

아이기스에겐 미안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건 유키X아이기스 커플이 맺어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워낙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들이 일어나는지라...

 

 한편으로는 사랑을 포함하여 모든 인연과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것 같다. 흔히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라고 한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관계를 맺던 끊으려고 하던 그것은 본인의 선택에 따른 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관계가 주로 실에 비유된다는 점에 있다. 미리 가위같은 게 준비되었다면 실은 금방 싹둑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옆에 가위가 준비되어 있어서 급하게 손으로 끊으려 할 때, 실을 끊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흔하게는 손으로 세게 붙들고 양방향으로 잡아당기다가 손만 아프게 되고, 결국 원시적 방법으로 이를 사용해서 끊으려고 한다. 그 때부터 실을 끊는 데 대한 불편함은 가중된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목숨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리가 부서진다거나 심장을 망가뜨리면 대체로 쉽게 죽을 수 있지만,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 게 또한 인간이기도 하다.

 

 

 

어중이떠중이처럼 나오던 준페이가 갑자기 성장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정신에 변화를 겪으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나 보다(?) 

 

 1편 2편에서는 훌훌 잘만 넘어가던 시간들이 이번 영화판에서는 매우 느릿느릿하게 넘어간다. 페르소나3 일동들이 섀도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키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서 그럴 수도 있다. 섀도우를 모두 해치우면 멤버들도 다 흩어지리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섀도우가 다 해치워진 것도 아니고, 아이기스는 여전히 그를 스토킹하고(?), 친구도 생기고, 꾸준히 매일매일이 지속된다. 여태 웃지도 않던 유키가 큰 소리로 웃으니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가 겪지 않은, 아니 앞으로 겪을 일은 이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시간은 언제나 짧은 법이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인간은 '인간'에게 흥미가 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오래된 교훈을 이 영화는 끈질기게 강조하고 있다.

나도 이런 세계관을 알게 되서 기쁘다.

마지막 4편은 언제 보게 될지, 또 기다려진다고나 할까.

 

근데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다 ㅠㅠㅠ

 

 P.S 페르소나 Q OST Maze of Life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처음 쓰려던 판타지 장편 소설의 이름이 Maze였다. 부제는 운명(fate)이었음. 불발하지 말걸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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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무라: 잊은 채로 살고 싶었어. 지금까지 내 자신이 대체 얼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았는지에 대해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다.

얼씨구나 하고 좌파 운동권의 피해의식(싸가지 없는 진보)과

자학정신(동료를 잃은 한국 좌파에게 바치는 쓴소리)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뭐, 당신들이 먹고 살려고 그런 글을 쓰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그동안 '동네북 좌파'가 그동안 얼마나 피해를 입어왔는지 사람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성추행 당한 게 몇 번 있지만 대의를 위해 참아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건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 당신들은 날 짓밟았는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는 당신들 마음 한두번 좀 밟으면 안 돼?

호무라를 포함한 모든 애니메이션의 마법소녀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를 욕할 거면 애초에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 요술공주 밍키부터 욕했어야지.

 

 페북의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이황의 일화처럼 보통 두 명 얘기 중에 네 말도 맞구나 또 네 말도 맞구나 맞장구만 쳐주다 보면 두 명 중 팔뚝이 굵은 놈이 이기는 법으로 흘러가게 된다. 모든 것에 관대한 것도 굳이 신경줄 끊길 일 없는 계급의 특권이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겁탈 비슷한 걸 당한 뒤(심지어 정말로 '겁탈'을 당했는지의 여부도 모호하게 처리된다.) 수녀가 임신을 했는데,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죽는 마지막 날까지 자신은 동정녀 마리아의 현신이며 자신은 신을 낳고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당시엔 '그래 자신의 애는 누구에게나 신으로 보이지'라고 중얼거렸었지만, 그런 믿음이 있다. 결국 '발가락이 닮았다' 처럼 모든 믿음은 하나의 세계를 담는다. 그리고 그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 세계나 자신 중 하나가 부서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중잣대를 부수는 게 '신이 된 인간'이다. 세계vs나vs마도카.

 

 소통은 너(상대방)를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공감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소통과 공감은 오히려 나 자신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번역의 세계를 한번 접한다면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출처는 나야'라는 말이 아직 철없는 고등학생의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창작해낸 말이야! (뿌듯)라고 한들 이미 전세계 온 역사를 통틀어보면 이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 그것은 사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짜증과 호기심.

 

 내가 아는 자학의 시작은 행자, 수햏, 아햏에서부터다. 그 용어가 디씨에서 출발한 듯한데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잉여킹, 안생겨요, 현시창 등으로 진화하여 언어가 폭발하듯 늘더니 결국 헬조선으로까지 나아갔다. 아마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반역의 이야기는 '현시창' 정도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현실은 시궁창, 즉 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고 희망찬 듯이 표현해도 니가 할 수 있는 건 똥싸기밖엔 없다라는 정도의 뜻을 담은 이 단어는 반드시 등장인물에 고도같은 존재의 희망이 있어야 한다. 희망이 담긴 세계라는 전자가 있다. 그 세계는 녹음이 울창한 숲,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과도 같다. 그러나 문명 이후엔 사막이라는 말이 있듯, 그런 세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미키 사야카는 같이 행복해질 줄 모르는 호무라를 책망한다. 하지만 호무라는 그녀를 비웃는다. 육체가 살아야 같이 행복해지는 거 아냐?라고. 확실히 정신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육체가 죽어서 다시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한 번 얻은 자는 그마저도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보수는 우리에게 어떤 기득권을 잃어버리고서도 살 수 있는지를 정말 끊임없이 끈질기게 질문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두려움과 매혹을 가져다 준다.

 

 Axt라는 잡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토도로프는 '환상'을 정의하기 위해서 '경이(marvellous)'와 '괴이(uncanny)'를 구별한다. '경이'는 객관적인 세계의 법칙이 단절되는 사건이고, '괴이'는 이상하고, 초현실적이지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을 말한다. '환상'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미결정, 망설임을 특징으로 한다."

 

 아마 다음 속죄의 이야기에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내용이 단지 괴기스러운 이야기 뿐일지, 아님 환상에 대한 이야기일지 결정될 것이다. 반역의 이야기밖에 보지 않은 지금의 우리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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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LE Vol.4 - 특전 CD한정판 (2disc) - 12p해설집 & 클리어 케이스 & 특전 CD
신보 아키유키 감독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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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베: 너희 인류의 가치기준도 우린 이해하기 어려워. 현재 70억 명. 게다가 4초마다 10명씩 늘어나는 너희가 왜 그렇게 단일 개체의 생사에 호들갑을 떠는 거지?

마도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너흰 우리의 적이야.

 

그렇게 한계를 정해놓는 당신들은 대체 누구인가?

 

 큐베와 호무라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과 그녀는 잔인하게도 한계를 확실하게 정해놓는다. 사야카의 짝사랑 상대는 사야카가 평생 그를 돌본들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서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손으로 바이올린을 켜지 못한다면 입으로 켜면 된다. 요즘은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만의 스타일이라고 자랑한다.

 마도카의 힘이 너무 거대해서 분명 마법소녀가 되자마자 무시무시한 마녀가 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꼭 그렇게만 끝나는 건 아니다. 이전에 마녀를 물리치지 못할 때 마법소녀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마도카가 변화시킨 세계는 마수를 물리치지 못할 때 큐베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 차이는 듣기만 해도 대단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느님만큼이나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가? 꼭 그렇지는 못한다. 단지 당신들이 이루어내지 못할 뿐이다. 예수는 그 경지를 이루어 십자가에 매달리면서도 그의 운명에 아무런 불평 없이 순응하고 그로 인해 성인군자가 되었다. 최근 성철 스님은 철천지 원수에 이어 연쇄살인범마저도 자신의 연인 아니 성인군자처럼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고 설법하였다. 그는 분명 평범한 인간들이 보지 못한 경지를 보고 왔음에 틀림없다. 마지막에 호무라가 마도카의 소울잼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듯이 말이다.

 

 

 

사랑과 희생, 두 개가 합쳐질 때 세계 정복도 가능하다고 마더 테레사가 말했다.

 

 마라톤은 옆에 같이 뛰는 사람이 있을 때 초월적인 기록에 다다를 수 있다. 당신이 넘지 못하는 전문가적인 기록이 있다고 치자. 제대로 훈련도 못한 당신은 분명 그 반도 못 미칠 것이다. 그 기록을 넘은 적이 있는 전문가에게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점을 물어본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열심히 훈련시킨 뒤에 다시 도전해보라. 처음 세운 기록을 조금 넘었지만 아직도 신기록에 도달하진 못했다. 다시 전문가에게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점을 물어본다. '당신은 절대 도달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물리치고 옆에 두지 마라. 그 사람은 당신의 옆에서 같이 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고 또 벗어난다면, 당신은 신에 필적하는 기록을 갱신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에 선을 어느 정도는 품고 있으며, 언젠가 세상이 진보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설레지 않는가? 작은 것을 꿈꾸면서도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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