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アニメ 境界の彼方 オリジナルサウンドトラック (CD)
TVサントラ / ランティス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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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구나가 외톨이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좀비가 되려고 하는 인간을 죽이지 못하고 내버려둔다. 한때는 그 인간이 친구였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혹은 그것은 죽여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야 내가 살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막을 수 있다.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도무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인간도 좀비도 아닌 그 존재의 뒤에, 추억과 못 다한 사랑이 보인다면. 그는 불사신을 넘어 거의 무적과 같은 존재다. 평범한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해야만 한다.
 
 명탐정 코난은 안경 너머로 범죄자들에게 냉랭한 폭포같은 시선을 던진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현명하나, 성숙하지 못하다 또한 남들에게 미움받는다. 코가미는 범죄자에게 깊게 끌려, 어느새 소수자들의 편에 선다. 그런다 한들 범죄자가 되긴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만 본다면.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를 구할 수 있다면, 아니 가능성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니. 난 아니다. 사실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경계의 저편은 실체가 확실치 않다. 칸바라도 확실치 않다. 요괴와 인간의 중간. 미라이도 그렇다. 저주받았지만 인간. 그러나 저주받은 피라도 피는 피다. 나를 먹여살려주고 내 몸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피, 그러나 저주받은 피. 그 피는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피를 모두 짜낼 때 자신은 안전하지 못하다. 만약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참된 성인일 것이다. 나는 성인이 아니다. 근접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아니다. 세계가 겪을 위험의 가능성을 감수해서라도 누군가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지옥과 천국의 결혼 가운데 내가 있다면, 나는 머리부분부터 지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블레이크의 이론대로. 내 자기애와 인간사회에 대한 사랑은 생각보다 크다. 아마 내가 미라이였다면 그의 고해성사를 다 듣고 난 뒤 온 피를 다 써서 칸바라를 죽였을 것이다. 설령 미라이와 같은 방법을 쓰더라도 그렇게 되었을 거다. 나는 경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는 물이다. 미라이는 애초부터 칸바라를 죽일 수 없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피는 언제든지 성수로 변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사실 저주받은 피는 없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다. 없다. 피는 언제든지 사람의 선과 도에 따라서 있는 힘껏 실행하면 바꿀 수 있다. 용기를 내야 한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에 의해 노예처럼 부려먹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빼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우리를 최소 먹고 살 수 있었던 그 곳에서 빼왔는가? 이제 우린 다 죽는다!'라고 항의했다. 그들은 결코 모세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다 하지 않았다. 모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리석은 자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들을 의무적으로 돌보았다. 그 때문에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황야에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분노도 불만도 없는 여호수아가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기에서도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 처음에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였을 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가 될 때가 있었다. 매우 순간적이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과 전쟁을 할 때였다. 모세가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있어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팔이 떨어져나갈 듯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아론과 여호수아 등에게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세를 믿고 열심히 싸워서 이겼다. 그들이 같이 지낸 시간에 비하면 매우 순간적인 일이었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통했었다. 찰나에.

 

 

 

여기서 칸바라 아키히토의 문제는 뭐냐.

 

 솔직히 한 9화까지 놈의 성격을 보건대 이런 인간은 연애상대에서만 인기남에 해당될 뿐이지, 절대 진지하게 호감을 가질만한 상대는 아니다.

 모성애를 자아내는 남자, 남자들이 다 좋아하지만 여자들은 다 싫어하는 남자가 이런 부류에 해당.

 그 소름끼치는 융통성 레벨만 좀 낮췄어도 미라이가 이런 고생은 안 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반요라는 게 꼭 경계인의 특성만 있는 건 아니다. 억압된 분노의 표출, 미라이에게 쓴 '폭력'에도 의미가 있다.

 솔직히 이건 칸바라 아키히토를 중심으로 한 성장 애니이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 극장판 나오니 그거 보면서 다시 쭉 이 애니를 재탕해보시길.

 이런 타입이 커서 나쁜 남자' 가면을 쓸 가능성이 농후한데, 가족은 커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인생을 갈아줘도 그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즉, 현실에선 미라이가 자신의 모든 걸 탈탈 털어줘도 불가능.

 물론, 나쁜 여자보다 더 나쁜 여자가 세상에 그득하다는 것도 과제일 것이다.

 미라이같은 여자를 꿈꾸지도 말고, 한발 더 나가 자신이 칸바라라고 착각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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