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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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하루키의 시간은 멈춰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이로는 대략 스물 여덟에서 아홉 정도.

세상의 쓴 맛을 좀 경험하긴 했지만, 여전히 청춘을 잃어버리지는 않은.

치기와 열정이 제법 균형을 이룬.

그러나 너무도 당연하게도 이제 남은 것은 상승이 아니라 하강 밖에는 없는.

그래서 본질적으로 쓸쓸한.

 

이 작품은 이런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물론 이 특징은 그의 작품들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데, 유독 이 작품에서 강렬하다.

《노르웨이의 숲》이후로 가장 분명한 듯.

 

*

 

하루키의 최근 작품 중에서는 가장 서사성이 강한 편이다.

여전히 관념이 강하기는 한데, 그 관념을 견고한 그릇에 담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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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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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기간에는 실용서를 몰아서 읽는다.

현실감각을 놓지지 않으려는 의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쉽게 읽고 쉽게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

 

이번 여름에도 4~5권을 몰아서 읽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나이젤 마쉬(Nigel Marsh)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그의 TED 강연을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이다.

명료한 주제와 유머 감각, 그리고 흥미진진한 전개 방식까지.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성은 부족하지만, 마쉬 역시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텔러였다.

 

또 다른 이유는 책의 제목이 지금 내 상황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지금 나는 '실직'을 제외한 나머지,

        그러니까 '마흔'과 '뚱보'라는 카테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물론 번역된 제목은 다소 실망이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설명적이며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원 제목인 "Fat, Forty and Fired"의 운율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

 

 

뭐, 그러저러한 이유로 인해서 이 책을 집었고, 재미있게 읽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역시 다르지 않다.

마쉬가 읽었다는 스티븐 비덜프《사나이(Manhood)》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처럼.

 

남자라면 누구나 마흔 살이 되는 해에 1년을 억지로라도 쉬어야 한다 (...) 거의 모든 남자에게 삶이란 없다. 그들은 단지 삶이 있는 척할 뿐이다. 남자들은 외롭고, 겁먹고, 비참하고, 강박적일 만큼 경쟁적이다. 이러한 비극적 상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영혼 없는 직업과 경력의 노예가 되어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은퇴할 때까지 참된 삶을 사는 것을 유보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은퇴의 날이 이르렀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일하는 동안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너무 바쁜 나머지 텅 빈 인생을 살고, 결코 풍성하고 지속적인 내적 삶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비덜프가 한 말을 빌리자면, “결혼은 파탄에 이르고, 아이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우리는 결국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을 파괴한다.” - pp.18-19.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직장인 혹은 남자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 공통적으로.

 

구절구절이 모두 감동적이진 않다. 하지만 대부분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자백한다. 어린 네 자녀를 돌보는 것이 비즈니스 미팅에서 잘하는 것만큼 보람 있지 않음을, 집안일을 뒤로 하고 출장을 떠날 수 있는 것이 때때로 기분을 들뜨게 함을, 일터에서 네 역할이 내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함을, 사람들과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할 때 지극한 만족과 의욕이 느껴짐을. 그 공통의 목표가 비즈니스 성공일 때조차. 아니, 앞의 문장은 정직하지 못하다. 그 공통의 목표가 비즈니스 성공일 때 특히 더. 나는 열심히 일하기를 좋아한다. 가치 있는 일을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경쟁을 즐기며 이길 때 전율한다. 어떤 값이라도 다 치르겠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상업적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내 말은, 나를 보라는 것이다. 나는 비즈니스 라운지를 얻고자 집에서의 분주한 저녁 시간을 포기하는 데 1년이 걸리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남자들에게 더 균형 잡힌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그만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권하지 않는다. 내게는 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제 사물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기를 그만두었다. 여태까지 흑백으로만 삶을 보아 왔다면, 이제 나는 더 편안한 회색지대에 있다. 인생은 고되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인생은 늘 고될 것이다.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든 그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서 나는 자유를 얻었다. - pp.306-307.

맞다. 나도 역시 집안일보다 사회적/경제적 활동에서 더 성취감을 느낀다. 완벽을 추구한다.

맞다. 내게도 답이 없다. 그러나 아직 회색지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직장에 속해 있고, 그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후 나는 초점을 바꾸었다. 스트레스 없는 신화적 열반의 세계를 창출하고자 시도하는 것보다는 삶의 몸부림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큰 실패를 바라보며 자학하기보다는 작은 승리들에 대해 자신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이 뭔가 멋진 일을 하거나 멋진 말을 하면, 다른 멋진 순간들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그 한 번의 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수 있을 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때에 대해 분을 내지 않고 그 한 번의 기회에 대해 감사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난관에 대해 우는 소리하는 것을 그치고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 p.307.

결국 삶의 중심을 직장이 아니라 가족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마쉬의 견해.

쉽지는 않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단번에 이룰 수야 없겠지만 차근차근 진행시켜볼 필요도 있겠다.

 

그래서 내 인생의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내가 인생에서 가치있게 생각하는 영역들을 선정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여기에서 멀어질수록 가치 기준에 따라 배열함)

각 영역들의 핵심 가치를 3가지씩 선정했다.

 

 

이 작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면 내 가치관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겠지.

일단 시작했다. 거기에 가치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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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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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은 힘에 세다.

적어도 목적 없이 무거운 것보다는 그렇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

 

솔직히 인문학은 아니다.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나, 그 책들이 모두 인문학 서적인 것은 아니고(소설도 좀 포함되어 있으나 가장 많은 분량은 에세이, 그 중에서도 잡다한 사변에 가까운 것들로 채워져 있다),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전달하지도 않는다.

 

인문학 분위기를 풍기는 테마도 간혹 있으나, 애초에 '學'을 붙일 정도로 체계적인 접근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신변잡기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변을 늘어놓았다. 보다 후하게 평가하자면, 다소 감각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신변잡기에 집중된 수다, 정도가 되겠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이란 성찰의 과정이거나 결과가 아니라, 그저 시대적 화두를 반영한 제목에 불과하다. 저자는 인문학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시켜 적용했거나, 내용에 과도한 의미 부여하여 너무 큰 제목을 만들었다. 여기에 대한 지적은 감수해야 마땅하다.

 

 

다만, 감상적 전락의 가능성이 농후한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밤'이라는 시간, 그리고 그 확장형으로의 '술집'이라는 공간의 힘이다. 이미 수많은 예술가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밤은 감성으로 충만한 시간이고, 술 혹은 술집은 감성을 발산하는 공간이 아니던가.

 

이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라면 가벼움은 더욱 힘이 세진다.

맞다. 가벼움은 진정으로 힘이 세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밤이라면 정녕 그러하다.

 

더구나 친구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해준다면 밤과 술의 효과는 더욱 세진다.

 

스펙이라고 불리는 경력은 예방접종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일을 해보면 예방접종보다는 오히려 반창고나 빨간약이 더 필요합니다. 범퍼카처럼 좌충우돌하고 깨지면서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p.87.

 

때로는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때로는 세태를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어법은 위안이다.

세상살이를 힘들어하는 친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한다.

괜찮아, 힘내, 할 수 있어! 

실컷 수다를 떨고나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뚤리는 것처럼.

 

그래,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지 못하고, 고민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수다가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가볍게 나누는 수다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에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있는 한,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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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법칙
스가야 요시히로 지음, 예병일 옮김 / 재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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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법칙을 소개하고 있으나, 이 책의 내용은 오히려 '파레토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전반부 20%가 이 책의 내용 중에서 80% 이상을 설명한다.

후반부의 설명은 불필요한 꼬리.

읽으면 분명히 도움은 되겠으나, 구태여 새로울 것도 참신할 것도 없다.

 

다음의 두 가지 도표 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은 끝난다.

 

 

 

롱테일 법칙에 대략적인 내용을 빠른 시간에 습득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들여 읽을만 하지만,

 

보다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인 지식과 견해를 원한다면

차라리 다른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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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삼대째 1 - 츠키지에 어서옵쇼!
하시모토 미츠오 지음 / 대명종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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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다르다.

 

일본 요리만화의 다양성이야,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일식, 양식, 베트남요리 등등 국적과 민족에 따른 구분은 물론이고,

초밥, 라면, 카레, 전통주, 덮밥, 빵 등등의 음식 종류에 따른 구분도 다양하며,

요리대결, 식재료, 환경, 가정식 등등의 조리방법에 의한 구분도 이미 다각도로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진 차별성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장면, 작품의 가장 첫 머리에 있다.

 

《어시장 삼대째》의 주인공은 전문 요리사도, 요리사 지망생도, 칼럼니스트도 아니다.

그는 중간도매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사람. 

그는 자신이 스스로 물건(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다만 전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한다.

 

더구나 그는 본래 은행원 출신. 은행에서 10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관리자였다.

그는 99명을 해고시키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장을 나온다.

이 설정은, 주인공 캐릭터의 두 가지 특징

-- 즉, 업무에 책임을 다하는 성실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이야말로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이며 재산이다.

 

 

그러므로 그가 어시장 사람들과 관련을 맺고, 그를 통해 생선에 대한 지식을 배워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은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결국 그의 성장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과정이고,

스스로를 깊어지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과연 얼마까지 넓어지고 깊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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