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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예측하기 쉽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평범한 작품은 시작하고 나서 15분만 지나면 대부분의 트릭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특별한 게 아니다.
할리우드식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다.  

초반 15분 내에 암시와 복선이 모두 깔려야 한다.
그래야 결말의 완결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 15분 내에 모든 인물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 구조가 짜임새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뻔한 스토리텔링도 참신한 때가 있었지. 1970년대까지는.
하지만 이제 낡고 낡은 방법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조금만 집중해서 보면 스토리텔링의 법칙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참신한 아이디어가 빛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MIB(Man In Black)> 시리즈. 
스토리텔링, 캐릭터, 특수효과, 어느 것도 별반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우주관 만은 찬란했다.  

은하계가 구슬만큼 작다는 설정
,
그래서 그것이 고양이의 목걸이가 되기도 하고,
외계인들의 구슬치기 장난감이 되기도 한다는 것!   


우주로 구슬치기

은하계가 사물함만하다는 설정.
인간은 사물함 속에 사는 외계인을 비웃었지만,
결국 인간도 사물함 속에서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  


사물함 속 우주

이 놀라운 세계인식이 작품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무지했기에,
이런 우주 인식이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코믹스에 유사한 설정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등등의 추측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르헤스의 미국 문학 강의 http://blog.aladin.co.kr/rahula/5076272

그의 여느 저작처럼, 짧고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글을 통해
미국의 전통적인 사조 중에 초월주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36년부터 약 25년 동안 유행했고,
이후에는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이 사조의 핵심은,
"우주에 내재하는 신의 속성"이라는 것이라 한다.  

이는 곧, 

   
  초월주의 시인 에머슨은 소우주, 즉 축소세계가 아닌 존재는 없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영혼은 세계의 영혼과 일치한다. 물리법칙은 도덕법칙과 맞물린다. 만일 각각의 영혼마다 신이 계신다면, 외부의 모든 권위는 무의미해진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내면 깊은 곳에 깃든 비밀스런 신성이면 족하다. - p.52.
 

아하, 이런 사조가 있었구나.
이런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니 MIB의 우주관 같은 것이 가능했지!

역시 알아야 보인다. 아니 아는만큼 보인다.
공부하자. 그것이야말로 공부의 목적이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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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지. 당신이 떠난 날이.  

나는 군대에서 발목까지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내가 걷어낸 눈뭉치 밑에서 새파란 싹이 하나 자라나 있더군. 
한 겨울에 피어난 그 작은 생명이 처연하고 아름다워서 나는 한참이나 그 앞에 서있었어. 

그때 노래가 흘러나왔지. 당신이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난 눈물을 흘렸어.  

http://j.mp/gojgj5   

 

많은 시간이 흘렀지.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리고, 조금씩 퇴색되어가는 꿈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럼에 이렇게 나는 살아왔지. 당신이 떠나버린 세상에서. 

아주 오래 전, 내게도 새파란 싹처럼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 가물가물해.
하지만 가끔씩 생각하곤 하지.

당신의 노래가 들릴 때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든 당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한참 욕설을 내뱉은 뒤에, 그래도 살아야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중얼거릴 때면. 

그래, 그럴 때면 난 살고 싶어. 미안하게도.
그 겨울, 하얀 눈덩이 아래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자라나던, 바로 그 싹들처럼 말이야. 

당신은 내게 말했지. 일어나라고, 다시 한 번 시작하라고. 

고마워. 그래서 나는 살아가고 있어.
당신이 떠나버린 이 세상에서.
 

광석이 형 ---
개인적인 친분은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당신을 이렇게 부르고 있어. 

그렇게 형이라고 부르면,
당신은 빙긋 웃으며, 내 빈 잔에 소주를 채워줄 것만 같거든. 

그리고 다시 속삭여 주겠지.
일어나. 그리고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http://j.mp/hy3hEO  

당신이 말했지.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버린다고. 
그래서 형도 일찍 떠나버렸겠지? 

그래, 알았어.  
다시 시작할게. 일어나서, 또 한번 도전해볼게.  

눈 속에서 피어난 싹이, 자라고, 꽃을 피울 때까지.
다시 시작할 거야.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당신이 내게 속삭였으니까. 

 

- 지금 곁에 없지만, 추억 속에 영원히 있는 김광석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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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해비빈, 마지막으로 기부했습니다.  

아직 해피빈 가지고 계신 분들은 동참해주세요!  

http://j.mp/gSsw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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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시대도 변하고,
내 전공도 스토리텔링으로 바뀐 탓에

이런 주문을 받는 일이 적어졌지만,
 

등단 직후 몇 년 동안은 이런 주문을 많이 받았지.
-- 시 낭송해줘~

 
내가 아무리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말이야.
그래,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나 소설은 구분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마치 내게 있어 소녀시대의 멤버들이 그냥 '소녀'들인 것처럼.
(사실, 이 친구들도 이제 소녀는 아니지 않아?)

 
몇 번은 정중하게 거절했지.
그 요청이 왜 잘못인지 설명하기도 했고.
 

우선, 당신이 원하는 건, '암송'이지 '낭송'이 아니란 말이야.
낭송은 시 작품을 보면서 읽는 거야. 근데 지금 이 자리에는 작품이 없잖아, 그러니 외워서 말할 수밖에. 그러니 암송이야.
-- 아아, 아무튼 해줘, 그거, 낭송인지 암송인지.
 

하긴. 소설가와 시인을 구분할 수 없는데, 낭송과 암송을 구태여 구분해 무엇하리.
결국에 체념하고 암송하기로 했지. 
 

그런데 마땅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단 말이지.
이건 순전히 내가 멍청하고 무식한 탓이야. 어릴 적부터 암기에는 젬병이었어. 순전히 변명이겠지만.
 

그래서 최대한 짧고 간결한 시 작품을 골랐지.
예를 들어, 요런 것.





너무, 길다

- 쥘 르나르(Jules Renard), <<박물지>> 중에서

 

얼마나 좋아?
누구나 쉽게 외울 수 있잖아?


만일 너무 짧다고 불만스러워 하는 기색이 보이거든, 청중의 성향을 파악해서 다음의 부가 설명을 더 하면 좋아.
1) 여기에서 '뱀'은 인생을 뜻한다. 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작품이냐!
2) 여기에서 '뱀'은 히틀러를 뜻한다. 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참여적인) 작품이냐!
 

 

한국 작품에서 고르자면, 최고봉은 이것이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싶다.

- 정현종

 

아아, 정말 멋진 작품이지. 문학성으로도, 길이로도.
혹시 여전히 짧다고 퉁실거리거든, 까짓 보너스로 다른 작품을 함께 암송해도 좋아.

 

사이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 박덕규


 

청중이 좀 어린 세대라면 이 작품이 효과적이지.
반말투로 낭송하면 더욱 효과가 좋아.
이것도 참 재미있는 경험이지. 반말로 시를 낭송한다는 것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그런데, 오늘 암송의 기술에 적합한 시를 한 편 발견했어.
다음에 써먹어 보려고 해.

 


개심사(開心寺)에 들며

 
여가 어디여.

여가 거기여.

- 권혁제, << 투명인간 >>, 문학의전당, 2009.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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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중심주의에서의 탈피.
생계에 대한 중압감 또는 물신주의(物神主義)라는 다소 낡은 표현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현실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이겨 생존을 쟁취해야 하고, 휴식하기보다 준비를 해야 하며, 채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경쟁으로 내몰린다. 이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것은 경제적으로 처분해버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을 상상하거나, 다소 허황된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풀어낼 여유조차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생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걱정은 정말 생존에서 비롯되었는가? 혹시 공포 때문은 아닐까. 정말 위협당한 것이 아니라,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 우리를 생계 유지에 급급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이성을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포와 힘”이라는 히틀러(Adolf Hitler)의 말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공포는 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난 세기, 우리 문단을 사실상 주도했던 리얼리즘도 결국 생존에 대한 추구와 그를 위한 지난한 쟁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 문단의 토양이 SF처럼 현실을 벗어난 상상은 자라기 어려운 환경으로 고착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러하다면 앞으로 문학의 지향점은 ‘서정’이 되어야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에서 이완되기 위해서는, 일단 현실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로 SF가 보완해야 할 내용이 된다. 그동안의 SF가 새로운 과학기술 소개와 알레고리를 통한 현실 비판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앞으로의 SF는 삶을 위무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를 위한 도구는 다시, ‘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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