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휴가 기간에는 실용서를 몰아서 읽는다.

현실감각을 놓지지 않으려는 의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쉽게 읽고 쉽게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

 

이번 여름에도 4~5권을 몰아서 읽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나이젤 마쉬(Nigel Marsh)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그의 TED 강연을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이다.

명료한 주제와 유머 감각, 그리고 흥미진진한 전개 방식까지.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성은 부족하지만, 마쉬 역시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텔러였다.

 

또 다른 이유는 책의 제목이 지금 내 상황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지금 나는 '실직'을 제외한 나머지,

        그러니까 '마흔'과 '뚱보'라는 카테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물론 번역된 제목은 다소 실망이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설명적이며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원 제목인 "Fat, Forty and Fired"의 운율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

 

 

뭐, 그러저러한 이유로 인해서 이 책을 집었고, 재미있게 읽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역시 다르지 않다.

마쉬가 읽었다는 스티븐 비덜프《사나이(Manhood)》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처럼.

 

남자라면 누구나 마흔 살이 되는 해에 1년을 억지로라도 쉬어야 한다 (...) 거의 모든 남자에게 삶이란 없다. 그들은 단지 삶이 있는 척할 뿐이다. 남자들은 외롭고, 겁먹고, 비참하고, 강박적일 만큼 경쟁적이다. 이러한 비극적 상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영혼 없는 직업과 경력의 노예가 되어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은퇴할 때까지 참된 삶을 사는 것을 유보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은퇴의 날이 이르렀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일하는 동안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너무 바쁜 나머지 텅 빈 인생을 살고, 결코 풍성하고 지속적인 내적 삶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비덜프가 한 말을 빌리자면, “결혼은 파탄에 이르고, 아이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우리는 결국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을 파괴한다.” - pp.18-19.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직장인 혹은 남자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 공통적으로.

 

구절구절이 모두 감동적이진 않다. 하지만 대부분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자백한다. 어린 네 자녀를 돌보는 것이 비즈니스 미팅에서 잘하는 것만큼 보람 있지 않음을, 집안일을 뒤로 하고 출장을 떠날 수 있는 것이 때때로 기분을 들뜨게 함을, 일터에서 네 역할이 내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함을, 사람들과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할 때 지극한 만족과 의욕이 느껴짐을. 그 공통의 목표가 비즈니스 성공일 때조차. 아니, 앞의 문장은 정직하지 못하다. 그 공통의 목표가 비즈니스 성공일 때 특히 더. 나는 열심히 일하기를 좋아한다. 가치 있는 일을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경쟁을 즐기며 이길 때 전율한다. 어떤 값이라도 다 치르겠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상업적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내 말은, 나를 보라는 것이다. 나는 비즈니스 라운지를 얻고자 집에서의 분주한 저녁 시간을 포기하는 데 1년이 걸리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남자들에게 더 균형 잡힌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그만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권하지 않는다. 내게는 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제 사물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기를 그만두었다. 여태까지 흑백으로만 삶을 보아 왔다면, 이제 나는 더 편안한 회색지대에 있다. 인생은 고되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인생은 늘 고될 것이다.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든 그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서 나는 자유를 얻었다. - pp.306-307.

맞다. 나도 역시 집안일보다 사회적/경제적 활동에서 더 성취감을 느낀다. 완벽을 추구한다.

맞다. 내게도 답이 없다. 그러나 아직 회색지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직장에 속해 있고, 그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후 나는 초점을 바꾸었다. 스트레스 없는 신화적 열반의 세계를 창출하고자 시도하는 것보다는 삶의 몸부림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큰 실패를 바라보며 자학하기보다는 작은 승리들에 대해 자신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이 뭔가 멋진 일을 하거나 멋진 말을 하면, 다른 멋진 순간들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그 한 번의 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수 있을 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때에 대해 분을 내지 않고 그 한 번의 기회에 대해 감사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난관에 대해 우는 소리하는 것을 그치고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 p.307.

결국 삶의 중심을 직장이 아니라 가족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마쉬의 견해.

쉽지는 않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단번에 이룰 수야 없겠지만 차근차근 진행시켜볼 필요도 있겠다.

 

그래서 내 인생의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내가 인생에서 가치있게 생각하는 영역들을 선정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여기에서 멀어질수록 가치 기준에 따라 배열함)

각 영역들의 핵심 가치를 3가지씩 선정했다.

 

 

이 작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면 내 가치관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겠지.

일단 시작했다. 거기에 가치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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