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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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라는 이 책을 이전부터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은 늘 상 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다음에, 다음에, 를 외치다 이번에서야 제대로 만나보게 되었다. 앵무새 죽이기는 제목을 보면서 대체 앵무새를 왜 죽이려는 것인지, 동물 학대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그 어떠한 내용도 모른 채 막막하게 이 책을 펼친 나로서는 성경 이후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이제서야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에 내심 밀려드는 죄책감 같은 것을 안고서 조심스레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보통의 책들이 서문을 시작으로 저자가 이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는 별도의 서문이 없다. 서문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등을 가지지 않고 이 책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한번 서문을 읽어보면서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우리가 처음에 만나게 되는 이 메시지가 사실 저자가 전해지기 바라던 모든 것의 압축이었구나, 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야말로 그녀가 바라는 대로 충실한 독자였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앞서 도무지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던히 높은 철장 속의 우리네 세상을 보며 이제 어린 아이처럼 울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이 안에 있는 어른들의 모습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서글픔을 먼저 밀려들게 된다.

내가 1학년을 마칠 때쯤엔 젬 오빠가 듀이 십진법이라고 말한 그 교수법이 학교 전체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른 교수법과 비교해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저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지요. 집에서 공부한 아빠와 삼촌은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르면 다른 한 사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빠가 지난 몇 해 동안 한 번도 낙선하지 않고 주 의회 의원으로 뽑혀 일 하시고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 선량한 시민이 되는 데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는 가보 그 적응이라는 것도 거치지 않고 말이지요. –본문

사실 초, 중반을 넘어서는 동안에도 이 안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스카웃이 말하는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도무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 아저씨에 대한 수수께끼를 탐험하고 그의 집 근처 나무에서 발견하게 되는 스카웃과 젬에게 주어지는 작은 선물과 같은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함께 설레였고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발생하게 되는 사소한 문제들을 보며 그 당시의 내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뿐만 아니라 두 남매가 거리에 나타나게 되면 불만 섞인 이야기로 꾸지람을 늘어놓던 듀보스 할머니의 모습 등 처음에 읽었을 때는 이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의 연속을 담아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톰 로빈슨의 사건을 넘어 재판의 결말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 안의 이야기들이 그저 한 마을에서 생겨난 일의 회고가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자부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 있는 나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듯 하여 마지막을 향해 가면 갈수록 세상을 향한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배심원 여러분들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흑인은 거짓말을 한다는 가정 ㅡ 물론 그건 잘못된 가정이지요 ㅡ 모든 흑인은 기본적으로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가정, 모든 흑인은 우리 여자들 주위에 믿고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가정, 우리가 그들의 정신과 관련짓는 그런 가정을 따르리라는 확실을 갖고 말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톰 로빈슨의 피부처럼) 새까만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지적할 필요조차 없는 거짓말이지요. 배심원 여러분은 진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흑인은 거짓마을 하고, 또 어떤 흑인은 부도적하며, 또 어떤 흑인에게는 여자를 ㅡ 백인이건 흑인이건 말이지요 ㅡ 옆에 맡겨 둘 수

조용하게만 보이던 마을, 물론 그 안에는 집 안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은연중에 서로 알고 있는 이 마을 안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피해자는 메이엘라 유얼로 백인이자 유얼 집안의 장녀였고 가해자는 톰 로빈슨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며 흑인이다. 이 한 줄의 사실을 가지고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과 그들의 피부색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건의 결말이나 판결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의 시대상 안에서는 이 한 줄의 이야기로 세상은 모든 것을 결론지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아무리 애써도 항상 공정할 수 많은 없는 거야. 우리 법정에서 백인의 말과 흑인의 말이 서로 엇갈리면 이기는 쪽은 언제나 백인이지. 비열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쩌니
 
그건 옳지 않아요.” 젬 오빠가 주먹으로 무릎을 가볍게 내리쳤습니다. –본문

아마도 어른들의 시선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았다면,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결론이라고 말했을 지 모른다. 이 사건을 바라보던 딜과 스카우트만이 눈물을 머금었으며 젬은 이렇게는 끝나서는 안 된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원래 세상은 그렇단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는 것이 참담하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서 애티커스 핀치 이외의 소수의 사람들은 검둥이의 애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 해 나아가고 있고 진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들 세대에서는 비록 성공하지 못한 이 참담한 역사를 보며 그럼에도 이 일련의 시도를 통해서 조금씩 변모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던 앵무새, 벌레를, 죄책감도 없이 그저 방아쇠를 당겨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수 많은 앵무새를 죽이는 누군가와 앵무새가 되어 죽어야만 했던 누군가가 존재했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와 스카웃이 말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있는 곳에 서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 작은 변화가 우리 안에 오랜 동안 관철되어 있는 편견을 무너뜨리는 틈이 되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책을 덮었다. 우리 스스로 양산해 놓은 과거의 늪이 누군가를 헤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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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2 / 캐스린 스토킷저

 

 

 

독서 기간 : 2015.07.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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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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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내가 만약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어떠한 상황 속에서 곰곰이 생각하고서는 결단을 한 후 그 일을 행했다기 보다는 무심코 한 행동이 지나고 나면 나를 진창으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때론 저 높이 날아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나비효과는 우리네 인생에서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사람들은 죽어, 당연하지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물건이 사라지는 건 참 가슴이 아프고 불가피한 게 아니지 싶어. 순전히 부주의 때문이거든. 화재, 전쟁, 파르테논의 화기 저장고로 쓰였지. 내 생각엔 우리가 과거에서 뭔가를 구해내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아.” –본문

대부분의 경우, 지난날에 대한 회상을 하며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이 달라졌다면, 이라고 바라는 것은 그 때의 순간이 현재의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못 미치거나 현재의 내가 놓쳐버린 무언가를 그 때는 가지고 있었기에 과거의 시간에 대한 상념에 빠지는 것일 게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아쉽게 다가오는데 그 대상이 하나의 사물을 넘어선 누군가라면, 우리에게 드리우는 감정은 아쉬움을 넘어 먹먹함으로 드리우게 된다.

어느 호텔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시오의 이야기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만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만약 그 때 시오가 월반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톰 케이블과 함께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 날의 면담이 다른 일자로 아니 시간이 달랐더라면,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만났던 택시가 상쾌한 느낌의 것이었더라면, 선생님과의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내지 않았더라면 시오의 나날을 달라졌을 것이다. 계속된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일들은 마치 일련의 조각을 따라가는 것처럼 순간순간의 변화들이 모인 것임에도 꼭 그렇게 흘러가야만 했던 것처럼 냉담한 운명이 되어 시오에게 다가오게 된다. 몇 시간 전만해도 엄마에게 들을 꾸지람을 걱정하고 있던 그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미술관에서 바라보았던 발에 달린 족쇄 때문에 세상으로 날아갈 수 없던 황금방울새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시오의 삶은 꼭 그와 같이 흘러가게 된다. 그의 조부모마저도 홀로 남겨진 시오를 반기지 않았던 그때, 앤디네 가정을 지나 웰티가 남겨준 단서를 따라 호비를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서 우연치 않게 피파를 마주하게 되며 시오는 피파와의 재회를 조심스레 그려보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운명이 우리네 바라처럼 되지 않듯이 피파는 그 곳을 떠나 있었고 갑작스레 등장한 아버지를 따라 라스베가스로 가게 되면서 시오의 인생의 제 2막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뉴욕에서 나는 속물적인 아이들 틈에서 자랐다.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고 서너 가지 언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 하이델베르크의 여름 프로그렘에 참가하고 리우데자네이루나 인스부르크, 앙티브에서 휴가를 보내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보리스는 나이 많은 선장처럼 그 아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본문

 보리스를 만나며 시오의 내면의 갈등은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세상은 시오를 폭발 사고에서도 살아남은 아이이며 그 사고로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일 뿐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그의 아버지 역시 그를 찾은 것이 아내가 시오 앞으로 남겨 놓은 유산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다시 세상에 혼자 남겨 지게 된다.

불안한 마음.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ㅡ나처럼ㅡ영혼의 뒷골목을, 속삭임과 그림자,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가는 돈, 암호, 신호, 또 다른 자아, 평범한 삶을 한껏 드높이고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숨겨진 위안을 알았다. –본문

그렇게 다시 뉴욕으로 오게 된 시오는 그의 지난 날의 유일한 기록이자 증거인 황금방울새 그림 때문에 다시 숨막히는 일화들로 빠져들게 되는데, 호비의 가게에서 이제 어엿한 가구 판매원이 된 것처럼 보인 그는 사람들을 속여 가품을 진품으로 파는 일을 벌이게 되고 이 일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그 동안 숨겨 왔던 비밀이 밝혀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까 시오는 뉴욕-라스베가스-다시 뉴옥으로 오는 동안에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그의 삶에 대한 위안을 받은 적 없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가 되어 모든 것이 이전의 정상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종용하고 있고 수 많은 이들의 암묵적인 요구에 시오는 위태위태하게 약물에 의존하며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있어 한 줄기 인생의 달달함이 전해지기도 하련만, 그의 약혼은 물론 피파와의 만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그 뒤에 이어지는 황금 방울새의 원작을 쫓는 이들로 하여금 그는 계속해서 쫓기게 되는 것이다.

삶은ㅡ그것이 무엇이든ㅡ짧다고 말이다. 운명은 잔인하지만 제멋대로는 아니라고. 자연(, 죽음)이 항상 이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삶에 몰두하는 것, 눈과 마음을 열고서 세상을, 이 개똥밭을 똑바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본문

결국에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 상태가 되어서야 시오는 자유로워지게 된다. 황금방울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며 고군분투했던 시간들도, 왜 그 그림에 대해 월티는 그토록 집착했던 것인지, 피파는 왜 시오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 등 수 많은 사건들이 그저 다 놓아버린 마지막에서야 이 모든 이야기는 평화롭다고 느껴질 만큼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황금방울새라는 과거의 족쇄를 스스로 끊어 나온 후에야 평이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시오의 이야기는 때론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설에만 존재하는 운명의 굴레 속 황금마차가 아닌 평이한 이들의 삶을 압축해 놓은 것만 같아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부디 그의 앞날에는 웃음이 잔잔히 흘러나오는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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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 랜디 수전 마이어스저

 

 

 

독서 기간 : 2015.07.0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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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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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막 인생의 제 2의 출발을 준비하려는 한 부부가 있다. 그들이 결혼한지는 오래지 않았지만, 아내의 암 투병을 함께 이겨낼만큼 그들의 사이는 돈독했으며 그들의 모습을 꼭 닮은 2세와 함께 두번째 인생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그들의 일상은 남들과는 다른 시련을 지나왔기에 아내인 데이지는 유기농의 채소와 과일만 섭취하고 있으며 잭과 데이지 사이에서 ''이라는 단어가 금기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여느 부부들과 같이 지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 데이지가 손더스 선생에게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아주 오랜 동안 지속됐을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때론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곧잘 서로의 곁을 지키는 그런 모습으로 내일을 지나갔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날, 혼자서 손더스 선생을 만나 매년 하는 검사를 받고서 결과를 받는 그 때, 화이트 보드가 있는 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데이지를 이끌던 간호사의 손짓은 그녀에게 있어서 별 문제가 없구나 라고 내심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몇 년간 자신의 몸을 위해서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공간 안에서 들려오는 현실은 그녀의 온 몸에 암이 전이되었으며 그녀의 머리 속에는 오렌지만한 종양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데이지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당신에게 이제 100일 여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날인가 데이지가 막연하게 자신에게 죽음이 드리운다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겠다 생각을 하게 될까? 아니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 다짐하게 될까? 그저 아득한 미래이자 나에게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허황된 꿈을 쫓듯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데이지에게 있어 곧 이 생과의 안녕을 고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은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잭은 홀로 남겨 둘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맞는 누군가를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누가 물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자꾸 생각나는 질문이 있다. 한 달 뒤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가방을 싸서 유럽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아말피 해안에 집을 빌린 뒤 진짜 이탈리아 파스타와 와인을 실컷 먹을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할 정도로 야심히 컸구나 싶다. 죽게 된다 해도 절망하지 않으리라 자신만만했던 스물한 살짜리가 조금 창피하다. 그 애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레드 와인을 마시며 '카르페 디엠!'을 외치겠다고 했다. 어리석기도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으니. -본문

 

 처음 데이지가 잭에게 아내를 구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부분을 보며 그녀의 선택에 대해 100% 이해하고 공감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있다는 생각을 그려보면 무언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현재의 나의 모습이기에 과연 데이지는 왜 그러한 선택을 했던 걸까, 라고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러다 20대 초반에 데이지가 했던 죽음을 앞둔 그녀의 막연했던 상상 속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것 역시 20대의 데이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저 죽음에 대해 막연함을 안고 있는 나와 현재 데이지가 처해있는 것은 상상과 현실이라는 엄청난 차이 속에 있는 것이기에,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어불성설이었음을 느끼게 되며 그녀의 진중한 선택을 하나

 

 잭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데이지는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녀가 다니던 요가 학원에도 나가보고 잭의 연구소 사람들 안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결혼 정보 업체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넘어 이 안에서 전해주는 것은 잭과 데이지 모두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었다는 것이 뒤에 전해지게 된다.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겠다는 데이지와 그런 데이지의 마지막을 배려하기 위해서 떨어져 있던 그들은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점차 배워가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애잔함이 밀려들며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러나 데이지와 내 앞의 약간 취한 청중이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내가 그날 6주 전에 그 정류장에서 데이지를 보았고, 내 강의실이 캠퍼스 정반대쪽이었는데도 데이지를 다시 만나길 바라며 날마다 거기 갔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데이지를 만났다. 그리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벌이 데이지 머리 위에서 윙윙거렸다. 위험한 벌레를 보고 그렇게 고맙기는 처음이었다. -본문

 

 아름다운 커플의 아름답지만 아련한 마지막을 함께 보며 그들만의 약속이 지금도 계속 이어질것만 같아 괜시리 먹먹함이 밀려든다. 이제는 서로 마주할 수 없는 공간 안에 있지만 잭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데이지는 영원히 있다는 것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영원히 함께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하는 그 둘이 서로 살을 부비며 살 수 있도록, 데이지와 잭이 더 이상 탄생하지 않길 바라며 먹먹한 이야기를 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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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 / 히구치 타쿠지저

 

  

 

독서 기간 : 2015.07.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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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 깊이 있는 동유럽 여행을 위한 지식 가이드
정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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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 들고서는 여행 에세이 책이 도착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저 편하게 읽으면 되겠구나, 란 생각에 그야말로 퍼진 상태로 엎드려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단면으로 보아도 꽤나 페이지에 삽입된 사진들을 보면서 금새 동유럽의 여행기를 보고 덮어놓을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안일한 마음가짐을 고쳐 먹고서는 바르게 앉아 책을 다시 바라본 것은 책을 펼친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이 안에 등장하는 나라인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는 한번쯤 들어는 본 곳이기에, 특히나 프라하는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거니와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대성당이나 헝거리보다도 부다페스트의 이름이 더 친숙했던 나로서는 어느 정도 이 곳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이 책을 보며 내가 만난 이 안의 이야기는 내가 그저 이 나라의 이름만을 알고서는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편안하게 동유럽의 여행기에 대해서 마주하길 바라며 이 책을 펼쳤다면 이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넘어 역사와 방대한 문화적 배경에 압도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매 페이지마다 수록되어 있는 사진의 양을 보면서 금새 읽어 내려가겠구나, 했던 이야기들이 체코의 역사를 넘어 그들을 지배했던 오스트리아의 왕족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쏟아지기에 세계사의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 안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검색을 하면서 보고 있었기에 꽤나 시간이 들긴 했는데 그래서인지 책을 넘기면 넘길수록 더 깊이 그 나라에 다양한 면을 배우게 된다.

 보헤미아 땅에 왕조를 세운 후 한때 유럽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체코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슬로바키아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다. 그 후 나치 독일의 점령, 공산주의, 1968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 혁명 등을 거쳐 1993년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조용히 갈라지는 등 격동기를 거듭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도 수도 프라하는 다행이 조금도 파괴되지 않고 아름다운 옛 시가지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본문

 크로크의 셋째 딸인 리부셰가 통치자가 되면서 그녀가 강 건너의 한 남자가 문지방을 만들고 있는 그 곳에 성을 세우라고 명하게 되는데, 이 곳이 바로 체코어로 문지방에 해당하는 프라하가 탄생한 비화라고 한다. 어느 곳이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그 이야기를 알지 못 한 채 지나치는 것이 대부분인 나에게 있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순간의 찰나도 쉬이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이 첨탑은 작은 슈테판이란 뜻으로 슈테플이라고도 불리는데 1368년 착공해 65년 만인 1433년에 완공되었다. 높이가 약 136.4m나 되는 비엔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구조물이다. 따라서 비엔나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망탑이다. 이 탑은 그냥 짓다 보니 그렇게 높게 된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언급된 노아의 방주 길이인 300큐빗에 맞춘 것이다. –본문

슈테판 대성당의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그저 웅장한 성당이며 높이 솟은 첨탑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만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이 건물의 전망탑의 높이가 창세기에 언급된 이야기를 고스란히 따다 만든 것이라고 하니 알면 알수록 신비로움이 전해지게 된다.

 

슈타트파크라는 시립공원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장소인데, 연주회장으로 각광을 받았던 이 장소에 자리한 수 많은 레스토랑을 넘어 주변의 아름드리 드리운 전경을 보노라면 언젠가 한번 이곳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관광안내소 건물 앞으로 펼쳐지는 광장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그리스 신전 같은 품위 있는 대주교 궁이 있다. 이 건물 내부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이나 비엔나의 쇤브룬 궁에서처럼 거울의 방이라고 하는 널찍하고 화려한 홀이 있다. 지금은 브라티슬라바 시의회가 열리지만 이 홀은 중부 유럽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에서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의 승자 프랑스와 패자 오스트리아 간 프레스부르크 평화조약 1805 12 26일에 서명되었던 것이다. 이 조약에 따라 천 년의 전통을 이어오던 신성로마제국은 와해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영토는 크게 축소되고 말았다. –본문

 슬로바키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터키와 오스트리아를 지나면서 슬로바키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서도 지나치기가 일쑤였던 이곳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에 된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 말처럼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보이는 이 안의 이야기가 점점 더 깊이 자리하게 된다.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기에 그저 사진만으로도 만족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난 뒤에 든 생각을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으로 만족했다면 그들이 품고 있는 찬란한 이야기는 알지도 못한 채 반쪽짜리 감상에 머물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보았던 에세이들보다 묵직하지만 그 묵직함이 곧 나를 충족하게 하는 힘이 될 터이니 그 시간을 즐기며 페이지를 넘기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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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내게로 왔다 / 김윤희저

 

 

 

 

독서 기간 : 2015.07.06~07.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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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
레프 톨스토이 지음, 별글콘텐츠연구소 엮음 / 별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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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톨스토이의 단상이 담긴 책을 벌써 세 번째 읽는 것은 내 나름대로도 꽤나 열심히 그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있다는 것일 텐데 이런 류의 책이 계속해서 발간된다는 것도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의 단상을 찾아 보기에 끊이지 않고 출간되는 것일 게다. 단상이지만 읽고 나면 그 안에 무한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그의 이야기를 이번에도 다시금 펼치며 그 동안에 쌓여 있던 묵직한 물음들을 내려 놓고자 천천히 읽어본다.


 

 

사람의 인품은 그가 가진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한다는 글을 보면서 나는 내 안에 가진 나의 성품을 어떻게 드러내놓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가진 자의 만용이 아닌 드러내지 않아도 은은한 빛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건만 큰소리를 치며 목소리만 높이던 나의 모습은 그가 말하는 인품을 가진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자못 씁쓸함이 맴돌게 된다.


 

 

존경에 대한 의미를 알려주는 다음 글을 보면서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닮고 싶어하며 동경하고 존경하던 이들의 모습이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들이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과연 내가 그리는 모습이 그 모습이 맞는 걸까? 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모든 것을 가진 이들을 우러러보고 있는 이들을 보며 그것이 성공이라 말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 심취해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어디서 들어봄 직 하지만 늘 거기서 멈춰 있던 나에게 다시 그의 이야기는  짧지만 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지혜를 마주하면서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다시 세운 기분이다. 어느 순간 또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곤 하겠지만 계속해서 반복해서 바라본다면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나의 삶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날이 도래하길 바라며 틈틈이 이 책을 마주할 생각이다.   

 

아르's 추천목록

 

톨스토이의 자부심이 담긴 단 한 권의 책!

톨스토이가 인류에 전하는 인생의 지혜 『톨스토이의 어떻게 살 것인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생애를 관통하는 사상과 철학을 엮어낸 책이다. 톨스토이가 직접 쓴 글은 물론, 《성경》, 《법구경》, 《탈무드》 등 동서양의 수많은 작품과 선집에서 톨스토이가 직접 선별해 엮은 140가지의 짧은 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발췌·수정하였다.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 ‘분노에서 벗어나는 방법’ 등 일상생활의 가르침과 ‘내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알자’,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 등의 철학적인 가르침과 ‘기도는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라는 종교적 가르침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현대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이 실려 있어, 인생의 지침을 얻는 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독서 기간 : 2015.06.0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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