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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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과의 바둑 대국이 진행될 것이라는 기사를 볼때만 해도 그 어떠한 관심도 없이, 아직은 인간의 두뇌가 인공지능을 뛰어 넘을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에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첫번째 경기를 넘어 계속된 알파고의 승리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자 기술의 발전이, 인공지능의 발전이 이토록 빠르게 인간을 턱밑을 스쳐 오르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우면서도 여느 SF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는가 싶더니만 뉴스에서는 조만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인공지능으로 대부분의 직업군이 대체되어 인간의 설자리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며 조만간 1가구 1로봇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뉴스마저 왠지 탐탁지 않게만 느껴졌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렇게 복잡미묘한 시대 속에 놓여 있는 우리는 어느 새 또 그 날의 뜨거웠던 충격에서 벗어나 오늘이라는 현실에 매진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찰나 구병모작가의 이 <한 스푼의 시간>이란 신작을 만나게 되었는데 세탁소에 살게 된 로봇 소년을 다른 이야기가 이번 소설의 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도 기대감이지만 로봇에 대한 왠지 모를 반감 혹은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외경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고도의 기술이 총 집합된 로봇과 인간의 이야기라니. 과연 그 둘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녹아들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책을 펼친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깨닫게 되었으며 그렇게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리고 나서 로봇과 인간을 넘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이야기에 살포시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외국어가 되어놔서 확실치 않은데, 라고 단서를 달며 기사입에서 더듬더듬 나오는 건 외아들의 이름이다. 아들이 아비를 위해 뭔가를 보낸 게 이상한 일은 아니나, 문제라면 아들은 8개월 전 자신이 살던 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로 출장길에 오르던 중 승객 117명을 태운 비행기와 함게 태평양 한가운데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식이 난 지 보름 뒤 바다에서 비행기 잔해가 일부 발견되었고 아비는 따로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아들이 보낸 택배라니. -본문
 
 
어느날 명정에게 도착한 거대한 택배 상자는 각자의 사연 만큼이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다가구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이웃인 세주의 도움을 통해서 믿고 싶지 않았던 아들의 죽음을 그제서야 제 손으로 택배를 뜯으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 아스라히 무어라 말을 이을 수 없는 현실을 너무도 담담히 그려지고 있는 이야기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자면 자국민이 아니라 타국의 사람이 되어 버린 제 아들의 죽음을 이 나라에 아무리 요청해보았다 한들 번거로운 확인절차 속에 시간 낭비라는 듯 외면하고 있던 국가를 대신하여 한 때는 이 나라의 국민이었던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개개인이 확인하고서야 그 먹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을 보노라면 씁쓸함이 밀려들게 되는데, 어찌되었건 명정은 이 택배 박스를 받아들고서 이제는 더 이상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또 다른 마음앓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심심한 위안과 함께 아들이 보냈다는 박스 속 로봇과 함께 하는 나날이 펼쳐지게 된다. 
 
 
은결이 이진법을 이용하여 N팩토리얼에 이르는 횟수에 연산을 수행하고 N의 자리에 얼마나 큰 자연수가 들어가더라도 결코 해결하지 못할 난제를 내주었다고 생각하곤, 명정은 콧노래와 함께 다시 다리미질을 시작한다.
 
그리 오래지 않아 이런 장면에 익숙해지고 시들해지겠지만 당분간 즐길 거리 정도로는 충분하다.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주고받을 상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늘 같은 자리에 떨어져 심장에 구멍을 내던 물방울의 낙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꾸었다는 것은. -본문

 
 사람과 너무도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는 로봇소년 은결을 두고서는 SNS을 넘어 각종 신문기사와 미디어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덧 은결은 일상 속의 한 페이지로 자리잡아 이제는 명정과 함께 세탁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담한 세탁소라고는 하지만 오랜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의 세탁소에는 시호와 준결처럼 은결을 보러오는 학생들의 모습도 있고 세주네의 이야기와 이웃들의 이런 저러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마을의 소통의 출입구와 같은 모습인데 그렇게 하루하루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가는 동안 은결은 점차 인간의 행동과 생활 패턴, 언어 등을 통해 분석하고 인식하며 점차 사람 향기가 나는 로봇으로 변화하게 된다.
 
 
처음에는 생경한 것이 호기심이 일었던 것들이 어느새 익숙해져서 평범한 일상으로 변모해가고 그것이 점차 닳아가는 은결을 바라보던 시선은, 세탁소 오기 전 새것이었던 옷들이 명정와 은결이 있는 곳에 왔을때에는 얼룩이나 구김이 온 채로 도착을 하고서는 그것들을 최선을 다해 새것과 같은 상태로 돌려놓으려 그들은 옷감을 안고서 고군분투하지만 그 횟수를  그 옷은 처음에 산 새옷이 될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그럼에도 우리는 그 옷을 계속 입고 지우고 다시 입고를 반복하는 것처럼, 이 안의 이야기들은 그럼에도 자신의 삶 안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안고서 계속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아무리 약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굴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에 팽창과 수출을 거쳐 변형된 가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본문
 
 
예전에 사촌언니와 이야기를 했을 때, 손 언저리에 난 상처를 바라보던 내 눈빛을 읽었는지, 어디서 놀다 들어와서는 다쳤다고 보여주는 아이의 손을 보며 자신의 몸 안에서 완벽한 상태로 내어 놓았던 아이가 하나 둘 몸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을 바라볼때면 그렇게 마음이 아플수가 없다고 읊조리던 모습이 세주와 시호, 준교의 이야기를 보며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의 앞에 드리워져 있는 현실은 늘 그를 옥죄고 있기에 대학에 가서도 매번 힘겨운 사투를 버리고 있는 준교, 이 마을을 떠나 훨훨 날아간 것으로 보였으나 아이와 함께 돌아와 전 남편과의 지리부진한 싸움 속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세주, 하루하루의 벌이로 살아야만 했던 그녀에게 철학과의 진학은 힘겨운 선택이었다는 듯 늘어가는 아르바이트 속에서 마주해야만 했던 폭력 속에 시달리던 시호.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명정과 은결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당면한 모습들을 제 3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인사치레의 말들과 무언의 행동들, 어떠한 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하는 익숙한 몸짓이 고도화된 기술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은결의 모습을 통해 다시금 인지해가면서 그 하나하나의 시간들이 축적되어 점차 로봇과 인간이 아닌 인간 안에 함께하는 소년으로 변해가는 은결의 모습이 전해진다.

 
그는 어쩌면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완전히 멈출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이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본문
 
 우주의 시간으로 보았을 때 한 인간의 수명은 세제 한 스푼이 녹아내리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 찰나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은 그들 어제의 흔적이 그들에게 남아있다고 해도 다시금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 찰나의 시간을 함께 보낸 은결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이 총집합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넘어서 마지막에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 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네 인생을 한 편의 드라마로 바라본 느낌이라 애잔하면서도 그 안에 따스함이 밀려들게 된다. 

 
언젠가 로봇과 함께하는 나날이 온다면 은결의 모습을 한 이들이기를 바라본다. 인간의 손을 거쳐 탄생하게 될 그들이, 자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내는 살상무기가 아닌, 인간의 심장을 닮은 감성을 담은 그들이 되어 오기를, 그리하여 우리네 삶을 조금 더 따스하게 함께해가기를 바라본다. 

독서기간 : 2016.09.12~09.17

미라클의 추천도서 :  우주 VS. 알렉스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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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꿈결 클래식 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흑미 그림, 백정국 옮김 / 꿈결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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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오래 전 이 책을 접했던 때에는 망망대해 속의 홀로 고군분투를 하고 돌아온 처량한 노인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그의 손에 남은 것은 거대한 청새치가 곁에 있었던 것을 증빙해주는 뼈 조각뿐이니구태여 이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냈어야만 했던 것인가라며 그의 빈손을 보며 허망하게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물컵 속 반이 남아있는 물잔을 보며 어떤 이들은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어떤 이는 반 밖에 남지 않았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물 잔 속 물의 양은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 그 물은 희망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또 다른 이에게는 아쉬움과 절망때론 비극이 될 수도 있는 혜안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물론 반 밖에 안 남은 이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취할 수도 있기도 하겠지만어찌되었건 이 소설이 이전의 나에게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지금 다시 만난 <노인과 바다>는 동일하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고 그 시간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닌 이 시간이 있기 전과 후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현대의 우리네 모습과 비유하여 고군분투 속 결국엔 낙방한 수험생이였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가 준비해온 시간들을 쉬이 아무것도 아닌시간만 낭비한 것들이라 말할 수 없으며 그는 실패라는 낙인을 받겠지만 분명 이전보다는 더 성장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부라고 하기엔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남루하여 초라해 보이는 것은 물론 80여일 동안에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채 매일 바다로 나가는 노인을 보며 씁쓸함이 감돌았다대체 왜 나의 낚시대에만 고기가 낚이지 않는 것인지타인의 만선을 보며 시샘하기도 하고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 푸념을 늘어놓을 만도 하지만 그의 두 눈 만큼은그 안에 담긴 신념만큼은 늘 생기가 돌며 내일은 또 다를 것이라며 희망을 품고서 매일 바다로 나가고 있다누군가가 그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한심하다며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지만노인 그 자신은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바닥으로 끌어내어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시 출발점에 서서 나아가게 하며 늘 푸르름 속에서 사는 소나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미풍은 산산했고 항해는 순탄했다노인은 물고기의 허리 윗 부분만 바라보았다그러고 있으니 희망이 조금 되살아났다.
 
희망을 품지 않는 건 바보짓이야노인은 생각했다더군다나 그건 죄악임에 틀림없어. –본문


  바다 위에 서 있는 푸른 소나무내가 다시 마주한 그의 모습은 그러했다홀로 서 있는 망망대해의 2 3일이란 시간 속에 청새치와 씨름하는 동안에 그는 제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늙어버린 몸그 중에서도 왼손을 다그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때론 먹을 것마저 제대로 없어 간도 되지 않은 날 생선을 먹으면서도낚시줄이라는 선 하나에 연결되어 있는 물고기와 그와의 사투 속에서 그는 지칠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때론 그는 물고기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에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물 속에 드러나지 않는 청새치를 보면서 그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가냘프다 못해 곧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만 같은 바다 새에게는 삶과 죽음의 사투 속에서 자신의 품 안에서만큼은 쉬어가기를 바라며 공상에 빠져보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는 다시 남루한 배 위에 낚시대에만 집중하고 있다.

  왼손은 당기는 힘을 전부 받느라 낚시줄 뭉치들을 돌아보았다줄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바로 그때 물고기가 어마어마한 파열음을 내며 바다 위로 뛰어올랐다그리고 육중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물고기는 잇따라 계속 뛰어올랐다줄이 쉴 새 없이 풀려나가는데도 배는 빠르게 전진했다노인은 끊어지기 직전까지 줄을 팽팽하게 당겼고줄이 헐거워질라치면 그때마다 반복하여 줄의 긴장 상태를 최고조로 유지했다. –본문

  그 오랜 사투 끝에 결국 노인은 청새치를 자신의 전유물로 만들게 되지만 그 오롯한 시간은 바다 위에서 쉬이 지켜지지 않는다바다라는 철저한 자연의 힘 안에서 배에 묶어 둔 청새치라는 인간의 표식으로 그저 혼자만의 위안이 될 뿐그 전유물에 수 없이 달려드는 상어떼의 표적이 되게 되는데홀로 바다에 나가 결국에는 승승장구하며 성공의 팡파레를 울리며 돌아서기를 바랐던 우리네 마음과는 달리 그는 돌아가는 길 조차도 험난한 시간을 지나야만 했다

  노인은 고물로 돌아갔다부러진 키 손잡이의 삐죽삐죽한 끝이 그런대로 키 홈에 끼워져 방향을 잡는데 문제가 없었다노인은 포대를 어깨에 두르고 배를 가던 길로 되돌렸다이제 배는 가볍게 움직였다노인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이제 연연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그저 떠나온 포구로 아무 탈 없이 돌아가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완을 동원해 배를 몰 뿐이었다. –본문

 혹여 그 모든 시간은 허투루 지나버렸어라며 체념할 수도 있겠지만 바다 위에서 매 순간 그가 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노라면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있던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리고 그 시간을 되새겨 보는 동안 이 이야기 속 그의 모습을 보며 그저 시간을 부질없이 흘러 보냈다 할 수 없을 것이다자신의 것이었어야 했던 청새치를 만났을 때에도그 청새치와 줄다리기를 하는 순간에도성공의 기쁨도 잠시 상어들에게 그 모든 것들을 빼앗겨야 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늘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망하게만 보이던 그의 빈손이 이제서야 그토록 묵직하니 위대해 보일 수가 없다그저 포기하고 돌아올 수도 있었던 2 3일을 시간을상어떼를 만나 청새치를 잃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삶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계속 나아가려 하는 그의 모습은 다시 내게 바다 속에 피어있는 소나무로 인식되어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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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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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책에 대한 뚜렷한 취향이 있다거나내 인생에 이 책만큼은, 혹은 이 작가만은 이라는 나만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없기에 언젠가책장 하나에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책만을 모아두는 것이 소망이기에 지금도 조금씩이나마 책을 읽고는 있다지만, 그중에서도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자기계발서와 경제, 경영,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원채외고집이 강한터라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도 그는 그의 삶은, 나는 나의 삶을 이라는 생각에 그 안에 내용들을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경제/경영분야는 아직 아는 것이없기에 읽기 버거운 이유로 회피하고 있다면 종교에 관한 내용은 감히 그 분야에 대해서 무엇이라 왈가왈부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영역이기에 좀처럼손을 대지 않고 있다.


 제가 예수에게 사로잡힌 건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대목에서였습니다.사로잡혔다고는 하나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위선일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위선을 까발리기 위해서 성서를 통독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이 위선을 부렸다는 증거를 끝내 잡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 사람, 병든 사람, 미천한 사람, 천대 받는 사람과 진정으로 더불어 계셨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떤계층의 사람과도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하느님이그를 보내심은 보통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편입시키기 위한 큰 역사였음을. –본문


 제작년이었던가,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후 몇 달은 꽤나 열심히 성당을 나섰지만 그 이후에는 냉담하고 있는나로서는 여전히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을 하고서는 그의 말씀을 따라서 온전히 움직이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잠시 그 안에서 쉬어가는사람처럼, 성당에 들러 미사를 드리고서는 조용히 홀로 나오는 그런 사람이기에 제대로 알지도 못할뿐더러종교라 함은 무언가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아마도박완서선생의 이 <빈방>이라는 책이 아니었다면어떤 식으로든 종교를 기반으로 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인데 그녀의 이야기라는 말에 용기를 가지고서는 이 책을 마주해본다.


 예수를까발리기 위해서 성서를 통독했다, 라는 말을 담대히 하는 그녀를 보면서 이토록 용기있는 발언이 있을수 있다니,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그득히 맴돈다. 제대로알지 못하기에, 혹은 그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때 조차도 종교라는 이름 하에 성서에 적힌그의 말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따라야 할 것만 같은 무언의압박감에 그저 고개를 돌리고서는 아직은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멀게만 느껴졌으나, 그녀는 반항과 같은 마음으로 어떻게든 성서에 말씀을 읽고서는 그를 반박하겠다며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읽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외면하고 모른 채 돌아섰다면 그녀는 예수와의 정면 돌파로 이 안에 깨달음을 얻은 것을 보며 다르지않은 출발선에서 전혀 다른 도착지를 보여주는 나와 그녀의 모습에 겸허히 이 안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생명치고 귀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을까마는 효도 관광과 가족 단위의 여행이 많아 어린이가 희생되었다는사실이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우너망의 소리는 하느님은 없다는말입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거죠.
 
그러나 주님, 당신을믿고 당신을 닮겠다고 약속한 저희는 압니다. 당신은 거기에도 계셨으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까지 함께하셨으리라는 것을.
 
그걸 믿지 않고 어찌 이 참담한 슬픔을 견디리이까. –본문


 뉴스를통해서 여전히 지구 상에 전쟁이며 기아, 학살 등의 참혹한 현실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찌하여그들에게 그토록 가혹한 아픔을 시간만이 드리우는 것인지,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를 이 슬픔과 분노를보며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대로 이렇게 내버려 두시기만 하시는 건지,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전재전능한 그가 있다면, 이상황을 어떻게든 종식시키거나, 아니 그 전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셔야 하는 것을 아닐까, 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체 종교의 힘은 무엇에서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에 대한 믿음을가질 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기도 한다. 이모든 것을 그저 방관하고서는 바라만 그의 모습에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그의 존재를 남겨진 활자를통해서만 받아들여야 하기에 늘 그를 향한 내 신념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주님을향한 신념과 믿음이 흐려진다고 한다면 나보다는 그녀가 먼저였을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이들을 먼저떠나 보내야만 했던 그녀의 가슴은 냉가슴을 넘어서 꽁꽁 얼어붙어 그를 향한 분노만이 남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그녀는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반박을 위해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는 고백을 하지만 결국에 다시 그의 품 안에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나에게는 의문 덩어리인 그 시간을 지나온 그녀의 이야기는 생경하면서도 또 하나의 세계로 접어드는 문을열어주고 있다.


 그때 문득 이 문명의 이기로 가득 찬 도시가 문명 이전의 광야로 변한 것 같아 섬뜩해졋다. 서울 한복판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이 맹수만 으르렁거리는 불모의 광야나 다름없어 보이다니.
 
이럴 땐 누구라도 외쳐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느리게, 조금만 더 못살자.”라고. 이렇게 급하게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다 우리는 도대체어떻게 되는 걸까? 나중엔 인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실은 우리 내부의 아직은 희미하지만다급한 외침이다. -본문


 이안의 모든 이야기가 종교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녀의 부드러운 어조에도 나는 넘을 수 없는담을 앞에 둔 기분으로 막막함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일상 속의 이야기들은 이 묵직한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샘물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이들의 동심을 무너뜨리면서도 그것이 더 큰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모습이라든가, 운전대 안에서 변모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든가, 이전보다나은 삶을 위해서 만들어 내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등의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이야기들을 보며 묵직한 이야기를 넘어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나에게이 책은 그저 한번 읽어서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다운받았던 성서 어플을 보면서 그녀와 같이 조금씩 성경을 읽으며 상념에 잠길 즈음, 다시금 그녀와 함께책을 통해 대담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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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불한 완역판, 개정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지음, 김미성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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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도통 책이 손에 잡히던 것이 며칠을 지나 몇 달을 넘어가게 되면서 이제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버거워져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책을 뒤로하고 지내던 나날이 계속되던 요 근래에, 그럼에도 새해가 됐으니 작심삼일이라는 심정으로 책 한 권을 읽어보자,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 때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책장 어딘가에 있을 인디고의 어린왕자를 찾기 위해서 3시간이 넘는 여정을 먼지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도무지 그 책의 흔적을 찾지 못했을 때, 지금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서점으로 뛰쳐나가 이 책을 손에 쥐고서는 안도감을 느끼며 페이지를 하나씩 넘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직 책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리진 못했구나, 라는 사실에 피식 웃음을 흘려본다.

 수백만 년 전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 왔어. 양들이 꽃을 먹은 것도 수백만 년 전부터야. 그런데도 꽃들이 애써 가시를 만드는 이유를 알아내는게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양들과 꽃들의 전쟁이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그게 빨간 얼굴의 뚱뚱한 신사가 계산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만일 내가 내 별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을 알고 있다고 해.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어린 양이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단번에 그 꽃을 먹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문

 너무도 유명한 책 일뿐더러 이전에도 읽어봤기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어린왕자는 그대로일지언정 그 책을 바라보는 내가 변해있기 때문인지 그때 읽었던 어린왕자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생텍쥐페리의 말마따나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걸 잊어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양을 묶어두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꽃들이 가시를 만드는 이유보다는 카드 값 정산이 더 중요한 것이 되었기에 어린왕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 것들을 바라보고서야지금 내가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른들의 시선에 갇혀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지금의 내 모습은 어린왕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았을 때야 비로소 투영하니 순수했던 시절을 잊어버리고서는 그것을 잃어버린 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글픔이 밀려 드는 것이다. ‘착하게 굴면 낮 동안 양을 매어 둘 끈도 하나 그려 줄게.” 라고 담담히 말하는 화자를 보면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깜짝 놀라는 어린 왕자를 보고서야 딱딱한 어른이 되지 말자던 어린 시절의 다짐이 무색해져 버린, 수 많은 어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때 난 아무것도 몰랐어!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내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 주고, 빛나게 해 주었어. 내 꽃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 되는 거였어! 가엾은 속임수 뒤에 숨은 다정한 마음을 눈치챘어야 했어. 꽃들은 너무나 모순적이야. 그리고 그때 난 꽃을 사랑하는 법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어.” –본문

자신의 별에 툴툴거리지만 아름다운 꽃을 홀로 두고 온 어린왕자가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고 여우를 만나게 되면서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삶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 씩 배워가는 어린왕자의 모습을 보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설렘 가득히 바라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치중하며 아등바등 지내왔던 나에게 어린왕자의 울림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나지막이 전해주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여우를 만났던 장면에서 멈춰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듯이 이번에도 역시 그들의 이야기에 취해 한동안 그 안에서 허덕이며 함께하게 된다. 이전에 읽었을 때에는 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읽었다면, 이번에는 여우와 어린왕자의 만남과 더불어 어린왕자와의 헤어지는 부분을 보면서 상념에 빠져들었는데, 결말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억이 남아있지 않던 나에게 있어서 그와의 이별은 먹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상자 안에 담겨 있는 양과 같이 어딘가에 빛나고 있을 그의 존재를 믿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어린왕자가 다가올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때에도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그래, 그때는 그랬지.; 라고 탄식할 수 있는 어른이길 바라본다. 이 모든 것이 다 부질 없는 이야기라며 이 책을 덮어버리는 그런 어른만은 되지 않기를, 그래서 다음 번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에도 어른인 나를 참회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르's 추천목록

 

위로 / 이철환저

 

 

 

독서 기간 : 2016.01.02~01.03

by 미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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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 용기 세트 - 전2권 - 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 &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엄마를 위한 미움 받을 용기>이어 펼친 이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는 이전 책의 시리즈와 같은 느낌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이 보낸 <엄마를 위한 미움 받을 용기>라면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는 아버지가 바라보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심리에 대해서, 과연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배워보자는 심산으로 펼친 이야기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묵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너무도 정정하시던 아버지가 치매를 앓기 시작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늘 나의 뒤에서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변화는 누구에게나 드리우는 시간이 변화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가혹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린 지금의 모습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던 저자는, 간호를 하며 그가 배워온 것들을 담담이 전해주고 있다.

부모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게 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자녀로서 슬픕니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이 간호의 기분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은 인생의 그 어떤 순간에도 다른 사람에 의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육할 때 부모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 합니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게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본문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위해서 당신들이 즐겨 드시는 과자나 빵을 사가지고 오시는 것을 보면서 어릴 때는 더 맛있는 것들도 많은데, 하며 아쉬움을 표하곤 했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들이기에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상대를 위해서 배려로 하는 것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식사를 하실 때를 제외하고서는 늘 주무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떠한 즐거움이 있을까, 라며 활동을 하라고 계속해서 조언하는 것도 실은 나의 바람을 그들에게 투영하려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 늘 보살핌을 받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던 것이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이라면 성인이 된 지금의 우리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언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육아의 기틀 안에서 아이와 나와의 관계에 동등함을 전제로 하여 바라보던 것처럼 부모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도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병을 앓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나아가 그런 자신도 누군가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부모가 지금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부모를 간호할 때 무엇을 이루는지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자신이 놓인 상황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만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공헌감을 느끼게 되면 좋겠습니다 본문

 일전에 치매를 앓으셨던 외할머니의 늘 같은 이야기를 허투루 듣고 넘겼던 지난날의 모습 속에서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가 아닌 그 안에서 다르게 전해지는 부분은 무엇이 있는지를 찾으며 그 이야기를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고 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3년 이라는 시간 동안에 나의 외할머니와 함께했던 시간 동안 과연 그녀를 간호해드렸다 할 수 있을지, 이 책을 통해서 점점 나의 모습이 안일하게만 전해진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예고 없이 다가올 수 있는 그의 담대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노년의 시간을 걷고 있는 부모님과 이제 중반의 시간을 걷고 있는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마주해야 할지, 무언가를 드리고서는 답변을 기다리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 그들을 지키고 함께 할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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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 / 알프레드 아들러저 

 

 

 

독서 기간 : 2015.08.25~08.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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