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민심서 - 상
황인경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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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오랜만에 받은 묵직한 세 권의 책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두툼한 두께에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실학자였다는 것, 그의 호가 다산이었다는 것, 거중기를 발명했으며 목민심서라는 책을 후대에 남겼다는 것,이렇게 두 줄 정도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나로서는 과연 저자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세 권에 나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방대한 양에 놀라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내가 그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책을 펼치기 전에 먼저 다시금 반성을 해 본다. 15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 안에서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는 그에 대해서 몇 개의 단어로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머리가 절로 숙여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밥은 굶지 않고 살려는 게 욕심 부리는 것은 아니질 않은가?”
답답한 생각에 약용의 어조에는 짜증기가 배어 있었으나 천만호는 별도리가 없다는 몸짓으로 묵묵부답이었다. 약용은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정색을 하고 물었다.
자네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가?”
늘 백성들의 헐벗음과 굶주림에 마음이 쓰였던 터에 한집안 식구나 다름없는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난 지금 모른 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밥을 굶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매일매일 일거리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습니다요.” -본문

 조선 후기의 당시 시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함 그대로였다. 백성들은 늘 굶주리고 있었고 배불리 한끼만이라도 제대로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그야말로 곤궁 속의 삶을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정약용과 정약전은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들의 집에 함께 살고 있었던 천만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은 정약용은 그를 돕기로 결심하나 그의 형인 약전은 과거를 앞에 두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린다며 그를 채근하게 된다. 그러나 약용은 학문의 모든 것은 결국 백성을 위해 쓰여야 한다 말하고 있고 그 모습에 감복한 약전 또한 그를 도와 천만호에게 솜틀기계를 마련해주게 된다.

 신분제가 여전히 확고히 하고 있었던 상황 속에서 정약용의 모습은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백성들을 아우르는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그의 나이 21. 만인을 위한 인재가 세상에 널리 널리 뜻을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뛰어난 재능과 인자한 성품은 정조의 눈에도 띄게 되는데 정조가 그를 곁에 가까이 두려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를 향한 비수의 화살들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벽을 마주하게 되면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는 당시 유교 사상이 깊이 자리잡고 있던 조선시대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다 외치는 등, 시대에 맞지 않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천주실의라는 책을 통해서 조선에 점차 퍼져나가던 천주교의 주축이 당시 조정에서 그다지 힘이 없는 변방의 인물들이었던 남인이 주축이었으며 조정을 호령하고 있던 노론의 눈엣가시였던 정약용이 이 천주교의 물살에 함께 했다는 것은 그의 앞날이 파란만장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옮겨 다니면서 세상의 여러 가지 단면을 대한 약용은 한층 성숙한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약용은 아전들의 못된 행각에 곧잘 분노하였다. 어머니에게 그들의 소행을 이른 것은 까닭 모를 모순이 한없이 답답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화순과 예천에서 만난 아전들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르게 비쳐졌다. 그들도 백들의 입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아버지 정재원은 노략질과는 거리가 먼 청백리였기에 지방 수령으로 이리저리 밀려다녀야 했지만 대부분의 관리들은 윗사람에게 뇌물은 바치고 외지를 전전하는 고달픔을 면하려 하였던 것이다. –본문

 정약용이 천주교의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인 뿐만 아니라 정조의 신임을 시기했던 이들은 그를 계속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정조에게 올리지만 그를 진심으로 아끼던 정조는 그에게 곡산부사라는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백성들은 먹을 것 조차 제대로 없어 배를 곪고 있으나 관리들은 매점매석과 같은 비리를 통해 그들은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고 이러한 모습에 격분한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지만 그 찬란한 불꽃은 다시금 민초들에게 전해지고 있었으니 이 참혹한 현실을 알고 있었던 정약용은 곡산에 있는 동안만큼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그들의 노고를 이해하고서는 모든 이들이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던 그의 노력은 결국 곡성의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 당시는 물론 현재의 우리에게도 너무도 필요한 리더의 모습이 아닐 수 없는데 모두를 위해 완벽했던 인재를 당시 벽파들의 눈에는 정약용이 사라져야만 하는 인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정조의 신뢰는 점차 깊어지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마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정약용이라는 인물 하나만 사라지면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들의 치밀한 계략은 결국 약용 형제를 귀향길로 오르게 만든다.

 그날부터 주막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멀리 약방까지 찾아가기 힘든 동네 사람들이 죄다 병증을 호소하며 몰려들었다. 약용은 인파를 반기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동안은 죄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강진 사람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던 그였지만 이젠 스스로 찾아와 조언을 구하고 기쁘게 돌아갔다. 사람이 모이는 덕분에 주모의 주머니도 한결 두둑해져 갔다. 아른 아들놈이 배고프다 칭얼대면 국밥이라고 한 사발 먹일 밖에 도리가 없는 탓이었다. 결국, 약용은 주모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사람들의 병증을 돌보아주었다. 큰 병이 아닌데도 몰라서 죽어가는 이가 허다했다. –본문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약용 형제들을 걱정했던 정조의 모습은 앞으로 그들에게 드리울 풍파를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18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유배 생활을 해야 했던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안타까움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테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백성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유배기간 동안에 그는 세상의 핍박으로 현재 강진에 갇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조선을 위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고뇌의 시간이 바로 <목민심서>의 모든 것인데 후대인 우리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사료이나 그가 유배생활 동안에 지냈던 모습을 책을 통해 마주하는 순간에 먹먹함이 눈앞을 가리게 된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던 약전과 약용은 바다를 건너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었지만 해배될 날만을 기다리다 결국 약전의 죽음만을 마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약전이 남긴 <자산어보>는 도배지로 사용되고 있었으니. 세상이 그에게 던져준 고통은 깊다 못해 그의 모든 것을 갈기갈기 파헤치고 있었다.

 역사 소설을 볼 때마다 만약에, 라는 생각들을 하곤 했다지만 이번처럼 간곡하게 이 말을 붙잡게 될지 몰랐다. 옳은 말을 하고 옳은 일을 하던 그들에게 힘이 있었더라면, 누구라고 그들의 안위를 위해 조금만 힘을 써줬다면, 정조가 조금만 더 오래 버텨줬더라면, 그도 안 된다면 그들이 조금만이라도 더 늦게 세상의 빛을 보았더라면. 당시의 조선은 엄청난 변화들을 맞이했을 터인데 당시 권력에 눈이 먼 이들은 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들을 매장시키기에만 급급했으니 실로 안타까움을 넘어 개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인재가 있었음에도 그들을 지키지 못했던 당시의 모습과 현재 우리는 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약용이 그의 삶의 다해서 남기고 간 지난날의 행적을 또 다시 고스란히 답습하는 오늘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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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저


 

 

독서 기간 : 2014.12.20~2015~01.1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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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5-01-1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꼭 읽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