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조실록 1 신라왕조실록 1
한국인물사연구원 엮음 / 타오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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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1000여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신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에 대해 이 책을 읽기 전 떠올려보면 고구려와 백제 이외에 가장 미약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을 통일했으며 화랑제도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여왕이 탄생했다는 점들이 전부인 듯 하다. 이마저도 드라마나 연극을 통해서 보았던 기억들이 전부이니, 학창시절 6년의 시간 동안 배웠던 국사 시간의 배움은 모두 사라지고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득한 신라라는 이름뿐인 듯 하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익숙하게 다가오는 반면 신라에 대한 역사는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것인지. 조선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 한반도를 장악했던 신라의 이야기는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와 더 멀리 떨어진 과거이기에 조선시대보다는 친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일 텐데 새삼스레 갑자기 신라에 대해서 보고자 하는 부지런일수도 있으나 왜 나는 신라에 대해서 이토록 모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문과 함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4권의 웅장한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4권의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과연 다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992년의 역사를 이 4권의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서 도전해 봄직한 것이란 생각에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거즌 3주를 넘어가게 되었으니 나름대로는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긴 한 셈이지만 아직 이 모든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기틀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만족한 독서였다.

신라시대에 존재했던 골품제도부터 다시금 배우게 되는데 신라의 초대에 만들어진 이 제도는 삼국통일은 지나 400여년 간이나 거쳐 신라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서 왕족의 혈통에 대한 증빙은 물론, 이 골품제의 규제에 따라서 혼인을 하는 것은 물론 가옥의 크기, 의복의 색채 등 모든 것들 것 제약이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골품제의 상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지만 골품제라는 제도 하에서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한계이자 제약이 되는 것이었는데 성골과 진골이라는 두 개의 골과 육두품으로 이루어진 이 골품제도는 총 8개의 신분은 그들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이상의 여러 골품 가운데서 성골은 김씨왕족 중에서도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최고의 신분이었다고 하는데, 진덕여왕을 끝으로 하여 소멸하였다. 진골도 성골과 마찬가지로 왕족이었으나, 처음에는 왕이 될 자격이 없었다고 하며 성골이 소멸되자 김춘추 때부터는 왕위에 올랐다. 그 뒤 신라의 멸망때까지 모든 왕은 진골이었다. –본문

신라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신라의 마지막 왕까지,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이 책 안에 담아놓고 있는데 역사이기에 ?’라는 질문 대신에 당연히 그러한 것이다, 라며 외우기만 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마립간이나 이사금에 대한 칭호부터 그것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주고 있기에 단순히 외웠던 학창시절에 마주했던 역사가 아닌 이해와 진정한 학습이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이전보다 즐겁게 읽으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을 넘기고 있었다.

이사금은 우리말로 원래 잇금;을 의미하는 말이다. 옛적에 남해 차차중이 서거하기 직전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너희 둘 중에 연장 자로 왕위를 이으라.” 고 했더니 연령이 많음에 따라 서로 와위를 잇게 되었다. 여기서 연령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혜가 많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본문

진흥왕 시대의 이야기를 보면 그는 이전부터 자행되고 있던 순장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중국에서 있다고 알고 있었던 순장은 신라시대에서 성행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국왕이 죽음은 남녀를 각각 5명씩 순장하던 풍습을 금하게 됨에 따라 당시 귀족들이 죽을 경우 그를 지키던 호위 무사나 시녀를 함께 묻게 되던 일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순장 제도를 지금의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끔찍한 일로서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와 함께 묻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죽고 난 뒤에도 현세의 생이 계속되는 것으로 믿어왔다고 하니 당시의 시대상을 모르던 나로서는 참 알면 알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천 년의 시간을 흘러 오는 동안에 혁거세를 시작으로 진흥왕을 지나며 나라는 점점 탄탄하게 기반을 잡아가고 드라마 덕분에라도 친숙하기도 하거니와 여왕이기에 기억될 수 밖에 없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이야기는 물론 마지막 경순왕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내가 알고 있던 신라시대의 왕들보다는 모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훨씬 많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서 속의 인물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이들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기에 눈에 띄는 사건들을 기반으로 바라보고 그 이외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저 숫자로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신라 56대 경순왕의 태자였던 마의태자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처음 마주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해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935(경순왕9) 신라는 후백제의 견휜과 고려의 왕건의 세력에 눌려 대항할 힘이 없으니 무고한 백성만 죽일 필요가 없다하여 왕이 친히 군신회의를 열고 고려에 항복할 것을 논의하자, 태자는 충신과 의사를 시켜 민심을 수습하고 나라를 지킬 것을 주장하며 천년사직을 일조일석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어져서 고려의 귀부를 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자, 통곡하며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마의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맹해가며 일생을 마쳤다한다.
마의태자는 그가 베옷을 입고 일생을 보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본문

그 시작은 찬란했으나 마지막은 언제나 허망할 수 밖에 없는 그 시점을 바라만 봐야 했던 마의태자는 얼마나 황망했을까. 천세를 누리던 신라의 명망이 점점 흩어져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그 마음을 암담하면서도 안타까웠을 것이다.

신라가 통일을 했기에 한반도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푸념 섞인 국사 시간의 이야기를 넘어 천 년의 찬란한 시간들을 지나온 나로서는 그 동안 신라에 대해서 정말 알고 있는 게 없었구나,라는 반성을 다시금 해 본다. 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흘러온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우리의 역사를 이제서야 조금 알게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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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 박영규저


독서 기간 : 2014.09.27~10.1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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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4-11-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