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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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이라는 제목만 보았음에도 대체 이 여행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라는 호기심이 인다. 수 많은 여행이 있다지만 대체 그는 왜 이케아 옷장에 갇혀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 물음이 이 책을 펼쳐보게 한다. 

 

아자타샤트루 라바슈 파텔은 이케아의 침대를 사기 위해서 프랑스까지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사촌의 지휘 아래 동네 어르신의 옷까지 빌려 그야말로 부유한 인도인으로 보이고 싶어했던 그의 꿈은 귀스타브 팔루라는 택시 운전사를 만나면서 실제의 그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유감없이 그려지고 있다. 한껏 멋을 냈지만 촌스러움이 느껴지는 파텔이 '이케아'를 외치는 모습에 귀스타브는 멀리 떨어진 이케아로 안내하게 된다. 그렇게 100유로를 벌었다며 신나하는 귀스타브와의 악연 아닌 악연은 이렇게 이뤄지게 된다.

 

 "웬만큼 진보했다고 하는 모든 기술은 마술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
 "
간단히 말해 나한테는 평범한 것들이 너에게는 마술 같아 보인다는 말이지. 모든 건 네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술 수준에 달려 있단 말이기도 하고." -본문

 

 스웨덴 산 소나무로 만든 침대를 드디어 마주한 파텔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100유로보다 더 비싼 침대 가격을 보고서는 이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가진 잔기술로 선글라스를 조각조각 낸 여성을 통해 근사한 저녁과 20유로까지 얻게 되지만 그녀의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재 있는 이케아 매장의 침대 아래, 컴컴한 바닥이다.

 

 텅빈 매장에 혼자 있는 것을 깨달은 파텔이 매장을 돌아다니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것도 잠시, 매장 안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되고 파텔은 옷장 안에 몸을 숨기게 되고 그것이 그의 길고 긴, 그리고 뜻하지 않은 여행으로 그를 이끌게 된다.

 

 옷장안에 갇혀서 영국으로 가게 된 그는 밀입국을 위해 트럭에 몸을 실은 6명의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삶보다 더 고난한 삶이 있음을 배워가게 된다. 그렇게 그는 삶에 대해 또 다른 면을 배워나가면서 어느 새 영국에 도착하게 되지만 밀입국자가 되어 스페인으로 추방되게 되고 그를 찾아온 택시기사를 피해 또 다른 여정에 빠지게 된다.

 

 단순한 여행으로 시작된 그의 여정이 수 많은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게 된다. 고행자로 시작했지만 옷장 속에서 밀입국자가 되어 버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소설가가 되길 꿈꾸는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게 된다.

 

 마음 단단히 먹고 견여야 하며 약속의 땅은 바다 저쪽, 열기구로 몇 시간을 날아가는 곳에 있다고, 그곳에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말했을 것이었다. '잘사는 나라들'은 일종의 초콜릿 상자이며 꼭 경찰과 맞닥뜨리란 법도 없다고 말해주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곳 경찰들을 그가 떠나온 마을의 경찰들ㅇ처럼 커다란 막대기로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고도 말했을 터였다. 특히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였을 것이다 .-본문

 

 이 다양한 이야기의 소재는 대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라는 궁금증은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하면서 그가 만났던 밀입국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하니, 그의 경험이 이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양한 이들의 인연으로 연결되어 가는 이 신기한 여행은 이케아의 침대가 새로운 세상이었던 파텔에게 더 엄청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그 여정을 통해서 삶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더운날의 손부채마저도 잊게 할 만큼 그의 다이나믹한 여정 속에 빠져 보는 것도 즐거운 휴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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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 요나스 요나손저

 

 

 

독서 기간 : 2015.06.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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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었던 모든 것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박하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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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무언가 변해 버린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을 보면서부터 그저 이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지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언젠가 지나갔던 그 아련했던 시간들이 이들에게도 오버랩되어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런 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이 모든 것을 그려내고 있고 그렇기에 다나는 그녀를 잡아야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들어온 실종사건을 맡아 아이를 찾으러 떠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 전화는 받는 사이에 떠나버린 그의 연인과 아이를 찾기 위해 카리브로 떠난 그의 이야기로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이다.

 

 "떠나야 해."
 
다시 침묵이 흘렀다
.
 
나는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 
 
어떻게 해야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가장 효괒거으로 할 수 있을까? 모든 커플은 각자 그들 나름으 방법이 있따. 우리 방법은 함께 보았던 한 영화와 연관 지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영화를 몇 년 전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에 보았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그녀와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본문

 

 과거와 현재의 플롯 전개는 다나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두 명의 사람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왜소증을 앓고 있는 그가 그의 형에게 끊임 없는 구타를 당하고 있었기에 집을 떠나오게 되면서 만난 조지와 어릴 적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같은 병실에서 만난 던 마르틴은 다나의 삶에 있어서 그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이유를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삶이 마감되는 순간, 다나에게 전해진 것들은 그로 하여금 조지를 만나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통해 그의 삶에 드리운 보석과도 같은 순간들을 깨닫게 하는 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왜소증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어디서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늘 그의 삶을 힘들게 했기에 어린 시절의 아픔을 모두 던지고 나왔던 카프리를 다시 찾는 것은 이제서야 그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실종 아동의 이름이 자신이 잃어버린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는 사랑을 넘어서 자신이 뛰어 넘지 못한 자신이 그의 삶을 여전히 바닥으로 내리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네가 나에게 오면 나도 갈게."
바로 그때 내 인생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두 가지 일을 천천히 했다. 아버지의 반지를 검지에 끼고, 곧이어 은으로 도금된 등대를 잡아서 단안경을 왼쪽 눈에 대고 태양이 나타나면서 사라지는 구름들을 보았다. 바로 그때 반지에 새져긴 'Mi'가 힘차게 빛났다
.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되찾았고, 세상을 멈춰있지 않았다. -본문

 

 왜소증을 앓고 있던 그가 그의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걸려 이제서야 돌아오게 된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고 생각한 그 때가 실은 다시 그가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것에서 이 먹먹함이 따스하게 변모되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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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다니 미즈에저


 

독서 기간 : 201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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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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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기 유럽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인 페스트에 대해서 들어 보기는 했지만 실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었는지 그저 당시에 남겨진 문헌들을 통해서만 가늠해볼 뿐이었다. 그 당시의 고통이 얼마만큼이었는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끔찍했을 것이라 미뤄 짐작만 하고 있던 나에게 있어 대한민국에 퍼져나가는 메르스의 여파는 유럽의 당시 퍼져 나갔단 흑사병에 대한 두려움이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상념의 깊이는 당시의 유럽인들이 훨씬 깊었을 테지만 말이다 

이름만으로도 왠지 모를 꺼름칙한 페스트와 현재 우리에게 들이닥친 메르스는 어찌 보면 그 안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동일하지 않을까. 1940년대와 2015년대에 퍼지고 있는 페스트와 메르스라는 질병이 드리운 그 막막한 세상에 대해서 카뮈의 담백한 문체로 이 어둠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 안으로 바깥세상이 들여보내는 격려와 응원을 라디오에서 듣거나 혹은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의사 리유의 생각은 적어도 그랬다. 비행기나 육로를 통해서 보내진 구호품들은 물론이고 동정이나 찬양 일색의 논평들이 이제는 외따로 버려진 도시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영웅적 무훈담이나 수상식 연설과도 같은 어투에 의사 리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마음 씀씀이가 거짓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인간이 자신과 전 인류를 연결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상투적인 언어의 범위 안에서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었다. -본문

 그야말로 평온했던 항구 도시인 오랑에 쥐들의 사체가 점점 쌓여가고 그것으로 이 오랑의 한가로움은 두려움과 공포로 변모되게 된다. 처음에는 쥐가 죽는다, 라는 사실에 별다른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일은 그저 큰일이 아니니 그저 안심하라고 시 당국은 말하며 태평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의사인 리유의 진료실이 있는 건물의 수위가 사망하게 되면서 페스트를 사람들의 앞에서 그 진 면목을 드러내며 죽음이라는 공포는 인간에게 전해주고 있다.

 단 한 사람이었던 환자가 어느 새 수십, 수백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처음에는 별 다른 문제가 아닐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도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견을 보며 이것이 심상치 않은 병마의 전조이며 이렇게 되다가는 우리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게 되며 사람들은 점차 그 내면의 공포를 밖으로 끄집어 내어 드러내게 된다.

 사태의 심각성이 가중되게 되면서 오랑시는 도시를 폐쇄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리하여 오랑시라는 이 곳에 강제 강금 되어 버린 이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그 안의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만날 수 있다.

파늘루 신부에게 있어서 이 페스트라는 질병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인간에게 드리운 단죄와 같은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페스트가 창궐 함에 따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수 많은 이들은 일단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만 빠져있게 되고 그렇기에 그 동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규범의 틀, 도덕이나 법 등에 대해서는 바라보지도 않게 되었으며 이 틈을 이용해 코타르는 자신의 과거가 페스트에 묻히는 현재가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다. 종교와 인간의 감정을 넘어 이성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는 이가 의사인 리유인데 그는 그 스스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저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략) 존경 받을 만한 사람 즉 어느 누구에게도 거의 병균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란 되도록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래요,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건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것은 한층 더 골치 아픈 일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피곤한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 보이는데, 그 이유야 오늘날 모두들 조금씩은 페스트 환자니까요.

 페스트에 대하는 수 많은 이들의 군상을 넘어 시 당국이 보여주는 대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메르스가 퍼져나갔을 때 정부가 보여주는 행태와 비슷한 모습이라 입안에 씁쓸함이 맴돌게 된다. 그리고 그 안일함 속에 퍼져나가는 불신과 두려움이 광기로 변모해 나가는 모습과 또 그와 반대로 이 세상과는 무관하듯 그들만의 유희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이 막막함이 가득한 사회 속에서도 그럼에도 카뮈는 이 삶의 이유를 전해주고 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 말이다.

 한 편의 소설로 시작하여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덮어버리고 싶지만 덮이지 않는 우리를 마주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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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독서 기간 : 2015.06.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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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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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르's Review

 



 

태초에 인간이 이 땅 위에 서 있게 되는 순간부터 그들을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굶주림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한 행위로 그들에게 도재는 그 어떠한 죄책감이 없는 생을 연맹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시간이 흘러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사냥은 생의 연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레저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냥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는 <고튼 마운틴>은 단순히 사냥의 의미를 넘어 그 안에서 인간의 내면이 변모해 가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열 한 살의 소년이 그의 할아버지아버지아버지의 친구를 따라서 사슴 사냥에 따라 나서게 된다이들에게 있어서 이 사냥은 익숙한 것으로 매해 지나온 것이지만 소년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열 한 살이 된 그에게도 총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이전의 사냥은 관람객의 자세로 참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참가자로 총을 손에 쥔 그는 그의 손에 닿는 차가운 느낌을 실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만끽하고 있다그 설렘이 그를 흔들고 있는 사이 이 모든 평화를 가로지르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게 된다그들의 사슴 사냥터에 등장한 불청객을 향해 의식의 흐름도 없이 발사되어 버린 총성그것은 이 고튼 마운틴에 있는 이들을 평범한 일상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사건이 되어 버린다.

 짐승은 모두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들었지만당연히 거짓말이다사슴은 제 영역을 위해 싸웠다울부짖고 뿔을 흔들고 목을 젖히며 나를 떨쳐내려 했다사슴을 살고 싶어했다죽은 남자에게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다그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살해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도 잊게 만들었다하지만 사슴의 목을 잡은 두 손엔 사삼의 맥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공포와 처절한 상실감도 느낄 수 있었다어떻게 해도 공정해 질 수 없는 것바로 우리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이다. -본문

 가슴이 관통되어 이제는 주검이 되어 버린 한 남자의 시신을 두고서 소년의 아버지와 그의 친구는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다반면 소년은 자신의 첫 사냥이 인간이기에 이 모든 것이 축제 분위기가 아닌 그야말로 암울함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를 서운함이 묻어나고 있는데 죽인다라는 행위에는 동일하나 그 대상이 인간과 동물일 때의 차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드리우는 것을 아직 소년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처연한 듯 바라보는 소년의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있는 존재처럼 비춰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년의 총성 한 발에 발생된 끔찍한 살인 사건보다도 그 뒤에 사슴 사냥에 성공한 소년이 들려주는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그의 총알로 인해 인간과 사슴의 목숨이 사라졌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인간이 시체로 드리운 것과 생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신음하는 사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었을까사슴의 울부짖음처럼 인간 역시도 고통에 피눈물을 흘렸을지 언대 그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는 핑계로 나는 왜 사슴의 죽음에 대해 더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일까죽음의 무게에 대해서 무엇이 더 무겁다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인간을 죽인 소년의 행태를 보며 죄의식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아니 너무도 순수하기에 자신이 저지를 일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아니면 성악설의 논리대로 세상에 대한 인간의 윤리를 덜 배운 턱에 이 모든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나는 소년의 눈과 생각을 좇아 사슴의 죽음의 광견이 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톰 아저씨는 이제 일어나 어슬렁거렸다태엽 장난감 병정처럼 두 손으로 라이플을 잡은 채아저씨는 늘 그런 식이었다그 무엇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늘 뭔가를 기다리면서도 대비는 완전히 빵점이었다내가 처음 방아쇠를 당긴 순간부터 지금까지아저씨는 겁에 질려 있었다아마 이 모든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고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그 점에서 톰 아저씨는 완전히 보통 사람이었다매일매주매달매년살아가는 내내 분노하지만 언제나 무기력한 존재들. –본문

 소년의 총알로 인해 그들이 서 있는 모든 것이 변해버리게 된다낙원처럼 느껴졌던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이 이제는 모든 것을 감춰야 하는 비밀의 장소가 되어 버린다평생 풀려 날 수 없는 족쇄를 찬 것처럼그럼에도 태연히 사냥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너무 빨리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버린 소년에게 어른답게 이 모든 것을 책임지라 조용하고 있다.

 책임이라는 무게가 소년에게 드리우는 순간 그는 철저히 혼자 이 땅 위에 서야만 한다처음의 시작은 사냥이라는 하나의 경험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면 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을 더 이상 소년이 아닌살인자이자 사냥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도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옳고 그름을 넘어선 이 안의 세계에 담겨 있는 그들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모습들에 대해서 누군가를 붙잡고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들에게 <고트 마운틴>은 어떤 색채로 전해지게 될지책을 읽고 난 후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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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의 전설 / 데이비드 밴저

 

 

 

독서 기간 : 2015.06.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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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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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상 정리를 하거나 창고를 정리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물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전에는 꼭 품고 있었던 것이거나 중요한 것이라 잘 보관해야지, 하며 넣어둔 것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있는 지로 모른 채 먼지와 함께 세월 속에 묵혀지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마주하게 되면 어느 새 이전의 시간 속으로 훌쩍 뛰어 넘어 아련한 시간들이 떠오르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하나의 물건이겠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더해져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물건들을 버리기엔 왠지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있기에는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쌓아두기에는 난감한, 그런 것들 모아두는 <보관가게>를 앞에 두고서는 과연 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지 설렘이 밀려든다.

전당포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돈을 받고 보관해준다는 점이에요. 보관하는 행위 자체를 순수하게 일로 삼은 거지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보관품을 읽어가 볼 수 없고 손님의 얼굴 역시 보지 못하니까요. 손님 입장에서는 사생활이 보장되니까 안심하고 물건을 맡길 수 있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했던 적은 있어도 사달이 난 적은 없어요. –본문

 하루 100. 현재 환율로 보자면 1000원 안 되는 비용으로 무엇이든 보관할 수 있는 가게의 주인은 앞에 보이지 않는 기리시마이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볼 수 없게 된 그를 두고 그의 어머니는 떠나버렸고 그렇게 그는 홀로 남아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새 보관가게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무엇이든 이유도 묻지 않고 하루 100엔으로 물건을 보관해주기에 각자 사연을 안고 이 가게로 들어오게 된다. 무엇보다도 기리시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그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서가 아닌 가게의 포렴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믿는 고양이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는데 그의 따스한 성품은 포렴과 고양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편안하게 물들이고 있기에 그를 찾아오는 가게의 사람들의 사연 역시 따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게의 이름도 제대로 없는 이 곳을 알고 오는 이들을 보노라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거나, 누군가를 대신해서 가게를 방문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거나,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그 가게를 알게 된 이들도 있고 그야말로 다양한 이들이 이 가게를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매 장마다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실타래를 따라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들의 사연을 연결해서 찾아보는 재미도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사주신 물빛 자전거를 매일 맡기러 오던 소년은 가키누마 나미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합의서를 이 가게에 맡겼던 것처럼 그녀의 이혼 서류를 가지고 왔을 때, 이제는 이 보관가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고 기리시마가 이 가게를 운영하도록 해준 사건의 주인공인 동생이 등장하게 되며 아이자와와의 이야기도 매듭을 짓게 된다.

어라, 큰일이다.
주인의 심장이 두근두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누 아가씨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고양이인 나는 못 속이지
.
 
두근두근, 두근두근
.
 
이건….. 분명 사랑이다
.
 
싫어라. 주인이 처음으로 여성을 의식한 순간에 입회하고 말았어. 냄새와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고양이랑 뭐가 달라. 내겐 엄마의 첫사랑인 셈이니 겸연쩍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하다. 게다가 걱정이다. 주인이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는데. –본문

무엇보다도 쥐 할아버지의 오르골과 함께 비누 아가씨의 등장은 기리시마의 평범한 일상에 온기를 더해주는 에피소드인데 마지막 기리시마가 횡단보도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 역시도 그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눈가에 눈물이 서리게 된다. 고양이의 바람대로 주인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해져 마지막 페이지의 이야기가 꿈이 아닌 실제의 것 이길 바라며 책을 덮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의 실타래를 조용히 묶어 본다.

 기리시마의 보관가게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그는 누구의 추억이라도 고스란히 간직해 줄 것만 같다. 그 모든 기억을 버리는 것이 아닌 조용히 보관해주는 이 곳에 나는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가야 할 지 이 고민이 한 동안은 즐거운 고민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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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게 하기 좋은 날 / 무레 요코저

 

 

 

독서 기간 : 2015.06.17~06.1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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