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워터하우스  Nymphs Finding the Head of Orpheus

    오르페우스는 황금의 목소리를 갖고 있던 뮤즈 칼리오페Muse Calliope의 아들인데, 어렸을 때는 아폴론 신의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칼리오페

    아폴론은 오르페우스에게 마법의 수금(竪琴, 리라)을 선물했는데, 뮤즈들은 그에게 악기 연주법을 가르쳐 주어, 그가 노래를 부르면 돌과 나무와 산까지도 움직일 수가 있었고, 하메룬의 피리부는 사람처럼 흉폭한 짐승까지도 달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의 힘은 그가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아르고 호 대원들과 함께 떠났을 때 한껏 발휘될 수 있었다 - 언젠가 선원들이 바다의 요정 세이렌Siren의 유혹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그들보다 더 매혹적인 노래를 부름으로써 구해냈던 것이다.




   이 모험 여행에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매혹적인 나무의 요정, 에우뤼디케Eurydice와 결혼했다.오르페우스가 에우뤼디케와 결혼했을 때, 이를 축하해 주도록 히메나이오스(혼인의 남신)도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히메나이오스는 참석은 했으나, 아무런 길조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횃불까지도 연기만 나서 , 그들의 눈에 눈물만 나게 하였다. 


푸생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이와 같은 전조에 의해서인지 에우리뒤케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동무인 님프들과 거닐고 있을 때 아리스타이오스라는 꿀벌치기의 눈에 띄었다. 그는 그녀의 미에 반하여 사랑을 얻고자 추근거렸다. 그녀는 도망치다가 풀속에 있는 뱀에게 발을 물려 죽었다. 


작자 미상. 쫓기는 에오뤼디케의 모습인 듯?


   오르페우스는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아니 이 지상의 공기를 호흡하는 모든 것에 호소했다. 아내를 깊이 사랑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를 잊을 수 없었다. 음악의 신비한 힘을 믿었던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로 내려가 하데스(플루토)에게 직접 부탁하여 아내를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오르페우스가 펠로폰네소스 최남단에 있는 동굴을 지나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그가 리라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지하세계를 지키는 괴물들과 그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망령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왔다.   흉포하기 그지없는 괴물 케르베로스(머리 셋 달린 개)도 넋을 놓고 오르페우스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고, 지하의 망령들은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탄탈로스도 갈증과 허기를 잊었고, 익시온을 매단 수레바퀴도 회전을 멈추었다. 티튀오스의 간을 파먹던 독수리들도 얌전해졌고, 다나이드 자매들도 물통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워터하우스 The Danaides

    시쉬포스(시지프스)는 굴리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오르페우스의 음악을 들었다. 복수의 여신들인 에리뉘에스들도 아름다운 음악에 감동하여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오르페우스가 하데스의 궁전에 이르자,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를 융숭하게 맞았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사랑과 음악에 감복하여 에우뤼디케를 그에게 인도하여 지상으로 데리고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에우리뒤케가 햇빛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는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플루토(하데스)와 페르세포네에게 에우뤼디케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켜며 앞장을 섰고 에우뤼디케는 창백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코로 -  에우뤼디케를 인도하는 오르페우스

 작자 모름

    되돌아 나오는 길은 멀었다. 오르페우스는 연약한 에우뤼디케가 험한 지하세계의 길을 잘 따라오는지 궁금했지만 꾹 참고 앞만 바라보며 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동굴 입구 햇빛이 환히 비치는 곳에 도달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서둘러 햇빛에 들어선 오르페우스는 이제는 됐다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가엾은 에우뤼디케는 아직 햇빛에 들어서지 못한 상태였다.  아! 하는 비명과 함께 에우뤼디케의 창백한 영혼은 지하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였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경박함에 때늦은 후회를 하며,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에우뤼디케의 혼을 붙잡으려 했으나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다. 동굴로 뒤쫓아 들어가려는 오르페우스 앞에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죽은 자를 살릴 기회는 두 번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에우뤼디케를 두 번씩이나 잃은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돌아와 슬픈 나날을 보냈다. 말이 없었고 이레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들판을 헤맨 뒤에 강가에 앉아 한없이 울었다. 여자들에게는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침 소아시아에서 트라키아 지방으로 건너온 디오뉘소스는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종교 예식을 게을리하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서, 여신도들인 마이나데스들을 시켜 오르페우스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사방으로 던지게 하였다. 무사이들이 그의 시신 조각을 모아 올림포스 산 북쪽에 묻어 주었다. 그러나 에브로스 강에 던져진 그의 머리는 강으로 떠내려가 바다 건너 레스보스섬에까지 흘러가 그곳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신탁을 전해 주었다 한다. 모든 것이 신비스럽고 주술적인 오르페우스에게 어울리는 섬뜩한 죽음이다.

작자 미상. 오르페우스의 죽음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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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07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다 쓰고 올리기 누르면 오류 난 것이 벌써 두 번째..
길게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좀 긴 이야기다 싶으면 하나의 페이퍼로 만들어야지 피해가 적으니.. T^T

로렌초의시종 2004-06-0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 - 에우뤼디케를 인도하는 오르페우스'가 좋아요!!!^^ 말 그대로 엘프들이 나올 듯한 아련한 녹색으로 가득한 숲 속......^^

panda78 2004-06-0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가 나무 그림의 대가라... 진짜 숲보다 더 숲같은 숲, 진짜 나무보다 더 나무같은 나무를 그린다고 했지요. ^^

starrysky 2004-06-0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푸생의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체도 꽤 좋아하는 편인데, 확실히 그 사람 그림은 크게 봐야 제맛인 것 같아요. 워터하우스는 계속, 쭈욱 좋습니다. ^^
그리고 저도 알라딘에 사진 많은 글 올릴 때마다 계속 오류 나서 속상해 죽곘어요. ㅠㅠ (알라딘 서버 빨리 바꿔야 할 듯..)

panda78 2004-06-0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푸생 그림은 작게 보면 이게 뭐야? 싶죠..
솔로몬의 판결도 작고 흐린 도판으로 보니 우습더군요.. ^^;;

Fithele 2004-06-0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드라마 다이제스트 만들 때 한 두번 오류로 죽고 나서, 비공개로 '쓰다만 글' 카테고리를 작성해서 쓰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번 저장해 주면 길게길게 붙는데, 그렇지 않고 어느 길이 이상 쓰면 에러가 빈번히... 신기한 게, 그렇게 나눠서 쓴 글을 나중에 한꺼번에 새 페이퍼에 복사 & 붙여넣기하는 건 에러가 안 나더라고요?

panda78 2004-06-0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문제가 있긴 한 거죠? 어떻게 쓰더라도 안 날아가면 좋겠어요... 너무 무리한 바람인 건가... T^T

마태우스 2004-06-0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 밑에는 에우리디케를 너무 못나게 그렸어요. 바보같이... 하여간 팜므 파탈에서 본 그림들이 많아서 반갑습니다. 푸생이라면, 그 유명한 사계의 작가죠? 헤헤, 아는 거 많다고 과시하려고요^^ 역시 워터하우스가 최고에요.
 
 전출처 : readers > 서민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고야 (3)

서민(庶民)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表出)
고야 Francisco Goya(1746~1828)

 


마뉘엘 오소리오 데 츠니가

  이 가련한 소년은 한 때 고야의 후원자이었던 아루다미라 백작의 둘째 아들. 고야는 인간의 추악상에도 극히 민감했지만, 순수하며 깨끗한 존재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응을 보였던 인정 많은 화가였다.어린이 본래의 청순함과 가련함을 존중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이 가련한 소년을 하나의 실재자로서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높은 심성을 엿볼 수 있다.이 작품은 고야의 초기 초상화의 특징적인 좋은 예이기도 하다. 밝은 빨간색의 대담한 색조와 명쾌한 윤곽은 당시 신고전주의의 표현 양식의 영향이 나타난 작품이다.

 


호세 피오 데 모리나

  고야는 보르도에 옮긴 다음에도 죽음 직전까지 초상화를 계속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며, 고야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고야의 연구가 호세 구데 올은 이미 완성의 작품에서 고야의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처음 단계에 있어서는 객관적. 자연주의적 태도로 모델에 최대한 담았다. 다음 단계에서 형태를 단순화하는 동시에 촉각적 가치와 모델의 전반적인 표정과 내면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까지 꿰뚫는 깊은 관찰로서 표현하고 있다. 이 초상화는 미완성 이기는 하나 82년간의 고야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인간 본연의 자태를 추구한 고야다운 작품이라 하겠다.

 


발코니의 마하들

  난간 안쪽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며 앉아 있는 마하들, 배후에서 지켜보는 그늘 속의 사나이들, 등장 인물들은 밝은 가르든 시대와 동일하나, 이 그림에서는 온화하며 밝은 자연스러움은 보이지 않는다. 어둠침침한 벽과 난간의 제한되어 있는 공간 속에 4인의 남녀가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다.청각을 상실한 후의 고야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것, 즉 인간의 드라마의 추구자로 변해진 것을 나타낸 작품이다. 중기 이후의 일대 특징이 되는 갈색과 흑색의 주조색이 화면의 심도(深度)를 나타내고 있다. 인상파 시대의 대가 마네의 작품 <발코니>의 발상원(發想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죽음이 올 때까지

  죽음에 직면한 피골이 상접한 노파가 화려한 신부 옷차림을 하고 온통 다이아몬드를 몸에 걸친 추괴(醜怪)한 모습으로 해골같이 생긴 시녀가 내민 거울을 보고 있다. 그 거울 뒷면에는 '어떻습니까?'라고 씌어져 있다. 두 사람의 뒤에서는 빗자루를 치켜들고 금방 내려칠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날개 돋친 염라대왕의 사자가 습격하려는 절박한 순간을 볼 수 있다. 노파가 머리에 얹은 화살표의 다이아몬드는 <카를로스 4세 가족>이란 작품의 왕비의 머리에 꽂은 물건과 같다. 그 물건은 재상인 애인 고도이에게 증정한 것이라 한다. 노파의 빨갛게 그려진 눈을 음란한 욕망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시대상을 풍자한 고야의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작품의 회화성에 있어서도 우수한 작품이다.

 


두 마술사

검은 그림 시리즈 중에 가장 작은 작품. 귀머거리 집 2 층 살롱 벽에 그려진 작품이다. <스프를 먹는 2명의 노인>이라고도 불린다. 1828년의 목록에는 <2인의 마술사 >로 기재되어 있다. 노파가 스푼을 들고 웃음 짓고 있으며, 오른편의 해골 같은 노인은 두터운 책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지식인을 조소하는 듯도 하고,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인지도 모르며, 남녀나 부부 관계에 대하여 고야 특유의 비꼬는 관찰로 그려 낸 그림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음산하고 어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고야의 심적 파동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림의 색조도 어둠침침하고 검정색 바탕에 흰색과 황토색을 썼으며, 색감에서 오는 느낌이 음산하다.

 


두 노인

  귀머거리 집 1층 입구 벽면에 그려진 작품. 프라도 미술관 목록에는 <2인의 수도사>로 되어 있으며, 그밖에 <2 인의 괴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이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프라도 미술관장 하메엘 데 스라스 씨는 이그림의 흰 수염의 인물을 고야로 보고, 등뒤에서 크게 소리치는 괴물은 고야가 귀머거리가 된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장으로 보아서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는 수도사로도 보인다. 교회나 수도회를 탄압했던 나폴레옹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인지도 모를 일이나 그 시기의 고야의 자학적인 심리 상태로서는 이러한 내용의 작품이 나타났음 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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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0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야 시리즈 3부작은 노블 리더님 서재에서 퍼온 것들입니다. ^^
혹시 업어 가시려거든 노블 리더님 서재에서 업어 가 주세요.
제목 밑의 출처를 누르면 그 쪽으로 갈 수 있답니다. 추천도 노블리더님 서재에서..
마태님, 이런 걸 바라신 거죠? 저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이렇게 멋진 페이퍼는 못 만들어요... ㅡ.ㅜ

마태우스 2004-06-0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님이 올려주시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그래서 추천두 여기서 하렵니다.
 
 전출처 : readers > 서민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고야 (2)

서민(庶民)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表出)
고야 Francisco Goya(1746~1828)

 


聖요셉의 죽음

  종교 도시 발라돌리드의 산타아나 교회의 요청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 그림의 밑그림이 남아 있으나, 그것은 이 작품과는 많이 다르며 고민하는 성요셉을 그리스도가 부둥켜 안고 있는 드라마틱한 발상으로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신인 그리스도가 지상에 있어서의 아버지 요셉의 시신 앞에 조용히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손을 모은 요셉의 양손에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펴서 어루만질 듯한 부분이 그림의 중심을 이루었다. 왼손은 벌려 위쪽에서 내려 흐르는 빛과도 연결짓는 구도법으로 작품을 제작했으며,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엄숙하며 자애로움이 화면 가득히 감싸 주고 있다. 고야가 제작한 종교화 중 귀중한 작품의 하나이다.

 


마라가토와 싸우는 修道士베드로

  1806년 아루칸다라 수도사 베드로가 무장한 도적 마라가토를 맨손으로 잡은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온통 놀라게 했다. 고야는 이사건을 극적인 수법을 써서 6점의 시리즈 작품으로 제작했다. 이 그림은 그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처음 2점의 작품에서는 도적이 수도사에게 총을 들이대고 어깨에 짊어진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장면이고, 나머지 3 점의 작품에서는 도적의 총을 뺏은 수도사가 총신으로 도적을 쓰러뜨리고 도망치려는 도적에게 발포, 도적을 체포한다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그렸다. 격렬한 필촉을 구사, 색면과 동세(動勢)를 약동감 넘치는 분위기로 생생한 현장감(現場感)을 표현해냈다. 이 사건이 있은 2년 후 발발한 항불(抗佛)전쟁에 즈음하여 이 6점의 시리즈 작품에서 고야의 시국을 꿰뚫는 영감을 감지할 수 있다.

 


순교?

1649년 3월 16일 두 프랑스인 선교사가 캐나다의 이로구오 족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 한다. 고야가 이 사건을 발상원으로 하여 나시체(裸屍體)를 토막 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이 작품을 제작한 시기는 항불 전쟁 중이었다. 고야가 1 세기 반이나 지난 훗일에 이러한 사건을 작품으로 다룬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신념에 사는 어려움이나, 정의와 불륜, 인간 본연의 본질성과 야만성에 대한 통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고야는 이러한 테마로 시사적인 많은 작품을 그렸다. 반역이나 자유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 하다.

 


거인

  1812년 고야 재산 목록에 기재되어 있는 작품. 폭풍 직전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 구름 위에 거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두려움에 떠는 듯 역마차 떼들은 공포에 싸여 사방으로 도망치는 듯하며, 전면에 노새 한 필이 무심히 서 있다.고야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나, 노새를 스페인어로 바보 또는 얼간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페르난도 7세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라고도 하고, 거인을 나폴레옹 또는 전쟁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며,그 반대로 거인이 군중을 뒤로 방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거인을 스페인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보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고야의 상상력의 비약을 말해주는 작품이리라.

 


사투르노

  앞서 소개된 자화상을 그린 4년 후 고야는 빈사의 중병에 빠졌었다. 다행히 회복은 되었으나 그 후 '귀머거리 집'에서 유폐 생활을 보냈다. 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14 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이 시기의 그림은 '검은 그림'이라고 불린다. 고야는 대단히 음침하여 공포와 억압을 괴물로서 상징하는 표현주의적 작품을 2층 건물 벽면에 가득차게 그렸다. 이 그림도 그 집 식당 벽면에 그린 작품의 하나이다. <사투르노>는 하늘의 지배권을 자식들에게 빼앗기게 될 두려움으로 5인의 어린 자식들을 차례차례 먹어서 죽여 버렸는데, 이 고대 신화의 신은 토요일에 마녀들의 집회를 연다는 신이기도 하다. 공포, 절망, 분노 등을 상징하는 듯한 처절한 화면 구성은 놀랍다. 고야의 정신적.내면적 파동이 이러한 표현주의적 작품을 표출한 것이다.

 


聖베드로

  고야가 조국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에 망명하기 직전에 그린 작품,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천국의 열쇠를 바위 위에 놓고 기도하는 성 베드로 상이다. 간결한 구도에 강력한 매스(흙덩어리)로써 조형된 성인상은 마치 움직 일 수 없는, 장엄하며 엄숙한 느낌을 갖게 한다. 성 베드로 상의 표정에서 애소(哀訴)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인간의 본질을 형상화한 까닭이 아니겠는가. 황토색, 청색, 흑색 등의 제한된 색감이 가진 상징성, 자연 보다도 정신력과 의지력으로서 긍정할 수 있는 화면의 리듬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엘그레코 작품의 사도상(使道像)의 세계와 비슷한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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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나온 그림들은 전에 본 적이 있어서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 책에 보니 고야가 여성을 심히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는데, 여기엔 그 그림들이 없군요. 그게 아마 판화들이었을 겁니다.
 
 전출처 : readers > 서민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고야 (1)

서민(庶民)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表出)
고야 Francisco Goya(1746~1828)

 


마하와 얼굴을 가린 사나이들

  고야는 1775년, 의형(義兄) 파이유의 주선으로 왕립 산타 바루바라 디피스리 공장에 취직이 되어 벽걸이의 밑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자기 개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기 시작한 제2기(1776~80) 시대의 유명한 작품인 <파라솔>과 이 작품은 같은 무렵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송림이 이어진 안달루시아 산책길을 집시 남녀의 커플이 산책하고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불량배가 여인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집시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타이르고 있는 장면이라고 고야는 해설을 달고 있다. 마호.마하라는 서민의 생활상을 생생한 풍속화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야의 풍속화의 출발 점이었다. 묘사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도자기 파는 사람

  가르든 시대 제2기의 고야는 어린이들의 놀이나 어른들의 놀이 정경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이 그림은 마드리드 시의 전경, 귀부인을 태운 마차가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앞 쪽에 젊은 부인과 노파 한 사람이 발렌시아 산(産) 도자기를 고르고 있고 장사 아치는 비스듬히 옆으로 앉아 응대하고 있으며 고야가 즐겨 그려 넣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인물 배치라든가 동작이 구도상의 변화와 짜임새를 주고 있으며 원경과 근경도 포인트를 둔 중경을 돋보이게 하는 대조적인 구도로 고야의 작화(作畵) 능력의 뛰어남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 화면의 분위기 조성이나 공간 처리 등의 표현은 고야의 완성기를 뒷받침해 주는 수작(秀 作)의 하나이다.

 


눈보라 : 겨울

  4계절의 4부작 중의 하나인 겨울 작품이다.
세 사람의 사나이가 사냥꾼을 앞세우고 몰아치는 찬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당나귀 등에 죽은 돼지를 싣고 움직이고 있으며, 개 한 마리가 자연의 맹위에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무거운 회색조의 하늘과 흰 눈의 한설이 몰아치는 설경을 실감나게 표현했으며, 겨울 풍경의 분위기 조성도 대단히 인상적이며, 특히 화면에 등장한 인물군의 표정들도 한파(寒波)와 싸우는 엄숙한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마을의 투우

스페인에서 투우는 빼 놓을 수 없는 커다란 행사로 되어 있다. 중앙에서는 물론 지방에서까지도 투우를 하는데, 널빤지로 둘레를 막고 투우장으로 사용한다. 이 그림도 지방의 투우이며 귀족이나 농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가돌(창으로 소를 찌르는 투우사)이 소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을 그린 작품.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적인 자세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투우를 지켜보는 군중이나, 원경으로 처리한 풍경도 곁들여 주제인 투우의 긴박감을 자아 내는 분위기 조성을 더 한층 강조하고 있다.

 


대장간

  고야의 작품 중에는 많은 풍속화 작품들이 다양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의 놀이, 어린이들의 놀이, 사랑을 속삭이는 정경, 투우, 사회 습관과 각종 계층의 직업에까지 널리 다루고 있다. 이 그림은 <큰 돌의 운반 작업>, <수확>, <상처입은 석공>등 노동을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 중의 하나이다. 노동층의 다이내믹한 인간 생활의 본질적인 측면을 추구한 것이다. 불에 달궈진 빨간 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둘러싼, 3인의 각기 다른 자세는 하나의 공통된 노동의식에 결속(結束)되어 있음을 고야는 잘 포착하여 표현했으며, 격렬한 힘의 리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데포르메된 노동자의 심각한 표정, 격렬한 터치로 박진감 있는 화면의 분위기를 유감없이 표현한 작품이다.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1820년 캔버스 유채 117X79Cm
미니애폴리스 예술 연구소 소장

  이 그림 아래쪽에 『1819년 말에 중하고 위험한 병에서, 뛰어난 의술과 정성으로 73세의 나를 구해준 벗 아리에타에게 감사하며 1820년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림』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고야가 [검은 그림]의 작품제작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의사에게 부축되어 약을 먹으려는 중환자 고야의 모습에서 사경을 헤매는 듯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그림이다. 고야는 이러한 중병을 세 차례나 겪으면서 삶과 죽음의 처절한 경험을 겪었고, 더욱더 심오한 예술관이 형성되어 갔다. 사경에서 세 번씩이나 회생하여 더욱더 농도 깊은 걸작을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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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0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에게 라이벌이 있었군요. 님 덕분에 고야에 대해 마스터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고야, 영혼의 거울>이란 책을 읽었었거든요. 근데 거기 안나온 그림들이 꽤 있네요.
 

 
8. 에코와 나르키소스
 
    나르키소스는 보이오티아의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리리오페는 나르키소스를 낳자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아들이 오래 살 것인지를 물었는데, 테이레시아스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하여 숱한 처녀들과 님프들이 구애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메이니아스는 사랑을 거절당하자 나르키소스가 준 칼로 자살하였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도 그를 사랑하였는데, 헤라로부터 귀로 들은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하고 말은 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오래 전, 에코가 여신 헤라를 만난 것은, 헤라가 남편 제우스를 찾으러 하계로 내려왔을 때였다. 제우스가 어느 요정과 신나게 산자락에서 뒹구는 것을 헤라가 보고는 단숨에 달려온 것이다. 행방을 묻는 성미 급한 헤라에게 에코는 이러쿵 저러쿵 잔뜩 수다를 늘어 놓았고, 그 덕에 제우스는 감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에 분노한 헤라는 에코에게 남의 말의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할 수 있는 벌을 내렸다.
 
   결국 에코는 나르키소스로부터 무시당하자 실의에 잠겨 여위어 가다가, 형체는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되었다.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하나(또는 에코)가 나르키소스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 주었다. 헬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그림) 마침내 탈진하여 죽었다. 또는 샘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는 시신 대신 한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신분석에서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에코가 안타까운 눈길로, 샘물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르키소스를 바라보고 있지요.
 
 
 
카라밧지오의 나르키소스

그는 저승의 강을 건널 때도 배 위에서 몸을 굽혀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고 합니다.
 
     작자 모름

 


살바도르 달리 --- 나르키소스의 변모

   달리 그림은 알 수가 없지만, 왼쪽 것이 물을 들여다 보고 있고, 오른쪽 것 머리에 수선화같이 생긴 꽃이 보이네요.  그보다 더 오른쪽, 붉은 제단 위에 서 있는 것도 나르키소스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림이 작아서 잘 모르겠군요.


수선화

9.  세이렌 (Siren)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복수형은 세이레네스(Seirenes). 뮤즈 멜포메네와 강의 신 아켈로스, 혹은 아켈로스와 스테로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고도 하고 아켈루스와 뮤즈 테르프시코레 또는 포르키스와 케토가 낳았다고도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두 세이렌이 등장하나, 그 후로는 세 자매, 네 자매가 등장하는데 모두 노래와 연주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이들은 지중해의 한 섬에 살면서 감미로운 노래로 지나는 배의 선원들을 섬으로 유혹하여 잡아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의 조언을 받아들여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막고 자신은 몸을 배에 묶은 상태였기에 그 섬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그림)   이에 낙담한 세이렌은 바다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경보(警報)를 뜻하는 사이렌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오딧세우스와 세이레네스
 
  그림 질이 안 좋네요..  이 그림은 깨끗한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그래도 대충은 보이시죠?
묶여있는 사람이 오딧세우스. 그 주위에 얼굴은 여자고 몸은 새인 세이렌들이 날고 있지요.
 
세이렌
이 그림에서는 하반신의 일부가 물고기네요.  예전에 마그리트의 인어와 함께 올린 워터하우스의 <어린 인어>그림 생각나시나요? 그 그림과 아주 비슷하군요.

 인어

다른 그림들


세이렌 - 작자 모름. 책의 삽화인 듯 한데.. 출처를 모르겠네요


드레이퍼 <오디세우스와 세이레네스>

 사이렌과 어부. 작자 모름

세이렌 조각상



샤갈 --- 시인과 세이렌



드레이퍼 --- The Kelpie

 세이렌은 아니지만, 켈피도 물귀신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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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0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본 영화 <피터팬>에서, 인어가 굉장히 섬뜩한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더군요. 세이렌을 봐도...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어의 이미지는, 동화를 통해 너무 윤색된 듯.-.-

panda78 2004-06-0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다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때문이죠,뭐..
저는 란마 작가의 인어 만화 시리즈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애니메이션도 챙겨 봤지만. ㅡ..ㅡ;;

마태우스 2004-06-05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그림들은 다 훌륭한데, 샤갈의 그림은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참고로 전 초등학교 때도 저거보단 잘그렸다는 생각이... 제가 초등학교 때는 이미 너무 그림을 잘그려, 다른 애들이 위화감을 느낄까봐 일부러 못그리고 그랬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건 믿으셔야 합니다!

panda78 2004-06-0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믿어요, 마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