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7844&section=section4&section2=

루소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나이브 화파(소박파), 혹은 일요화파, 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Woman Walking in an Exotic Forest
(Femme se promenant dans une foret exotique),1905,Oil on canvas,39 3/8 x 31 3/4 in. (99.9 x 80.7 cm)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나이브 아트(Naive Art) 란,  미술사에서의 어떤 유파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일부 작가의 작품 경향을 말할 때 쓰는 것입니다. ' 나이브'라는 용어는 '자생적으로 획득된 ' 이란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되었지요. 넓은 의미로는 민화 계열의 풍속화나 심지어 시골 지방의 간판과 이정표까지 모두 포함시키지만, 일반적으로는 순수한 동심에 근거한 상상력과 고의적인 어눌한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회화의 한 경향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특질과 아울러,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미술에 대한 취향을 포함하고 있는 좋은 예가 루소입니다. 나이브 미술가들은 원근법을 무시하며, 구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그림은 작고 단조로우며 장식적입니다.

   잘 알려진 나이브 예술가로는 앙드레 보샹, 까미유 봄브와, 에드워 드 힉스, 모리스 허쉬필드, 앙리 루소, 루이 비방, 알프레드 윌리스 등이 있고요. 고의적으로 나이브한 과슈 방식을 채택한 전문 화가들로는 마르크 샤갈, 데이비드 호크니, 로우리, 벤 샨, 크리스토퍼 우드 등이 있습니다. 앙리 루소 바로 이 ‘나이브 아트(naive art)’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한국에서는 나이브 아트를 소박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The Football Players, 1908, Oil on canvas, 100.5 x 80.3 cm,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일요화파, 혹은 나이브 화파는 근대 회화의 주류의 여백에서 독자적인 회화를 추구해 나간 일군의 화가들을 묶어서 통칭하는 편의상의 명칭인데요,

  이들 일요화파 화가들이 다같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정규적인 회화 수업을 쌓지 않은 아마추어 출신이었다는 점과, 거개의 경우 회화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은 복잡한 인공적인 것보다는 소박하고 단순한 것, 지적이고 기계적인 것보다는 직관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것'에 대한 게시를 추구했습니다.

Rendezvous in the Forest
1889,Oil on canvas,36 1/4 x 28 3/4" (92 x 73 cm),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그것은 어떠한 기법이라기보다, 본대로 들은 대로 느끼는 대로 정성껏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다른 직업을 갖고 취미에 따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일요화가"들이 있듯이 그때도 직업을 갖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앙리·루소는 세관사, 루이·비뱅은 우편국원 , 앙드레·보샹은 원예사였죠. 그러나 이들은 한결 같이 40세가 넘어서 가지고 있던 직업을 버리고 전업화가로 자리를 옮겨갑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그렇게도 활발하게 전개된 예술운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독립적이고 서민적인 안목과 지혜를 그대로 지켰습니다.

 

 
 
A Carnival Evening
1886, Oil on canvas, 46 x 35 1/8" (106.9 x 89.3 cm),Philadelphia Museum of Art

  

   루소의 초기 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하다'라고 알려진 이 작품은, 1886년 앙데팡당전에 출품되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으로 루소는 화가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달이 비치는 푸르고 맑은 밤하늘과 낙엽진 수목은 섬세하고 세밀한 실루엣을 보여줍니다. 피에로와 콜럼바인으로 가장하고 산책하는 남녀가 보이는데, 이 작품에는 최후까지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깊은 고요가 숨어있습니다. 단순하기 그지 없는, 혹은 진부해지기 쉬운 구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것이 바로 이 고요인 것이지요

 

 


The Dream,
1910,Oil on canvas,6' 8 1/2" x 9' 9 1/2",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밀림 속의 아름다운 여인은 꿈 속에서 피리 소리를 듣습니다. 꽃 위의 달은 초록의 숲 속을 비추고, 청아한 피리 소리에 야수와 뱀이 귀를 기울입니다. 아마 루소도 이러한 선경에서 잠들고 있겠지요.

   이 작품이 앙데팡당 전에 출품되었을때 아폴리네르를 비롯한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호평을 했습니다. 루소를 비웃는 사람은 없었으나, 원시림속에 놓여있는 소파는 일부 비평가를 어리둥절하게 하였습니다.

   루소는 미술비평가 앙드레 뒤퐁의 소파에 대한 질문에

  "소파 위에서 자고 있는 이 여인은 숲으로 운반되어져 뱀을 부리는 사람의 피리소리를 듣고있는데 이것은 꿈을 꾸고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림속에 소파가 있는 이유입니다."

   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사망한 해에 그려진 이 작품은, 여러 모양의 식물들이 엉켜있는 가운데 나체의 여인과 사자와 코끼리가 땅꾼의 피리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환상의 세계를 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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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6-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다 너무 멋져요.. 나무 그리느라 대따 고생했겠다란 생각 잔뜩~ 그 정성을 생각해서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봐줘야겠어요.

panda78 2004-06-2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앙리 루소 씨가 고마워 하겠군요.. ^-^ 올린 보람이 있어 기쁩니다.

SOng 2009-11-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림 문제에 내고, 그냥 넘어가기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6.10~1877.12.31)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프랑스 화가로 프랑슈 콩테의 오르낭 출생입니다
부유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840년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공부를 위해 파리로 나왔으나, 얼마 후
화가를 지망하여 브장송의 데생학교와 파리 아카데미쉬스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루브르 미술관에서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하였습니다

1844년 살롱에 출품하여 첫 입선을 하고 이색적 화제를 인정받았으나,

 1950년의 작품《오르낭의 장례식》은 지나치게 실경(實景) 묘사에 치우친 불경스런 희화(戱畵)라는 비난을 받았지요 (역사적 사건도 신화적 주제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거대한 크기로 그려내어 비난받았다고 합니다.)


무지 큰 그림이래요.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을 최악의 추악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혹평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돌 깨는 사람 (1849)>>


이 작품은 2차 대전중 유실되어 이미지로만 보실 수 있습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화가의 아뜰리에》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 그림은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만큼이나 크다고 합니다.

* 그림 설명

" 이 작품은 나의 아뜰리에의 역사이다. 그리고 아틀리에의 도덕적 물질적 여러 사건의 전부이다."

라고 그가 밝혔듯이, 쿠르베 는 아틀리에속에 세계의 축도를 담으려 했다.
이 작품이 1855년 만국 박람회에 전시되었을때, 이 작품에는 [화가의 아뜰리에, 7년간의 나의 예술생활의 추이를 결정한 현실의 우화]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우화란 제목이 붙여진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각기 우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 앞쪽의 화가는 쿠르베 자신이며, 그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보들레르, 프뤼동 등 그의 친구들이 서있다.
오른쪽 인물들은 각기 시, 사회주의 사상, 산문, 사실주의 예술의 보호자이며,                         
왼쪽은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빈곤, 실업, 죽 음 등 사회적인 관심을 여러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화가옆의 나부는 자연 또는 진실을 나타낸다. 중심의 인물은 밝게, 배경과 측면의 인물은 어둡게 처리하여 두 세계를 우의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쿠르베는 이 작품의 출품을 거절 당하자 자신의 이상과 회화를 표명하기 위해

몽테뉴가에 손수 집을 짓고, 입구에 '사실주의' 라는 큰 간판을 걸고서 이 작품을 비롯한 40여 점의 자작품을 전시하여 자신의 예술 상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개인전이 되었지요

그는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란 그 시대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고,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나는 천사는 그리지 않는다. 그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또는 "내가 천사를 그리기를 원한다면 나에게 천사를 보여달라") 
"리얼리즘(사실적)의 세계에는 쇼킹한 것이라고는 없다"
라는 쿠르베의 말은 그의 이상과 작품경향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쿠르베는 그의 작풍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1850년대 중반부터는 도버해협 연안의 바다풍경


The Cliff at Etretat


해변


꽃, 과실 등의 정물,



과일


꽃병 속의 꽃다발

 


송어

 60년대 후반에는 관능적인 여인 등의 현실적 주제를 정확한 기법으로 그려내어,
1867년 알마다리에서 가진 개인전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목욕하는 여인들

 


앵무새와 여인

 



The Sleepers

 


세느 강변의 아가씨들

 

그러나 1871년 파리코뮌 때 방돔 광장의 나폴레옹1세 동상 파괴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75년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스위스로 망명, 2년후인 1877년 12월31일
라 투르 드 페일스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의 사실적 작풍은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고전주의와 같은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일체 배격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한 그의 사상적 입장은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 혁신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한 점에서 미술사상 가장 큰 의의를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아카데미즘에 대한 투쟁이었던 그의 사실주의는, 시각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인상주의의
선구
가 되었고 독일·벨기에·러시아 등의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그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화상들과, 이 그림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에서 특히 잘 드러나지요. 모자를 벗고 인사하고 있는 사람은 쿠르베의 후원자라는데, 쿠르베는 뻣뻣하게 인사를 받고 있고, 후원자가 반가워하며 인사하지요.


국민학교 2-3학년이었나? 외갓집에 갔다가 작은 문고본 화가별 미술 전집을 슬슬 보았는데

(하도 볼 것이 없어 심심했던 나머지, 이 책들을 찾아내서 그림만 봤다)

그 때 본 그림들 중 이게 가장 인상깊었나 보다.  제목조차 잊지 않았다.

 


개와 함께 있는 자화상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그는 풍경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오르낭의 모습만 그렸다고 합니다.


 


The Oak at Flag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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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6-1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사람 동성연애자인가요?
아님 더 당시에 동성연애가 유행이었나요?
오우...상당히 에로틱한것이 묘~~합니다.

panda78 2004-06-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자 아닐 걸요..(모르죠, 벽장 속의 동성애자였는지는.. ^^;;;)
(잠자는 두 여자의 그림이 제일 묘-하지 않은가요? 음... )

반딧불,, 2004-06-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그림은 언제나 보면 참 탁월해요..

다른 그림들도 그렇지만....


그나저나 참..그 그림 쇼킹하군요^^;;

panda78 2004-06-1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근원?)>이란 그림을 한 번 보시죠. 차마 올리진 못하겠고...^^;;;

밀키웨이 2004-06-1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스!
지금 보고 왔습니다.
와우!

저같으면 올립니다.
방문자가 줄을 잇지 않을까 싶은디.... 큭큭큭

반딧불,, 2004-06-1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찾았어요^^;;
서재주인보기로 주소 올려주세요^^;;

반딧불,, 2004-06-1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밀키님은 대체 어디서 찾으셨을꼬..
내는 안 나오든데....^^;;

panda78 2004-06-1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올려요? ㅋㅋㅋ 올립니다- 순진한 마태우스님이 충격 먹고 다시 안오심 어쩌나.. ㅋㅋ

밀키웨이 2004-06-1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각시
내는 검색대마왕인기라 ㅎㅎㅎ

로렌초의시종 2004-06-1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쿠르베는 약간 부담스러운...
 

1, 2에서 빠진 그림들 몇 점 주욱 올려놓을게요.  즐겁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_ _)>

화가에 대한 설명은 1, 2를 참조해 주세요-

 

우선 <이른 일요일 아침>과 같이, 사람이 없는 도시 풍경들입니다.

 



 


The Circle Theatre

 

 

 

고독한 사람들...


Compartment C, Car 293 (293호 열차의 C객실)

 

 

 


Pennsylvania Coal Town

 

 

 


New York Office

 

 

 

여러 명이 등장해도 그들 사이의 교감은 느낄 수 없죠.


Cape Cod Evening

 

 

 

summer evening

 

 


people in the sun

 

 


Second Story Sunlight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뭔가 작은 희망같은 것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chop su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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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6-1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움... 이거두 퍼가도 돼죵??~~!

panda78 2004-06-1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퍼간다고 말씀만 해주시면 돼요! ^^*
 

철길 옆의 집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빛나는 이성의 인간 존재에 대한 기대감을 짓밟아 버렸다. 산업혁명의 거대한 꿈은 대공황이라는 환멸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인간의 의지를 더욱 무력화시키고, 인간은 그저 텅 빈 공간을 지킬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멍한 시선으로 신의 손길을 기다릴 뿐이다.

호퍼는 이런 시대의 얼굴을 기록했다. 식당·호텔·아파트·주유소 등 우리 일상의 구체적인 풍경을 다룬 그의 그림 속으로 관객들은 일단 친숙함으로 접근하지만, 몰입하면 할수록 그림 속의 대상은 마치 포르노처럼 시각 주체를 사로잡으려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주체를 경직시켜 버린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바라보던 관객의 욕망은 그 지독한 적막감과 공허함 속에서 노출되고 상처받는다. 그림 속에 가득한 ‘대낮의 정사’ 같은 은밀함과 죄의식의 분위기가 정지된 시간과 진공된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면서 질식시킨다. 호퍼(Hopper)는 호러(horror)인 것이다.

호퍼의 <철길 옆의 집>에는 텅 빈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남아 있는 산업사회 이전 시대의 한 가옥이 등장한다.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망각한 채 존재하는 유령의 집 같다. 그리고 그 집 앞을 가로지르는 철길은 그 집(환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서려는 관객에게 깊은 단절감(현실)을 안겨 준다. 이렇듯 <철길 옆의 집>은 밝은 햇빛을 받는 옛 시대의 집을 통해 낙관주의 이면에 깃든 짙은 비관주의를 드러낸다. 그것은 허상적인 미국 이미지 그 자체로 남아 있는 것이다.


 


등대1

 


등대 2


Lighthouse Hill

Edward Hopper :  All The Lonely People

'개스(Gas)'를 한번 보자.

 텅 빈 길 위의 그 주유소는 막 문을 닫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오두막에서의 빛은 거의 형광성이고 주유소 펌프는 짙고 어두운 배경에 반해 화려하게 튀는 빨강이다. 나무들은 단단하고 꿰뚦을 수가 없다 - 단지 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을 건물의 뒤로 너무 빨리 사라지고, 만약 그것이 진정으로 어디론가로 이어져 있다 해도 그것이 이끄는 곳에는 어떤 표식도 없다. 그리고 고독하게, 반쯤 가려진 형체가 있다. 그는 막 펌프를 끄려고하는 걸까, 아니면 숨으려고 하는 걸까? 그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홀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당연히 그는 알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호퍼의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외로움이다.

'호텔 룸'에서 한 여성은 손에 한조각의 종이를 든 채로 홀로 앉아 있다. 그녀를 둘러싼 가구들은 단순하고 실용적이다. 여행가방은 닫혀 있다. 그녀의 구부린 어깨들은 체념과 절망을 보여준다. 그녀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걸까? 아니면 그녀는 단지 이제 막 도착해서, 그가 남긴 오지 않겠다는 메모를 발견한 것일까? 그림 안에서 유일한 행동은 그녀의 응시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하게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이것과 똑같은 응시가 거기에, 호퍼의 너무나 많은 작품들 속에 있다. '일요일' 에서는 한 남자가 혼자 판자로 된 산책로에 있다. 그의 뒤로 가게는 닫혀있고 셔터는 내려져 있다. 그는 아마도 집에서 왔거나 단순히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부의 세계는 조금도 위안을 주거나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 사람들, 이 평범하고 특징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명확하게 내면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있어 호퍼의 가장  감동적인 작품인 '뉴욕 영화관'에서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게 나타난다.


 


  이 그림의 오른쪽에서 우리는 흘낏 영화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단지 몇 개의 산들이 보인다- 그것은 극장의 안내원이 커튼 옆에 서 있는 동안 볼 수 있을 만큼이다. 스크린으로부터 반쯤 가려져서. 'Gas'에서처럼 계단은 사라지고 몇몇의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층이 있다. 그 극장 안내원은 그녀 자신의 생각에 몰두해 있다. 극장의 스크린을 쳐다 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서서.

  호퍼의 세계는 도시에서의 세계이다.  - 비록 때때로 그 프레임 너머에 언덕이 있지만 자연은 건축되었다. 모서리가 있고, 닫혀 있고 마치 '맨하탄 다리 지구'에서처럼 저장 창고나 공장처럼 육중하다.

그러나 그의 초기 그림들은 Road in Maine 에서처럼 자주 외로운 집들과 풍경과 넓은 언덕들을 묘사하는 풍경의 그림이었다.


Road in Maine


Cape Cod Afternoon

 


corn-hill

1908년의 'Railroad Train'는 속도감과 캔버스의 한 면을 가로지르는 프레임 바로 아래에 펼쳐진 시골들의 풍경을 포함한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 자연은 급격히 사라진다. 비록 그가 ' Cape Cod'의 단정하고 길들여진 해변으로 돌아올지라도 더 이상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 세계를 보여주는 넓은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Office At Night"에서처럼 그들이 폐쇄된 공간을 함께 나누고 있을 때에도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 두 인물들은 책상 바로 옆의 마루위에  흘낏 보여지는 종이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이런 점들은 몇 개의 비밀을 제시한다. 그들은 감히 서로 무언가 공유할 수 없다. 호퍼의 모델들은 백인들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중간계급 이고 외롭다.  


Office At Night

 



Room in New York

 

  여기에 슬픔이나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인물들은 희생자가 아니다. 그들 모두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 창문을 통해서, 그들 자신 안을, 어둠을 응시하며, 그들의 커피 컵 속의 세계를 시험하며.


morning-sun


Room in Brooklyn


 

그리고 "High Noon'에서 문앞에서 그녀의  앞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여성처럼 그들 각각은 꿈을, 동경을, 이 순간이 더 빨리 혹은 더 늦게 지나갈 것이라는 감정- 그리고 어떤 것, 이름 붙여지지 않은 어떤 것, 알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그들의 응시를 주장하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인물들은 내면의 삶을 가지고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면서 그러나 둘 모두에 대한 꿈을 포함한.


 High Noon

 


summer time

 

Edward Hopper : All The Lonely People

 

(글) Feature Article by Mike Gonzalez, June 2004 에서 발췌한 것을http://blog.naver.com/nosugaradded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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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6-1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들이 바로 그 유명한 호퍼의 그림이로군요!!!

icaru 2004-06-1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퍼갑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 1882~1967


미국의 화가로 뉴욕과 파리에서 수학했다. 사실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전형적인 미국의 풍경을 보여주는 시가지나 건물을 즐겨 그렸다.

1915년에 에칭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로 전공을 바꿨다가 1930년경부터 다시 수채화와
유화에 몰입했다.


Evening Wind 에칭

밤의 레스토랑, 인적이 끊긴 거리, 관람객이 빠져나간 극장 등을 소재로, 외로운 개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남겼다.


Two on the Aisle

 




대표작으로 ‘책을 읽고 있는 모델’, ‘밤을 지새는 사람들(Nighthawks)’, ‘밤의 레스토랑’이른 일요일 아침’ 등이 있다. (아래에서 그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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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미국적인 사실주의 화가의 탄생 - 에드워드 호퍼


평범해 보이지만 가끔 ‘저 인간은 천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을
아주 드물게 만난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감추고 있기에 그 특별함이 더욱 빛나고,
한편으로는 주변을 감쪽같이 속여온 것 아니냐는 생각에 오싹함마저 들 때가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현대미술작가 속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자면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를 들 수 있겠다.


  야수파, 입체파, 다다와 초현실주의 등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 예술의 시도가 난무했던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돌이켜본다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평범하다
못해 공허해 보이기까지 한다. 1930년대 언저리 미국 상업광고의 삽화로나 쓰였음직한
사실주의 화풍 역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퍼가 1930년대 미국 풍경화파
(American Scene Painting)의 대표작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뭘까.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텅 빈 거리, 무표정한 사람들의 표정 등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더 강하게 와 닿는다. 순간 깨닫는다. 그림이 평범해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없어
느껴지는 허전함이 아니라, 그림 속의 대상이 지닌 공허함을 그만큼 실감나게 담은
그림이라는 걸 말이다. 1920년대 이후 산업화사회로 본격 진입하면서 변화된 미국사회의
현실을 호퍼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작가도 흔치 않다.


모더니즘 대신 삶의 진실 파헤치는 리얼리즘을..

  1882년 미국 뉴욕주 나이아크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호퍼는 청소년 무렵부터 이미
화가로서의 재능이 다분했지만, 그의 부모는 가난뱅이 예술가보다 먹고살기에 나을 거라는
계산에서 아들이 상업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길 원했다. 그의 그림이 마치 크기를
부풀려 놓은 광고삽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뉴욕예술학교에서 리얼리즘 회화의 대가로 손꼽히던 로버트 헨리에게 사사했던 호퍼는,
24세 되던 해인 1906년 10월 파리로 떠난다. 현대미술운동의 중심지였던 활기찬 파리에서
호퍼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사로잡혀있던 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더니즘보다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리얼리즘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파리에서 한 일이라곤
고흐가 그린 풍경처럼 밤의 카페에 앉아 있거나 밤거리를 싸돌아다니는 일이었다.

몇 달을 파리에서 더 보낸 후에 1910년까지 유럽 여행을 지속했던 호퍼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차라리 과거의 명작, 그 중에서도 렘브란트의 ‘야경꾼들’(1642)이었다.

어둠 속에서 극적으로 드러나는 빛은 호퍼의 그림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는 사람들’(1942)은 빛의 극적인 느낌을 강조한, 3백년 전 렘브란트 그림의 또 다른 변용이라고 볼 수 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호퍼는 밥벌이 수단이었던 일러스트레이션을 놓고 비로소
순수예술가로 전향했다. 숨막힐 듯한 정적이 흐르는 그의 풍경화에서 인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텅 빈 거리는 극복할 수 없는 공허감을 보여준다.

둘 이상의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그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세상에 빠져있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호퍼의 그림 속에는 구원을 갈구하는 듯한 상징적인 요소로 ‘창’이라는 요소가 반복해 등장하지만, 창 내부에서 혹은 창 밖으로 흘러나오는 빛은 붙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희망으로 나타난다.


경직된 인간군상 속에 드러나는 황량한 현대인의 삶..

  
호퍼의 이름을 널리 각인시킨 것은 도시풍경을 그린 일련의 그림들이지만, 그는 시골
풍경이나 바다 풍경과 같은 자연에도 종종 눈을 돌렸다.

하지만 모든 인물들이 경직되고 소외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호퍼  그림의 특징은 자연을 그릴 때에도 유감 없이 드러난다.
심지어 파도를 묘사할 때조차 석고로 빚어낸 듯 딱딱하게 그려낼 만큼 모든 사물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없다. 그가 쏟아낸 그림들은 풍경이든 인물이든 산업화와 제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거치면서 황량해진 미국인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

리얼리즘의 아버지 쿠르베 이후, 가장 탁월한 미국 리얼리즘 화가로 에드워드 호퍼의 이름을 꼽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료제공 : 고경원 기자]

 

 


Nighthawks 밤을 지새는 사람들

" 두개의 거리가 만나는 그리니치 가(街)의 한 레스토랑을 보여준다. 나는 장면을 단순화시켰고, 레스토랑을 확대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나는 대도시에서의 고독함을 그린 것 같다. "

 


심슨 표 나이트호크  ^^;;;

 

 



 이른 일요일 아침

 


밤의 레스토랑

 

 


텅 빈 방

 

 


이것도 상당히 유명한 그림이죠. Rooms By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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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6-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좋아하는 화가라 열심히 보고 있다가 심슨표 나이트호크에 나뒹굴어버렸습니다. ^o^

가을산 2004-06-1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심슨은 도대체 어떻게 찾으셨어요?

panda78 2004-06-1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우연히 보고 엄청 웃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