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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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랑이란…… 육체, 사랑, 죽음, 이 셋은 원래 하나야. 육체는 병과 쾌락이고, 육체야말로 죽음을 낳기 때문이지. 그래, 사랑과 죽음, 이 둘은 다 육체적인 것으로, 거기에 이 둘의 공포와 위대한 마술이 있지! 그러나 죽음은 한편으로는 미심쩍고 후안무치하며 얼굴을 붉히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주 장엄하고 존엄한 힘으로 ㅡ 돈을 벌고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삶보다 훨씬 더 고귀해 ㅡ 시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진보보다 훨씬 더 존경할 만하지. 왜냐하면 죽음은 역사적인 것이고 고상함이자 경건함이고 영원함이며 신성함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자를 벗고 발끝으로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체도, 육체에 대한 사랑도 음란하고 난처한 성질을 띠고 있어. 육체는 스스로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여 피부를 붉게 물들이기도 해. 하지만 또한 육체는 숭배할 만한 위대한 영화(英華)이고, 유기 생명의 기적과도 같은 형상이며 형태와 아름다움의 불가사의한 신성함이야. 그리고 이에 대한 사랑, 인체에 대한 사랑은, 이 역시 아주 인문적인 관심이며, 세상의 온갖 교육학보다 더욱 교육적인 힘이야! 아, 이 매혹적인 유기체의 아름다움은 화구(畵具)나 돌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패성 물질로 되어 있고, 생명과 부패라는 열을 내는 비밀로 가득 차 있어! 자 그럼, 인체 조직의 불가사의한 대칭 구조를 봐! 양 어깨와 허리, 양 가슴의 꽃 같은 젖꼭지, 그리고 양쪽에 두 개씩 나란히 달리는 갈비뼈, 부드러운 복부와 가운데의 배꼽, 다리 사이의 검은 보고(寶庫), 등의 매끄러운 피부 아래에서 견갑골이 움직이는 모양을 봐! 그리고 싱싱하고 풍만한 두 엉덩이를 향해 내려가는 등뼈의 모양, 몸 기둥에서 겨드랑이를 통해 사지로 뻗어 나가는 혈관과 신경의 굵은 가지, 두 팔이 두 다리의 구조에 대응하는 모양을 봐! 아, 팔꿈치와 무릎 관절 안쪽의 부드러운 부분, 그리고 그 살의 쿠션에 쌓인 부분의 유기체가 지닌 수많은 비밀! 인체의 이 감미로운 부분을 애무하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희열일까! 아,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환희! 아, 정교한 관절 주머니가 지방을 분비하고 있는 네 무릎의 피부 냄새를 맡게 해 줘! 너의 온 허벅지에서 고동치고, 훨씬 아래에서 두 개의 경부 동맥으로 갈라지는 대퇴부 동맥에 경건하게 내 입술을 닿게 해 줘! 너의 털구멍에서 나는 분비물을 냄새 맡고, 너의 부드러운 털을 애무하게 해 줘! 물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무덤에서 분해될 운명을 지닌 인간의 형상이여,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고 영원히 죽게 해 줘!"(651∼652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권』, 《제5장》, <발푸르기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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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02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체, 사랑, 죽음이 하나라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삼위일체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그리고, 육체와 상대되는 정신의 짝은 무엇일까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신-냉정-영원이 상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oren 2017-09-02 13:57   좋아요 1 | URL
<육체, 사랑, 죽음이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정신, 이성, 삶이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신이 죽어 있으면 그 자체로 ‘삶‘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을 테니까 말이죠.

겨울호랑이 2017-09-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렇네요. 죽음의 대칭은 삶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oren 2017-09-02 23:57   좋아요 1 | URL
그냥 즉흥적으로 써 봤지만, 곰곰 따져보면 조금 이상한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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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아, 내 몸의 열, 몹시 지쳐 있는 심장의 고동, 팔다리의 오한, 이런 것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 한스 카스토르프는 입술을 떨면서 창백한 얼굴을 더욱 깊숙이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은 다름 아닌 너에 대한 사랑 때문이야. 그래, 이 눈으로 너를 본 순간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랑 때문이야. 아니, 그보다도 너라는 걸 알아본 순간 내 마음속에 다시 살아난 사랑 때문이야. 그리고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도 그 사랑이야."

 

"말도 안 되는 망상이야!"

 

"아, 사랑이 망상이 아니라면, 무모한 짓이나 금단의 열매가 아니고 죄악 속의 모험이 아니라면 그것은 보잘것없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사랑은 평지의 한가하고 하찮은 노래에 알맞은 기분 좋게 진부한 것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네가 그라는 것을 알고, 너에게 다시 사랑을 느낀 것은 …… 그래, 실은 내가 너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너를, 이상야릇하게 기울어진 너의 눈을, 너의 입술을, 네가 말하는 목소리를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어. 오래전에도, 언젠가 학창 시절에 나는 너한테서 연필을 빌린 적이 있었지. 마침내 너와 세속적인 의미에서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베렌스가 내 몸에서 발견한 흔적, 내가 이전에도 병을 앓았음을 증명하는 흔적,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때문에 남아 있는 거야. 너에 대한 나의 해묵은 사랑이 남긴 흔적인 거지.".(649∼650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권』, 《제5장》, <발푸르기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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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됐어." 한스 카스토르프는 말을 계속했다. "말한다는 것은 가련한 일이지. 영원 속에서는 말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 영원 속에서는 새끼 돼지를 그릴 때처럼 하는 거야. 말하자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두 눈을 감고 하늘을 쳐다보는 거야."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네! 너는 영원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정말이야. 아주 잘 알고 있어. 네가 귀여운 몽상가이고 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해야겠어."

 

"게다가 또. 내가 좀 더 일찍 너와 대화를 나누었다면 너를 당신이라고 불렀을 거야."

 

"아니, 그럼 이제부터 나를 영원히 너라고 부를 작정이야?"

 

"응.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부를 거야."(641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권』, 《제5장》, <발푸르기스의 밤>

 

(나의 생각)

이 장면이야말로 『마의 산』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짜릿한 장면이다. 먼 훗날 '어느 시인'이 이 대목을 '시'로 읊었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 * *

 

 시인은 죽지 않지만

 진실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죠.

 이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무엇으로 시에 불을 밝힐까요?

 카스토르프가 마담 쇼샤에게 그랬듯이

 오늘 밤 서로에게 불을 밝혀요.

 

 - 아틸라 요제프,  <토마스 만을 환영하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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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이곳에 온 뒤 해가 바뀌어, 지금은 다른 해, 다음해가 되어 있었다. 세계 시계의 큰 바늘이 한 단위 더 전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바늘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그다음으로 전진하는 것을 볼 사람이 거의 없을 천 년 단위의 바늘도, 100년이나 10년 단위의 바늘도 아니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곳에 일년도 아닌 겨우 반년 있은 것에 불과하지만 일년을 가리키는 바늘이 얼마 전에 한 단위 전진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제 5분마다 한 번씩 움직이는 어떤 큰 시계의 분침처럼 다시 움직일 때까지 일단 정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려면 이 월침이 아직 열 번 더 움직여야 했다. 즉 한스 카스토르프가 이 위에 와서 움직인 횟수보다 2,3회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그는 2월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잔돈으로 바꾼 돈은 써 버린 거나 마찬가지듯이 시작된 달은 끝난 달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607∼608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권』, 《제5장》, <망자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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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0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덩케르크」에서 육지에서 일주일, 해상에서 하루, 하늘에서 1시간으로 나타났던 서로 다른 길이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시간의 상대성 같은 느낌이 드네요^^:

oren 2017-09-02 13:5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영화 『덩케르크』를 보려고 몇 번이나 예약을 시도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어요. 『마의 산』은 ‘시간 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시간에 대한 통찰‘이 아주 많이 나온답니다. 특히나 겨울호랑이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바탕을 둔 논리 전개가 돋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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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병리학, 병에 관한 이론이며 육체의 고통을 강조하는 이 이론, 하지만 이것이 육체적인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쾌감을 강조하는 한에는, 병은 생명의 음탕한 형태였다. 그러면 생명 그 자신은? 어쩌면 생명은 물질의 전염성 질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물질의 우연 발생이라고 일컫는 것이 어쩌면 하나의 질환에 불과하고, 자극에 의해 비물질이 조직을 증식하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악과 쾌감, 죽음으로 가는 제일보는, 미지의 물질이 침투하고 간지럽게 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것의 밀도가 증대하는 바람에 병리학적으로 조직이 왕성하게 증식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게 분명했다. 즐거움과 거부감이 반반씩 섞인 이러한 증식은 물질적인 것이 생기기 직전의 단계이며, 비물질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이것이 말하자면 원죄였다. 유기체의 질병이란 자신의 육체성이 취한 듯이 고조되고 방종한 형태로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상이듯이,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겨나는 두 번째의 우연 발생도 물질성이 심히 고조됨에 따라 의식을 갖게 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생명이란 순결을 잃은 정신이 모험을 겪는 도상에서 그다음에 제일보를 내딛는 것이며, 순순히 자극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물질이 자극에 는뜨게 되자 부끄러워하며 열을 내는 것에 불과했다.(543∼544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 《제5장》,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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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0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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