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에 터를 잡고 머문 지도 어느새 훌쩍 10년이 지났다.

 

세월 참 빠르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은 나도 몰랐다.

그저 내 눈앞에서 흐르는 강물은 조금도 쉬지 않고 흐르고 또 흐르고,

그 강물을 바라보는 나는 단지 '여기'에 머물러 있을 뿐이고,

그 강물의 흐름을 따라 나도 함께 따라 흘러갈 수 없으니,

언덕 위에 서서 강물만 바라보다가 어느새 문득 늙어버린 여행객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내가 여기에 자리를 잡고 나서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아까운 10년의 세월이 어느날 갑자기 훌쩍 건너뛴 느낌마저 든다.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도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도대체 어떤 친구들이 나와 함께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지낼 지도 몰랐다.

아무튼 끊임없이 새로운 친구들이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 와서는,

아무런 '소개'나 '인사'도 없이 저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가 신이 나서 자신의 품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다른 친구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자신의 이야기를 거기에 보태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그런 아름다운 추억들도 이젠 다 잊어 버리자.

어쨌든 나는 이제 여기서 서둘러 떠날 작정이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급작스레 여길 떠나야 한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결국 나는 여기서 쫒겨 나는 셈이다.

아무튼 그런 세세한 사정을 일일이 밝히자면 몹시 부끄럽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가 여길 떠나는 이유나 나의 행방에 대해서는 차츰 알게 될 터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여기도 가만 보면 참 많이도 변했다.

내가 여기에 계속 터를 잡고 버티기엔 이제 어느 정도 한계에 온 것도 사실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계속 '눈치'를 보면서 근근히 버티며 살아 왔다.

왜 아니 그랬겠는가.

온갖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새로운 친구들'이 끊임없이 밀려 드는데,

나같은 구닥다리가 여기서 어떻게 계속 버텨낼 재간이 있을 수 있으랴.

 

솔직히 여기서 이런 식으로 계속 버티며 살아 남을 자신이 없다.

여기도 알고 보면 은근히 '눈에 안 보이는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친한 녀석들은 지들끼리 더욱 단결하여 구닥다리나 외톨이들을 배척하기 일쑤다.

저들끼리 온갖 비밀스런 대화들을 속닥거리면서도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런 꼴이 보기가 싫지만 나같은 뒷방 늙은이는 그저 꾹꾹 참고 못 본 체할 수밖에 없다.

혹여 그런 불만을 입밖에 냈다가는 즉시 벌떼같이 일어나서 나를 내쫒을 게 틀림없을 테니까.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끝에 마침 이참에 깔끔하게 여길 떠나기로 했다.

아니다, 거듭 밝히자면 내가 자발적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 쫒겨나는 게 맞다.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렇지, 이렇게 하루 아침에 여기서 쫒겨날 줄은 몰랐다.

 

신세 한탄일랑 이제 그만 하자.

이제 여길 영영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몹시 홀가분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미련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오래도록 죽치고 앉아 지내면서 재미있는 '세상 구경'도 참 많이 했다.

이제 어디 가서 그런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나도 막상 여기를 떠나자니 앞길이 막막하고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아, 되돌아 보면 이 좁은 공간에서 나는 얼마나 흥미로운 세상을 구경 했던가.

 

아는 거라곤 모르는 거 빼고 전부 다였지만 성깔 하나만은 언제나 까칠한 놈_니체 같은 놈,

온갖 유머를 다 갖췄지만 입이 걸레처럼 더럽고 가벼운 놈_라블레 같은 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잔뜩 늘어 놓는 놈_하이데거 같은 놈,

세상의 온갖 비밀은 저 혼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늘상 가르치려 드는 놈_쇼펜하우어 같은 놈,

하느님조차 우습게 알고 까부는 놈_리처드 도킨스 같은 놈,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온갖 기막힌 말장난으로 세상을 비꼬는 놈_셰익스피어 같은 놈,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세상을 움직일 것처럼 위세 떠는 놈_헨리 데이빗 소로우 같은 놈,

낮이고 밤이고 허구헌 날 줄창 글만 쓰는 놈_카프카 같은 놈,

저 혼자만의 '독특한 의식의 흐름'을 늘어놓는 놈_조이스 같은 놈,

 

아... 이젠 좀 지겹다, 이런 녀석들을 계속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떠나면 그런 더러운 꼴은 더 이상 안 보고 살 수 있을 꺼 아니냐.

이 참에 떠나자. 깔끔하게 떠나자. 차라리 잘 됐다.

다른 데로 쫒기듯 도망가더라도 여기보단 훨씬 나을 꺼다.

이대로 이런 푸대접을 받으면서 더는 못 버티겠다.

 

그래도 가만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날 한 번도 심하게 쥐어박지도 않고 그럭저럭 대접해 줘서 고맙긴 하다.

사람이 오래 한 군데서 10년 씩이나 머물렀다가 이제 막 떠나는데,

그래도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하고 떠나야겠지. 안 그래?

 

암튼 내가 며칠 전부터 짐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얼씨구나 좋구나, 내 세상 왔네' 하며 입이 귀 잡으러 가는 놈들도 더러 내 눈에 보인다.

이왕 떠나는 마당에 내 그 녀석들을 일일이 불러 세우고 따져 보고도 싶지만,

아예 떠나는 마당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저 다 용서하고 깔끔하게 떠나자.

 

비록 나는 오늘 여기서 영영 떠나지만,

남은 친구들이여, 여기서 오래도록 버티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재미난 세상 구경도 실컷 즐기고.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얼굴을 들이밀 참신한 녀석들도 잘 좀 대해 주고.

특히 나보다 훨씬 더 나중에 들어왔으면서도

나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끝내 나를 여기서 쫒아낸 나쁜 놈들아.

내 말을 명심해라.

 

나는 이제 그만 가련다.

정작 길을 나설려니 막상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날은 또 왜 이리 덥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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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

우리들은 비록 이런 험한 꼴로 떠난다만, 살아남은 너희들도 이꼴 당하지 말란 법은 없느니라.

부디 몸 조심들 하고, 지금 있는 자리가 언제까지나 보장되는 거 아니란 걸 다시 한번 명심하거라.

 

 

아이구.. 저렇게 험한 꼴로 보쌈을 당해 떠나는 친구들 보니 영 남의 일 같지 않구먼.

그래도 천장 바로 아래까지 바싹 기어 올라간 우리들이 몹시 부럽제?

우리들도 하마터면 느그덜과 함께 도매금으로 한 방에 훅~ 날라갈 뻔했지.

주인장한테 두손 두발 모아 싹싹 빌고, 켜켜이 쌓인 먼지까지 싹싹 닦아낸 끝에 우리도 간신히 피신했지.

여기 천장 바로 밑에까지 기어 들어와 숨도 못 쉬고 엎드려 있다만 내심 쬐끔 불안한 것도 사실이야.

아무튼 우린 여기서 또 한 세월 낚아 볼란다.

주인장이 어디서 얼굴 반반한 연놈들 끌어 들이면 그땐 우리도 끝장이제.

언젠가 주인장이 우리까지 마저 쫒아내겠다면 그땐 우리도 미련없이 떠날 꺼여~

 

 

 

저렇게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환하게 빛을 받으며 마음놓고 지내는 저 친구들은 도대체 누구들이여?

시도 때도 없이 주인장의 사랑스런 손길까지 받아가며 속살을 헤쳐보이는 자네들은 도대체 무슨 상팔자여?

 

 

뭔 말이여? 이래뵈도 우린 태어날 때부터 느그덜과는 태생이 다르거든.

느그덜이야 고작 몇 년 반짝 하다가 이내 세상을 하직하기 바쁜 파리목숨들이지만,

우리들은 적어도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살아낼 작정으로 태어난 불사조 같은 존재란 말씀이야.

느그덜은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꺼여~

느그덜은 '시간의 테스트'를 견녀 낸다는 뜻이 무슨 말인지 아는감?

 

 

 

우린 그래도 천방 바로 밑에까지 기어 들어 왔으니 한동안 잠이나 푹 잘란다.

혹시나 주인장이 나를 잊지 않고 어여삐 여겨 찾아 준다면 몹시도 고맙겠지만.

그래도 쫒겨 나지 않고 여기서 버티고 있다는 게 어디냐.

 

 

저 가운데 몸집이 뚱뚱한 녀석들은 뭐여?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더만 아주 좋은 자리를 잡았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와 조이스가 나란히?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아무튼 새롭게 좋은 자리로 옮긴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네. 암튼 잘혀 봐~

 

 

우린 '전세계의 도서관이 불타더라도' 우리부터 건져내 주겠다는 호언장담까지 들었던 존재란 말이여.

그러니 자네들은 너무 배아파 하지 말고 속히 여길 떠나게. 무디 헌책방 가서도 몸 조심 하고~

거기서 먼지 푹 뒤집어 쓰고 모진 세월 견디다 보면 혹 마음씨 좋은 새로운 주인이 자네들 모셔갈 지 알아?

 

 

 

이 사람들아, 우리도 이런 자리를 차지하기 까지는 필설로는 이루 다할 수 없는 고생들을 겪었다네.

그러니 자네들이 우릴 보고 너무 배아파 하지는 말게나.

우린 한 몸에서 태어난 친형제들인데도 수 년 동안을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 쳐다만 보고 지내왔다네.

그 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잔 적도 없었고, 함께 음식을 나눌 기회조차도 영영 없었다네.

내 형이나 아우가 덩치 큰 녀석들 틈에 끼어 짓눌리며 낑낑대는 모습을 쳐다보는 일은 또 어땠고.

이제 겨우 이산가족들이 상봉한 셈이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라고.

그러니 부디 우리들을 위해 축하의 인사나 건네 주고 떠나게. 암튼 몸 조심 하고.

 

 

쇼펜하우어 : 어, 니체 오셨는가? 자넨 사후 나이가 어떻게 되나?

니체 : 아이구, 사부님.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신지요? 저는 올해로 꼭 117살 됩니다만...

쇼펜하우어 : 그러고 보니 자네도 나이를 제법 먹었네 그려.

자네는 살아 생전에 나를 몹시 흠모한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그 마음 변치는 않았겠지.

니체 : 하이고, 이제 겨우 사부님 가까이 자리 잡았는데, 그 얘기부터 꺼내시면 어떡합니까.

         이젠 사부님 곁에 왔으니 좀 더 자주 옛날 얘기도 나누고 세상 변한 이야기도 나눠보자구요.

쇼펜하우어 : 그러자꾸나. 그런데 저 아래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빼빼마른 영감은 도대체 누군가?

니체 : 아이고, 쾨니히스베르크 영감이네요. 내가 저 영감 욕을 가끔씩 했던 걸 저 영감도 알고 있을까요?

쇼펜하우어 : 글쎼다, 하여간 인사부터 드리세. 저 영감은 어쩄든 우리에겐 둘 도 없는 스승님이 아닌가?

니체 : 그리시죠, 사부님.

 

 

여긴 또 뭐여? 며칠 전까지만 해도 책탑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던 곳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자리가 널럴하구만 왜 하필 이런 삼복더위에 우릴 내쫒고 난리를 피운 게야?

글쎄 주인장이 마누라한테 혼이 났다는구먼. 책을 너무 쌓아 놓는 바람에 장롱 문이 안 열렸다나 뭐라나.

우리가 이번에 쫒겨난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주인장이 마누라 한테 한 방 제대로 얻어맞았기 때문이야.

아하, 그런 고약한 사정이 있었구먼.

글쎄 저렇게 장롱 위를 깔끔하게 비워 놓았다고 해서 저게 또 얼마나 갈지. 아무튼 두고 보자구.

 

 

얼씨구? 여기 자리잡고 있는 이 녀석들은 또 뭐야?

주인장 곁에 바싹 붙어 앉아서 고상한 음악까지 함께 듣고 있었어? 아주 놀고 있네.

나 원 참, 볼수록 성질 돋구는 구먼. 자세히 보니 여기 저기 빈 틈도 제법 있구만 그래.

왜 하필 우릴 기어이 쫒아내고 난리를 피우는 겨?

안 그래도 열이 달아 후끈거리는 이 삼복 더위에 말이여.

 

 

접힌 부분 펼치기 ▼

느닷없이 떠나 보낼 책들이 저렇게 초라한 행색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자니 몹시 안쓰럽고 안타깝다.

이럴 땐 '몽테뉴'라는 사람이 정말로 너무 부럽다. 그래도 그 사람을 계속 부러워 하지는 말자.

내 방 하나만으로도 족히 1,000권을 수납할 책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자.

(이번에 '책장 정리'를 하고 난 뒤에 '재고 조사'를 해 보니 딱 924권이었다. 보따리에 담긴 책 76권 빼고.)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2층은 나의 예배실이고, 3층은 거처하는 방과 그 부속실이며, 혼자 있고 싶은 때에는 거기서 자는 일이 많다. 위에는 커다란 의장실이 있다. 그것은 지난날 내 집에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이었다. 나는 이 서재에서 내 생애의 대부분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밤에는 결코 거기에 있는 일이 없다.
 
······ 이 탑은 삼면으로 풍부하고 끝없는 조망이 내다보이며 실내에는 직경 16보의 공간이 있다.

겨울에는 나는 줄곧 거기 있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 집은 그 이름이 말하듯 언덕 위에 올라앉아 있어서, 여기보다 더 바람 타는 곳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떨어진 곳이라 찾아오기도 힘들어서 사람들의 소란도 물리쳐 주고 글을 읽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든다. 여기가 내 자리이다. 나는 이 장소를 내 지배하에 두고, 이 구석 하나만은 아내이건 자식이건 일반 사람들이건 공동 생활에서 구애받지 않고 간직하려고 한다. 다른 데는 나는 모두 본질상으로 확실치 못한 명목상의 권위밖에 갖지 않았다. 자기 집에 있으며 자기대로 있을 곳도, 자기만의 궁전을 차릴 곳도, 몸을 감출 곳도 없는 자들은 내 생각으로는 아주 가련한 신세들인 것 같다!

 

 

 

펼친 부분 접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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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놀래라.
저는 오렌님이 알라딘을 떠나신다는 줄 알고 덜컹했습니다.
제가 뭐 오렌님께 잘못한 거 있나 괜히 뒷꼭지가 쭈뼛해 오늘은 이렇게 자진 출두했다는 것 아닙니까?ㅎ

쟤들도 할 말이 많겠지요. 한때는 서재에서 위용을 자랑했을 텐데 말입니다.
저도 가끔 아우성을 듣습니다.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으나 부디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더운데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겠네요.^^

oren 2017-08-05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렇게 갑자기 많은(?) 책을 한꺼번에 떠나 보낼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떠나보낼 책들을 바라보며 적잖이 안타깝고 서운한 느낌을 받고 있었더랬죠.
그러다가 갑자기 ‘천장 밑에‘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는 전면적인 재배치에 착수했답니다.
그 덕분에 숱한 이산가족들도 한 곳에 쪼르륵 모을 수 있게 되었고요.
그래도 떠나보내는 책들 입장에서는 저한테 꽤나 서운했을 듯해요.
그래서 그들 입장에서 느낄 법한 솔직한 감정들을 써 보고 싶었는데, 그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겼던가 봐요.
stella 님 댓글 보고 한 가지 더 생각난 게 있답니다.
알라딘 서재를 ‘진짜로‘ 떠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제목을 달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죠.
알라딘 서재의 특징은 언제나 ‘떠날 때는 말없이‘ 에요.
물론 처음 등장할 때도, 오랫동안 잠수했다가 디시 되돌아올 때도 마찬가지고요.

다크아이즈 2017-08-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고전 다독하시니 글담에도 품격이!
내침을 당하는 책님들도 오렌님 서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oren 2017-08-05 23:11   좋아요 0 | URL
떠나 보내는 책들한테까지 따스한 위로를 보내 주시니 제가 다 고맙습니다^^
고전이 읽을 때는 때로 힘들고 벅찰 때도 있지만, 그걸 한번 읽고 나면 두고두고 써먹기 좋은 장점도 있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오래도록 호소하는 매력이 있는 거겠죠, 작가님?

겨울호랑이 2017-08-0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oren님께서 갑자기 서재 활동을 그만두시는 줄 알고 놀랐네요.^^: 앞으로도 제게 많이 알려주셔야 하는데 말이지요. 더운 날 책장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남은 하루는 시원하게 보내세요^^:

oren 2017-08-05 23:16   좋아요 1 | URL
제가 늘 겨울호랑이 님 덕분메 도리어 배우는 걸요.
안 그래도 이번 기회에 ‘책장 위의 먼지까지‘ 털어내느라 땀 좀 흘렸답니다.
책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건 힘이 하나도 안 들고 생각보다 무척이나 재미있었어요.
제 손길에 따라 저런 거장들이 이리저리 서로 자리를 맞바꿔가며 줄서는 모습이 정말 웃기더군요.

hnine 2017-08-0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보내며 얼마나 서운하셨으면 이런 글을 쓰셨을까 짐작이 됩니다. 떠나는 대상의 입장이 되어보는거죠.
한 자리에 오래 눌러있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할일을 다 마치고 떠나는 모습도 좋아요.
저기 <축의 시대>가 눈에 들어오네요. 제가 읽을 수 있을까 눈여겨 보기를 1년 넘게 하고 있는 책이거든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요.
알라딘 서재의 품격을 높이시는데 oren님의 몫이 얼마나 큰데요. 아닐거라 생각하며 읽었지만 얼마나 다행인지요 ^^

oren 2017-08-05 23:23   좋아요 0 | URL
책이든 사람이든 이별은 늘 슬픈 거죠. 그것도 얘기치 않게 찾아오는 거라면 더욱 그럴 테고요.
hnine 님께서도 제가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함께 공감해 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축의 시대』는 다른 책에서 소개된 걸 보고 몇 년 전에 구입한 책인데 저도 여태껏 읽지 못했답니다.
hnine 님께서 오랫동안 눈독을 들이셨다니 먼저 읽으시거든 꼭 좀 글로 남겨주시길 바랄께요~

포스트잇 2017-08-0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충격..제가 알라딘 서재를 이렇게 몰랐나, 멀쩡해보이는 이곳의 물밑에서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여..라고 놀랐으나, 가엾게도 oren님의 품을 떠나는 책들의 한탄가였군요.
몸은 떠나도 내용은 오래전에 oren님 마음속에 남겨뒀을테고, 끝까지이리 마음써서 송가를 불러주셨으니 책귀신으로 떠돌지는 않겠지요.
일단 저녁더위에 헥헥거리다 일순 간담 서늘~ 했었네요. ㅎㅎ

oren 2017-08-05 23:33   좋아요 0 | URL
저 책들이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하는지, 제게 ‘귀‘가 없어서 그 말을 듣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책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더군요.
이미 많은 작가들이 책들을 의인화해서 글로도 아주 재미있는 글을 많이 써냈었고요.
오늘 ‘책 팔러‘ 난생 처음으로 중고서점을 찾아갔는데,
마치 여태껏 애지중지 여물 주고 키워 왔던 소를 팔러 장터로 향하는 농부의 심정도 들더군요.
그렇지만 중고서점 책상 위에 올려지는 순간, 노련한 주인 아주머니의 재빠른 손놀림에 따라 순식간에 76권의 책들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깜짝 놀랐답니다. 제가 여사장님께 물어봤더랬습니다. 아니, 사장님, 어떻게 그렇게 빨리 골라내실 수 있는 거죠? 그랬더니 사장님 하시는 말씀이, 늘상 하는 일인걸요, 뭘.... 절반쯤은 폐기처분될 듯하고, 나머지 절반쯤이라도 용케 살아남아서 새로운 주인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더라고요.


막시무스 2017-08-05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입니다!

oren 2017-08-05 23:34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께서 이렇게 위로해 주시니 저도 괜시리 감동 먹네요! 고맙습니다^^

비연 2017-08-0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깜짝 놀라... 들어왔지 뭡니까..ㅜㅜ 에구 놀라라.. 하면서 장대한 책장들 구경에 넋을 잃어 봅니다.

oren 2017-08-05 23:37   좋아요 0 | URL
2001년엔가 저 책장을 산 듯한데, 생각보다 너무 튼튼해서 아주 만족하고 있답니다.
책장 지붕과 천장까지의 틈새까지도 이렇게 책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도 너무 좋고요.^^

북다이제스터 2017-08-0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쌈 당하여 버려지는, 눈에 보이는 맨 위 놓인 책 세권은 당연히 그런 대접 받아도 될 책으로 보입니다. ^^

oren 2017-08-05 23:4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 보따리 속에는 ‘알라딘 온라인 중고가‘로 28,000 원짜리, 18,000 원짜리도 숨어 있답니다.
그걸 미끼상품으로 삼아 중고서점에 내다팔았는데 76권에 38,000원 쳐주더군요.
권당 500 원씩인 셈인데, 절반쯤이 버려질 책들이어서 그나마도 꽤나 값을 잘 받은 느낌도 들더군요.^^

라로 2017-08-0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이 글을 읽었는데 바빠서 좋아요만 눌렀어요.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도대체 왜요?˝라는 댓글을 달려고 벼르다가 마지막까지 다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참 멋진 분이세요!!! 제가 떠나보낸 200여권의 책들에게 사죄를 하면서....

oren 2017-08-07 09:01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셨군요. 한때는 사랑받았다가 아무런 예고나 이별 통보도 없이 숱하게 버림받는 책들을 생각하면 짠한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라로 님께선 이미 200여 권씩이나 떠나보냈으면 이젠 책을 내다버리는 일이 ‘늘상 하는 일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이 글 쓰고 난 뒤에 문득 ‘돈키호테의 서재‘가 떠올라 그 대목을 다시 찾아 읽어봤답니다. 그가 애지중지 간직하던 수많은 책이 ‘그가 잠든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검열‘ 당하고 ‘화형‘에 처해지거든요. 돈키호테가 어찌나 불쌍하고 안타깝던지, 제가 다 울 뻔했답니다.
* * *
신부는 지쳐서 더 이상 책을 볼 기운도 없어 나머지는 한꺼번에 몽땅 불태워 버리고자 했다. 그때 이발사가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있었는데, 『앙헬리카의 눈물』이었다.

「내가 울 뻔했군.」 책 제목을 듣고는 신부가 말했다.「그 책을 태우라고 했더라면 말일세. 그 작가는 에스파냐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시인들 중 한 사람이지. 오비디우스의 우화를 몇 편 번역했는데, 정말 훌륭하더군.」

오후즈음 2017-08-0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분들처럼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 가면 저도 이렇게 떠나 보낼 아이들이 많아서 마음이 울쩍하군요.
우선 가면 먼저 좀 쓰담 쓰담 해줘야 겠어요.

oren 2017-08-08 00:01   좋아요 0 | URL
가끔씩, 이별할 땐, 너무 지나치게 연연해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 * *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나우시카와 이별했을 때처럼, 그렇게 삶과 이별해야 한다.
ㅡ 연연해 하기보다는 축복하면서. (니체, 『선악의 저편』

무해한모리군 2017-08-08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 정리해야하는데 생각만 하며 해해년년이 흐르네요. 과감해져야 하는데.

oren 2017-08-08 18:58   좋아요 1 | URL
서재 정리는 정말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단점은 거의 없고(약간의 시간과 땀이 소요되는데, 이걸 꼭 ‘단점‘이라고 말하긴 약간 애매해서요.) 장점은 셀 수 없이 많답니다. 우선 기분이 몹시 상쾌해지고요,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책들을 주제별로, 혹은 저자별로 한 데 모으는 데 따르는 쾌감도 생기고요, 자신의 책 구매 습관이나 독서 습관에 대한 ‘새로운 통찰‘도 얻을 수 있답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원하는 책‘을 아무 때나 재빨리 꺼내 볼 수 있다는 점이겠죠. 점점 더 늪에 빠져드는 듯한 무력감에서 벗어날 때 느껴지는 통쾌한 기분을 어서 빨리 만끽하시길 바랄께요~

그랜드슬램 2017-08-19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여름 잘 보내셨죠? 항상 글 잘보고 있는데 진짜로 떠나시는줄 알고 덜컹했습니다^^ 이메일번호 보내주실래요?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oren 2017-08-19 13:07   좋아요 0 | URL
그랜드슬램 님께서도 여름 잘 보내셨는지요?
제 이메일 주소는 ojcojj@naver.com입니다.
늘 관심 가져 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7-08-30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31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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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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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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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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