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영화는 전혀 보고싶지 않은 영화였다. '달마야 서울가자'를 보자고 우겨대던 친구년은 신통찮은 내 표정을 보고서는 '그럼 이거라도' 하면서 투 가이즈를 볼 것을 권했다. 아빠가 내 이름으로 박아지와 박진진중에서 고르라고 했을 때 우리 엄마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그냥 투 가이즈를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 영화 예상외로 웃겨 주신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참으로 간만이었던지라 나는 머리속을 비우고 마음껏 웃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카드빛과 사채까지 끌어쓴 뺀질이 차태현. 그에게 돈을 받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고용된 박중훈. 이 둘은 어쩌다가 산업스파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중요한 반도체가 들어있는 가방을 차지하게 된다. 그때부터 사건은 꼬이기 시작하여 이들은 국가안전정보국과 국제 스파이 2곳으로 부터 추격을 당하게 된다. (나중에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쫒고 쫒기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화면이 무지하게 복잡해진다.)

이 영화는 순전히 박중훈과 차태현 두 배우의 힘에 의존하는 영화이다. 박중훈이야 이미 투캅스때 부터 코믹연기의 달인(요즘 들어서 조금 식상해진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었고 여기에 비교적 차세대 코믹연기주자에 속하는 차태현이 뭉쳤다. 관건은 이들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느냐 하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사람은 명콤비였다. 여태 왜 제네들을 붙여서 영화를 찍을 생각을 안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그냥 쿵하면 짝이었다.

감독 박헌수는 잘 모르는 이름이라서 네이버에 물어봤더니 싱글즈에서 각본을 쓴 사람이었다. 어쩐지 영화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만 이미 싱글즈에서 내공을 충분히 쌓았던지라 이번 영화에서는 감독에 각본까지 1인 2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비록 아주 대단하게 멋진 영화라던가 아니면 생각할만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코믹영화의 미덕이 웃겨야 산다를 아주 제대로 지킨 영화이다. 수초마다 객석에서 터지는 폭소는 박헌수 감독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박중훈과 차태현은 슬랩스틱 코메디를 보여주지만 절대로 오바한다거나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거기다 이 두 배우는 웃기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을 망가뜨리는 것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자신의 신체적 단점을 서슴없이 웃음거리로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줄 아는것 없이 오로지 뚱뚱한 몸 하나로 자기를 비하하며 웃기는 코메디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영화에 대체 왜 한은정이라는 여배우가 필요했냐는 것이다. 그 정도 역활이라면 아예 빠져도 누가 뭐랄사람이 없을텐데 굳이 하는일 없이 모 음료 CF에서 보여줬던 트레이닝복 차림을 하고 몸매자랑이나 하도록 세워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잠깐씩 대사 치는걸 보아 영 가망없는 바비인형도 아니건만 감독은 그녀를 아예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영화속 소품처럼 '없으면 허전할까봐' 세워둔 인형같은 존재였다. 나는 여자 연기자들에게도 똑같은 비중의 역활을 주라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왕 출연료주고 시키는거 연기 좀 제대로 하도록 뭐라도 시키라는 것이다. 그저 얼굴과 몸매가 앵글에 잡히는 것 만으로 그녀들의 역활을 한정시킬것 같으면 없어도 그만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웃기기 때문에 그런 눈요기거리가 별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박중훈과 차태현때문에 원없이 웃었다. 그리고 꽤 유쾌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섰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머리속에는 이런 문구가 떠 올랐다.

'아이구 재간동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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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재미있단 말입니까? 전 죽어도 보지 말아야 할 영화 첫머리에 넣어 뒀는데... 박중훈은 아직 늙지 않았고, 차태현도 숨겨진 뭔가가 있었나봐요? 흐음... 묘한 일이네요.

플라시보 2004-07-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의외로 찰떡궁합이더라구요. 사실 박중훈이나 차태현처럼 혼자 너무 튀어버리는 배우들은 상대 배우를 잘 만나야 하는것 같습니다. 그 연기를 받쳐주지 못하면 (황산벌에서 박중훈은 홀로 외로워 보였고 차태현은 요즘 내면연기만 하는 성유리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더군요)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데 혼자 오도방정을 떠는 걸로만 보이거든요.

작은위로 2004-07-1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그닥 보고 싶지 않은 영화 제 2순위였는데 말입니다.(물론 1순위는 달마야, 서울가자이다.) 생각보다 괜찮은가 보지요?
...누가 보자고 하면 모른척 봐야겠습니다. ^^;; 지난 주말에만 영화를 두편봤더니...ㅜㅠ

비로그인 2004-07-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이 영화보자던 친구에게 "너나 봐"하는 차가운 말을 남겼는데.
이렇게 웃기다면 두 손 모아 싹싹 빌고 보러가야겠어요.. 호호
글고 "내면연기만 하는 성유리 양"이라는 표현이 너무 콕 박히네요.. ㅋㅋ

클리오 2004-07-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진정 아버지와 이름에 관한 그 추억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아버지의 첫 딸을 향한 심오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뭔말이다냐...)

sooninara 2004-07-1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에선 엄청 혹평하던데요? 님의 글을 읽으니 마구마구 보고 싶어 지네요..^^

마냐 2004-07-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도 절대로 안볼 영화에 올려놓았는데...쩝..님의 리뷰는 힘이 세군요.

플라시보 2004-07-1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위로님. 저도 저 영화 처음에는 정말 보기 싫었더랬어요. 그냥 달마야 서울가자를 보느니 차라리 하는 심정으로 봤었는데 의외로 웃겨서 더 재밌게 느낀것 같습니다.^^

처음마음처럼님. 전 차마 '너나 봐'를 못해서 보게 되었지요. 히히. 그리고 성유리양은 왜 맨날 내면연기만 하는걸까요?^^ 이제 외면연기도 좀 보여줄때가 된것 같은데..^^
clio님. 네 사실입니다. 아빠가 박진진이란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겁나게 반대를 할것 같아서 처음에는 박아지를 막 우기다가 엄마가 거의 뒤로 넘어가기 직전에 '그럼 박진진은 어때?' 라고 하자 엄마는 마지못해 (박아지보다야 낫다) 승낙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심오한 의도는... 뭐 아부지 말로는 그래요. 이름을 지을때 누구나 첫 글자를 생각해 놓고 두번째 글자는 그 첫 글자를 제외한 나머지만 생각을 하는데 자기는 그 첫 글자마저 후보에서 예외시키지 않음은 물론 한번 더 써먹기까지 하는 빛나는 발상을 했다구요. 따라서 이쁘고 (무엇이?) 부르기쉽고 (내가 똥갠가?) 멋지며 (어디가?) 흔치않은 (그러시겠지..) 이름이 탄생했다고 우기십니다.

수니나라님. 뭐 물론 신문에서 혹평을 해 놨을수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웃기기만 하거든요. 내용이 좀 허술한 면도 있구요. 하지만 푸하하 거릴 수 있는 영화가 맞긴 합니다.^^

마냐님. 히히. 이번에는 마냐님이 보시고 제대로 된 평을 해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전 암만 생각해도 너무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해서 말이죠^^
 


어제밤 친구와 같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란 인간은 보통 영화를 보고 나면 좋다 싫다가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누기가 참 애매하다. 나는 이 영화가 재밌는 동시에 재미없었고 좋은 동시에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거 영화관 가서 볼만하니?' 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냥 어버어버 거릴 것이다. 그것 이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전도연이 무지하게 많이 나오니 그녀를 싫어한다면 보지 마라 정도 밖에는 없을듯 싶다.

나영이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집안이 어려워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어려워졌다.) 대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그녀는 매일 엄마의 악다구니와 아버지의 초라함 속에서 짜증과 속상함을 쉴새없이 왔다갔다 하며 산다. 목욕탕 때밀이인 엄마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아줌마로 나오며 아버지는 그저 사람만 좋을뿐 경제적으로는 집안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영이 다니는 우체국서 일을 하긴 하지만 월급이 몇년째 다 차압당해서 오히려 나영에게 용돈을 얻어쓰는 처지이다.) 그러다 어느날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영은 아버지를 찾으러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오래전 자기보다 더 어린 나이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엄마는 해녀 연순이었고 아버지는 젊은 우체부 진국이었던 시절로 돌아가서 나영은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이 영화는 거의 90% 정도는 전도연의 힘을 빌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극중에서 나영과 나영의 엄마인 연순까지 1인 2역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인 2역을 하더라도 다른 공간이 아닌 한 공간에서 연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영화의 성패는 전도연이 얼마나 연순과 나영을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서 조화를 이뤄 내는가에 달렸다.

사실 나는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아주 썩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사 전달력이 중요한것이 배우라는 직업인데 그녀의 콧소리는 상당히 거슬릴뿐 아니라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조차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대사 전달력 만큼은 최고였던 심은하가 진정으로 그립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아깝지 않다. 연기력도 그저그렇고 대사 전달력 마저 떨어진다고 해놓구서는 배우가 왠말이냐고 하겠지만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배우의 자세와 책임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느정도의 위치에 선 여배우들은 영화를 계약할때 클로즈업 몇번이상 잡아줄것 이라는 조건을 내새울 정도로 자신이 스크린에 얼마나 아름답게 비춰질것인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영화계라는 시스템 자체가 여배우에게는 연기력보다 얼굴이나 몸매등 기타 재반조건을 더 쳐주는 곳이긴 하지만 가난한 여자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맨날 천날 옷을 갈아입고 나오거나 잠을 잘때에도 속눈썹까지 붙이고 있는걸 보면 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전도연이라는 여배우는 적어도 작품에 따라서는 안이쁘게 나올줄은 안다.  

전도연의 출연작 중 내가 가장 점수를 주는 작품은 '내 마음의 풍금'이란 영화이다. 거기서 그녀는 나이가 좀 많은 늦깍이 국민학생으로 나오는데 촌스러운 단발에 완전 노메이컵으로 나온다. 보통 여배우들이 극중 학생이라 하더라도 아이라이너와 눈썹 거기다 입술에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나오는 것과는 확실하게 비교가 되는 일이었다. 산골에 사는 국민학생이니 화장을 안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여배우들은 그런 촌스러운 얼굴로는 스크린에 나오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내마음의 풍금은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분명 여배우 캐스팅 난항을 겪었을 것이고 신인 배우를 쓰거나 아니면 작품이 자체가 엎어졌을 것이다. 그후 전도연은 해피엔드 같은, 그녀처럼 충무로 시나리오의 대부분을 먼저 받아보는 여배우들은 출연하길 꺼리는 노출이 심한 작품을 했다. (사실 노출도 노출이지만 그 영화는 바람을 피우다가 끝내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역활이라는게 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인어공주처럼 제주도 해녀로 나와야 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놀랍다. 몸빼바지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거기다 이마가 넓은 그녀로써는 좀 치명적일 헤어스타일과 주근깨 가득한 얼굴. 과연 우리나라 여배우들 중에서 누가 선뜻 저 역활을 맡으려고 했을까?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찾는다면 영화 '마요네즈' 이후 실로 오랫만에 엄마라는 존재를 재조명한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다. 마요네즈에서는 가족을 위해서 늘 희생하고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상에서 탈피해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욕망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냈다면 인어공주는 엄마에게도 남편과 자식이 없었던 처녀 시절이 있었음을 말한다. 지금은 삶에 찌들어서 욕도 잘 하고 매일 악을 쓰며 살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젊음이 있었다. 더구나 엄마의 첫사랑은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지금은 소식조차 알수가 없는 멋졌던 그이가 아니라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다. 지금은 그 남편의 무능과 대책없는 착함에 욕을 퍼부으며 살지만 연애하던 시절의 엄마는 그의 착한모습에 반했었고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했었다.

영화 마요네즈와 마찬가지로 인어공주역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누구나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엄마에게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애증이라고 하는)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밉기도 한것. TV연애 프로에서 여자 연예인들에게 멜랑꼴리한 배경음을 깔고 엄마에게 한마디 하라고 하면 백이면 백 다 엄마에게 짜증부려서 미안하다고 또 엄마 고맙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것이 엄마와 딸 사이에는 존재하는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딸. 그래서 종종 딸들은 엄마와 반대가 되는 인생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아무리 부정을 하려고 해도 엄마가 결혼 생활에 여러번 실패한 것의 반작용으로 결혼이라는 것 자체를 무척 꺼리게 되었듯이 말이다.

이 영화는 거의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원맨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조연들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요네즈에서 김혜자가 있었다면 인어공주에는 고두심이 있다. 고두심은 김혜자와 마찬가지로 주로 자상하고 인자한 어머니상을 연기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삶에 찌들대로 찌든 어머니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창피한것도 모르며 뭐든 느글느글하게 넘어가려고 하고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악다구니를 보고 있노라면 혐오감과 함께 두려움 (나역시 결혼을 하고 생활에 찌들리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배우 박해일. 살인의 추억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프라이멀 피어에서의 에드워드 노튼처럼 선한 외모속에 악마성을 가지고 있는) 보였던 그는 내 친구가 '차라리 죽여라. 내게 오지 않으려거든' 이라며 극찬을 했을 정도로 여자들의 마음속을 후벼파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너무나 착하고 순한 우편배달부로 나온다. 그의 연기가 인상적인 부분은 극중 연순(나영의 엄마)인 전도연이 물질을 하다가 기절을 했을때 그녀를 보살피는 장면으로. 약물로 소문이 난 제주도 근방의 돌섬 아래 있는 바닷물을 밤중에 혼자 퍼다가 연순의 집으로 땀을 비오듯이 흐르며 나른다. 생각보다 비중이 작긴하지만 그는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에 힘을 싣기 충분한 배우이다.

내 생각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린 많은 여자들이 울었을 것이다. 한때는 나처럼 꿈도 많고 젊고 예뻤던 엄마가 결혼을 하고 현실에 찌들리다 보니 완전히 다른사람 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딸인 나는 그걸 이해하려기 보다는 엄마를 창피해 하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을 한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그렇게 변한 것인데. 엄마의 젊은 시절은 분명 그렇지 않았을텐데도 딸인 나는 그걸 이해하기 보다는 미워한다. 그렇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막상 나와 싸우고 악다구니를 할때는 세상없이 밉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미안하고 고맙다. 나를 낳아준 것이. 그리고 나를 낳고 키우며 사느라 주저없이 저렇게 변한것에 대해서.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엄마와 함께 이 영화를 한번 더 볼 예정이다. 보면서 닭살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아마 우리 마음은 잘 아실꺼다. 왜냐면 난 엄마 딸이고 엄만 내 엄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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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7-1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엄마랑 보러 가려구요 ~

작은위로 2004-07-1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생각을 했어요. 엄마랑 같이 한번 더 봐야겠다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모든 딸들의 소망이 아닐까요? 난 엄마처럼은 안살거야! 라고. 대놓고 엄마에게 말한적은 없지만, 항상 엄마를 볼때면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조금 .... ^^ 엄마랑 영화같이 잘 보시길 바래요. ^^

부리 2004-07-1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님도 보셨군요. 반갑습니다. 근데 "내게 안오려거든 차라리 죽여라"가 극찬인가요???

sweetmagic 2004-07-1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잘 모르긴 하지만...뭐... 독도를 일본이 가져가게 된다면 차라리 폭파시켜 바다에 가라앉히겠다 뭐 그런 심리 아니겠습니까 ? 집착과 파괴의 애증의 결정판... ㅋ
(아래 코멘트를 보아하니....오마나..어쩌지 박해일을 거시기 한다는 말씀이 아니셨구나..어..어쩌지...찍혔겠다... 잔인한 매직으로 ..아...어쩌지 ㅠ.ㅠ;;;;;;)

플라시보 2004-07-1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극찬이구 말구요. 내게 오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죽여달란것은. 내것이 될 수 없는 너를 봐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만 마감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작은위로 2004-07-1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sweetmagic님과 같은 생각했었다는...쿨럭.쿨럭 -_-;;;; (이러언...)

로드무비 2004-07-1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루고 있었는데 빨리 보러 가야겠어요.
더구나 우도에서 진을 치며 찍은 영화라니까 바다가 원없이 나오겠죠?

마냐 2004-07-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님의 리뷰 중에서도..사진도 여럿쓰고..글도 길어진걸 보니..좋으셨던 모양임다. ^^
그리고 님은 착한 딸이네요...

플라시보 2004-07-1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러네요. 제가 간만에 영화에다 사진을 여럿 썼군요. 예리하십니다. 흐흐^^ (아. 그리고 착한 딸이라고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부디 저의 엄마도 착한딸 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그럭저럭 나쁠것도 좋을것도 없는 딸년 정도로만 생각해주어도 좋겠습니다.^^)

플라시보 2004-07-1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맞습니다. 바다가 아주 원없이 나옵니다. 전도연이 물질을 하는 장면도 꽤나 많이 나오구요. 아. 그리고 거기가 우도였군요. 어쩐지... 예전에 우도를 취재한적이 있었는데 전도연의 벽에 사진속의 바닷가 해안선 모양이며 바위 모양이 많이 낮이 익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그때 포토그래퍼가 아픈 바람에 제가 사진도 직접 찍었더랬는데 영화속의 사진과 상당히 흡사한걸 보니 비슷한 각도에서 담았나봅니다.^^
 


지난 토요일 스파이더맨 2를 봤다. 요즘 내가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며 한참 삐져있던 K군이 스파이더맨을 보자고 했는데 내가 미적거리자 매우 신경질을 부려서 새벽 1시 30분에 좀비처럼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2를 봤다. 가만 생각해보니 1편 역시 당시 한참 나와 놀더 J군이 무언가로 삐졌고 내가 그걸 달래는 차원에서 함께 봤던것 같다. 흠. 이런 식이라면 스파이더맨 3편이 나온다면 나는 분명 또다른 미지의 X군과 보게 되지 않을까? (안엮여도 좋으니 다음번엔 초절정 온순 꽃미남으로 부탁한다. 위에 나열한 저인간들은 꽃미남도 아닌 주제에 성질들이 너무 더럽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꽤 많았고 대부분은 스파이더맨2를 보러 온듯 했다. 우리도 핫도그와 콜라를 양손에 쥐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민소매를 입고 간 나는 내내 내 팔에 돋은 소름을 손바닥으로 문질러야 했으며 나중에는 잠까지 쏟아져서 난감하기 이를때 없었다. 춥지 잠오지 영화 재미없지. 그냥 집에서 책이나 보는건데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스파이더맨1편은 그럭저럭 재밌게 봤었다. 만화 영화에서나 가능하던. 스파이더맨이 건물과 건물사이를 거미줄 뿜어대며 휙휙 날라다니는 장면은 놀라웠다. 거기다 악당으로 나오는 남자도 어느 정도는 이유가 있었으며 거기다 마지막에는 죽기전에 눈물겨운 부성애까지 보여줬으니 그만하면 애초부터 '나는야 악의 화신' 이라는 설정하에 나오는 악당들보다는 감정이입씩이나 되었었다고 감히 고백하겠다. 하지만 2편은 그렇지 않았다. 1편보다 훨씬 발달한 영화 기술로 스파이더맨은 더 빠르고 더 현란한 몸짓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라다녔으나 샘 레이미 감독은 여기다 영웅의 인간적 고뇌, 영웅의 사랑도 모자라서 마지막에는 영웅 찬양까지 해댔다. 이블데드를 겁나게 좋아하는 나로써는 샘 레이미에게 느낀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의 재기발랄함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가 삼켜 버렸고 더구나 그는 영웅에 환장했나 하는 느낌마저 주었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삶과 스파이더맨의 삶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사람들을 구하고 악당을 물리치자니 당장 방세때문에 시달리고 학교 수업을 빠져야 하는 현실이 울고. 현실을 택하자니 늘쌍 '왜앵~'하는 싸이렌소리와 아둔한 몸집에 몽둥이들고 어딘가로 쫒아가는 경찰들이 영 미덥잖다. 허나 이런 고민도 잠시. 척추뼈에 기계 문어다리를 장착한 악당이 나타나자 스파이더맨은 고민을 집어치운다. 악당이 있으면 당연히 영웅이 있어야 하며 그 영웅은 스파이더맨 자신 뿐이니까. 만약 옆에 슈퍼맨도 있고 베트맨도 있다면 우리의 스파이더맨이 좀 더 고민을 했겠지만 불행히도 악으로 부터 지구를 지킬자가 자신밖에 없으므로 고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1편에도 등장했던 메리제인과의 안타까운 사랑도 이어지는데 난 대체 메리제인 때문에 스파이더맨이 괴로워하는게 이해가 안갔다. 메리제인이 특별히 매력이 넘치는 여자인가하면 그것도 아니고 맨날 토라지는걸 보면 성격이 좋은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더구나 메리제인은 삼백안 (어디선가 나오늘 오늘밤은 어둠이 무써워요~ 하는 멜로디가 들렸다.) 이라서 그 몽롱하고 슬리핑스런 눈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 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각한 장면에서도 메리제인은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대사를 쳤으며 위로 눈을 치켜뜨기라도 하면 더 가관이었다. 예전에 브레드피트와 톰크루즈와 함께 열연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의 그 연기 잘하던 늙지 않은 꼬마 흡혈귀 소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그녀는 밋밋하고 특징없는 연기로 일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영웅주의에 대한 무섭도록 확고한 집착이었다. 스파이더맨이 원래 영웅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그 상태가 더 심하다. 열차를 구하는 장면에서 죽도록 고생을 해서 사람들을 살리고 쓰러진 스파이더맨.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을 손에서 손으로 옮겨 자리에 내려놓는다. 쓰러졌으면 일단 그 자리에 눕힌다음 상태를 살펴봐야 하는데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광신도들 처럼 나름의 의식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치르는 그 장면에서 나는 실소를 금할수가 없었다. 거기다 메리제인도 피터의 실체가 스파이더맨 즉 영웅인것을 알고 나서는 영웅을 사귀는데 목숨이 대수냐는 식으로 나오고 악당마저도 스파이더맨이 보여주는 모름지기 영웅이란 말이지에 감탄을 해서 마지막으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모두들 영웅 앞에서는 다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 바보같은 영웅주의 영화에 조금도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영웅주의는 어떻게 보면 몹시 위험한 발상이다. 한 사람이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면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그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어떤가. 왠지 어디선가 성조기가 펄럭거리는게 느껴지지 않은가? 역사가 짧아서 내세울만한 영웅이 없는 미국은 유달리 영웅을 많이 만들어냈다. 슈퍼맨도 베트맨도 스파이더맨도 모두 미국에서 제작된 영웅이다. 그리고 그 영웅은 전부 백인 남자이다. 인종우월주의까지 건드린다는건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쯤만 하겠지만 이것도 분명 생각 해 볼 만한 문제이다. 젊은 백인 남자로 대변되는 미국. 그리고 그 젊은 백인 남자는 인류를 지킨다. 따라서 인류는 그냥 그 영웅을 따르면 목숨도 건지고 번영과 평화와 안녕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그토록 무모할 수 있는 것은 무식한 미국 국민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똑똑한 사람도 많겠지만 교육수준이나 문맹률같은 걸 보면 미국은 정말이지 크고 거대한 무식쟁이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국민이 똑똑해지는걸 절대 원하지 않는 탓도 크다.) 국민이 똑똑하길 원하지 않는 나라. 냄새가 나도 많이 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쌔고 뭐든 다 할수 있는 영웅이다. 똑같은 영웅이라도 머리가 좋아서 혹은 연구와 노력으로 인해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영웅보다는 그저 택도아닌 힘을 가진 (심지어 슈퍼맨은 힘이 넘치다 못해 지구를 거꾸로 돌리기까지 한다.) 영웅이 진정한 영웅이다. 영웅 이퀄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파워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달리 미국은 영웅에 관한 영화를 많이 만든다. 악당이 있고 영웅이 있고 영웅은 승리하고 악당은 지며 백성들은 환호한다. 이 바보같은 공식이 계속해서 먹혀들어가고 있는걸 보면 참 미국이란 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어느 정도는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래 그럴만해 하며 끄덕이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부분에서도 이 영화를 보며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겨우 스파이더맨 영화에 뭐가 그리 심각하냐고 그냥 잘 날아다니고 악당만 물리치면 그만이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그냥 무작정 파워풀한 영화를 보려면 차라리 여기뻥 저기뻥 터지는 영화를 보는게 낫지 않을까? 분명 되도안한 영웅주의를 설파하고 있는데 거기서 스파이더맨이 얼마나 날렵하게 거미줄을 쏘고 화려한 몸짓으로 건물 사이를 잘 날라다니는지. 그리고 힘이 얼마나 쌔면 기차를 다 멈추게 하나 정도만 봐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것도 무리라고 본다. 차라리 영웅주의 없이 1편처럼 만들었다면 그나마 나는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즐겨 줄 수가 없었다. 거미줄을 쏘고 건물사이를 날라다녀도 그저 삽질하고 있네 라는 생각만 들었다. 단순히 즐기는 오락영화를 욕하는 것이 아니다. 오락 영화라면 오락영화 다워야지 거기다 욕심을 부려서 이것도 집어넣고 저것도 집어넣으면 꼴만 우스워진다. (그렇게 심각하고 싶다면 제대로된 심각한 영화를 만들면 그만이다.) 나는 스파이더맨이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영화라기 보다 샘 레이미의 욕심이 망친 영화라고 보고 싶다. 그가 영웅에대한 뜬구름잡는 찬사만 안했더라도 스파이더맨은 그들의 바램대로 여름 극장가를 시원하게 달궜을지도 모른다. (근데 시원하게 달구는게 말이 돼나?)

위의 사진은 마냐님의 서재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마냐님. 허락없이 가지고 와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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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7-0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디오나 나오면 봐야겠군요.^^ 극장에서 보지 말아야지.^^ 전 토비 맥과이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볼까말까 망설였었는데 보고 온 분들 다 재미없다네요. ^^

마태우스 2004-07-0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이 그러는데 사진 도로 갖다놓으래요. 리뷰 잘 읽었어요. 님의 리뷰는 언제나 촌철살인에다 천하무적이며 별루년년첨록파에요.

플라시보 2004-07-0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빛우주님. 토비 맥과이어는 귀엽더이다. 몸더 1편보다 훨 단련된 모습이구요^^ 토비의 매력은 비디오로도 충분히 느낄수 있을것으로 사료됩니다. 흐흐.
마태우스님. 마냐님이 정말 가져다 노으래요? (뻥이면 만원주기 어때요?^^) 근데 별루년년첨록파가 무슨 뜻이지요? (뭐. 칭찬이 아닐까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지만 당최 뭔 소린지 알아야 칭찬인지 욕인지 파악을 하지요. 하하)

마태우스 2004-07-0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원빵 합시다! 마냐님은 제편이라, 5천원씩 나누어 갖기로 했답니다. 별루년년첨록파는, 대동강물이 언제 마르랴, 해마다 이별 눈물 뿌리는 것을, 이란 시에서 인용한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싯구에요.

플라시보 2004-07-0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냐님이 님의 편이시라는 그 믿음은 어디서 온것인지요?^^

2004-07-09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털이 2004-07-0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는 재밌게 봤는데요~. 뉴욕의 빌딩 사이를 날아다닐 때는 꼭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 탄 기분이었는데 ^^ 그나저나 토비 매과이어는 누가 75년생 서른으로 보겠습니까? 많이 부럽더군요. (졸라 부럽다고 쓰려고 했는데 공공의 장소에서 쓰기엔 부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서...)

하얀마녀 2004-07-0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동먹으라고 강요하는 씬에선 비웃음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마냐 2004-07-0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만원빵에 동의하면..최소한 5000원은 떨어지는 장사...이거 어찌 마다해야 합니까. 흐흐.
그나저나....제 나이브하고 아무 생각 없는 감상문과 질적 차이를 현격히 보이는 엄청 예리한 리뷰입니다.
저두 '미국식 영웅주의' 엄청 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저는 별로 기대않고 극장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때는 '음, 괜찮아' 하고 나왔고..시간이 지나면서 비디오로 한번 더 '휙휙 액션'을 보고 싶다는 이례적 반응까지 나왔으니...아무래도 이건 제가 일관성이 없는 탓인듯 하옵니다. 다시 한번 님의 촌철살인 리뷰에 꾸~벅.

연우주 2004-07-10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도 '송인' 좋아하는데. 이런. 첨록파란 부분이 예술이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나올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 사료되옵니다. ^^;

플라시보 2004-07-1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털이님.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른거죠 뭐^^ 저도 이왕이면 돈 주고 본 영화 님처럼 재밌게 봤더라면 좋았을텐데 부러워요^^ 아. 그리고 토비 맥과이어가 서른인가요? 전 좀 어리게 봤었는데 저보다 한살 많은 주제에 마치 대여섯살은 어린 동생같더군요. 으흑
하얀마녀님. 흐흐. 좀 감동이 억지스러웠던것은 사실입니다. '니네 이쯤에서 감동한번 먹어줘야 하는거 아녀?' 하는 식의 감동은 이상하게 감동스럽다가도 반발심이 생기더라구요. '싫다면?' 하고 말이죠
마냐님. 하하. 역시 돈에 마음이 흔들리고 계시는군요. 그리고 저는 그때 여러가지로 상황이 안좋았습니다. 일단 표를 끊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구요. 또 처음 앉은 좌석에서 뒤에 술먹고 온 잡것들이 하도 의자를 발로 차고 지들끼리 떠들어서 결국엔 사람없는 앞좌석에 앉아서 목뼈가 부러질뻔 했습니다...를 참는다 하더라도 스크린을 괴상한 각도로 올려보니 화면이 제대로 안보이더라구요. 그 탓도 컸다고 봅니다. 안그래도 살짜기 신경질이 발동한 상황이라 영화에 대고 마구 화풀이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 그래도 건물사이를 날라다니는건 시원했습니다. 1편보다 몸이 더 날렵하더라구요. 꼭 고무인간 같이 어찌나 탄력받아 주시던지^^
연보라빛 우주님. 님도 그 시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리고 느닷없음이 마태우스님의 매력..이라고 본인은 생각하던걸요? 하핫^^)
 


슈렉 1편에 이어서 2편이 나왔다. 형만한 아우 없다지만 내 생각에는 아우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형을 능가할 수 있는것 같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슈렉은 훌륭한 아우이다. 물론 슈렉 1편에 비해 다소 신선함은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부모들도 첫째는 혹시 꽉 껴안으면 죽어버릴까봐 쌔게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지만 둘째부터는 안그런다고 하지 않는가.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만 뺀다면 슈렉은 아주 완벽하게 재미있는 영화이다.

슈렉이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디즈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꿈의 왕국이라는 디즈니가 심어준 환상은 예쁜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며 공주는 언제나 멋진 왕자의 구출을 기다리다 키스를 받고는 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산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질기도록 우려먹는 동안 우리는 거의 한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공주니까 예쁜게 당연하고 왕자니까 멋진게 당연하며 잘난 둘이 만났는데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사는 것은 더더군다나 당연의 최상급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미인 대회를 통해서 공주를 뽑는것도 아닌데 어째서 공주는 늘 똑 부러질듯한 허리를 하고 있는 금발 미녀이며 그들의 삶은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만 압축되어서 표현되는 것일까? 의문스러운게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여태 우리들은 넘어갔다. 왜냐? 동화니까. 동화란 원래 그러니까.


그러나 슈렉은 이 부분에 있어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공주가 탑에 갖혀있는것 까지는 구태의연한 동화의 설정을 그대로 빌려오되 여기에 오거 (이걸 괴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틀렸다고 한다. 오거는 괴물이 아니라 괴물의 일종이다. 애플을 과일이라고 번역하면 안되는 것처럼 오거 역시 달리 우리나라 말이 없다면 그냥 오거로 표현해야 한다. 오거는 북구신화에 나오는 몬스터중 하나이다.) 슈렉을 등장시킨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건 당연히 멋진 왕자인데 늪에서 사는 초록 못난이 오거라니.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공주도 우리가 아는 예쁜 공주는 아니다. 물론 얼굴과 몸매는 여느 공주와 비교해서 빠질 것이 없으나 그녀는 매트릭스처럼 공중에서 멈춰 양발차기 라던가 어미 새 터트려서 알 빼앗아 아침식사 준비하기, 뱀을 풍선처럼 불어서 기린으로 만들기 등등 여태 우리가 알아왔던 공주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 엎는다.


슈렉 1편이 마지막으로 뒤엎은 이미지는 공주가 걸린 마법이다. 공주는 마법에 걸려서 밤이 되면 흉측하게 변하는데 왕자의 진실한 키스를 받으면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슈렉과 키스를 하게 된 공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밤에 있었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슈렉은 드림웍스의 뛰어난 그래픽 기술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목소리를 낼 배우들의 선정을 잘 했다. 이미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목소리를 낼 배우를 캐스팅 한 것이 아니라 배우들을 먼저 뽑고나서 그에 맞춰 이미지 작업을 했다. 이는 구강구조와 얼굴모양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내어서 배우가 영 생뚱맞은 얼굴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슈렉과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와 피오나 공주. 에디 머피와 동키는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이제 2편으로 넘어가자. (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2편에서 강화된 것은 캐릭터들의 다양성과 페러디이다. 1편에서도 페러디를 했었지만 2편에서는 더욱 다양해졌다. 피오나가 살고 있는 겁나먼 왕국은 마치 헐리우드를 연상시키고 그 안에는 베르사체리 (베르사체) AIA (AIX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등의 실제 상표를 페러디한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들을 볼 수 있다. 또 무도회장은 붉은 레드 카펫을 까는 칸 영화제나 아카데미 시상식을 떠올리게 하고 동화속의 주인공인 신데렐라 등은 동화로 때돈을 벌었다는 이미지를 주기위해 헐리우드 배우들 처럼 대 저택을 차지하며 살고 있다.


캐릭터 부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은 장화신은 고양이이다. 동키도 훌륭했지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은 고양이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바로 안토니오 반데라스 자신의 이미지를 (영화 속에서 보여준 액션 배우이자 느끼한 미남) 비웃었기 때문이다. 쾌걸조로에 나왔던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칼을 휘두르지만 막상 위급한 상황이 되면 눈동자를 무척 크게 부풀려 귀여운 아기 고양이의 흉내를 내어 동정심을 유발한다. 또 피오나 공주에게 느끼한 표정으로 수작을 부리기도 하는등 고양이의 캐릭터는 보기 드물게 그 목소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이미지를 유머러스하게 차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머릿결에 목숨을 거는 프린스 차밍 아무래도 공주병에 걸린게 틀림없는 요정 대모. 피오나 공주의 부모님. 등등 전편보다 훨씬 다양한 캐릭터들로 승부한다. 다만 1편에서는 동화의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을 했었는데 2편에서는 동화속 주인공들은 많이 사라져서 조금 아쉬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슈렉 2편은 슈렉 1편에게 전혀 부끄럽거나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거의 몇십초 마다 한번씩은 폭소를 터트리게 했으며 더욱 풍부해진 CG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털이나 피오나의 아버지가 입은 벨벳 의상을 훨씬 더 실감나게 표현을 했다. 질감과 색감 그리고 부피감 등의 표현과 그림자나 빛의 각도에 있어서 더할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군중씬 같은 경우 모판때기처럼 일련의 동작값을 가진 존(Zone)을 여기저기 붙인게 아니라 한명 한명 그 움직임의 값을 지정해 주어 훨씬 자연스러운 군중의 모습을 표현했다.


올 여름 내가 가장 기다렸었던 작품이 있다면 해리포터와 슈렉 2였는데 적어도 슈렉 2는 기다릴 만 했었다. (해리포터는 아직 안나왔는데 포스터에서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가 너무 훌쩍 자라 있어서 약간 생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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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0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굼 2004-06-2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렉을 4편까지 만든다던데...디즈니-헐리우드이후에 어떤 것들을 써먹을지 궁금해지네요.

플라시보 2004-06-2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잉? 4편요? 피오나와 슈렉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다가 다시 짝을 만나 결혼하는 와중에 몇몇은 독신을 선언하는 동시에 동성을 사랑했노라는 고백을 하는건 아닐까요?^^

LAYLA 2004-06-2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플라시보님이 제작에 뛰어드심이 어떨지 ㅎㅎ 상당히 흥미진진 하겠는걸요...

마립간 2004-06-2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은 풍자로 가득했지만 주인공은 역시 동화같은 선택을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조금) 우울.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많이 우울

내가 슈렉이라면 피요나를 위해 마법의 약을 마실 수 있을까.
내가 피요나라면 외모를 (그것도 자신의 외모와 남편의 외모를 동시에)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해롤드라면 딸과 사위의 행복을 위해 개구리가 될 수 있을까.

플라시보 2004-06-2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후훗. 그런식으로 제 이름을 노출하시다니욧^^
저 역시 님이 하신 질문에 대답을 할 자신이 없네요. 누군가를 위해 마법의 약을 마시는 것도 외모를 포기하는 것도 (지금의 외모야 포기고 자시고도 없지만 만약 피오나라는 가정하에) 딸의 행복을 위해 다시 개구리로 리턴 하는 것도 전부 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영화 감상문을 쓰면서 한번도 영화 제목 자체에다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감독에 대한 기본 예우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소 제목조차 달지 않은것은 어디까지 귀찮아서 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다 영화 감상문을 쓰는 최초로 이 영화에 만큼은 제목에 손을 댔다. 저녁 7시 30분부터 밤10시까지의 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으며 영화비 13,000원(2인)을 낭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 감독에게 별로 예우를 해 주고 싶지 않다. 영화가 재미 없다 혹은 재미 있다의 차원이 아닌 영화에 대한 감독의 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 내 여자 친구가 찍은 CF를 소개합니다.' 로 바꾸었다. 단지 재미만 없었더라면 나는 분명히 저런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 안노 히데야키라는 감독이 만든 시리즈물인데 나는 그 작품을 몹시 좋아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감독을 존경하기까지 한다. 왜냐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구조상 도저히 나오기 힘든, 그야말로 감독의 똥고집과 영화에 관한 성의와 열정이 없이는 절대 나오기 힘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히나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들은 저마다 거대 완구사 (반다이 같은)의 스폰을 받는다. 스폰의 힘은 실로 막강해서 애니메이션이 나오기도 전 부터 로봇의 디자인에 관여를 하고 스토리를 간섭한다. 왜냐면 그래야 완구회사가 좀 더 쉽게 로봇을 만들어서 (단순한 디자인) 많이 팔기 때문이다. (스토리상 로봇이 중간에 고장이 나서 폐기가 되기라도 하면 안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불사조처럼 계속 적을 무찔러야 한다.)

안노 히데야키는 고민을 했다. 자기가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과 스폰서인 거대 완구회사가 요구하는 애니메이션은 분명 하늘과 땅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노 히데야키는 완구회사가 도저히 만들어서 팔 수 없는 로봇을 등장시켰다. 그게 바로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생체병기이다. 디자인을 잘 보면 알겠지만 그건 애들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제품을 만들어 팔려고 하면 손이 너무 많이가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 극중 주인공인 신지, 아스카, 레이가 조정하는 생체병기 초호기와 1호기 2호기 등은 생체병기라는 이름 답게 관절도 무척 유연해야 하며 네모 일색인 로봇 디자인과 달리 곡선이 많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그걸 완구회사에서 만들어 판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 할 정도였다. 기껏해야 다 만들어진 아주 비싼 초호기를 돈 아까운줄 모르는 오타쿠에게나 몇 셋트 팔 수 있거나 아니면 아예 완구회사에서 그 사업 자체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귀신같은 반다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던 초호기를 만들어서 팔긴 했지만. 그래서 내 동생과 나같은 인간이 며칠이 걸려가며 그걸 만드느라 눈알이 빠질뻔 했지만 말이다. (허나 아무리 귀신같은 반다이라 하더라도 어린이들에게 팔아먹지는 못했다. 에반 게리온의 스토리가 어려워서 애들이 좋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초호기를 만드는 일은 너무도 섬세한 작업을 요해서 애들이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이렇게 길게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 감독에 대해 칭찬을 한 이유는 바로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작품을 온전히 자기 생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작가 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화가가 있다고 치자. 그가 오직 의뢰인들이 원하는대로만 그려 준다면 우린 그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건 탑골공원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예술가라면 그리고 디렉터라면 자기가 추구하는 자기만의 작품 세계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예술가를 이미지화 할때 고집이 쌔고 괴팍하게 그려내는것 아니겠는가. 바로 그 타협을 모르는 외곬수적인 느낌 때문에 말이다.

내가 곽재용 감독의 신작 '내 여자친구를 개봉합니다'의 제목까지 바꾸어가며 비판을 서슴치 않고자 생각했던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그 감독의 최소한의 자기 생각마저 모두 비워내고 오로지 전지현이라는 스타 배우와 그 배우가 찍었던 수 많은 CF작품에 의지하고 있다. 영화는 마치 스타 전지현의 CF를 한때 유행했던 이영애의 하루 (CF를 유달리 많이 찍은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이 비누로 세수하고 LG카드로 쇼핑을 하고 등등의 내용으로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글이다.) 와 다를바 없는 영화로 찍은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무슨 무슨 CF를 찍었는지 짚고 넘어가 보자. 우선 가장 오래되었고 유명한 것은 바로 지오다노라는 의류 브랜드이다. 거기서 전지현의 느낌은 굉장히 터프하다. 그 뒤를 이어 올림푸스라는 디지탈 카메라의 브랜드가 있는데 거기서의 전지현은 내추럴하면서도 귀엽다. 라네즈라는 화장품 CF에서의 전지현은 순수하고 귀엽다. 비요뜨라는 떠먹는 플레인 요구르트 광고에서의 전지현은 엉뚱하면서도 겁없지만 딱 귀여울 정도의 승부욕을 보여준다. 그리고 엘라스틴이라는 샴푸 CF에서의 전지현은 정적이면서도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릿결을 탐스럽게 휘날리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걸 곽재용 감독은 적절하게 짬뽕을 해서 본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찍었다. 단지 이미지의 도용만 이루어진게 아니라 올림푸스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제품을 전지현이 직접 다 사용한다. 물론 영화에서 상품 협찬인 PPL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배우가 직접 그 CF를 찍은 제품을 무더기로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 제품의 CF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의 광고란 어디까지나 배우가 그 제품을 쓰는 간접적인 광고이지 그 제품을 직접 광고했던 배우가 역시 극중에서도 그 CF와 거의 흡사한 장면을 연출하며 그 제품을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곽재용 감독은 그 금기아닌 금기를 깨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자 경찰로 나오는 전지현이 터프하게 총을 쏘거나 차가 폭발하는 배경을 뒤로하고 멋지게 서 있는 장면은 지오다노 CF 같다. 특히나 가죽자켓을 입고 있는건 그대로 지오다노 카탈로그에 집어 넣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꺽어 먹어야 한다는 비요뜨를 광고하기 위해 전지현은 극중에서 남자친구에게는 밥을 차려주고 자신은 굳이 비요뜨 요구르트를 꺽어 먹는다. 엘라스틴 샴푸에서 전지현이 긴 머릿결을 날리며 신비한 미소를 보여주던 장면은 영화에서 전지현이 시도때도 없이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는 장면으로 오버랩된다. 거기다 직접 엘라스틴 린스를 이용해서 범인을 잡아 반항을 못하게 만드는 도구로까지 사용한다. 올림푸스 카메라는 비록 극중에서 등장하진 않지만 장혁과 전지현이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의상과 차마저 올림푸스 CF에 나왔던 것과 거의 흡사하게 갖추고서 광고를 대신한다. 또 장혁과 전지현이 처음 만나서 손에 수갑을 함께 차고 세수를 하는 장면에서 전지현은 라네즈 화장품의 기초 제품을 오래오래 바른다. 대체 세수하는 장면을 왜 저렇게 길게 보여주나 하는 의문은 그제서야 풀린다. 세수를 하고 라네즈 기초 화장품을 톡톡 두들겨 발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게 영화인지 CF인지 충분하게 햇깔린다.

그러나 곽재용 감독은 여기서 실수를 그치지 않는다. CF차용도 모자라서 그는 오로지 전지현이라는 여배우가 가진 근사한 이미지를 위해 스토리를 개판치는 우를 서슴없이 범한다. 전지현이 긴 머리를 날리며 터프하게 총을 쏘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인 그녀는 무슨 특공대원이나 마약사범을 체포하는 특수경찰만큼이나 자주 총을 쏜다. 차라리 설정을 형사로 해 두었더라면 이해가 가지만 대한민국 경찰이 극중 전지현 만큼이나 총을 자주 휘두른다면 시민들은 범죄자보다 경찰을 더 무서워 할지도 모른다. 거기다 전지현의 개인기는 엽기적인 그녀 때 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으나 너무 자주 등장해서 사람을 식상하게 만든다. 그녀의 인상쓰기나 윽박지르기는 무섭다기 보다는 귀여워 죽겠다는 인상을 남기는데 영화 내내 전지현은 연기보다는 그런 개인기쑈를 더 많이 한다.

사실 스토리 자체도 정말 말이 안된다. 극적 긴장감을 위해 죽음이 너무도 많이 또 의미없이 등장하며 심지어는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마저 어설프게 등장시킨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장르가 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로맨틱 코메디도 하고싶고 액션도 하고 싶고 멜로도 하고 싶은 감독은 정말 이 영화 한편에다가 한풀이를 하듯 이것저것 다 삽입을 시켜서 이도저도 아닌 괴물을 만들어 버렸다.

전지현의 CF와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스타성. 그리고 개인기에만 기댄 이 영화가 중국 홍콩등에서 동시개봉 한다는 소식은 참으로 슬프게 들린다. 오죽하면 극장에서 관객들이 나오면서 '엽기적인 그녀'가 차라리 나았다는 소리가 나올까.

전지현은 그나마 연기를 좀 하려고 노력은 했던 4인용 식탁이 쫄딱 망하자 연기를 포기한다. 다시 CF섭외가 줄을 잇게 만들고 단 한편 찍고 자신을 스타중의 스타로 만들어줬던 엽기적인 그녀의 이미지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것 같다. 그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것 처럼 곽재용 감독은 마지막에 차태현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의 파트너) 과 전지현의 깜짝 만남까지 준비한다. 4인용 식탁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갔어도 전지현은 노력하는 기특한 배우가 될 뻔 했으나 쉬운길을 놔두고 내가 왜 외도를 했는지...잠시 미쳤었나봐요라는듯 그녀는 엽기적인 그녀에서보다 훨씬 더 자신의 장점과 정형화된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내가 보기에 이제 그녀가 다음 작품에서 또 다시 미치지 않는한 배우가 되기는 틀려먹은것 같다. 그녀는 그저 CF의 요정자리 정도로 만족할 그릇인것 같다.

물론 모두가 다 배우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그녀의 이름 하나로 이런 수준낮은 영화에 외국 투자사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커다란 파워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파워가 CF와 엽기적인 그녀에 의해 구축되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영향력이 높아진 그녀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작품을 찍는다면 제발 연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 나도 전지현이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내내 그것만 우려먹으며 영화를 찍는다면 도저히 곱게 봐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스타에게 책임감 따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그녀가 책임감을 좀 가지길 바란다. 그리고 곽재용 감독도 정신을 좀 차렸으면 좋겠다. 마치 짝사랑 하는 여자를 데리고 영화를 찍은것 처럼 영화 내내 그녀를 칭송하지 못해 환장한것 같은 영화는 제발 좀 고만 찍었으면 한다.

P.S. 어설프고 유치 찬란한 CG에 대해서는 입도 떼기 싫다. 거기다 서울 하늘을 촬영한 최초의 영화임은 알겠는데 그걸 영화 내내 얼마나 우려 먹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함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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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4-06-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한번 봐보려고 했던 영화인데, 이 정도라면 디비디로도 볼 생각이 사라져버리네요. -_-;

마태우스 2004-06-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리뷰입니다. 님의 리뷰는 영화가 후질 때 더 빛이 나는 듯합니다. 이 영화사에 돈을 댄 투자자로서는 마음아픈 리뷰지만,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보기가 싫어져버렸습니다. 투자한 돈은 날리겠지만, 제 시간을 지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라시보 2004-06-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솔직한 제 심정을 말하자면 누가 비디오로 본다고 해도 1,500원의 본전이 생각 날 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냥 TV에서나 빨리 해 주면 좋겠습니다.^^
마태우스님. 흐흐. 이 영화에 투자를 하셨다구요? 시나리오를 좀 읽어보고 하시질 그러셨어요^^

sunnyside 2004-06-0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생각도 없었지만, 님의 리뷰 읽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네요. 메신저 연결된 사람 중에 닉네임을 "여친소 : 영화 만들기 디게 구찮았던 모냥이네..." 이렇게 해놨더라구요. 영화 만들기 귀찮아서 그냥 CF 를 몇 개 만든 모양이죠? ^^;

플라시보 2004-06-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님과 메신저 연결한분의 말씀이 정답인것 같습니다.^^ 정말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한편의 길고 긴 CF를 찍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갈대 2004-06-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보고 싶은 마음이 싸~악 사라졌습니다. 책임지세요!!^^

호밀밭 2004-06-0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요일날 예매를 해 두어서 보기는 봐야 할 것 같네요. 배우도 감독도 아니라 그냥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예매한 거기는 하지만 조금 마음이 그래요. 장혁이 바람이 된다는 것부터 샴푸 선전 못지 않은 화면을 위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전지현도 거품도 걷고 조금 더 성숙한 배우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을 텐데 신문의 기사들은 여전히 띄워주기로 일관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이 글이 영화 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좋은 오후 시간 보내세요.

플라시보 2004-06-0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어떻게 책임을 지면 될까요?^^ 방법을 알려주시면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책임을 한번 져 보겠습니다. 하하.

플라시보 2004-06-0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 최대한 스토리 노출은 자제를 해서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했지만 혹시나 영화를 보실 님께 누가 되지 않았나 걱정이 됩니다.

마냐 2004-06-0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미 악명이 너무 높아서...전지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말고는 볼게 없다고 해서...포기했던 영화입니다. 곽재용감독은 전지현에게 "난 너의 영화를 찍어주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다는데....그의 애정이 과한건지, 잔머리를 넘 많이 굴린건지..뜻.

플라시보 2004-06-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저는 사실 곽재용이 전지현을 심하게 짝사랑 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고서야 그나마 클래식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던 곽재용이 일사후퇴도 아니고 이렇게나 후퇴를 하며 정신을 못차릴 이유를 찾을수가 없습니다. 흔히 감독들이 지 마누라를 데리고 생각없이 영화를 찍는 것 처럼 곽재용 감독도 감독이 아닌 마치 한 사람의 팬이 전지현을 위해 찍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마태우스 2004-06-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흐음.. 그랬단 말이죠. 전지현이 제 타입이 아닌 저로서는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어지는군요.

로렌초의시종 2004-06-0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려고 했는데...... 이젠 고민 모드네요. 그냥 별 수 없이 트로이로......(사실은 다운받아놔서 그걸로 보려고 했거든요, 스타일의 차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왠지 귀찮아서요^^;)

플라시보 2004-06-0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로이는 안봐서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보다는 나을겁니다.

호밀밭 2004-06-0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맥스무비를 비롯한 이곳저곳에서 봇물 터지든 이런저런 비판의 말이 나오고 있네요. 그래도 볼까 싶었는데 <투모로우>를 보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예매 취소하고 말았네요. 플라시보님이 영화를 잘 꿰뚫어 보신 것 같아요. 모두 30초 CF를 뻥튀기했다고 말들이 많네요. 왜왜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극장판으로 보지는 않겠지만 특별한 CF를 언젠가는 볼 생각이에요. 추석 때 텔레비전에서 해 줄 것도 같고요.

낯선바람 2004-06-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장문의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영화가 그 지경이라니... 하도 선전을 예쁘게 해서 볼까 했는데 이 글 읽길 다행이네요. 역시 독자들 리뷰가 좋습니다. 영화사들은 기를 쓰고 좋은 이미지만 보여주고, 기자들은 그저 띄워대기만 하니 이미지에 혹해서 기사에 혹해서 보러 갔다가 실망하고 분노한 적이 많았죠... 직접 본 사람 말 듣기 전에는 판단하기가 참 어려워요, 요즘 영화들은. 음... 그런 세상이라니... 씁쓸하네요... 그러니 직접 본 사람들이 열심히 알려야죠? 아자 아자^^

플라시보 2004-06-0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 제가 본건 15분 삭제가 안된거구요. 3일부터는 15분 정도 지루한 장면을 삭제시켜 상영한다고 하더라구요. 허나 어떤 15분을 잘랐는지는 몰라도 그거 하나로 저 영화가 CF모음집 이외의 다른 평을 얻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님. 추석때를 기다리세요. 돈 주고 극장가서 보길 권하진 못할 영화입니다.
사수자리님.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요즘 TV에서 해 주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은 너무 중도주의적인 입장이더라구요.
예고편도 예전에는 하이라이트중 조금만 맛배기로 보여주고 진국은 극장에서 확인을 했는데 요즘은 예고편에다 다 집어 넣더라구요. 극장와서 실망을 하더라도 일단 극장에는 오게 만드려는 건가봅니다.

비로그인 2004-06-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모 남성잡지에 여친소를 신나게 까댄 이기자의 글이 실릴 예정이라네. 대충 들어보니 "여친소는 한국영화 관객 1000만 시대에 나타날 각종 병리현상을 우려한 곽재용 감독의 의도된 졸작이자 희생정신의 발로다"...뭐 이런 요지더군.-_- 너무 심해서 데스크가 안받아준다에 한표.

플라시보 2004-06-1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문의 Q님. 혹 G.Q 아닙니까?

비로그인 2004-06-1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고 해도 될지... 의문의Q님님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훗.

플라시보 2004-06-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문의Q님님. (어떻소. 시키면 시키는대로 꽤 잘 하지 않소? 내 몸에는 쇤네의 피가 흐르는듯 하오.) 당대 최고의 럭셔리 매거진인 GQ에 글을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이번달 GQ는 필히 사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