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쓰리 몬스터는 촬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부터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책을 읽어도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하고. 드라마 보다는 베스트 극장 같은 류의 단막극을 좋아하는 나 이기에 영화에 있어서도 이렇게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섯개의 시선'이랄지 혹은 '기묘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총 3개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의 '컷'. 두 번째는 일본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 세 번째는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의 '만두' 이다. 아시아 3국의 감독들이 모여서 만든 쓰리 몬스터는 각각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악마성을 드러낸다. 인스턴트 커피 광고처럼 '내안에 악마가 들어있다.' 인 것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자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일 것이다.

                 



쓰리 몬스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올드보이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컷이다. 이병헌, 강혜정, 임원희가 주인공이다. 이병헌은 감독이며 강혜정은 그의 아내. 그리고 임원희는 이 두 사람을 위협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겉으로 드러나 있는 악마이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감독. 그의 집은 마치 궁궐같다.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되고 눈을 떠 보니 자기가 찍는 영화 셋트장에 와 있다. 이 셋트장은 자신의 집과 똑같이 지어놓은 곳인데 거기서 찍는 영화는 벰파이어 영화이다. 아무튼 눈을 떠 보니 아내 강혜정이 피아노줄에 꽁꽁 묶여있고 임원희는 감독에게 어떤 요구를 하며. 그 요구가 들어지지 않을 때 마다 피아니스트가 직업인 아내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참 잘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영화 세 개를 짧은 러닝타임에 다 담으려다 보니) 그가 좀 더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영화를 보통의 러닝타임으로 갔더라면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우리에게 충분히 여러가지 모습을. 감독이 의도한대로 다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캐릭터는 임원희. 나는 사실 연극을 오래 한 배우들이 영화에 진출하는 것을 그리 달갑지 않아하는 편인데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송강호나 최민식 모두 연극을 먼저 했던 배우들이다.) 임원희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그의 연극톤 대사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마치 셋트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설정도 감독의 집과 똑같이 만들어진 셋트장이긴 하다.)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즉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나온다. 거기에다 이제는 아주 제대로 하는게 정석이 되어버린 사투리를 (아마 영화 친구가 효시가 아니었나 싶다.) 임원희는 옛날 얼치기 식으로 표준어 억양 그대로 둔 채 했시유우~ 그랬구먼유우~ 만 반복한다. 충분히 잘 만들수 있는 영화였는데 어쩌면 여기서 임원희는 미스 케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뭐 감독이 어차피 그 모든 상황을 연기처럼 보이기로 작정을 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처음 영화가 시작할때 염정아가 잠깐 등장하는데. 감독의 집과 똑같은 셋트장에서 드라큐라 영화를 찍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녀. 연기를 너무 잘한다. 느끼하고 끈적한데 어딘가 모르게 코믹한 분위기를 낸다. 같이 본 친구와 그런 얘기를 했었다. 염정아는 몸이 참 기괴하다고. 말라도 그냥 마른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자양분같은걸 다 빨리고. 그러고 나서도 악으로 깡으로 살아있는 육신 같다고. 어쩌면 그녀의 살집하나 없고 약간 섬찟한 얼굴도 이 이미지에는 한몫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기괴한 육신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역활이었다. 그녀보다 더 흐느적거리며 걸을 수 있는 여배우는 없으리라..

                                         


다음은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 3가지 영화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약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인데 너무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뻔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마지막 장면까지도 다 추측이 가능한 영화로 끝부분에 반전을 주려고 했지만 그 반전은 관객들에게 '오오..' 하는 반응을 일으켰다기 보다 '장난치냐?'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킬 뿐이었다. 물론 반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세밀하지 못한 장치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서커스 공연을 하는 두 자매가 있다. 의붓 아버지와 공연을 하는 이 자매는 (의붓 아버지라는 것은 영화를 소개한 글을 보고 알았지 극중에서는 어디에도 의붓 아버지라는 설명은 없다.)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다. 하지만 의붓 아버지는 언제나 첫째. 즉 주인공의 입장에서 볼때 언니만 이뻐한다. 질투를 느긴 주인공은 어느날 언니를 상자에 가두어 버리고 실수로 의붓 아버지와 언니를 모두 죽게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가 재미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말한것 처럼 너무 진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설정 자체도 일관성이 없고 어떤 해설도 없다. 한마디로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이다. 관객이 볼때는 이러하다고 느꼈는데 극중 배우들은 '실은 이러이러했던 것이야' 하며 딴소리를 해댄다. 대체 어떤게 실제고 어떤게 환상인지도 모호하다. 이미 빅피쉬에 나왔던 쌍둥이 자매들을 보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어설픈 쌍둥이들은 실소만 자아낼 뿐이었다.

쓰리 몬스터의 마지막 영화는 프루트 챈 감독의 '만두'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고 또 끔찍했다. 친구와 나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스탭들의 이름을 보면서 계속 '오오' 했었는데 촬영은 왕가위감독과 짝을이뤄 동사서독, 타락천사, 중경삼림등을 찍었던 크리스토퍼 도일이며 배우 양가휘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제작인가 누군가의 이름도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세 편의 영화 중에서 내용면이나 영상미 그리고 효과 및 장치가 가장 좋았던 영화였다. 다만 좀 많이 끔찍했다.

젊은시절에는 배우였던 주인공. 그러나 늙은 요즘은 젊은 여자들과 놀아나는 남편 (양조위)이 위로 차원에서 끊어주는 수표나 받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 메릴 스트립이 그러했듯. 그녀도 젊음의 묘약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두를 만나게 된다. 그 만두를 먹으면 젊어진다는 얘기에 그녀는 만두를 먹는다. 만두의 재료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끔찍한 생각에 도망을 가지만 그녀는 다시 만두를 먹게 된다. 어떤 공포나 끔찍함도 그녀의 젊음을 향한 욕망보다는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했으니 영상이야 더 말할것도 없다. 끔찍하고 잔인한 영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듯. 그러나 결코 우중충하지 않은 색감으로 잡아낸다. (화려한 색감인데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것. 한없이 우울하고 쳐져있지만 색깔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밝은것. 그게 바로 크리스토퍼 도일이 가진 마술같은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슬펐던건 한때 내가 좋아했던 배우 양가휘가 너무나 늙어버렸다는 것이다. 머리도 하얗고 (물론 염색이겠지만) 배도 살짝 나와주시고 (옷을 좀 나이들어 보이게 입긴 했다.) 아무튼 내가 알던. 동사서독에서의 멋진 그는 아니었다. 거기다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시커멓게 나오는지. 베드신 마저도 나이가 드니 추하기 그지 없었다. (연인에서의 그는 절대 추하지 않았다.) 내 친구와 나는 늙어버린 양가휘를 보며 저절로 한숨을 쉬게 되었고 영화가 끝난 다음. 한참 그에게 열광하던 우리 역시 20대가 아닌 30대에 더 가가워졌음을 거울을 보며 실감했다.

누군가. 이 영화를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번쯤 보길 권하고 싶다. 단 영화가 꽤나 길다. 6시 50분 영화를 봤는데 다 보고 나니 거의 9시가 다 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넉넉하게 무언가를 먹고 들어가서 보길 바란다. 영화관에서 뭘 먹거나 끝나고 난 다음에 먹겠다고? 글쎄다. 비위가 좋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도하지 않길 권한다. 특히 제일 마지막 편 '만두' 를 보고 나면 냉동실에서 만두국이나 군만두가 되기 위해 한가득 쌓여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처치하지 하는 걱정마저 된다. 만두 파동에 이은 제 2의 만두 수난시대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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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8-22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효주님. 감사합니다. 음...이 영화 원래 생각이 별로 없으셨다면 비디오로 보셔도 무관할것 같습니다. 굳이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영화관에 가서 꼭 봐' 라고 추천할 만하지는 못하다고 할까요? 아무튼. 영화가 꽤나 깁니다. 그리고 제가 끝에 말씀 드렸듯. 뭔가를 꼭 다 먹고 보세요^^ (아. 그리고 너무 과하게 칭찬을 하셔서...부그럽습니다.^^)

털짱 2004-08-2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의 스토리를 말한 것도 아닌데, 영화를 본 것처럼 관객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네요.^^

플라시보 2004-08-2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그럼 저... 그 몹쓸것이라 알려진 스포일러인가요? 으흑..

털짱 2004-08-2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예요. 영화는 하나도 안보고 느낌만 생생히 전달-! 마술같은 리뷰였습니다.^^

RainSmile 2004-08-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봤답니다~ 박찬욱감독을 너무 좋아하는 터라... 단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는.. ^^;; 임원희가 사투리도, 전 충청도 사투리를 잘 몰라서그런지 별로 안튀던데요~ 흐, 그런데 경상도사투리로 나오는 영화나드라마는 대부분이 어색그 자체! '친구'에서는 사투리 대략 잘 하긴했지만 그래도 오바하는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암튼, 영화보기 전에 밥 안먹고 봤는데, 영화보고 나와서도 친구들이랑 아무것도 안먹었다죠~ㅡ,.ㅡ!! 정말 좋지 않음.

치니 2004-08-2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도 만두 파동 2탄에 합류하게 될 것 같습니다. 길가에 있는 만두집만 봐도 영화가 떠올라서, 도저히 먹고픈 생각이 안들어요. ㅠㅠ

플라시보 2004-08-2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후훗 감사 감사^^

RainSmile님. 음..님도 보셨군요. 저는 사는 지역이 지방이라서(충청도는 아니지만) 사투리에 대해 좀 민감한 편입니다. 수도권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못드셨다니 배고프셨겠어요. 영화 보기 전에 저처럼 미리 드셨으면 좋았을것을..^^

치니님. 후훗. 특히나 핑크빛이 약간 돌아주시면 더더군다나 못 먹을것 같아요... 영화보고 음식으로 고생한건 예전에 301.302 이후 이게 두번째인것 같습니다.

흰 바람벽 2004-08-2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비됴로 <범죄의 재구성>을 봤는데요.
이상하게 염정아가 매력있더라구요.
그래서 보고나서도. 머릿속에 염정아가 자꾸 떠오릅니다. 무슨이유일까요.. 여튼 묘한 매력이 있는건 확실한거 같습니다. 그 전에는 참 별로였는데..

<<<염정아는 몸이 참 기괴하다고. 말라도 그냥 마른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자양분같은걸 다 빨리고. 그러고 나서도 악으로 깡으로 살아있는 육신 같다고. 어쩌면 그녀의 살집하나 없고 약간 섬찟한 얼굴도 이 이미지에는 한몫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기괴한 육신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역활이었다. 그녀보다 더 흐느적거리며 걸을 수 있는 여배우는 없으리라..>>>

역쉬~ 대단한 글실력이십니다.
어쩜 이리도 가려운 곳을 잘도 벅벅 긁어 주신답니까.


플라시보 2004-08-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 바람벽님. 흐흐. 예전의 염정아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키크고 늘씬한 타입이었죠. 얼굴에 젖살도 많아 좀 귀여운 타입이었구요. 어찌보면 귀엽고 복스럽다까지 갈 뻔 했는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바짝 바짝 마르더군요. 본인이 다이어트를 한 결과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염정아의 이미지라는 것이 생긴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뭐랄까 그냥 흔한 미인? 미스코리아 출신이라 길이는 긴. 그리고 약간 오동통한 얼굴을 가진 여자 정도였죠. 그리고 목소리도 살이 빠지고 부터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저음으로 변해서 확실하게 자기 이미지를 정립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루아침에 이뤄진건 아닌것 같구요. 그녀의 노력이 가상할 뿐입니다.^^ 아. 그리고 범죄의 재구성에서 염정아. 괜찮았죠?^^ 이 영화에서도 짧게 나오지만 염정아 끝내줍니다.흐흐

비로그인 2004-08-2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금방 이 영화 보고 들어왔는데.. 저한테는 상당히 껄끄러운 영화였어요.
사실 컷이나 만두는 너무 잔인해서 그랬고 박스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가서 불편했어요. 그리고 컷에서 이병헌의 연기는 참 좋았는데 선혈이 낭자한 피아노 주위를 보고 있자니 낮에 먹은 고기들이 절로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마지막 만두는 정말 너무너무나 끔찍해서 거의 반쯤 눈을 감고 봤어요. 설마 내 안에도 그런 악마성이 존재할까 싶었죠. 참고로 영화 보는 내내 관객들이 반쯤 경악하고 몇몇은 나가버리고 그랬었죠. 만두 마지막에 여자 주인공이 욕조에서 스스로 낙태하고 혀를 낼름 내밀때.. 우욱.. 정말..
영화 끝나고 나와서 같이 본 사람들 쌈밥집 들어가서 맛있게 밥먹는데 저 혼자 밥도 못먹고 메스꺼워하고 있었답니다. <쓰리 몬스터> 정말... 뭐라 말하기 힘든... 영화였어요... ㅠㅠ

플라시보 2004-08-2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마음처럼님. 저에게는 그런 영화가 301.302였더랬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 봤는데 며칠을 밥을 못 먹어서 고생했더랬어요. 먹는것 그 자체를 끔찍하게 다룬 영화라서 더 그랬던것 같아요. 님도 고생하셨네요. 후유증이 오래가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비누발바닥 2004-09-2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이해를 못해서인지 재미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하지만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더욱더 보고 싶어지네여~~
그리고 영화를 보는듯한 님의 글솜씨가 너무 부러워요~~!
 

며칠전 나와 친구들 두 명이서 이 영화를 봤다. 전작인 로드무비를 너무나 괜찮게 보았기 때문에 그 감독의 신작은 꼭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친구1. 영화잡지 프리미어 기자인 동생이 추천했기 때문에 봐야겠다고 생각한 친구2와 달리 나는 김혜수가 보고 싶었다. 그녀가 이 영화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전작인 미스터 콘돔, 닥터 봉, 신라의 달밤, YMCA야구단 처럼 꼭 그녀가 아니여도 상관없었을 작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김혜수라는 여배우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한때는 그녀가 참 천박한 이미지를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녀의 과감한, 펜슬을 들고 단박에 화악 그려재꼈을것 같은 갈매기 눈썹. 삐에로처럼 크게 그린 입술. 여배우치고는 다소 풍만한 육체까지 나는 그녀의 이미지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를 다시 본 것은 김혜수의 플러스 유 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였다. 그녀는 말을 잘 했다. (물론 그녀의 이전 주자였던 이승연이 한수 위였지만) 그녀의 매끈한 말솜씨를 듣고 있자니 자기 이미지와 달리 다소 아기같았던 그녀의 목소리마저 나쁘지 않게 들렸었다. 그 이후 그녀는 고만고만한 TV드라마를 했고 (노희경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극 장희빈에서는 아기같은 목소리 대신 낮고 카리스마 있는 저음의 목소리와 안그래도 큰 눈을 똑바로 부릅뜨고 정말 열심히 연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하야 나는 김혜수라는 배우를 조금씩 재평가 하기 시작했다. (이 재평가는 물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이뤄진것이었다.)

얼굴없는 미녀에서의 김혜수는 완벽했다. 연기로나 비주얼로나 그녀가 보여 줄 수 있는 베스트의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경계성 장애(누군가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신착란을 일으킴)를 겪고 있는 극중 지수는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과감한 악세사리와 파격적인 옷차림 (노출로 인한 파격보다는 디자인과 색으로 승부한다.) 을 100% 소화한다. 원석의 알록달록하고 큼지막한 목걸이와 반지. 엄발란스하면서도 과감한 컷의 의상들. 과연 이걸 입어서 김혜수만큼의 느낌을 낼 사람이 대한민국 여배우 중에서 누가 있을까 싶다. 거기다 과장되어 있는 화장과 선글라스만 끼면 '인궈니 라이프!' 하고 외칠것 같은 수세미같은 헤어스타일까지. 정말이지 김혜수는 도저히 소화하기 힘들것 같은 지수의 외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 주목할것은 김혜수의 허스키하게 쫙 가라앉은 매마른 목소리다. 김혜수의 목소리는 사실 굉장히 앵앵거리는 고음이다. 경계성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가 그런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 한다는 것은 분명 어색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극중 인물때문에 목소리를 변화시킨이가 없었던건 아니다. 실패하긴 했지만 [4인용 식탁]에서의 전지현 역시 가라앉은 저음을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전지현의 목소리가 조금 미숙했다면 김혜수의 목소리는 세월의 관록이 묻어있는듯 하면서도 상당히 복잡한 느낌을 준다. 물론 요즘 영화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치는것을 보면 마치 영화가 아닌 실제에서 대사를 치는듯 현실적인데 비해(류승범, 공효진, 이나영, 양동근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너무 작위적인 나머지 우스꽝스러웠던 부분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김태우도 나름의 열연을 했지만 김혜수에 비해서는 많이 가려지는 느낌이다. 김혜수가 연극을 했다면 김태우는 연기를 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나는 두 사람이 그다지 멋진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성숙미가 뚝뚝 넘쳐 흐르는 김혜수에 비해 김태우는 선이 좀 약한 편이다. 따라서 김태우의 연기가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김혜수와 동시에 잡히는 샷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그건 연기력때문이라기 보다는 비주얼적인 면에서 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간 처진눈의 김태우는 복잡하기 보다는 선해 보인다.) 극중 김태우가 소화해내야 하는 인물 역시 상당히 복잡한 내면을 보여줘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선한 그의 얼굴에서 그런면을 표현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김태우는 유달리 눈빛이 약한 연기자인데 얼굴없는 미녀에서는 눈빛이 더더욱 약해 보였다.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도무지 극중 인물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영화에 대해 럭셔리니 어쩌니 하는 것도 바로 그런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주얼도 끝내주고 영화적 장치도 완벽했지만 정작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의 내면이 없다. 그건 마치 너무나 잘사는 사람들이 '인생이 심심해서 미치겠어' '돈을 써도 감출 수 없는 이 공허함을 어쩌란 말인가' 하는 외침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대부분 먹고 살기 힘들고 사는게 기쁨의 연속만은 아닌 일반인들은 극중 지수나 석원(김태우) 처럼 되기 힘들다. 즉 적당한 정도의 아픔은 있어도 없는 척 할 뿐 아니라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지수나 석원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면이 너무 많다. 아하. 이래서 그녀가 이렇게 되었구나 혹은 그래 그정도면 그가 그렇게 될만 해 같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너무 비주얼과 이미지에 치우친 나머지 극중 배우들은 관객과의 소통에는 실패한다. 이것은 시나리오상의 문제이기도 하며 영화의 네러티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비주얼과 네러티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작품으로는 '더 셀' 이라는 외국 작품과 우리나라의 작품이라면 '정사' 와 '스캔들' '장화홍련'을 들고 싶다. 이 네 작품 모두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비주얼 세계를 창조했으며 그 멋진 비주얼 만큼이나 썩 괜찮은 스토리와 구성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하지만 얼굴없는 미녀는 비주얼 면에 있어서는 위의 작품들과 충분히 견줄만 했지만 스토리나 구성에 있어서는 많이 뒤쳐지지 않았나 싶다. 디자인이 괜찮다고 해서 그 물건의 성능이 조금 떨어져도 괜찮은건 아니다. 디자인이 아름답기 위해 사용하기 불편하도록 만들어 놓았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디자인과 실용성은 함께 상호보안을 해야 하는 존재이지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비주얼을 위해 스토리를 포기할 수도 없고 스토리를 위해 비주얼을 포기하다가는 눈이 높아진 관객들의 미학적 욕구를 도저히 만족시켜 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때 얼굴없는 미녀는 몹시 아쉬운 작품이었다. 조금만 더 스토리와 극중 인물들의 내면에 포커스를 잘 맞췄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영화가 친절하기라도 했더라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 장면 하나 하나에 감독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가 느껴진다. 화면의 구도, 색상, 조명, 소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배우들마저 완벽한 미장센을 이룬다. 우리나라 감독들이 잘 쓰지 않는 분명한 색의 대비는 그가 얼마나 조명과 색상에 자신감이 붙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상당히 아쉬웠지만 이 영화를 본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금방 보고 나서는 조금 실망을 했지만 곱씹을수록 괜찮은 영화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영화가 통째로 이렇게나 분명하게 내 머리속에 남아있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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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ool 2004-08-0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형이랑 슈렉2를 보러갔는데 예고편에서 이 영화가 나오길래 좀 당황했어요. ^^;;; "인궈니 라이프" 헤어스타일 봤지요. ^^ 감독이 김혜수에게 최대한 건조하게를 강조했다던데... 그 느낌이 잘 살았나요? 어쨌거나 김혜수는 특유의 강한 느낌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는 것 같지만.. 뭐.. 다 지가 만든걸테니 할 수 없지요.. 헌데.. 그동안은 납작하거나 말거나 손도 안대고 있던 코 라인이 좀 달라진 것 같던데... 안 그래 보이시던가요?

마태우스 2004-08-0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제가 아는 분 중 영화평을 가장 잘 쓰세요.

플라시보 2004-08-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는 잘 모르겠구요. (유심히 안봐서..흐흐) 전반적으로 지방흡입과 바스트쪽을 손본것 같더군요. 들리는 소리도 그러하고... 아무튼 진형이가 예고편을 보고 놀랐을것을 생각하니 맘이 아프네요. 흐... 김혜수는 건조하다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구요. 뭐랄까 예고편에서 '난 할말이 아주 많은 여자에요' 라고 말한 딱 그 느낌이였어요. 뭔가 비밀이 많을것 같은 여자.^^

마태우스님. 히..농담이시죠?^^

sooninara 2004-08-0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저도 이영화 봤는데요..전 이렇게 후기 못쓰는데..꼭 님이 제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듯이 쓰셨네요^^ 영화가 멋있긴한데..2%가 부족한것이..마지막에 속이 좀 헛헛하다고나 할까..볼만은 한데..권할만하진 않더군요..

플라시보 2004-08-0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nninara님. 저와 생각이 비슷하셨나보군요. 흐흐. 음. 저는 권할만하지는 않다기 보다 그냥 너무 기대를 하지 말고 보아라 정도? 아무튼 2% 부족하고 속이 헛헛한 영화였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마냐 2004-08-0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니...이게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쓰고 싶었던 평이라니까요...님은 언제 제 속마음을 훔쳐보시구...ㅋㅋㅋ

플라시보 2004-08-0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냐님 제가 독심술을 좀 합니다. 그래서 얼른 님의 맘을 훔쳐보았더랬지요.^^

비누발바닥 2004-09-2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는데....제가 쓴글이 초라해보이네요....ㅠㅠ
 

세상에는 두 가지의 영화가 존재한다. 첫째는 보고싶은 영화. 그리고 둘째는 봐야만 하는 영화. 마이클 무어의 신작 화씨 911은 후자. 즉 꼭 봐야만 하는 영화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가 봐야하는 동시에 보고싶기도 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110분 내내 마이클 무어 감독은 나를 비롯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었다. 다만 옆관에 개봉한 '그놈은 멋있었다' 와 '늑대의 유혹' 같은 위대한 인터넷 소설가이신 귀여니님의 원작영화에는 사람이 미어 터졌으나 나와 내 친구가 앉아있는 화씨 911 상영관은 객석이 50%도 차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주연이 묻는다면 조지 W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이 나온다고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영화내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러나 퍽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 뭐 스쳐지나가긴 하지만 로버트 드니로와 벤 애플렉, 스티비 원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기라성같은 스타들은 부시 대통령에 비하면 조무래기 조연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뭐니뭐니 해도 부시의 영화이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자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진 미국이 현재 어떤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놓았는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어떤 부적절한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었는지 부터 출발한다. 그 이후 재벌가의 아들네미이나 회사를 말아먹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 보이던 부시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간다. 또 영화에는 부시를 비롯한 부시 일가족이 빈 라덴 일가를 비롯한 중동지방의 재벌이나 왕가와 얼마나 절친하고도 돈독한 사업 파트너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911테러. 911테러직후 모든 비행기가 이륙이 금지된 상황에서 단 한대의 비행기가 뜬다. (공항에 발이 묶인 라틴팝 스타 리키마틴의 잘생긴 모습도 보인다.) 이 비행기에 부시나 혹은 부시의 아버지이자 전직 대통령이 타고 있었냐고? 아니다. 이 비행기에는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아무튼 여타 이유로 미국에 남아있던 빈 라덴 일가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FBI의 조사를 받지도 않았으며 FBI의 최고 실력자 조차 도대체 누가 그 이륙을 허락했으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이후 영화는 부시의 전쟁놀이에 촛점을 맞춘다. 이라크 전쟁에서 가난한 계층의 병사들이 죽어간다. 그들은 가족에게서 보낸 편지에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겠으며 미친짓'이라고 한다. 부시는 그들을 독려하는 척 하면서 그들에게 지급될 월급과 예산을 삭감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마치 미국국민들에게 테러로 부터 절대로 안전하지 못하고 여러분은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심어주면서도 미국경 해변에는 예산 삭감으로 인해 단 한명의 보초만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군인들을 모집하고 이라크로 보내서 죽음을 당하게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석유 즉 돈 때문이다. 기업가도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과연 돈때문에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게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학교 다닐때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민주적인 국가이며 가장 힘이 쌘 나라로 배웠던 미국에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얼마전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가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마치 칸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을만한 작품이 올드보이인 것 처럼 들뜬 취재를 했으나 칸에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칸에서의 분위기는 오히려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큐멘타리 영화 화씨 911에 집중이 되어 있었었다. 비록 우리나라 중에서도 내가 살고있는 이 도시에는 멀티플렉스에서 다른 영화들이 개봉관 3개씩 잡을때 단 한개를 잡고도 관객 점유율이 50%를 채 넘지 못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 영화의 단점도 존재한다. 마이클 무어는 교차편집을 이용해서 부시를 비열한 바보로 만들었다. 부시가 한 짓이 비열하고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이 교차편집 덕분에 부시는 때론 멍충이로 때론 비열한으로 보였다. (이 교차편집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전 비슷한 교차편집을 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생각이 났다.) 조금만 더 중심을 잡고 서서 평가는 관객들에게 내리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마이클 무어는 부시에 대해 너무 열이 받은 나머지 영화를 본 단 한명의 관객도 부시편에 서는 것을 볼 수가 없었나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마이클 무어식의 유머와 비꼬기는 재밌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좀 유치하다는 것을 숨기기가 힘들다. 그러나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맹률과 교육수준이 낮아 국가가 마음대로 부리기 딱 좋을 만큼 심하게 어리석은 미국 국민들에게 부시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빨리 알리려면 저 방법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부시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보다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놀라웠었다. 세상에서 가장 파워있는 나라의 대통령. 그 대통령을 한마디로 씹을 수 있는 영화. 우리 나라에서도 가능할까? 대통령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막강한 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실체를 보고 또 그걸 씹어댈 수 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그런짓을 하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갈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타리 영화이긴 하지만 화씨 911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배우와 헐리우드 특수 효과가 등장하는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헐리우드 대작들은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화씨 911은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일인데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고? 우리도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 왜냐고? 미국이 원하니까. 미국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나라가 아니다. 가장 손쉽게 생각하면 3.8선을 그어준 나라가 미국이다. 어쩌면 미국 국민들 다음으로 이 영화에 주목을 해야 할 국민들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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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08-0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보려고 했는데 이미 내려서 못 본 영화... 아니, 목요일에 올라오곤 벌써 내려? 하고 황당해 했었죠. 저는 보는 사람들이 넘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보군요. 다운이라도 받아서 봐야겠습니다.

클리오 2004-08-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씨 9/11. 넘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꼭 영화관에서 볼랬는데, 제일 시설이 낙후한 곳에서 하더군요. 어쩌나 고민입니다. 그리고 막내리기도 직전이구요. 흑. 비디오가 나오길 기다려야 하나.

플라시보 2004-08-0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벌써 막을 내렸나요? 아쉽네요. 할 수 없죠 뭐 비디오라도 꼭 보세요. 안그래도 보고싶어 하셨다니... 아마 실망스럽지는 않을겁니다.

clio님. 그러게요. 전미 흥행 1위 영화 중 아마 가장 적은 개봉관수와 열악한 시설에서 (특히 지방의 경우) 개봉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막을 내리기 전에 봤습니다만. 참 여러군데에서 막을 빨리 내려버렸군요. 님도 비디오로라도 꼭 보시길..

마냐 2004-08-03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훌륭한, 게다가 무진장 재밋는 영화를 벌써 막을 내린 동네가 있답니까? 투덜투덜...아참, 리뷰는 투덜 아니구...히죽히죽..좋슴다~ ^^

플라시보 2004-08-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는 거의 다 막을 내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ijeda 2004-08-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마이클무어가 이번 미국대선에서 부시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자신이 직접 말했죠... 교차편집이고 뭐고 마이클무어 눈에 뵈는게 없죠...
부쉬가 이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라는 질문에 "영어잖아요? 쉬워요"
라고 말하는 무어의 재치가 부럽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포스터 부터가 상당히 자극적이다. 약간 느끼한 웃음을 띄고 단추를 심하게 풀어헤친 이병헌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고양이 같은 눈빛의 추상미가 오른쪽에는 좀처럼 도발적인 매력을 보여주지 않았던 최지우가 이병헌의 가슴에 손을 넣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 앞에는 등에서 엉덩이까지 완만한 S형 곡선의 몸과 긴 목선을 자랑하는 김효진이 있다. 이 포스터 속의 한 남자와 세 여자는 무슨 관계일까? 서로 사랑하는 사이? 삼각관계? 맞다. 얼추. 그러나 이들 넷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세 여자가 서로 자매지간이라는 것. 그녀들은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첫째로 나오는 추상미는 극중 유부녀이긴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인 것이다.

카페에서 재즈싱어로 일하는  미영(김효진)은 어느날 멋진 남자 수현(이병헌)을 만나게 된다. 나름대로 연예도사인 미영은 점점 수현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수현은 둘째인 선영(최지우)과 첫째인 진영(추상미) 와도 짜릿한 연예를 즐긴다. 진영과 선영. 미영은 서로 서로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용만 봤을때는 완전 콩가루 집안이다. 미영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자매는 수현이 동생의 애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매력에 주저없이 달려든다. 특히 눈치가 빠른 진영은 수현이 선영과도 심상치 않은 관계임을 알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못한다. 대체 얼마나 매력이 철철 넘치길래 동생의 애인과 혹은 동생들을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하게 하는것은 여자에 따라 공략법을 달리하는 잘난 남자 수현이 있기에 가능하다. 도발적인 미영에게는 섹스어필함과 기죽지 않는 당당함으로(여태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다 질질 매달리고 미영의 말이라면 뭐든 다 잘 들었었다.), 오직 공부만 들고 파서 아는거라고는 책에서 읽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순진한 선영에게는 지적인 분위기와 로멘틱함으로, 마지막으로 이미 남편과의 결혼에서 점점 무료해지고 있는 진영에게는 짜릿한 일탈을 꿈꾸게 한다. 현실적으로 저런 바람둥이가 있을까 싶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정신 못차리지만 않는다면 그렇다면 당신도 나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타입의 사람인가를 알아서 적절하게 공략하는것. 여기에 어느정도 매력적인 외모만 같추어져 있다면 일은 더욱 손쉽다.

사랑은 당기면 밀려나고 밀면 당겨온다. 이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진리이다. 그런데 왜 못하는가! 알다시피 사랑을 하게 되면 이성이고 지성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 오죽하면 눈에 콩깍지나 부침개가 씌인다고 표현을 하겠는가. 평상시에는 뻔히 보는 사실마저 보지 못하고 다 아는것 마저 모르게 되는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수현이 저 세 자매를 녹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동시에 모두 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눈멀고 귀멀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게 아니라 어떻게건 나에게 넘어오게 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아무도 플레이보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뻔히 바람둥이인줄 알면서 왜 넘어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게 또 바람둥이들의 매력이다.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것. 그건 바로 사랑에 눈이 멀지 않았기에 밀고 당기는 기술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입으로는 '바람둥이가 제일 싫어' 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바람둥이가 작업 들어오면 마치 뭐라도 씌인것 처럼 넘어가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면서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걱정이 되었다. 감독이 너무 일을 많이 벌려놓는거 아닌가 싶었다. 셋째 미영은 수현을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하려고 들고 선영은 펑펑 울 정도로 그 남자를 좋아하며 진영은 그에게 따지러 갔다가 그만 그를 덮치게 된다. 이걸 어떻게 다 수습할 것인가 하고 보는 내가 다 걱정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 꽤나 멋지구리하고 유쾌하게 결말을 잘 맺는다. 물론 약간의 불만은 있지만 어차피 이 영화가 가벼운 코메디를 지향하고 있는 바. 사랑에 관한 진지한 고찰과 심각한 결론을 제공 해 줄것이라 믿지 않는 한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모두가 즐겁고 가벼워 지는 것. 그게 바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고 세 남자를 만난 후 변한 자매들을 보여주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수가 없다. 솔직하게 말 해보자. 지금 당신이 당신의 연인에게 하는 행동중에 전에 연인에게서 배웠거나 혹은 전에 애인과 함께했던 행동이 없는가? 나는 아주아주 많다. 세상에는 오직 '그' 하고만 해야 좋은 무언가 따위는 없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아니건 간에 다 좋은거다. 물론 아니라고 굳게 믿고 싶겠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는데 내내 앞줄에 앉은 수녀님 3분이 무지하게 걸렸다. 친구와 나의 대화이다.

친구 : 야. 신부수업 봐야 하는데 잘못 들어온거 아닐까?

나 : 아. 수녀님들 오늘 상당히 하드한 초이스를 하셨구나. 많이 야하지 말아야 할텐데...

종교인들을 우롱할 생각은 절대 아니었으나 왠지 엄숙하고 정숙한 수녀님들에게 세 자매가 한남자와 모두 사랑을 하는 (더 적날하게는 잠자리를 하는) 영화가 좀 거시기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뭐 매체에서 떠는것 만큼 야하지는 않았다. 베드씬들이 모두 적당히 코믹한지라 숨막히는 에로티시즘 같은건 전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지우의 베드씬이 제일 웃겼다. 역시 책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현시대의 포르노그라피가 얼마나 남성 판타지 중심으로만 이뤄졌는지를 살짝 비꼬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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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7-3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많아요..아직 다 써먹어보지도 못 한걸요.
바람둥이들이 좋은 이유가 한번쯤 데리고 놀아도 부담없다는 건데 걔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죠. 포스터 보면서 웃고 있는 이병헌이 참 처량해 보였는데...영화를 못 봐서 내용은 잘 모르겠네요 .. 님의 글을 읽으니 한번 보고싶다는 ^^;;

sooninara 2004-07-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유럽영화인가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던것 같아요..
이차세계대전 끝나고 한남자를 사랑하는 세자매이야기..어디서 봤지?
플라시보님은 추천이란거죠? 보고 싶당...

로렌초의시종 2004-07-3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아마 그 영화는 어바웃 아담이란 영화일 꺼에요. 이 영화의 원작이라죠.

LAYLA 2004-07-31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별점은 3개 넘어가질 않던데 역시 평론가랑 일반인이랑은 영화보는 눈이 다른가봐요
아 플라시보님 영화잡지에선 글 써달라구 안하나요? 유쾌상쾌통쾌한 평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ㅎㅎ 아 보고 싶어라 안야하니까 저도 볼래요 ㅋㅋㅋ

플라시보 2004-07-3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weetmagic님. 하하. 선수신가봐^^ 바람둥이를 부담없이 데리고 노시다니. 언제 비결좀 알려주세요~~

sonninara님. 네. 뭔가 크게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 그냥 유쾌하고 재밌는 코메디영화를 생각하시면 충분히 재밌습니다.

로렌초의 시종님. 대신 답변해 주셔서 감사^^ (전 사실 몰랐거든요. 흐흐)

LAYLA님. 평론가들은 점수를 짜게 줬군요. 전혀 야하지 않습니다. 딱 적당한 수위입니다. 18세 등급 관람가를 받은 이유는 바로 한 남자를 세 자매가 사랑(내지는 잠자릴) 함께 한다는 내용 때문인것 같습니다.
 

만약에 말이다. 내가 어떤 남자를 사귀고 있는데 어느날 그 남자가 한눈을 판다고 치자. 아니 마음이 흔들린다고 치자. 그런데 그 마음을 흔들어 놓는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 한참 잘나가고 있는 영화배우라면 어떨까? 언뜻 생각해봐도 이건 승산없는 게임이다. 거기다 그 영화배우라는 여자가 꼬리 아홉달린 여우도, 천하의 요부도아닌. 같은 여자가 봐도 매력적이고 순수하면서도 당당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면 정말로 이건 시작과 동시에 게임 오버요. 그녀의 완벽한 KO승이다.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는 위에서 말한 설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7년간을 사귄 연인사이인 현주와 그녀의 남자친구 소훈. 그런데 어느날 우연하게 소훈은 한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 은다영을 만나게 된다. 어찌어찌 하여 소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은다영. 그리고 그녀의 관심이 싫지는 않은 (너무 당연한 소리다. 대체 뉘라서 싫겠는가!) 소훈. 현주는 점점 멀어지는 소훈을 보며 '내 남자는 내가 지킨다'라는 케치플레이즈 아래 소훈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리하여 별 볼일없는 스물아홉 현주의 내 남자 지켜내기 전쟁이 떠들썩하면서도 서글프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보기도 전에 감이 딱 오는 영화이다. 김정은에 의한 김정은의 영화. 즉 그녀의 원맨쇼가 얼마나 먹혀들어가는가가 이 영화의 성공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김정은은 딱 상상한 만큼 보여준다. 이미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숱하게 봐 왔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답지도 않고 섹시한것과는 거리가 멀고. 내 새울꺼라곤 쥐뿔도 없지만 늘 당차고 씩씩하고. 그래서 천진하고 귀엽게 보이는 그녀. 내 남자의 로맨스에 등장하는 현주라는 인물도 역시 김정은이 여태 해 온 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재밌는 동시에 조금 물리는 감도 없잖아 있다.

김정은은 연기를 썩 잘 하는 편이다. 정통적인 연기는 아니지만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연기에는 한마디로 났다. 하지만 듣기좋은 꽃노래도 하루이틀. 이제 김정은의 연기가 점점 지루하고 식상하다. 이런 연기를 하는 동급 배우로는 이나영을 들 수 있다. 김정은과 이나영 모두 이름만 생각해도 딱 하고 떠 오르는 연기와 캐릭터들이 있는 배우이다. 이런 배우들은 처음에는 정말이지 어디서 저렇게 연기를 잘 하는 보석들이 숨어있었을까 싶지만 바닥이 깊지 않을 뿐더러 또 너무들 퍼써 주시는 바람에 금방 그 한계를 드러낸다.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아니라 식상해진다는 얘기이다. 슈퍼에 새로운 과자가 나오면 언제나 사먹어보길 주저하지 않는 나. 마침 새로나온게 맛있기까지 하다면 한동안은 열심히 소비를 한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맛은 질리게 되어 있다. 김정은도 이제 슬슬 질리려고 하는 단계에 드러서는 새로나온 맛있는 과자가 되고 있는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다른 연기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건 아니다. 모든 배우들이 다 내면연기나 감정이입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분명 그녀만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질 않았다. 이미 그녀는 요즘 한참 인기리에 방영중인 '파리의 연인' 에서 자신만의 장점을 백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다 또 동시에 가진거 없고 그렇지만 씩씩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나오는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그녀를 질려할 만한 시기를 앞당길 뿐이다. 전지현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너무 써먹어버리는 바람에 이제 전지현도 질린다라는 소리가 슬슬 나오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파리의 연인을 하지 말던가. 아니면 이 영화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물론 드
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영화까지 대박이 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단기간에 많이 노출시키는 것은 그녀에게 불리한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김정은이 우릴 실망시키는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것을 그녀는 보여준다. 에드립인지 대본인지 구분 안가게 살아서 파닥파닥 거리는 대사 치기. 심각하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헛소리를 하는 귀여움 등등. 그녀의 장기가 백분 발휘된다. 그런데 이 영화. 약간 엉성하다. 소훈과 은다영은 너무 뜬금없이 가까워지고 김정은이 소훈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애처롭다 못해 처참하다. 같은 스물 아홉먹은 여자로써 (극중 현주는 스물 아홉이고 김정은도 실제 나이가 스물 아홉이라고 한다.) 정말 이 한마디가 해 주고 싶었다. '야 가라 그래. 남자 없음 죽냐?'

내 남자의 로맨스에서 그려지는 스물 아홉의 여자는 지나치게 불쌍하다. 7년째 사귀는 남자로 부터 프로포즈를 받는것이 그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러다 그 남자가 바람을 피워버리자 직장에서도 짤릴 정도로 그 일에 집착을 한다. 그저 결혼만 하게 되면 회사 따위는 언제든 집어치울수 있다는듯이 말이다. (내가 남자라면 그런 여자 정말 부담스러울꺼다.) 은다영에게 소훈을 놓아달라고 애원하면서 그녀는 말한다. 너는 다 가졌으면서 내가 가진 전부인 하나를 빼았어야 하느냐고. 스물아홉의 현주는 자기가 가진 전부이자 유일한 한가지는 오로지 '내남친' 임을 눈물까지 흘려가며 호소한다. 나름대로 영화의 클라이막스여서 전부 짠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나도 스물 아홉이고 나도 별 볼일 없고 나도 쥐뿔도 가진것도 없지만 내 인생에서 단 하나 내세우고 믿을 구석이 적어도 '내남친'이지는 않다. 소훈이 현주에게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이었다. 그저 나 하나만 바라보고 프로포즈만 기다리는 여자는 싫다고. 그래서 현주는 갑자기 자기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근데 그게 너무 간단하다. 어학원 다니고 번지점프 한번 하고 취직을 한다. 그걸로 현주는 '너 없이도 살수 있는 내' 가 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자존감이 어학원과 번지점프와 취직만으로 이뤄지는 쉬운 거라면 소훈이 바라지도 않았을거란게 내 생각인데 극중 현주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내가 이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본 캐릭터는 김정은의 현주가 아니라 은다영이다. 여배우라서 적당히 도도하기도 하지만 또 인간적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여배우도 인간이여요 여러부운' 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털털함과 소탈함으로 무장하는 역겨움은 없다.) 솔직하게 자기 의사와 감정을 표현할 줄 알며 안되는 일에 대해서 포기할줄도 안다. 소훈이 현주를 선택한다면 그건 순전히 7년간 쌓아온 그놈의 정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은다영은 괜찮은 여자이다. 다만 좀 깊이있게 은다영을 표현하지 않아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나가는게 아쉽다. 늘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우는 캔디. 이제 좀 지겹지 않은가? 이쁘거나 가진게 있거나 하는 여자들을 무조건 '다 죽어야 할 년들' 로 표현하는 것도 지겹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는 지겨운 캔디는 등장시켰지만 예쁘고 가진것도 많은데 성격은 겁나게 더러운 이라이자는 등장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다.

김정은의 연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것 같다. 물론 나는 김정은은 파리의 연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중 하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이 영화에서 김정은은 우릴 실망시키지 않고 자기 몫을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낸다.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아니라 오히려 망가져야만 살아남는 배우 김정은. 여기서 원없이 망가지고 또 망가진다. 그래도 그녀가 밉지 않은건 아직 그녀가 매력이 있다는 소리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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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4-07-1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정은은 매력이 있어요. 고친 얼굴이 거슬리긴 하지만. ^^
영화평 잘 보고 갑니다.

플라시보 2004-07-15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 영화에서 김정은이 화장을 많이 안하고 나오는데요. 눈부위가 약간 표가 납니다. 그래도 캐릭터에 맞게 하려고 화장을 짙게하지 않고 나온 김정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여배우들은 같이 CF를 찍건 영화를 하건 자기 캐릭터랑 상관없이 무조건 상대 여배우보다 이쁘게 나오려고 그렇게들 신경전을 펼친다고 하더라구요.

sweetmagic 2004-07-1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정은 연기 보고 누가 그러더군요....
"저 아이 수명도 다 되간다. 나이 더 들어봐 귀여운게 먹히나.."
그래두 전 끊임없이 변신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은 그녀가 좋습니다.
그 써클렌즈만 좀 빼고 나왔으면 .....하긴 합니다만.......

플라시보 2004-07-1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영화에는 서클렌즈 안하고 나옵니다.^^

미완성 2004-07-1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김상경씨 인터뷰글을 어디선가 봤는데요..
이 영화에서 김정은씨가 기존의 이미지를 없애고 싶어서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던데...역시, 사람이 얼굴 하나를 벗겨낸다는 건 참 힘든 일인가봐요. 그것도 다 자기 모습일텐데 말이죠..
그녀 역시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서 자신의 재주 하나로 여기까지 온 입지적인 인물이니까..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대기만성형으로 앞으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를 해봅니다^^ 플라시보님은 분석하시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신 것같애요. (잘못 짚으면 이거..;;;)

2004-07-15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4-07-1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영화보다 플라시보님 리뷰가 더 재밌을 듯한 느낌이 드네요. 추천 꾹.

플라시보 2004-07-1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 저도 김정은이 연기력 하나로 뜬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김정은양은 그렇게 썩 예쁜 외모는 (예쁘긴 하지만 그거 하나 믿고 뜰 정도는 아니죠) 아니거든요. 거기다 요즘 화면을 누비는 전성기 여자 연예인 치고는 나이도 많고. 그래도 연기력 하나로, 그리고 망가지는거 두려워하지 않는거 하나로 여기까지 온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파리의 연인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면 너무 재밌고 좋습니다.

하얀마녀님. 흐흐. 영화도 재밌어요. 김정은식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후회하지는 않을겁니다.^^

2004-07-16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