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 1편에 이어서 2편이 나왔다. 형만한 아우 없다지만 내 생각에는 아우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형을 능가할 수 있는것 같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슈렉은 훌륭한 아우이다. 물론 슈렉 1편에 비해 다소 신선함은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부모들도 첫째는 혹시 꽉 껴안으면 죽어버릴까봐 쌔게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지만 둘째부터는 안그런다고 하지 않는가.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만 뺀다면 슈렉은 아주 완벽하게 재미있는 영화이다.

슈렉이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디즈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꿈의 왕국이라는 디즈니가 심어준 환상은 예쁜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며 공주는 언제나 멋진 왕자의 구출을 기다리다 키스를 받고는 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산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질기도록 우려먹는 동안 우리는 거의 한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공주니까 예쁜게 당연하고 왕자니까 멋진게 당연하며 잘난 둘이 만났는데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사는 것은 더더군다나 당연의 최상급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미인 대회를 통해서 공주를 뽑는것도 아닌데 어째서 공주는 늘 똑 부러질듯한 허리를 하고 있는 금발 미녀이며 그들의 삶은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만 압축되어서 표현되는 것일까? 의문스러운게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여태 우리들은 넘어갔다. 왜냐? 동화니까. 동화란 원래 그러니까.


그러나 슈렉은 이 부분에 있어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공주가 탑에 갖혀있는것 까지는 구태의연한 동화의 설정을 그대로 빌려오되 여기에 오거 (이걸 괴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틀렸다고 한다. 오거는 괴물이 아니라 괴물의 일종이다. 애플을 과일이라고 번역하면 안되는 것처럼 오거 역시 달리 우리나라 말이 없다면 그냥 오거로 표현해야 한다. 오거는 북구신화에 나오는 몬스터중 하나이다.) 슈렉을 등장시킨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건 당연히 멋진 왕자인데 늪에서 사는 초록 못난이 오거라니.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공주도 우리가 아는 예쁜 공주는 아니다. 물론 얼굴과 몸매는 여느 공주와 비교해서 빠질 것이 없으나 그녀는 매트릭스처럼 공중에서 멈춰 양발차기 라던가 어미 새 터트려서 알 빼앗아 아침식사 준비하기, 뱀을 풍선처럼 불어서 기린으로 만들기 등등 여태 우리가 알아왔던 공주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 엎는다.


슈렉 1편이 마지막으로 뒤엎은 이미지는 공주가 걸린 마법이다. 공주는 마법에 걸려서 밤이 되면 흉측하게 변하는데 왕자의 진실한 키스를 받으면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슈렉과 키스를 하게 된 공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밤에 있었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슈렉은 드림웍스의 뛰어난 그래픽 기술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목소리를 낼 배우들의 선정을 잘 했다. 이미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목소리를 낼 배우를 캐스팅 한 것이 아니라 배우들을 먼저 뽑고나서 그에 맞춰 이미지 작업을 했다. 이는 구강구조와 얼굴모양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내어서 배우가 영 생뚱맞은 얼굴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슈렉과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와 피오나 공주. 에디 머피와 동키는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이제 2편으로 넘어가자. (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2편에서 강화된 것은 캐릭터들의 다양성과 페러디이다. 1편에서도 페러디를 했었지만 2편에서는 더욱 다양해졌다. 피오나가 살고 있는 겁나먼 왕국은 마치 헐리우드를 연상시키고 그 안에는 베르사체리 (베르사체) AIA (AIX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등의 실제 상표를 페러디한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들을 볼 수 있다. 또 무도회장은 붉은 레드 카펫을 까는 칸 영화제나 아카데미 시상식을 떠올리게 하고 동화속의 주인공인 신데렐라 등은 동화로 때돈을 벌었다는 이미지를 주기위해 헐리우드 배우들 처럼 대 저택을 차지하며 살고 있다.


캐릭터 부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은 장화신은 고양이이다. 동키도 훌륭했지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은 고양이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바로 안토니오 반데라스 자신의 이미지를 (영화 속에서 보여준 액션 배우이자 느끼한 미남) 비웃었기 때문이다. 쾌걸조로에 나왔던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칼을 휘두르지만 막상 위급한 상황이 되면 눈동자를 무척 크게 부풀려 귀여운 아기 고양이의 흉내를 내어 동정심을 유발한다. 또 피오나 공주에게 느끼한 표정으로 수작을 부리기도 하는등 고양이의 캐릭터는 보기 드물게 그 목소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이미지를 유머러스하게 차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머릿결에 목숨을 거는 프린스 차밍 아무래도 공주병에 걸린게 틀림없는 요정 대모. 피오나 공주의 부모님. 등등 전편보다 훨씬 다양한 캐릭터들로 승부한다. 다만 1편에서는 동화의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을 했었는데 2편에서는 동화속 주인공들은 많이 사라져서 조금 아쉬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슈렉 2편은 슈렉 1편에게 전혀 부끄럽거나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거의 몇십초 마다 한번씩은 폭소를 터트리게 했으며 더욱 풍부해진 CG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털이나 피오나의 아버지가 입은 벨벳 의상을 훨씬 더 실감나게 표현을 했다. 질감과 색감 그리고 부피감 등의 표현과 그림자나 빛의 각도에 있어서 더할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군중씬 같은 경우 모판때기처럼 일련의 동작값을 가진 존(Zone)을 여기저기 붙인게 아니라 한명 한명 그 움직임의 값을 지정해 주어 훨씬 자연스러운 군중의 모습을 표현했다.


올 여름 내가 가장 기다렸었던 작품이 있다면 해리포터와 슈렉 2였는데 적어도 슈렉 2는 기다릴 만 했었다. (해리포터는 아직 안나왔는데 포스터에서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가 너무 훌쩍 자라 있어서 약간 생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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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0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굼 2004-06-2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렉을 4편까지 만든다던데...디즈니-헐리우드이후에 어떤 것들을 써먹을지 궁금해지네요.

플라시보 2004-06-2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잉? 4편요? 피오나와 슈렉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다가 다시 짝을 만나 결혼하는 와중에 몇몇은 독신을 선언하는 동시에 동성을 사랑했노라는 고백을 하는건 아닐까요?^^

LAYLA 2004-06-2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플라시보님이 제작에 뛰어드심이 어떨지 ㅎㅎ 상당히 흥미진진 하겠는걸요...

마립간 2004-06-2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은 풍자로 가득했지만 주인공은 역시 동화같은 선택을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조금) 우울.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많이 우울

내가 슈렉이라면 피요나를 위해 마법의 약을 마실 수 있을까.
내가 피요나라면 외모를 (그것도 자신의 외모와 남편의 외모를 동시에)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해롤드라면 딸과 사위의 행복을 위해 개구리가 될 수 있을까.

플라시보 2004-06-2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후훗. 그런식으로 제 이름을 노출하시다니욧^^
저 역시 님이 하신 질문에 대답을 할 자신이 없네요. 누군가를 위해 마법의 약을 마시는 것도 외모를 포기하는 것도 (지금의 외모야 포기고 자시고도 없지만 만약 피오나라는 가정하에) 딸의 행복을 위해 다시 개구리로 리턴 하는 것도 전부 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