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났다. 원래 보자마자 바로 쓰는게 나 이지만 이건 좀 생각 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체 영화가 재밌었는지 아니었는지 감동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잘 모르겠는, 이렇게나 헤깔리는 영화를 본 것이 너무 간만이기 때문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이 영화는 엄마와 같이 봤다. 엄만 귀여운 여인에서의 줄리아 로버츠에게 너무 감동을 받아서인지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다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간만에 보는 영화를 저걸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영화였으니까 말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줄리아 로버츠는 여대에 미술사 교사로 들어간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줄리아 로버츠는 하지만 명문 여대에서 한없이 실망을 한다. 학생들이 오직 시집 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여학생이건 아니건 간에 모두 시집만이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하는 목표지인양 오로지 그 생각만 하고 산다. 여기서 좌충우돌하던 줄리아 로버츠는 학기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제서야 여학생들은 줄리아 로버츠에 대해 닫혔던 맘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재밌을뻔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었던 것은 캐릭터들이 모두 종이인형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시대 여자들이란 것이 다 비슷했을수도 있겠지만 좀 더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나같이 너무 전형적이었다. 줄리아 로버츠도 이 영화에서 밋밋했지만 그녀의 학생들 캐릭터는 도저히 봐 주기가 힘들었다. 이건 그녀들이 보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인물이건 간에 캐릭터는 살아있어야 하는데 여긴 전부 죽은 시체들의 밤 같았다.

나도 여자이지만. 여자로 살기는 참 힘들다. 남자들도 남자로 살기 힘들겠지만 난 남자가 아니라서 여자가 힘든것 밖에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해는 하겠지만 직접 느끼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여자이기에 강요된 것은 너무 많다. 내가 레이스와 리본과 꽃무늬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고 그런것을 내 마음껏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회가 정해놓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엄마의 천상 여자같은 모습. 그리고 남자가 돌봐주지 않으면 잠시도 외로워서 혹은 슬퍼서 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늘 나 혼자로도 행복한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처럼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그냥 나 하나로 온전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바꾸었다. 여자라기 보다는 그냥 인간. 혹은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여자로 길러졌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페미니스트이거나 남성 혐오증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다. 나도 남자를 좋아한다. 다만 의지하지 않을 뿐이고 굳이 순위를 정하자면 사랑보다는 일이 항상 우선이라는 것. 그게 전부이다. 난 한번도 남자에게 의지를 해 본 적이 없다. 나를 떠난 남자들 중에서는 이런 점이 맘에 들지 않아서 혹은 책임감 같은걸 전혀 느끼지 못해서 가버린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날 책임져야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느낌을 주어서 결혼에 골인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친구같은 사람을 만나면. 누가 돌봐주고 챙겨주고가 아닌 서로 아끼고 편하고 사랑하면 결혼이란걸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남자와 섹스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여자들이 다소 깨여있는 그리고 자유로운 여자인듯 나온다. 그 시대에는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여자들이 하기에는 벅찼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남자와 섹스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잘 마시는 여자들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여자처럼 본다. 그런데 난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나도 저렇게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진보적이라거나 남보다 의식이 깨어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가는 한 방식일 뿐이다.

이렇게 살건 저렇게 살건. 전부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내 서재에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에 놀라고 실망한 분을 봤다. 실망을 안겨드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 그렇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재 사랑하는 남자가 없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배울만큼 배웠고 (대졸을 기준으로 할때) 전문직에 종사하고 책 좀 읽었기 때문일까? 나는 여자라서 여자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는 아닌것 같다. 그럴만큼 뭘 알지도 못하고 나를 어떤 성향에 맞춰 골치아프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의 이름으로 분노할 일이 있으면 불같이 분노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사에 난 페미니스트야 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생각은 참 많이 했다. 그걸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은 내 글 실력이 짧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만에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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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실망한 건 아닌데요. 님의 글을 보며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자의 이름으로 분노할 수 있는 분'일거라 생각했는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앞서 말한 것을 부정하는 게 되는 건가 하고 놀랐던 것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페미니스트일까요? 그 대답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하면 페미니스트가 되는 걸까요?)

얼마 전 김윤아 인터뷰에서도 기자가 '페미니스트'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고 했더니 그녀 역시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휴머니시트일 뿐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님이 사시는 당당한 삶의 방식이 멋져 보입니다. 또한 여성의 이름으로 분노할 일에 같이 분노할 수 있다면 그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합니다.

마냐 2004-03-2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리 라인만 봐두..넘 뻔할 거 같아..별로 안 땡기는 영화임다....안봐도, 학생들은 시대를 빌미로, 여성의 본성인양 결혼지상주의로 참한 모습으로 그려질테구...에잇.

비로그인 2004-03-2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제목만 보고 도대체 어떤 내용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일까?...생각해 봤던 영화입니다.
모나리자 스마일이라.....제목이 의도하는 바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삶...등을 영화의 작품성, 완결성과는 별도로 한 번 생각케 만드는 영화란 느낌이 듭니다.
음....시간 내서 주 내로 봐야겠군요.^^
 

한동안 주말 드라마가 주춤했었는데 얼마전 내 시선을 끄는 드라마가 새로 시작했다. KBS 2TV의 애정의 조건이 그 드라마이다.

등장 인물은 금파인 채시라와 은파인 한가인을 주축으로 해서 금파의 남편은 이종원. 은파의 동거남 박용우.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로는 지성이 나온다.

어제까지의 내용으로 보자면 금파는 변호사 남편에 딸 하나를 둔 주부이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심증이 확실해서 영 마음이 편칠 않다. 금파의 동생 은파는 학교다니는 핑계로 나와 살다가, 학교를 마쳤음에도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박용우와 동거를 하기 때문이다. 박용우는 과거 은파가 사귀었던 지성과 친구사이였고 지성이 군대를 들어간 동안 은파는 고무신을 거꾸로 꿰어찼다. 박용우는 영 변변찮은 날나리로 등장하고 이종원은 회사 직원과 바람을 피우기 때문에 금파와 은파의 앞날은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채리라 라는 여 배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기는 잘 하는 것 같은데 뭐랄까 너무 여우같기 때문이다. 꼭 늙은 여우같은 응큼함이 느껴져서(앙큼한건 상관없다.) 이다. 한때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그녀의 연기력을 인정하긴 했으나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가수와 사귈때도 고운 시선으로 보이지 않았고 (당시 신모 가수의 팬이었던 내 친구가 채시라와 사귄다는 소리를 듣고 엄청 낙담을 하자 '저것들 얼마 안가 깨진다 내 장담한다' 고 말했었는데 진짜가 되어버렸다.) 잡지 여기저기에 마치 보여주기 위한 커플들 처럼 신나게 화보를 찍어댈때도 뭔가 뒤가 구려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재미를 느낀 것은 은파 때문이다. 예전에 옥탑방 고양이를 보면서 어쩌면 동거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애들 장난치듯 다뤄놨을까 싶어서 늘 챙겨 보면서도 '비현실적이야' 와 '말도안돼'를 외쳤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동거를 꾀 현실감 있게 다룬것 같다. 동거를 하면서도 딱 한번 술김에 일을 치고. 돈 없다 없다 하면서도 절대 궁색해 보이지는 않았던. 아니 오히려 마늘까고 어쩌고 하며 필요 이상으로 궁상을 떠는 것이 더 어색해 보였었던 옥탑방 고양이와는 분명하게 차이를 두고 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은파는 동거를 하느라 그렇게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 꿈을 접고 지금은 돈을 버느라 정신이 없다. 낮에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나이트 클럽 웨이터로 밤낮없이 일을 한다. 그에 비해 그의 동거남인 박용우는 불행한 가정사를 들먹이며 동정이나 얻으려고 하고 곧 죽어도 폼을 외치며 사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함께 살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다 갖춘 남자이다. 급기야는 사채인지 뭔지 까지 빌려써서는 은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은파는 돈을 구하느라 동동 거리면서 박용우를 잡아다 감금한 사람들에게 '제발 때리지만 말라'고 애원한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말 할 것이다. 세상에 멀쩡한 여자가 뭐가 모자라서 저러냐고. 하지만 그건 사랑이 개입되지 않았을때 말이다. 일단 사랑을 하고 나면 암만 모자라고 암만 아니여도 그래서 가끔 용서가 안되게 미울때가 있어도 어쩔수가 없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한심해 보이던 사람도 사랑 하는 눈으로 보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동거하는 커플들을 심심찮게 봐왔다. 그리고 꼭 은파의 상황 같은 케이스도 봤었다. 내가 아는 한 커플은 2년 정도 동거를 했었는데 남자가 멀쩡하지만 백수라서 여자가 1년 반 정도 그를 먹여 살렸다. (맨 처음 만났을때는 남자도 백수는 아니었었다.) 거기다 남자가 씀씀이가 해퍼서 (옷과 술) 카드값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결국 그녀는 2년이 지나고 나서 그 대책없는 남자와 헤어지게 되었다. 남자에게 용돈 주고 카드값 갚아주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혼자 다 감당했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어딘가 좀 멍청한 여자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 왜 멀쩡한 남자를, 그것도 결혼을 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던지 하는 상황도 아니면서 자기가 뼈빠지게 먹여 살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녀가 그를 동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용우처럼 그 역시 불우한 가정 환경을 지녔었고 약효가 떨어질때 마다 술마시고 들어와서 울며 자신의 불행했던 지난날을 얘기했었다. 그녀는 그가 불쌍했다고 한다. 너무 안되어서 자기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고. 지금의 그녀는 그를 잊고 잘 살고 있다. 얼마전에는 결혼도 했다.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남편은 대책없던 그 남자와는 정 반대의 타입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드라마는 금파의 이혼 (남편의 여자 문제로 인한)과 은파가 아이를 가지고 미혼모가 되는 과정을 그리게 된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이혼도 혼전 임신도 모두 여자에 너무 큰 짐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이혼하고 싶어도 참고 때로는 수술대위에 눕기도 하는 것이리라. 요즘들어 이혼 증가율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전부 여자들이 굳이 참고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있다.

물론 되도록이면 이혼을 하고 살지 않는게 최선책이겠지만 일방적으로 여자가 어떻게건 참던 시대는 갔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이혼녀에 대한 꼬리표는 길고도 길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혼모에 관한건 아무런 해결도 대책도 없다. 마치 아이를 없애는 것 만이 최선책이라는 듯 세상은 미혼모에게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나마 돈이라도 빵빵하게 많으면 몰라도 세상에 부자 미혼모는 그렇게 흔하질 않다. 육아와 동시에 금전적인 문제 그리고 따가운 시선마저 동시에 견뎌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 고문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육아나 경제적인 어려움 혹은 따가운 시선 거두기 중 어느 하나도 우리 사회는 해 주고 있는게 없다. (단 한가지만 해 주어도 그녀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 너무 무거워져 버렸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혼과 미혼모라는 소재를 통속적인 재미를 위해 눈요기거리로 다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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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ool 2004-03-2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드라마 괜찮던가요? 피디가 아는 이의 남편이거든요. 드라마 제목을 고민하던데 애정의 조건이 되었군요... 담주에는 의무감으로 봐줄려구요. ^^

연우주 2004-03-23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시놉시스를 대충 봤어요. 플라시보님께서 써놓으신 내용을 보면 저도 기대를 하게 되네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자라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글을 kbs 홈에서 봤거든요. 암튼 어떻게 진행될지는 봐야 알겠지요.

플라시보 2004-03-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너굴님. 지금처럼만 드라마가 진행이 된다면 의무감이 아닌 재미로 보실 수 있을듯 합니다. (단2회 봤지만 느낌이 괜찮았어요.)
연보라빛 우주님. 제 생각에는 가족의 소중함 보다는 여자들의 삶에 조명이 맞춰질듯 합니다. 예전에 채시라가 이혼녀 역활을 한번 한 적 있었는데 (이재룡씨도 나오고 채시라는 약사였던가 그랬습니다.) 채시라씨의 말로는 그때보다 훨씬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가인도 신인 치고는 비중있고도 무거운 역활을 맡은것 같구요. 아무튼 기대되 되고 더 지켜봐야 할것 같네요^^
 

어제 하루종일 아파서 침대 위에 누워서 TV채널만 돌렸다. 그러다가 플란다스의 개를 봤다. 이미 봤던 영화지만 나는 이 영화를 또 다시 봤다. 내 취미가 봤던 영화 또 보기 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는 내 친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볼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나오는지 전혀 몰랐었다. 그도 그럴것이 대학 졸업하고는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따지자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때 친했던 것 만큼은 사실이므로 그냥 친구라고 해 두자.

내 친구의 이름은 고수희다. 배두나의 친구로 나오는 뚱뚱하고 홀딱 깨는 여자애가 바로 고수희다. 수희와 나는 대학 동창이다. 당시 우리과에는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 애들이 무척 많았는데 수희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아해였다. (참고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었는데 우리과 선배들과 교수들은 나 같은 인간이 왜 우리과에 들어왔는지 무척 신기해 했었다.)

우리 과에는 연기수업 시간이 솔찮게 있었다. 이론 공부도 있었고 실제로 연극을 해야 하기도 했었다. 연기는 TV연기와 영화연기 그리고 연극으로 세분화 되어 있었는데 수희는 특히 연극에 두각을 나타냈었다. 과에서 올리는 작품에는 꼭 수희가 연기를 했었고 나는 언제나 음향이랄지 조명이랄지 같은 스텝을 했었더랬다.

수희의 첫 인상은 솔찍하게 말해서 무서웠다. 내 3배는 족히 되어보이는 몸집과 예사롭지 않은 생김새. 그래서 1학년 1학기 초에는 수희와 별로 친하지 않았었다. 수희는 서울에서 내려온 자취파였고 나는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집파 였으므로 어울릴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수희와 친해진 계기는 나도 집을 나와서 자취를 하게 된 2학기 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도 자취파가 되어 부어라 마셔라 죽자를 외치는 나날들이 계속 된 것이었다.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수희는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희의 말투 평소 행동이 전부 그대로 보인다. 보다가 보면 수희가 배두나에게 전화로 방송국 인터뷰 운운하면서 장난전화질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수희와 나는 유치하게시리 내 집구석에서 그런 장난 전화질로 하루를 보낸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나 재밌던지. 특히나 우리가 뻥을 친 것은 방송국이라며 노래를 시키거나 개인기를 해 보라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에 '지금까지 장난전화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구요. 앞으로는 속지마라잉' 하면서 끊곤 했었다. (그 분들께 지금은 심심한 사죄의 말씀 올리는 바이다.)

당시 수희와 함께 같이 친했던 안양예고 아해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 투투의 황혜영을 쏙 빼다 닮았던 이양. 큰 키에 모델같은 늘씬함을 자랑했던 조양. 지금 내가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연극 무대에 자주 서는 수희 뿐이다. (그나마 연락도 되질 않지만 말이다.)

자취를 했던 우리들은 술도 참 많이 퍼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웠었다. 어느날인가 내가 담배를 띡 꺼내서 물 자 수희는 '야. 너같은 범생이도 담배질이냐? 미친년 얌전한척 혼자 다하더니 깬다' 하며 놀라워 했었던게 기억난다. 

나는 욕을 참 싫어하는데 욕을 밉지 않게 잘 하는 사람은 수희밖에 못 봤다. 그애는 어떤 욕이건 상스럽지 않게 꼭 입의 껌처럼 착 달라붙게 하는 재주가 있었었다. 욕을 하면서도 천하게 보이지 않고 상대를 기분나쁘지 않게 하는 것도 참 능력이다 싶다.

언제 서울올라가면 대학로에 가서 수희가 하는 연극이나 한번 봐야겠다. 학교 다닐때 늘 봐왔었지만 무대에 서서 프로로 연기를 하는 것은 아직 한번도 못봤다. 그러면 수희는 여전히 욕을 하면서 '미친년 살아 있었냐?' 하며 웃을 것이다.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고 싶은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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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3-2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수희란 분이 님의 친구시란 말이죠. 친구가 나오면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아직 전 그런 경험이 없어서, 하핫. 저도 가끔씩 연극을 보는 편이니, 볼 때마다 님의 친구분이 계신지 봐야겠네요. 수희님도 님이 '플라시보'인 걸 아시나요?

플라시보 2004-03-22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의 존재는 모르지만. 제 이름을 말하면 알껍니다. 얼굴을 봐도 알꺼구요^^

마태우스 2004-03-2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저 님 이름 알고 있죠!! 안다는 사실을 잠깐 모르고 있었어요^^

플라시보 2004-03-22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아마 평생 까먹기 힘든 이름일겁니다.

sunnyside 2004-03-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정말이세요? 와... 저 플란더스의 개 무지 좋아하고, 거기에 나오는 플라시보님의 친구분 캐릭터도 좋아요.
그 친구분께서 영화 중에 자동차 백미러를 발로 차서 떼어내는 장면.. 한국 영화에서 드물게 여자들의 의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암튼 매우 영광입니다. 그분(수희씨라는건 오늘 알았구요)의 친구분이셨다니.. ^^

플라시보 2004-03-25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 친구 팬이 있다니 제가 다 반갑네요. 저도 저 영화에서 수희가 백미러 발로 차는 장면 보고 참 속이 다 시원했었거든요.
 


매주 목요일은 우리 회사 건물에 있는 메가박스에 가서 영화를 보는 날이다. 목요일이여야 하는 이유는 메가박스에서 발급받는 메가티즌이라는 적립카드가 있는데 목요일날 그 적립카드를 들고 가면 1,500원 할인을 해 주기 때문이다. KTF 멤버스 카드로 1,500원. SK텔레콤 멤버쉽 카드로 2,000원. 메가티즌으로 3,000원 (카드가 2개임) 을 할인 받으면 6,500원으로 둘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한달에 한번 금요일은 KTF 카드로 무료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 그때는 이것저것 할인을 받으면 4,500원으로 둘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도 친구와 나는 영화를 봤다. 이름하야 홍반장. 원래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달고 있다.

치과의사 윤혜진은 병원의 부당한 처우에 욱하는 심정으로 사표를 낸다. 하지만 협상용으로 냈던 사표는 진짜 수리가 되어버리고 그녀는 일 할 병원을 찾아 다니다가 직접 병원을 차리기로 한다. 바다가 보이는 조그만 마을에 정착한 윤혜진은 홍두식이라는 일당5만원 동네 잡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윤혜진이 치과를 개업할 곳을 찾아주었으며 인테리어도 해 준다.(물론 일당 5만원을 받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자 어딜가나 다 있다. 윤혜진이 편의점에 가면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고 물건을 주문하면 택배사 직원이 되어 물건을 배달하러 오고 짜장면을 시키면 철가방이 되어, 김밥을 시키면 김밥 배달부가 되어 윤혜진의 곁을 끝없이 맴돈다. 그렇다고 해서 홍두식이 사심이 있어 그러는 것이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그냥 홍두식은 우리가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Job을 여러 수십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여차여차해서 외롭던 윤혜진과 다소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던 홍두식은 삐리리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영화는 둘이 연결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내용으로 흐른다.

내가 이 영화에 기대를 한 것은 엄정화라는 배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고 나서 그녀가 늘 비교가 되는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영 붙지 않아야 할때 붙었다는 마음을 거두고 좀 너그럽게 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과거 그녀에게 '눈동자'라는 곡을 주었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고는 있었지만 내가 인정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않은 그녀였다. 물론 나올 때 마다 새로운 컨셉으로 눈요기거리는 충분히 해 주었지만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정현도 마찬가지의 재주를 부리고 있으므로 크게 점수받을 만한 짓은 아니었다.

그리고 싱글즈를 보면서 그녀가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오바를 해도 그녀가 하면 그럭저럭 봐줄만한 무언가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는 너무 심하게 이쁜척을 한다. 이쁘지 못한 여자의 못된 심성이라 해도 할 말 없지만 나는 이쁜척 하는 것들을 너무나 싫어한다. (못생긴게 이쁜척 해도 싫고 이쁜게 이쁜척 해도 역시 싫다.) 거기다 시나리오도 다소 엉성하다. 충분하게 재밌을 수 있는 소재였는데 중간중간 잡음이 너무 많다. 분명 서른살 여자가 주인공이면 보는 연령대를 생각해서 그 정도의 수준은 맞춰 줬어야 하는데 이건 이십대 초반의 영화였다. 또 하나 윤혜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이 없었다. 그저 성질만 부릴줄 알고 이쁜척만 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갑부집 딸임에도 불구하고 지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씩이나 되었더라 하는 것은 정말이지 진부한 소재이다.

윤혜진이 처음 치과를 개업할때 그녀의 친구가 한마디 한다. '맨날 가방 사고 신발 사느라 돈 없는줄 알았더니 제법 모았구나' 뭐 이것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윤혜진은 허영끼와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여자이다. 그런 여자가 아버지의 돈이 싫어서 혼자 고생고생 하며 자수성가 했다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다. 진짜 돈이 있어야 사치가 가능한 가방과 신발을 사대고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와인을 싸구려라 생각하며 사서 마시는 여자가 어떻게 이미 가진 부를 거부하는 캐릭터가 된단 말인가?

우리나라 영화에서의 여자는 겨우 저 정도라는 것이 참 한심스러웠다. 물론 윤혜진이 온갖 궁상을 다 떨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알고보니 부자집 아가씨 였더라라는 부분은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홍두식이란 작자는 변변하게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오로지 그 매력 (난 뭐가 매력인지 모르겠다만) 하나로 평생 먹고살 걱정은 안해도 되는 치과의사를 잡고(극중 윤혜진이 자기랑 결혼하면 남는 장사라고 직접 표현씩이나 해 주시는) 그것도 약간 모자랐는지 그 치과 의사는 부잣집 딸이기까지 하다. 이 정도면 너무 억지가 심하다. 직업없는 남자는 의사랑 결혼하면 안되냔식으로 말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영화는 현실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실을 비추는 거울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잘잘한 영화에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도저히 보고 넘길수가 없다.

만화같은 캐릭터인 홍반장.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거기에 뻑하고 맛이 가 버리는, 서른 치고는 약간 모자라는 애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이 없는 치과의사. 이 모든게 섞인 짬뽕은 먹는 내내 소화불량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엄정화이기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결혼은 미친짓이다에서의 사실적인 연기도, 싱글즈에서의 독특하고 대찬 연기도 아닌 그저 밋밋한 공주병 환자 정도의 연기력만 보였다. 어쩌면 이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닌 연출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녀. 너무 심하게 귀여운척을 했다. 내가 서른 코앞인 스물 아홉이라서 아는데 저렇게 대책없이 귀여운척만 하면 남자만 좋아하지 여자들은 무척 재수없어 한다.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남은 인생 탄탄대로를 걸으리라 각오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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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학을 다닐때 나는 영화 공부를 했었다. 학과에 과목으로 들어 있기도 했지만 워낙에 영화를 좋아하기도 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보고(영화를) 읽었던(영화관련 서적을) 기억이 새롭다. 내가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 것은 내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간 95년 당시 씨네 21이라는 격주간 영화 잡지가 처음으로 창간되기도 해서 여러모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있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 했었다. 그때만 해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서 무슨무슨 감독 하면 그가 만든 작품을 연대별로 죽 꿰고 영화배우 이름을 대면 어떤 영화에서 무슨 역활을 맡았는지까지 좔좔 외우곤 했었다. 내 친구들도 모두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는 얼굴만 마추지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었고 자막도 깔리지 않은 일본영화나 프랑스영화를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세월은 흘러서 지금의 나는 고작 일주일에 신작 영화 한편을 보는 것으로 그친다. 더 이상 부지런하게 영화잡지를 모두 사서 읽지도 않고 친구들과 영화에 대해 장시간 토론하지도 않는다. 그냥 볼 뿐이고 영화는 재밌다와 재미없다 혹은 돈 아깝다 아깝지 않다로 나뉠 뿐이다. 한때는 문화생활부 기자를 하면서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영화에 대해 평이라 하기에는 허접한 감상기 비스무리한 글을 적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다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다.

빅피쉬의 내용은 이러하다. 허풍선이라 불리울 만한 아버지는 늘 아들에게 뻥을 쳐 댄다. 도저히 있을것 같지 않은 동화같은 내용을 자기가 한 모험이랍시고 아들에게 떠든다. 어릴때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지만 다 큰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싫어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되자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찾게되고 아버지의 얘기를 떠 올린다.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얘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다 만나게 된다.(장례식에 그들이 참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울 아부지가 나한테 순 뻥만 처 댄것은 아니구나' 그렇다. 아버지는 얘기를 재밌게 하고 과장을 하긴 했지만 순도 100% 구라를 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빅피쉬는 팀버튼 감독의 영화이다. 아직도 내가 작품을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은 감독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물론 배우를 보고 고르기도 하지만 작품을 기대 한다기 보다 그냥 그 배우를 영화 내내 볼 수 있다는 행복감에 선택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길고 꾸준하게 사랑해 마지 않은 감독이 바로 팀버튼이다.

팀버튼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내 머릿속에 단 한장면도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다. 피위의 대모험에서 정말 대 모험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상상력의 끝간곳을 보여 주었고 비틀쥬스에서는 장면 장면이 전부 예술이었다. 거기다 그의 최고작 가위손은 조니뎁을 곱상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아닌 연기자로 보이게 했고 눈이 날리는 곳에서 위노나 라이더가 빙글빙글 돌던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 장면이다. 배트맨은 그 이후 시리즈에서는 좀 밝고 어수선해 졌지만 팀버튼이 감독한 배트맨 1은 특유의 음산함과 암울함이 영화 저변에 깔려 있었으며 고담시티는 팀버튼이 만든 가장 훌륭한 셋트였다.  거기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악몽은 스톱애니메이션의 최고봉이었다고 생각한다. 음악도 훌륭했으며 주인공 조연 할것 없이 모두 개성만점의 캐릭터들이 있는 종합 선물 셋트였다. 팀버튼의 기괴한 상상력은 화성침공에서 활짝 꽃을 피운다. 컴퓨터 그래픽이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그 시대에 어설픈 인형같은 화성인들. 이미 스필버그 감독이 진짜같은 이티라는 외계인을 만든지 십수년이 지났는데 팀버튼의 화성인들은 너무도 가짜 티가 팍팍 났다. 그 시대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감독은 팀버튼 뿐이었으리라. 어떻게든 진짜같음으로 관객들의 예리한 눈을 피해가려고 고민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팀버튼은 드러내놓고 허구같음을 보여주는 대신 내용에 충실했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100점 만점의 내용이 아니라 팀버튼이 아니면 저런 방향으로 상상조차 못했을 재기발랄함을 보여줬다. 슬리피 할로우도 아주 괜찮은 작품이었으며 여태까지의 영화와 상당한 차이를 두는 에드우드도 명화중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의 팀버튼 감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나는 혹성탈출을 보지 않았다.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나는 감독들이 자기 마누라를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그 좋은 예는 컷스로드 아일랜드의 지나 데이비스가 당연 그랑프리 감이다.) 팀버튼은 혹성탈출에 자기 마누라인 헬레나 본 햄 카터 (파이트 클럽에서 브래드 피트의 섹스 파트너로 나왔던 그 여자.)를 출연 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도 전혀 땡기지가 않았다. (내 예감은 적중해서 그 영화는 팀버튼의 이력에 오점이 되었다.) 지금 이 영화 빅피쉬에도 헬레나 본 햄 카터는 1인 2역씩이나 하며 등장을 한다. 헬레나 본 햄 카터는 나쁜 배우는 아니지만 팀버튼 영화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배우이다. 그런 배우를 마누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연시키다니... 사랑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 할 길이 없다.

팀버튼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고 본다면 빅피쉬는 괜찮은 영화이다. 영화관에 가서 돈 주고 본게 아까울 지경은 아니다.(안봤지만 혹성탈출 보다는 나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팀버튼 감독의 전작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냥 보지 않기를 권한다. 그건 마치 김빠지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이미 코카콜라가 똑 쏘는 맛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김빠진 콜라를 마시면 어떻겠는가? 그건 설탕물에 지나지 않는다. 코카콜라가 코카콜라인 이유는 입안을 알싸하게 쏴대는 김에 있고 팀버튼 영화가 팀버튼표라고 불리울 만한 이유는 범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그만의 상상력에 있다. 그러나 빅피쉬에는 상상력이 없다. 아들에게 과장된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아버지 때문에 영화 곳곳에는 과장된 진실들이 포진 해 있지만 그 정도로 팀버튼의 상상력이라는 마크를 붙여주기는 힘들다. 그건 팀버튼이 아닌 다른 감독이 해도 충분하게 해 낼 수 있는 정도였다. 거기다 팀버튼의 셋트는 점점 더 재미가 없어진다. 가위손에서의 그 일렬로 쫙 늘어선 집들, 배트맨의 고담시티, 슬리피 할로우에서의 음산한 숲, 비틀쥬스에서의 현실과 죽음의 세계에는 반에 반도 못 미치는 실망스런 셋트들만 등장한다. 역시 그 정도 셋트는 팀버튼이 아닌 다른 감독도 충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팀버튼에게 기대하는 것은 남다른 상상력과 남다른 미학적 시각이지 그럭저럭 봐줄만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영화는 잘 봤지만 팀버튼에게는 더 없이 실망을 해 버렸다. 내가 혹성탈출을 보지 않았던 것은 그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인데 나는 빅피쉬는 영화사의 마케팅에 놀아나 얼씨구나 하고 봐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면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는게 나란 인간인데 나는 그만 두시간 가까이 봐 버렸다. 이걸 만회하는 길은 딱 하나이다. 누가 봐도 팀버튼표 영화라는 것이 확실한 영화를, 더 늦기전에, 마누라 출연시키지 말고(시키더라도 딱 어울리는 역활을 맡기던지),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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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blur 2004-03-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팀버튼 부인(또는 약혼녀)은 '리사 마리'아닌가요? (엘비스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말고...'화성침공'의 금발머리 높이 솟은 화성미녀였던...) 내가 모르는세 바뀐건나? 뭐, '리사 마리'였다해도 마누라 계속 영화에 출연 시켰던건 마찬가지지만...빅 피쉬는 아니지만 '에드 우드'부터 '혹성탈출'까지 팀 버튼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었죠.(주연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인상적인 역할들로...)
근데 이여자도 약간 특이하더라구요. 팀 버튼의 뭐가 제일 좋냐니까, 십년동안 안 빗었다는 헤어스타일이 제일 좋다고...ㅋㅋ 물론 저도 그 헤어스타일 좋아하지만요.
아참!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플라시보 님의 숨겨진 오랜 독자 입니다. 항상 글 읽고 감동(?)받으며 그냥 돌아서곤 했는데 오늘은 용기를 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근데 첫 글부터 트집잡는 것 같은 글이라 좀 죄송한 생각이...^^;;

플라시보 2004-03-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트집잡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헬레나 본 햄 카터가 마누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긴가민가 하고 있습니다. 흐흐^^

플라시보 2004-03-1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찾아보니 마누라란 소린 없고 연인이라는 소리는 있네요.

진/우맘 2004-03-1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인인데다가, 임신중이라나요? 그래서 마녀 분장 힘들다고 고부분은 이틀에 몰아찍었다는군요.
정말 근사한 영화평입니다. 그런데, 어째 저는 그 설탕물이 달콤해서 좋았다는...팀버튼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대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였을까요?^^

플라시보 2004-03-1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재밌게 봤으면 되는거죠. 전 팀버튼한테 너무너무 기대를 걸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한때 팀버튼 때문에 감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잠깐 드러누워서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전 어려서 부터 뭐뭐가 될테야 같은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는데 팀버튼 영화를 보면 매력적이여서 잠시나마 막 감독이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언감생심 제가 무슨 감독은 감독입니까? 하하)

bbbblur 2004-03-1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헬레나 본 햄 카터랑 사귀는 게 맞는가보군요...근데 리사 마리랑 이전에 약혼 관계였던 것 역시 확실하고... 근데 '혹성탈출'에는 이 두 여자가 둘 다 나왔었는데...그때가 '과도기' 였나 보군요...

플라시보 2004-03-1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런가봐요. 거기서 원래 사귀던 리사 마리를 뻥 차버리고 헬레나 본 햄 카터에게 갔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