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영화는 전혀 보고싶지 않은 영화였다. '달마야 서울가자'를 보자고 우겨대던 친구년은 신통찮은 내 표정을 보고서는 '그럼 이거라도' 하면서 투 가이즈를 볼 것을 권했다. 아빠가 내 이름으로 박아지와 박진진중에서 고르라고 했을 때 우리 엄마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그냥 투 가이즈를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 영화 예상외로 웃겨 주신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참으로 간만이었던지라 나는 머리속을 비우고 마음껏 웃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카드빛과 사채까지 끌어쓴 뺀질이 차태현. 그에게 돈을 받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고용된 박중훈. 이 둘은 어쩌다가 산업스파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중요한 반도체가 들어있는 가방을 차지하게 된다. 그때부터 사건은 꼬이기 시작하여 이들은 국가안전정보국과 국제 스파이 2곳으로 부터 추격을 당하게 된다. (나중에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쫒고 쫒기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화면이 무지하게 복잡해진다.)

이 영화는 순전히 박중훈과 차태현 두 배우의 힘에 의존하는 영화이다. 박중훈이야 이미 투캅스때 부터 코믹연기의 달인(요즘 들어서 조금 식상해진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었고 여기에 비교적 차세대 코믹연기주자에 속하는 차태현이 뭉쳤다. 관건은 이들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느냐 하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사람은 명콤비였다. 여태 왜 제네들을 붙여서 영화를 찍을 생각을 안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그냥 쿵하면 짝이었다.

감독 박헌수는 잘 모르는 이름이라서 네이버에 물어봤더니 싱글즈에서 각본을 쓴 사람이었다. 어쩐지 영화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만 이미 싱글즈에서 내공을 충분히 쌓았던지라 이번 영화에서는 감독에 각본까지 1인 2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비록 아주 대단하게 멋진 영화라던가 아니면 생각할만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코믹영화의 미덕이 웃겨야 산다를 아주 제대로 지킨 영화이다. 수초마다 객석에서 터지는 폭소는 박헌수 감독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박중훈과 차태현은 슬랩스틱 코메디를 보여주지만 절대로 오바한다거나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거기다 이 두 배우는 웃기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을 망가뜨리는 것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자신의 신체적 단점을 서슴없이 웃음거리로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줄 아는것 없이 오로지 뚱뚱한 몸 하나로 자기를 비하하며 웃기는 코메디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영화에 대체 왜 한은정이라는 여배우가 필요했냐는 것이다. 그 정도 역활이라면 아예 빠져도 누가 뭐랄사람이 없을텐데 굳이 하는일 없이 모 음료 CF에서 보여줬던 트레이닝복 차림을 하고 몸매자랑이나 하도록 세워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잠깐씩 대사 치는걸 보아 영 가망없는 바비인형도 아니건만 감독은 그녀를 아예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영화속 소품처럼 '없으면 허전할까봐' 세워둔 인형같은 존재였다. 나는 여자 연기자들에게도 똑같은 비중의 역활을 주라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왕 출연료주고 시키는거 연기 좀 제대로 하도록 뭐라도 시키라는 것이다. 그저 얼굴과 몸매가 앵글에 잡히는 것 만으로 그녀들의 역활을 한정시킬것 같으면 없어도 그만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웃기기 때문에 그런 눈요기거리가 별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박중훈과 차태현때문에 원없이 웃었다. 그리고 꽤 유쾌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섰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머리속에는 이런 문구가 떠 올랐다.

'아이구 재간동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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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재미있단 말입니까? 전 죽어도 보지 말아야 할 영화 첫머리에 넣어 뒀는데... 박중훈은 아직 늙지 않았고, 차태현도 숨겨진 뭔가가 있었나봐요? 흐음... 묘한 일이네요.

플라시보 2004-07-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의외로 찰떡궁합이더라구요. 사실 박중훈이나 차태현처럼 혼자 너무 튀어버리는 배우들은 상대 배우를 잘 만나야 하는것 같습니다. 그 연기를 받쳐주지 못하면 (황산벌에서 박중훈은 홀로 외로워 보였고 차태현은 요즘 내면연기만 하는 성유리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더군요)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데 혼자 오도방정을 떠는 걸로만 보이거든요.

작은위로 2004-07-1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그닥 보고 싶지 않은 영화 제 2순위였는데 말입니다.(물론 1순위는 달마야, 서울가자이다.) 생각보다 괜찮은가 보지요?
...누가 보자고 하면 모른척 봐야겠습니다. ^^;; 지난 주말에만 영화를 두편봤더니...ㅜㅠ

비로그인 2004-07-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이 영화보자던 친구에게 "너나 봐"하는 차가운 말을 남겼는데.
이렇게 웃기다면 두 손 모아 싹싹 빌고 보러가야겠어요.. 호호
글고 "내면연기만 하는 성유리 양"이라는 표현이 너무 콕 박히네요.. ㅋㅋ

클리오 2004-07-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진정 아버지와 이름에 관한 그 추억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아버지의 첫 딸을 향한 심오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뭔말이다냐...)

sooninara 2004-07-1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에선 엄청 혹평하던데요? 님의 글을 읽으니 마구마구 보고 싶어 지네요..^^

마냐 2004-07-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도 절대로 안볼 영화에 올려놓았는데...쩝..님의 리뷰는 힘이 세군요.

플라시보 2004-07-1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위로님. 저도 저 영화 처음에는 정말 보기 싫었더랬어요. 그냥 달마야 서울가자를 보느니 차라리 하는 심정으로 봤었는데 의외로 웃겨서 더 재밌게 느낀것 같습니다.^^

처음마음처럼님. 전 차마 '너나 봐'를 못해서 보게 되었지요. 히히. 그리고 성유리양은 왜 맨날 내면연기만 하는걸까요?^^ 이제 외면연기도 좀 보여줄때가 된것 같은데..^^
clio님. 네 사실입니다. 아빠가 박진진이란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겁나게 반대를 할것 같아서 처음에는 박아지를 막 우기다가 엄마가 거의 뒤로 넘어가기 직전에 '그럼 박진진은 어때?' 라고 하자 엄마는 마지못해 (박아지보다야 낫다) 승낙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심오한 의도는... 뭐 아부지 말로는 그래요. 이름을 지을때 누구나 첫 글자를 생각해 놓고 두번째 글자는 그 첫 글자를 제외한 나머지만 생각을 하는데 자기는 그 첫 글자마저 후보에서 예외시키지 않음은 물론 한번 더 써먹기까지 하는 빛나는 발상을 했다구요. 따라서 이쁘고 (무엇이?) 부르기쉽고 (내가 똥갠가?) 멋지며 (어디가?) 흔치않은 (그러시겠지..) 이름이 탄생했다고 우기십니다.

수니나라님. 뭐 물론 신문에서 혹평을 해 놨을수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웃기기만 하거든요. 내용이 좀 허술한 면도 있구요. 하지만 푸하하 거릴 수 있는 영화가 맞긴 합니다.^^

마냐님. 히히. 이번에는 마냐님이 보시고 제대로 된 평을 해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전 암만 생각해도 너무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