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친구와 같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란 인간은 보통 영화를 보고 나면 좋다 싫다가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누기가 참 애매하다. 나는 이 영화가 재밌는 동시에 재미없었고 좋은 동시에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거 영화관 가서 볼만하니?' 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냥 어버어버 거릴 것이다. 그것 이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전도연이 무지하게 많이 나오니 그녀를 싫어한다면 보지 마라 정도 밖에는 없을듯 싶다.

나영이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집안이 어려워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어려워졌다.) 대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그녀는 매일 엄마의 악다구니와 아버지의 초라함 속에서 짜증과 속상함을 쉴새없이 왔다갔다 하며 산다. 목욕탕 때밀이인 엄마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아줌마로 나오며 아버지는 그저 사람만 좋을뿐 경제적으로는 집안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영이 다니는 우체국서 일을 하긴 하지만 월급이 몇년째 다 차압당해서 오히려 나영에게 용돈을 얻어쓰는 처지이다.) 그러다 어느날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영은 아버지를 찾으러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오래전 자기보다 더 어린 나이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엄마는 해녀 연순이었고 아버지는 젊은 우체부 진국이었던 시절로 돌아가서 나영은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이 영화는 거의 90% 정도는 전도연의 힘을 빌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극중에서 나영과 나영의 엄마인 연순까지 1인 2역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인 2역을 하더라도 다른 공간이 아닌 한 공간에서 연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영화의 성패는 전도연이 얼마나 연순과 나영을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서 조화를 이뤄 내는가에 달렸다.

사실 나는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아주 썩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사 전달력이 중요한것이 배우라는 직업인데 그녀의 콧소리는 상당히 거슬릴뿐 아니라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조차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대사 전달력 만큼은 최고였던 심은하가 진정으로 그립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아깝지 않다. 연기력도 그저그렇고 대사 전달력 마저 떨어진다고 해놓구서는 배우가 왠말이냐고 하겠지만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배우의 자세와 책임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느정도의 위치에 선 여배우들은 영화를 계약할때 클로즈업 몇번이상 잡아줄것 이라는 조건을 내새울 정도로 자신이 스크린에 얼마나 아름답게 비춰질것인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영화계라는 시스템 자체가 여배우에게는 연기력보다 얼굴이나 몸매등 기타 재반조건을 더 쳐주는 곳이긴 하지만 가난한 여자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맨날 천날 옷을 갈아입고 나오거나 잠을 잘때에도 속눈썹까지 붙이고 있는걸 보면 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전도연이라는 여배우는 적어도 작품에 따라서는 안이쁘게 나올줄은 안다.  

전도연의 출연작 중 내가 가장 점수를 주는 작품은 '내 마음의 풍금'이란 영화이다. 거기서 그녀는 나이가 좀 많은 늦깍이 국민학생으로 나오는데 촌스러운 단발에 완전 노메이컵으로 나온다. 보통 여배우들이 극중 학생이라 하더라도 아이라이너와 눈썹 거기다 입술에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나오는 것과는 확실하게 비교가 되는 일이었다. 산골에 사는 국민학생이니 화장을 안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여배우들은 그런 촌스러운 얼굴로는 스크린에 나오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내마음의 풍금은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분명 여배우 캐스팅 난항을 겪었을 것이고 신인 배우를 쓰거나 아니면 작품이 자체가 엎어졌을 것이다. 그후 전도연은 해피엔드 같은, 그녀처럼 충무로 시나리오의 대부분을 먼저 받아보는 여배우들은 출연하길 꺼리는 노출이 심한 작품을 했다. (사실 노출도 노출이지만 그 영화는 바람을 피우다가 끝내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역활이라는게 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인어공주처럼 제주도 해녀로 나와야 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놀랍다. 몸빼바지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거기다 이마가 넓은 그녀로써는 좀 치명적일 헤어스타일과 주근깨 가득한 얼굴. 과연 우리나라 여배우들 중에서 누가 선뜻 저 역활을 맡으려고 했을까?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찾는다면 영화 '마요네즈' 이후 실로 오랫만에 엄마라는 존재를 재조명한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다. 마요네즈에서는 가족을 위해서 늘 희생하고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상에서 탈피해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욕망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냈다면 인어공주는 엄마에게도 남편과 자식이 없었던 처녀 시절이 있었음을 말한다. 지금은 삶에 찌들어서 욕도 잘 하고 매일 악을 쓰며 살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젊음이 있었다. 더구나 엄마의 첫사랑은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지금은 소식조차 알수가 없는 멋졌던 그이가 아니라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다. 지금은 그 남편의 무능과 대책없는 착함에 욕을 퍼부으며 살지만 연애하던 시절의 엄마는 그의 착한모습에 반했었고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했었다.

영화 마요네즈와 마찬가지로 인어공주역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누구나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엄마에게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애증이라고 하는)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밉기도 한것. TV연애 프로에서 여자 연예인들에게 멜랑꼴리한 배경음을 깔고 엄마에게 한마디 하라고 하면 백이면 백 다 엄마에게 짜증부려서 미안하다고 또 엄마 고맙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것이 엄마와 딸 사이에는 존재하는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딸. 그래서 종종 딸들은 엄마와 반대가 되는 인생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아무리 부정을 하려고 해도 엄마가 결혼 생활에 여러번 실패한 것의 반작용으로 결혼이라는 것 자체를 무척 꺼리게 되었듯이 말이다.

이 영화는 거의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원맨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조연들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요네즈에서 김혜자가 있었다면 인어공주에는 고두심이 있다. 고두심은 김혜자와 마찬가지로 주로 자상하고 인자한 어머니상을 연기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삶에 찌들대로 찌든 어머니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창피한것도 모르며 뭐든 느글느글하게 넘어가려고 하고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악다구니를 보고 있노라면 혐오감과 함께 두려움 (나역시 결혼을 하고 생활에 찌들리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배우 박해일. 살인의 추억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프라이멀 피어에서의 에드워드 노튼처럼 선한 외모속에 악마성을 가지고 있는) 보였던 그는 내 친구가 '차라리 죽여라. 내게 오지 않으려거든' 이라며 극찬을 했을 정도로 여자들의 마음속을 후벼파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너무나 착하고 순한 우편배달부로 나온다. 그의 연기가 인상적인 부분은 극중 연순(나영의 엄마)인 전도연이 물질을 하다가 기절을 했을때 그녀를 보살피는 장면으로. 약물로 소문이 난 제주도 근방의 돌섬 아래 있는 바닷물을 밤중에 혼자 퍼다가 연순의 집으로 땀을 비오듯이 흐르며 나른다. 생각보다 비중이 작긴하지만 그는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에 힘을 싣기 충분한 배우이다.

내 생각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린 많은 여자들이 울었을 것이다. 한때는 나처럼 꿈도 많고 젊고 예뻤던 엄마가 결혼을 하고 현실에 찌들리다 보니 완전히 다른사람 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딸인 나는 그걸 이해하려기 보다는 엄마를 창피해 하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을 한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그렇게 변한 것인데. 엄마의 젊은 시절은 분명 그렇지 않았을텐데도 딸인 나는 그걸 이해하기 보다는 미워한다. 그렇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막상 나와 싸우고 악다구니를 할때는 세상없이 밉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미안하고 고맙다. 나를 낳아준 것이. 그리고 나를 낳고 키우며 사느라 주저없이 저렇게 변한것에 대해서.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엄마와 함께 이 영화를 한번 더 볼 예정이다. 보면서 닭살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아마 우리 마음은 잘 아실꺼다. 왜냐면 난 엄마 딸이고 엄만 내 엄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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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7-1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엄마랑 보러 가려구요 ~

작은위로 2004-07-1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생각을 했어요. 엄마랑 같이 한번 더 봐야겠다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모든 딸들의 소망이 아닐까요? 난 엄마처럼은 안살거야! 라고. 대놓고 엄마에게 말한적은 없지만, 항상 엄마를 볼때면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조금 .... ^^ 엄마랑 영화같이 잘 보시길 바래요. ^^

부리 2004-07-1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님도 보셨군요. 반갑습니다. 근데 "내게 안오려거든 차라리 죽여라"가 극찬인가요???

sweetmagic 2004-07-1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잘 모르긴 하지만...뭐... 독도를 일본이 가져가게 된다면 차라리 폭파시켜 바다에 가라앉히겠다 뭐 그런 심리 아니겠습니까 ? 집착과 파괴의 애증의 결정판... ㅋ
(아래 코멘트를 보아하니....오마나..어쩌지 박해일을 거시기 한다는 말씀이 아니셨구나..어..어쩌지...찍혔겠다... 잔인한 매직으로 ..아...어쩌지 ㅠ.ㅠ;;;;;;)

플라시보 2004-07-1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극찬이구 말구요. 내게 오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죽여달란것은. 내것이 될 수 없는 너를 봐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만 마감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작은위로 2004-07-1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sweetmagic님과 같은 생각했었다는...쿨럭.쿨럭 -_-;;;; (이러언...)

로드무비 2004-07-1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루고 있었는데 빨리 보러 가야겠어요.
더구나 우도에서 진을 치며 찍은 영화라니까 바다가 원없이 나오겠죠?

마냐 2004-07-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님의 리뷰 중에서도..사진도 여럿쓰고..글도 길어진걸 보니..좋으셨던 모양임다. ^^
그리고 님은 착한 딸이네요...

플라시보 2004-07-1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러네요. 제가 간만에 영화에다 사진을 여럿 썼군요. 예리하십니다. 흐흐^^ (아. 그리고 착한 딸이라고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부디 저의 엄마도 착한딸 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그럭저럭 나쁠것도 좋을것도 없는 딸년 정도로만 생각해주어도 좋겠습니다.^^)

플라시보 2004-07-1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맞습니다. 바다가 아주 원없이 나옵니다. 전도연이 물질을 하는 장면도 꽤나 많이 나오구요. 아. 그리고 거기가 우도였군요. 어쩐지... 예전에 우도를 취재한적이 있었는데 전도연의 벽에 사진속의 바닷가 해안선 모양이며 바위 모양이 많이 낮이 익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그때 포토그래퍼가 아픈 바람에 제가 사진도 직접 찍었더랬는데 영화속의 사진과 상당히 흡사한걸 보니 비슷한 각도에서 담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