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박노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박노자,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평점 :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내가 애써 피해왔던 분야로 웬만하면 나는 이쪽 관련 책을 읽지 않는다. 일부러 고개를 홱 돌려 피했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고? 만일 어제 독일 월드컵 마지막 예선이었는데 비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인데 오대빵으로 깨져버렸다고 하자. 그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고 싶겠는가? 꾸역꾸역 씹어가면서?
만일 축구 관계자라면 당연히 그 경기를 다시 보고 또 보고 해야 하겠지. 그러나 잘하면 함성을 지르고, 못하면 욕이나 하는 나같은 불성실한 관중은 절대 그 경기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뽀록이 나는구만. 나는 그저 불성실한 관중에 불과한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해 버리는, 아픈 역사를 한번도 내것으로 느껴보려고 하지 않은.
그래도 어쨌든 이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후회했다. 아, 또 이렇게 열받을 것을 괜히 읽는다고 해서는. 어찌하여 우리나라의 위엣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제 앞가림 이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으며 나라를 위한다고 하는 짓도 어찌 그리 어리석고 정세 판단이라고 어쩌면 그렇게도 우물안 개구리였단 말인가. 이거는 마치 수 많은 두갈래 갈림길이 있는데 그때마다 최악의 선택을 하여 결국엔 늪에 빠져버리고 마는 형국이지 않은가.
계속 읽다보면 열을 받다 못해 이제는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100년 전과 같은가. 도대체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다는 말인가. 혹시 모두들 나처럼 지나간 역사를 들춰보기가 괴로워서 다들 외면하고 산 건가.
나 자신 포함 역사와 현실에서 관중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 모두 관계자이다.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왜 요모양 요꼴이 되어부렀나 하고 한탄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원망할 것도 없다. 그들은 원래가 그런 자들이며 자기들의 이익을 좇아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우리의 이익이 그들의 이익과 다를 뿐이다. 계급적 연대란 그래서 나오는 말일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노자, 허동현 두 학자들의 논쟁에서 박노자를 지지한다. '민족' 이란 이름으로 한 덩어리로 묶기에는 이미 서로의 지향점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보수정당과 자본의 논리는 지금도 폭포수처럼 우리의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니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하면 바른 눈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지나간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군사적 애국주의의 파도가 드센 미국이나 극우화돼가는 일본, 국가주의가 유행중인 러시아, 그리고 중화 민족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체해 가고 있는 중국에선, '고전적' 민족주의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데올로기들이 계속 지배계급의 주된 통치도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설명해 주고 세계적 민중연대의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국제적 반세계화, 반자본주의운동의 주된 과제라고 확신합니다.(박노자)
위의 말에 찬성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이다. 내 눈엔 저들이 너무도 거대해 보여서 말이다. 나는 패배주의자인것 같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제가 보기에 100년전 제국주의에 맞선 민중들은 저항 주체로서 깨어 있지 못했기에 세상을 바꾸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시민들은 한데 뭉쳐다니는 우중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연대하는 주체들입니다. 이런 각성된 개별 주체들의 연합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전개될 수 있으며, 이들 세계 시민들의 연대가 제국의 지배를 깰 유일한 희망이자 무기라고 생각합니다.(허동현)
일단 오늘 우리의 시민이 우중이 아니라, 주체라는 말에 찬성할 수 없다. 내 눈에는 우중으로 보인다. 안 그러고는 아직도 지역주의의 미망에서 못 벗어나며 군사정권을 그리워하고 그 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눈물을 흘리겠나 말이다. 물론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 그들의 낙관과 열정이 아마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수줍게 한표 던지는 걸로 내 양심을 달래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시민 연대와 제국의 지배를 깰 희망을 이야기 하는 허교수가 용미를 얘기하고 현실의 한계를 얘기하고 민족주의를 버리기를 주저하는 것이 나는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세계시민연대와 이라크파병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다니? 그리고 용미란 미국을 이용하자, 라는 것일텐데 우리가 그럴만큼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또한 제국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금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전횡을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 얘네들도 강해지면 미국 못지 않을 것이니 지금 반미를 외치는 것은 좀.....이런 식의 발언이 있었다. 반대한다.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잠재적 범죄자가 무서우니 지금 칼을 휘두르고 있는 저놈을 참고 견디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책을 완독하고 내린 결론. 외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안으로 튼튼해야 한다. 안으로 튼튼하다는 것은 국민소득 2만달러라거나 수출 몇위 이런 것이 아니다. 억울한 사람 없고 특혜 받는 소수가 없는, 삶의 질이 보장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가진 자는 뭔 짓을 해도 1년도 안되어 사면받아 나오고, 감옥이 호텔같고, 없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죽고, 청년실업이 50만 이라 하고, 이래서는 제국과 자본이 파먹기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