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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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멋져, 정말 멋져.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고, 화끈하고, 찐득~하고, 절묘하고, 소박하고, 사랑스러우면서 슬플 수가 있다니.

처음에는 좀 심드렁하게 시작하여 뭔 소린가 싶었는데 몇 장 넘기지 않아 마리오와 네루다의 만남이 나오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만남이 나오고, 베아트리스와 그의 멋진 엄마(아, 그녀의 엄마는 정말 멋지고도 위대하다)의 대화가 나오면서 나는 처음에는 미소로 시작하여 실실 웃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딸내미들 앞에서 포복절도를 하는 바람에 해송이가 도대체 무슨 장면이냐고 읽어달라고 조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 대목을 어떻게 중학생 딸애에게 읽어 주겠는가.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위대한 시인 네루다의 평온한 노년에 연못에 돌을 던지듯 파문을 일으키며 자신에게도 메타포를 가르쳐 줄 것을,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뚜쟁이 노릇을 해 줄것을 요구하는 뻔뻔한 마리오도 사랑스럽고, 내치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마리오의 수작에 장단 맞추어 해 줄 것 다 해주고 가르칠 것 다 가르치며 그 소박한 바닷가 마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노구를 이끌고 비틀즈의 음악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대시인도 이 책에서는 위대함 보다는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위대해 보인다. 시인도, 마리오도, 이 마을의 꾸밈없고 질펀한 사람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리오가 숭배해 마지않는 베아트리스의 그 무시무시한 엄마.......^^

메타포를 가르치는 사람은 네루다이고, 그걸 배우는 사람은 마리오인데 이 책에서 메타포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베아트리스의 엄마인 과부 여인이다. 저 위의 인용문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말은 거칠 것 없이 질펀하면서도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 주는 칼과도 같다. 세계 어디서나 민중의 삶에서 시가 나오나니 우리도 고생하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에서 촌철살인의 시의적절한 말씀이 튀어나오는 것을 자주 목격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런지 칠레라는 아득히 멀고도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곳은 매우 가까운 곳이고 그 사람들은 다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이문구나 성석제 소설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며 능청을 떠는 등장인물들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게다가 갑자기 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론도......군사쿠데타로 죄없는 주인공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가 사라져 버리는 그 장면은 우리들이 결코 생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장면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간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이렇게 비슷한 것인가, 이들을 그냥 행복하게 살게 해 주면 안되는 건가?

 어쨌든 하늘나라에서 이 작품을 읽은 시인 네루다는 물론 대만족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 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지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시인의 엄숙한 수상 소감을 듣고는 술과 노래, 춤으로 광란의 축하파티를 벌인 뒤 '백퍼센트 예식장에서 맺어진 대로라고 볼 수 없는' 질탕한 쌍쌍파티로 마무리한 것도 아마 불만은 아닐 것이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신랄하게 중얼거린 베아트리스의 엄마만 빼고는 아마 모두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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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06-1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출어람이옵니다. 멋진 책에서 더 멋진 리뷰라니, 아이디에 '신'자를 넣으신 것이 괜한 변화가 아니셨구만요. ㅋㅋㅋ 리뷰를 읽고 깜짝 놀라서 추천합니다. (아직도 이 책 사놓기만 하고 안 읽었다는 ;;;)

깍두기 2005-06-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무슨 이런 엄청난 찬사를요! 청출어람이라니 땀 뻘뻘;;;;;; 이 책을 아직 안 읽으셔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읽고 나면 제가 그 멋진 소설을 좀 버려놨다는 걸 알게 되실텐데....^^;;;
그래도 추천은 덥썩 받고^^ (감사합니다)

미설 2005-06-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었는데 리뷰를 보니 더 읽어보고 싶어져요.

마냐 2005-06-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신'이 그런 뜻이군여...호오..
암튼, 영화, '일 포스티노' 좋았는데....이게 원작인가 보죠? 영화보다 나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기막히 대사 하나만으로 짐작컨대 말임다...ㅋㅋ

하이드 2005-06-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아끼고 있는데!

깍두기 2005-06-1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 꼭 읽으세요. 후회 안 하세요. 강추!
마냐님, 아이참, 그런 뜻 아니라는 거 아시면서....영화는 못 봤는데 저는 항상 책 쪽에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어요. 영화도 보고 싶어요.
하이드님, 아끼고 안 읽고 있다 그 말이신가요?^^

하이드 2005-06-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들 재미있다고 하니깐, 진짜 책 읽기 싫을때 꺼내 읽어야지 .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perky님 말로는 이자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과 같이 읽으면 좋답니다.

딸기 2005-07-2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추천하고 갑니다...
 
이슬람 - 9.11 테러와 이슬람 이해하기
이희수.이원삼 외 12인 지음 / 청아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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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집에 두고 와서 리뷰를 제대로 쓸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미뤄두면 결국 안 쓰게 된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깨달았으니 지금 노력해 보고 안 되면 그만 둘란다.

이 책이 나온 게 아마 9.11 무렵 아닐까 한다. 그때 그 엄청난 장면이 테레비에 방송되고 전세계가 경악하고 나서 이슬람 관련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실 그때 이슬람에 관한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 시절 나는 워낙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던 중이라 이런 류의 책에 잘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 정세나 각국의 현대사 등의 지식에 대해 나는 너무도 무지하기 때문에(우즈벡이 어디냐고 저번에 축구할 때도 혼자 중얼거렸다) 겁이 나서도 잘 안보게 된다.

이 책의 장점은 쉽다는 것이다. 평이한 문장과 반복되는 설명으로 이슬람하면 알라와 지붕이 둥그런 사원과 아라비안 나이트 요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매우 쉽게 이슬람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풍습이나, 이슬람이란 종교가 어떤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신앙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중동 지역의 국가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들의 현대사는 어떤 굴곡을 거쳐왔는지, 역사상 주요인물들은 누가 있으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하면 일반인들이 궁금해 할 내용들을 넓게 다룬 책이다. 그러니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나 중고등학생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슬람교라 하면 "한 손엔 코란(이 책에선 꾸란이라고 한다. 그렇게 불러야 하나 보다), 한 손엔 칼"이라는 기치 아래 주변국을 침략하여 강제 개종시킨 무서운 종교라고 알고 있고, 중동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이슬람의 참모습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부다처를 인정한다 하여 반여성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낙인 찍고 보는 선입견도 교정할 수 있고 말이다. 모든 문화와 풍습은 그 역사적 배경과 원인이 있는 법, 알고 보면 그들은 서양보다 먼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왔던 사람들이다. 호주제도 이제서야 폐지하는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뭐라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다. 물론 나더러 이슬람의 여인이 되고 싶냐면 그건 사양하겠지만.....요컨대 배경을 알고 보면 이해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미국적 시각에서 사고해 왔는지 알게 된다. 책의 뒷부분 쯤에 호메이니에 대해 나오는데 사진을 보니 난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적 호메이니옹이라고 하여 조선일보인가 동아일보에 마치 지구를 위협하는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되어 4컷 만화에 그려지던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니 그는 굉장히 청렴하고 괜찮은 종교지도자 겸 정치가로 이슬람 세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난을 겪고 있는 소수민족들, 최근 독립한 신생국들 중 이슬람문화권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이건 다 나의 무식의 소치이니 창피한 노릇이지만 ㅠ.ㅠ).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체첸, 보스니아, 세르비아, 코소보 등등 신문의 국제면을 장식하던 여러 분쟁 국가들이 도대체 왜 싸우고 있는지가 이 책에 대략 서술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도 이렇게 기억을 못하니 어디다 적어놓고 외워야할까? 괴롭군)

이렇게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다양하게 접하게 해 주었는데 별점을 하나 깎은 이유는 12명의 저자가 각자 주제를 나눠 맡아 쓰다보니 일관성이 없고, 반복이 많아서 나중엔 좀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끄럽지 못한 문장도 꽤 많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잘쓴 글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사실 별 세개 반 정도 주고 싶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좀 더 심도 깊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으신 분 중, 이슬람 관련 좋은 책을 알고 계신 분은 댓글로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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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6-1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따우님. 커피에 소금 얘기 여기서 나와요 ㅎㅎ 재밌죠? 저도 이슬람의 현재는 반여성적이라고 생각해요. 종교의 경전이란 게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건 그 시대의 필요와 사고의 굴레에 매이기 마련이니 현재에 맞게 재해석해야 하는데 그러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교조적 해석을 하고 있지 않나....뭐 이런 거.
그리고 일처다부제는 좀....몸이 힘들 거 같아서 곤란. 히히^^

panda78 2005-06-1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수일님의 [이슬람 문명]이 어떨까요? ^^

panda78 2005-06-1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쓰신 위의 책은 꽤 산만하긴 했어요. EBS의 다큐멘터리 이슬람 10부작(12부작인가..?)이 참 재밌었는데..
이희수 감수더라구요. ^^


깍두기 2005-06-1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보고 왔어요. 재밌을 것 같네요. 보관함으로~ 고마워요, 판다님^^
 
만화 21세기 키워드 - 전3권 - 비빔툰 가족과 함께 떠나는 미래 과학 여행
이인식 원작, 홍승우 글, 그림 / 애니북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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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1세기가 궁금한 중학생, 21세기 과학지식을 알고 싶은 고등학생,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을 위한 만화 21세기 가이드북!

책표지에 있는 광고문구 그대로다. 거기다 플러스 알파를 한다면, 우리집 막내 초등학교 3학년짜리 딸아이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리고 어른인 내가 봐도 재밌다. 너무 시시하지 않느냐고? 교양과학도서를 많이 읽고 신과학개념에 대해 도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땅의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 나온 개념들에 대해 '어디서 많이 들어 보긴 했고,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말인데 정확히 뭔 말인지는....?'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만 해도 <창발성>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창의성, 창조성과 비슷한 단어인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괜히 어렵게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그 개념들을 다 자세히 알려고 해당 과학 도서를 찾아 읽다간 365일 날이 새고도 모자랄텐데 한시간에 한권씩 세시간만 투자하면 어느 정도 감은 잡고 그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아는 척할 것도 좀 생기니, 이 책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의 입에도 잘 맞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나노기술, 내분비계 장애물질, 데이터스모그, 배아줄기세포, 튜링테스트, 트랜스제닉, 프랙탈 등등등 들어는 본 말인데 설명하라면 말이 막히는 갖가지 신과학용어들을 한권에 40개씩 설명해 놓았으니 총 120개의 과자가 든 종합선물세트가 되겠지?^^

그리고 원작 이인식에 그림 홍승우라면 대충 만든 책은 전혀 아니다. 똑같이 공부가 된다 하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사 주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마법 천자문>등은 편집기획의 승리이지 사실 그림은 영 조잡한 것 같아서 나는 좀 불만이다. 이 책은 그런 불만 없이 즐길 수 있다. 물론 공부도 많이 된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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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0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벌써 몇 권째 장바구니에 담나 모르겠어요...ㅠ.ㅠ

깍두기 2005-06-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랑 사세요 호호호~

그로밋 2005-06-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괜찮은 책이군요. 전 좀 허접한 책 아닐까 싶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사기엔 좀 부담스럽구요, 도서관에서 신청해서 봐야겠어요. ^^

깍두기 2005-06-10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밋님 오랜만입니다. 학습만화가 요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 아주 우수작이란 생각이 드는 책이랍니다^^
 
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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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정리한 줄거리를 적어보자면

어느 마을에 푸셀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푸셀은 잔소리를 하는 엄마 아빠가 싫었다. 그런데 푸셀은 어느날 잔소리 없는 날을 정했다. 그 다음날 푸셀은 씻지도, 양치질, 세수도 안하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 2교시가 끝나자 푸셀은 학교를 땡땡이 쳐 버렸다. 그리고 집에 왔는데 엄마는 그걸 알고서도 잔소리 한마디도 안했다.

그리고 파티를 열자고 했다. 엄마는 놀라 물었다. "오늘? 이렇게 갑자기? 누가 올건데?" 푸셀은 "한 여덟명 쯤이오" 엄마는 알았다고 햇다. 그리고 이따가 술취한 사람을 데려왔다. 술취한 사람은 바닥에 눕자마자 골아떨어졌다. 할 수 없이 엄마와 푸셀끼리만 했다. 아빠가 돌아오자 술에서 깨어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다.

느낌은 하나도 없이 줄거리만으로 독서록을 메꾸는 바람에 난 딸아이의 소감이 매우 궁금했다. 그러나 별달리 물어보진 않았는데 어느날 내 앞에 이런 걸 내미는 것이었다. 



자기가 이걸 내밀면 나는 하룻동안 잔소리를 하면 안된다나 뭐라나......그러니까 얘는 푸셀이 무진장 부러웠던 것이다. 저 특별권을 보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이 맹랑한 것이 교묘하게도 설거지 특별권, 어깨 주물러주기 특별권과 같이 내밀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받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별다른 것은 없었다. 학교도 가고 숙제도 하고, 세수도 양치질도 다했다. 술취한 사람을 초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때가 여러번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저절로 "소현아! 그럼 안되지!"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럼 소현이는 날 째려보며 "엄마 ㅡ 잔소리 없는 날 ㅡ"이러고......

나는 아마 저 책에 나오는 푸셀의 엄마 아빠처럼은 절대 못할 것이다. 애가 텐트 가지고 공원에 가서 잔다고 하는 걸 그냥 보내고 그 뒤를 따라와서 몰래 지키고 있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애 입장에서 생각해보게는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을 보고 나서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들에게 이 책을 사주고 엄마는 안 읽으면 안된다. 길지도 않은 책이니 엄마도 읽어봐야 이 책을 읽고 푸셀에게 공감하는 아들딸들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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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06-0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꼭 필요한 책이네요~
요즘 잔소리를 달고 삽니다. 별 효과없다는걸 알면서도 습관성이예요~

날개 2005-06-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흐흑~ 이 책을 찜하고 싶었건만....ㅠ.ㅠ

마냐 2005-06-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똑똑한 소현이...ㅋㅋ

sooninara 2005-06-0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잔소리하고 싶어서 못살듯..ㅠ.ㅠ
저도 읽었는데..우리 아이들에겐 안 읽힐까봐요..ㅋㅋ

조선인 2005-06-04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맹랑공주 소현이에요. 소현이 만만세!!!! 팬클럽들 뭐합니까? 추천 날려야죠?

깍두기 2005-06-0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과 추천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바디 스내처 - 이색작가총서 1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 너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너무도 친숙했던 것이 낯선 것으로 바뀌는 공포, 그것이 귀신이나 괴물보다 사람을 더 두려움에 떨게 하는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 땐가 한참 유행했던 괴담이 있다. 야자를 하고 마중나온 엄마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딸애가 엄마, 하고 부르자 엄마가 '내가 아직도 니엄마로 보이니?'라고 말했다는.

그런 비슷한 공포다. 어느날 같이 사는 식구가 겉모습은 똑같은데, 점하나 흉터 하나까지 똑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무서울까.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작가의 글빨이 딸려서인지 아님 너무 옛날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그래서 그동안 이와 비슷한 영화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인지, 하여간 호러라고 부르기에는 긴장감이 좀 덜하다.

SF지만 과학적인 설명에 치중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외계인이 어떤 원리로 인간과 몸을 바꿔치기하는지 보다는 그 과정의 괴기스러움을, 분위기를 묘사하려고 노력한 듯 한데 내가 이렇게 공포를 못 느끼다니 미안한 노릇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1955년에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충분히 공포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을. 50년 동안 이런 소재는 책과 영화를 통해 재탕삼탕사탕....하여간 끝없이 우려먹었으니 이제 웬간하면 눈도 깜짝 안하게 되었다.

그래도 단숨에 읽히는 책이었다. 골머리 싸매는 책 읽다가 집어들고 잠시 서늘함을 느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친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고 공포스러운 것으로 바뀌는 '친근한 관계성의 공포'는 그 시대에 미국에 미친듯이 불어닥쳤던 매카시즘 선풍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로 작용한다니(역자후기) 또 그렇게 본다면 새로울 수도 있다. 내 이웃과 내 친구를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강탈하던 외계인들이 주인공에게 '너희도 버팔로를 멸종시키고, 지구를 점령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랑 다를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종족 보존의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다'라고 한 말도 의미심장하긴 했다. 인간도,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사악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야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렇게 보면 이 외계인들은 아주 점잖다. 작은 저항에 부딪히자 조용히 물러난다. 그래서 마지막이 싱겁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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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6-0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저항에 부딪히자 조용히 물러나는 외계인이라... 그거 부리 같은데요...

마태우스 2005-06-0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신깍두기님, 제가 아직도 부리로 보이세요?

마태우스 2005-06-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리뷰엔 안이러기로 했는데... 리뷰 멋지게 써놨더니 이상한 애들이 이상한 댓글 달면 정말 짜증날 것 같아요. 죄송해요 깍두기님. 하지만 님은 신깍두기님이니 용서해 주시겠죠? 구깍두기님 같으면 난 죽었다...

깍두기 2005-06-03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 그만 좀 웃겨요. 그동안 저한테 잘못하신 거 다 용서해 드릴게요^^
리뷰에다도 얼마든지 이상한 댓글 달아도 되니 걱정 마시구요.

하이드 2005-06-0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해요. 이 아파서 그럴꺼에요.

하이드 2005-06-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발송되었다고 문자 왔던데, 그래 스무넷 화이팅! 내일쯤은 도착하겠네요.

깍두기 2005-06-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쌍한 마태님.....게다가 내가 메롱까지 했으니....

깍두기 2005-06-0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알라딘을 버리고 그래스무넷을....거기가 더 싸요?

마냐 2005-06-0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왜 신깍두기님이셔요. 제가 그 사연을 놓친거 같아요..어맛. 정말 생뚱맞은 댓글이로군요. 저로 하여금 선택의 오류를 줄여주신 고마운 리뷰인데..^^

하이드 2005-06-04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그래스무넷에서 주문해요. 제일퍼스트카드 적립금을 위하야;; 그리구, 마침 알라딘에 품절인 음반도 있고 해서 주문하는김에;;

깍두기 2005-06-0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그 말씀은 책을 안 사시겠다는....?(딜비쉬 사면 그냥 줘요^^)
하이드님, 알뜰하시군요. 전 여기저기 적립금 계산하기 귀찮아서 분산투자(?)는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