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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평점 :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이것만은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던 한 길 사람 속, 그 인간심리의 미로를 후비고 파헤쳐 그것을 자로 재고 계량한 후, '자,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라고 까발려 보였던 열명의 학자들이 이 책에 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인간이 보상과 처벌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는 아기는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다르게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글쎄),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뇌 어느 부분에 어떤 기억이 저장되는지, 기억이라는 정신활동으로 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하는 생물학적 부분에 대한 지식도 갖게 되었고 말이다.
그러나 인간 심리를 과학의 영역에 갖다 놓은 이 열명의 심리학자들은 살아 생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죽어서도 오명을 씻지 못하고 계속되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의 실험대상이 인간(혹은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인 원숭이)이었기 때문이다.
뇌엽절제술을 개발한 모니즈를 예를 들어보자. 그는 인간의 뇌 속에 알코올을 들이 부었다. 그리고 메스로 뇌의 여기저기를 잘라냈다. 끔찍하지 않은가? 보상에 의한 강화를 증명한 스키너는 어떤가? 그는 자기 딸을 실험대상으로 삼고 '아기상자'라는 것에 딸을 넣어 키웠다. 너무하다고? 그럼 이건? 스탠리 밀그램이라는 자는 가짜 전기충격기 앞에 실험자를 세우고는 그걸 진짜라고 속이고 버튼을 누르게 했다. 그럼 전기충격기 속의 배우가 비명을 지르다 죽은 척 하는 것이다. 그는 이걸로 사람이 부당한 권위에 얼마나 맥없이 복종하는지를 측정했다. 부당한 권위에 힘없이 복종한 70퍼센트의 실험자들은 그 후 얼마나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갔을지?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실험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것이고 심한 경우는 공포스러울 것이다.(내 뇌가 열리고 머릿속 어디에 뭐가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기저기를 들쑤신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불쾌감과 공포심이 이들 심리학자들에 대한 크고작은 오해들을 만들었다.
위에서 예로 들은 심리학자들의 실험은 이 책에서 읽으면 생각만큼 끔찍하지는 않다.(물론 불쾌하기는 하다만) 아기상자만 해도 그것은 그냥 잘 설계된 아기놀이터에 불과했다. 커서 자살했다던 그 아기는 지금 예술가로서 잘 살고 있다. 뇌엽절제술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고, 치료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만 시술되었다. 사람들의 공포심이 이야기를 부풀리고 부풀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윤리적인 문제를 완전 비껴 간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동물실험에서 죄없이 죽어간 원숭이들, 여러가지 실험에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없을 리 없다. 그들이 생각만큼 다수가 아니라고 해도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지은이 로렌 슬레이터의 너무나 효과적인 변호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과학자들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이 천재적인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가르쳐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며, 옛날보다는 실수를 좀 덜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혜택을 고스란히 입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들의 잘잘못을 따진다는 건 여간 난감하고 곤란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원숭이를 고문하다시피 괴롭혀 얻은 과학적 결론이 '아기에게는 스킨쉽과 사랑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라니 너무도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들의 업적을 인정하지도 비난하지도 못하는 이 고민스러운 지점에 저자 로렌 슬레이터도 서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애정을 가지고, 괴물로 취급되던 이 몇명의 냉혈과학자들을 고뇌하는 인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매우 공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