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지승호님(알라딘에 서재를 갖고 계셔서 이 글을 볼 것이 분명하므로 할 수 없이 '님'을 붙인다ㅡ..ㅡ;)의 책을 이것까지 합하면 세권을 읽었다. <크라잉넛, 그들이 울부짖다>와 <마주치다 눈뜨다> 그리고 이 책 <7인7색>.
지승호님은 한국사회 최초로 전문 인터뷰어라는 분야를 개척한 분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인터뷰란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 언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유명인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 몇가지 질문을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분은 아무데도 속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들려주는 아주 특이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내 생각에 이 일은 누군가는 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지는데, 우리 사회가 언론이 발달하면서 뭔가를 다 기록하고 보관하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언론이란 것이 파편화된 쪼가리 정보 밖에 기록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승호님 식의 인터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1. 우리 사회의 어떤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 시대를 어떤 식으로 살아왔으며 개별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2. 그 인터뷰가 기록될 당시 사회적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이 두가지가 중첩되어 쌓여갈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기록물이 될 것 같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7분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가지 면에서 매주 만족했는데 첫째는 이 인터뷰가 적절한 질문을 통해 그분들의 평소 사상이나 철학(너무 거창하면 그냥 생각)을 드러내 주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사이사이 그분들의 저서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인간적인 측면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한분 한분 만나본 소감.
<진정한 아나키스트 박노자>
난 내가 아나키스트인지 몰랐는데 이 인터뷰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의 말에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그 유명한 '당신들의 대한민국'도 읽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그의 저서를 읽어볼 참이다.
그러니까 애국심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자기 이웃을 사랑하고 한국민중을 사랑하는 진정한 의미의 애국심은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우리를 억압하고 똥 먹이는 군대를 만든 국가를 내가 왜 강제적으로 사랑해야만 합니까? 그리고 한국 국적이 없다고 해서 자기 이웃이나 자기와 문화나 언어가 같은 한국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까?==> 내가 도덕시간에 '나라 사랑' 단원이 나오면 항상 하는 얘기. 얘들아, 애국이 별게 아냐. 내 주변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고 나보다 힘든 사람을 생각하는 게 애국이다. '국가'란 아무 형체도 없는 것이다. 그냥 옆사람을 사랑해라. 이제 박노자 선생님을 만났으니 나는 이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길고 긴 인터뷰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한 마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체인점은 김밥천국이에요.ㅡㅡ>ㅎㅎ 이분 진짜 한국인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 이우일>
이우일은 내가 '옥수수빵 파랑'에서 본 이우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라고나 할까. 그런데 정치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의외인 것이 그가 그런 작업을 심심치 않게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옛날에 딴지일보에 연재된 존나깨군 분위기로 얘기한다면 '존나 재수없어서 씹은 것 뿐' 이라는 투다.
뭉치는 거 있죠? 뭔가 이루기 위해서 모이는 게 참 재수 없더라구요.......그분들은 사회적인 의식이 있으니까 하는 걸 텐데, 저는 웬만한 사건이 아닌 이상 개인적으로 그런 활동을 벌일 것 같지는 않아요.
약자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그러나 나 자신도 떼로 모이는 걸 좀 싫어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그가 이상하진 않다. 저런 사람도 있어야지. 재밌었다.(그리고 그가 그렸다는, 그리고 이제 희귀본이 되어버린 그 '빨간책'이 무지 보고 싶다)
<낭만주의를 포기한 낭만주의자 유시민>
여기 실린 일곱개의 인터뷰 중 가장 재밌었다. 유시민은 직접 대놓고 적으로 만나면 매우 거북한 상대일 것 같다. 대화가 거침이 없고 상대방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해야할 말은 꼭 할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흥미진진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으로 느끼는 호오의 감정을 떠나서 이 사람의 정치적 행보에 관해서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이번 인터뷰에서 결정적으로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이제 유시민에 대한 내 마음을 접을 것 같다.
지승호- 재외동포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데요. 그를 두고 네티즌은 우리당 386의원들을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유시민- 저는 그냥 욕먹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욕먹기 싫어서 찬성표를 찍어 줬거든요.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개정안을 내면 되요....지금으로서는 그 법을 지지하는 분들을 설득할 수가 없어요......
홍준표가 그때 발의한 재외동포법, 거기에 찬성표를 찍어줬다는 것만으로 유시민을 매도할 생각은 없으나 그러면서 이유로 댄 구구절절한 변명(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은 항소이유서를 쓴 유시민과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접한 뉴스, 황우석 보도를 한 피디수첩에 대한 발언 때문에도.
<광대의 철학자 진중권>
나는 진중권이 좋다. 나는 그가 '장바닥에서의 싸움질을 마다않는' 논쟁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인터넷 토론공간이니 이런 곳에 들락거려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체감을 못했는데 이 인터뷰를 보니 그의 말투나 생각하는 방식은 상당히 내 스타일이다. 그러면서 또 책은 얼마나 재밌게 쓰는지 <미학 오디세이>와 <놀이와 예술의 상상력>은 또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는 많은 사안에 대해서 발언한다. 그리고 그 발언은 대체로 정확하고 신랄하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적들에 대해서도 그는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만을 씹어 주고, 그것으로 잊어버린다. 뒤끝이 없다.
이런 점이 내 맘에 든다. 그의 책을 더 읽어야겠다.
<유연한 사회주의자 노회찬>
숱한 어록을 남긴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라 흥미진진한 인터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 대신 공부를 많이 시켜주었다고나 할까. '나는 좌파다. 사회주의자다' 라고 얘기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 세상을 꿈꾸는 인도주의자 하종강>
이렇게 열심히 노동자를 위해 살면서도 노동자에게 부채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 책에 나오는 일곱명의 사람 가운데 가장 인간적으로 감명을 주신 분이다. 부채감 ㅡ 그런 건 우리같은 사람이 느껴야지 20년을 한결같이 노동자의 삶과 함께 해온 분이 부채감이 웬말인가! 그러나 그의 이 지나칠만큼 결벽한 양심 덕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진정성으로 우리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입만 살은 지식인들의 찌르는 듯한 말이 아닌 징처럼 에밀레종처럼 둔중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한마디 한마디.
"그럼 노동자들이 일은 예전보다 훨씬 적게 하면서 돈은 다 받겠다는 건데, 그건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인류의 역사는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적게 일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잘살게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정말 인류역사를 꿰뚫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외워서 써먹을 테다.
<타인을 부끄럽게 하는 좌파 김규항>
그의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아서(잡지에 연재한 짧은 글 몇번 읽은 정도) 김규항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인터뷰를 보고나니 읽고 싶어졌다. 특히 앞으로 나온다는 <예수전>. 긴 인터뷰 내용 중 이 대목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지승호- 프랭클린 플래너를 안 쓰는 이유가 '성공하기 싫어서'라고 하셨는데요. 성공에 목표를 두고 살지는 않는다 해도, 자기 일 열심히 해서 그것으로 성공하면 좋지 않습니까?
김규항- 좋지 않다고 보는 거지. 좋은 성공은 없다고 보는 거야.....(후략)
이 말 이후에 긴 설명이 이어졌지만 나는 그냥 이 말만으로도 김규항이 조금 좋아졌다.
이 일곱분과의 데이트를 주선해 주신 지승호님께 감사. 그리고 한가지 부탁드린다면 책 많이 내신 분 말고, 몸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어느 분야에서건. 연예인, 노동운동가, 운동선수 등등)의 인터뷰를 해주시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그야말로 기록해놓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책 쓴 분들이야 자기 책이 남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