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평균 한 달 6회 정도의 술자리를 갖는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균적인 직장인들의 한 달 술자리 횟수를 한 주에 벌써 달성하는 경이적인 스케쥴을 자랑합니다. 저의 경우는 주로 직장 근처나 지인이 계시는 서울에서 술자리를 많이 갖기에 집이 있는 인천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새벽 2시나 되서야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버스를 타고 새벽에 오는데, 무심코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니 우리 집 바로 맞은편 중학교의 모든 방(교실, 교무실, 화장실 할 것 없이 전부)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인가, 생각해봤지만 중학생들을 모두 새벽까지 붙잡아두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야간자율학습을 하더라도 저렇게 필요없는 방까지 전부 불을 켜둘 이유는 없을 겁니다. 의아하다 하면서도 그날은 그냥 집에 들어갔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역시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학교 모든 방에 전깃불은 3일 연속으로 켜져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불을 저렇게 다 켠 거지? 아마도 이러한 것이 일상의 미스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소박한 의문들, 별 거 아니지만 한번 궁금증이 들면 알 때까지 잠도 안 오는 그런 답답한 질문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 작지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는 그런 미스터리의 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궁금증을 참다 못해 그 중학교에 몰래 잠입해 조사를 펼치다, 학교가 정부 지원금을 더 받기 위해 일부러 모든 방에 전기를 밤새도록 틀어놓아 전기요금을 올리려 했다는 음모(?)를 밝혀내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역시나 한 편의 일상 미스터리가 되는 셈이겠지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1991년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일상의 수수께끼' 계열의 작품 중 손 꼽힌다고 하는데 이제야 소개되었습니다. 도입부부터 참으로 신선합니다. 건설회사 사보 편집장인 와카타케 나나미(작가와 동명이네요)가 사보에 매달 한 편씩 실을 소설들을 대학 선배인 소설가에게 의뢰합니다. 선배 소설가는 고사하는 대신에 친구인 익명 작가를 소개시켜 주고 다음 달부터 익명 작가의 원고가 날아옵니다. 작품은 1년 동안 진행되는 소설 연재에 맞춰 4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총 12편이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연재 종료 시점에서 와카타케 나나미가 익명 작가를 만나러 가는 '편집자 후기'가 들어가며, 최후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익명 작가의 마지막 편지'로 막을 내립니다.

참으로 교묘한 구성입니다. 매 단편은 사보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 앞에는 사보 '르네상스'의 목차가 먼저 소개되고, 그 다음에 소설이 시작됩니다(보시기에 따라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목차지만 최후 반전의 순간에 이마저도 활용하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소설들은 계절감에 맞게 2월에는 발렌타인 데이에 얽힌 사건이, 4월에는 벚꽃놀이,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등장하는 식이라 우리네 일상과 한층 밀착된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내용적으로는 암호부터, 밀실 소실, 오싹한 괴담까지 다양해 맛있는 잔치상을 펼쳐놓은 느낌입니다.

가장 추천할 만한 작품은 쇼핑중독증에 걸려버린 친구를 미행하는 <1월 정월탐정>으로 근래 본 미스터리 단편 중 최고의 완성도라 생각합니다. 깔끔한 트릭과 잘 배치된 단서로 어느 미스터리 단편 앤솔로지에 실려도 충분할 듯 해요. 이외에도 상가 대항 야구 게임에서 사인을 훔친다는 혐의를 받는 야구 코치가 남긴 암호를 밝혀내는 <6월 눈 깜짝할 새애>는 암호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코믹하고 재치있는 트릭을 볼 수 있구요. 전화 통화로만 진행되는 <2월 밸런타인, 밸런타인>은 사소한 속임수지만, 이런 소담한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일상 속의 보석이 아닐까 생각되어 너무 흐뭇해졌어요.

다만 몇몇 이야기는 일본의 정월 풍습이나 식습관 등의 문화적인 부분이나, 일본 말에 능통하지 못하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만약 트릭이 시체를 사지절단해 팔 다리를 동서남북으로 늘어놓는다는 식으로 너무 거창해진다면 이미 일상의 미스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미스터리는 예를 들어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동음이의어로 인한 사소한 오해나 자주 겪는 실수담 등을 이용해 소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비결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일본 문화의 자잘한 것들이나 일본 말의 음운의 유사성 등이 자주 나오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수밖에는 없겠네요.   

조금 부족한 이야기나 약간 납득이 안 가는 설정의 단편들도 분명히 있지만,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소박한 분위기에 가끔씩 까무라치게 재미있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인상적인 단편집입니다. 90년대 초반 일상 미스터리 유행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제게는 이 장르가 어찌 보면 미스터리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스터리가 특유의 과장이나 비현실적인 특징 때문에 폄하되기도 하는데, 일상 미스터리는 적어도 현실적인 공간과 배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감가게 그리는 특징이 있으니 말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실린 이야기들은 비록 소박하고 정감있는 것들이 많지만 익명 작가의 마지막 편지로 밝혀지는 모든 사건의 전모는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와카타케 나나미는 악의와 독으로 수놓아진 오싹한 뒷맛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모양입니다.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그런 씁쓸한 결말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단편집 하나로 와카타케 나나미의 앞맛과 뒷맛을 전부 파악하는 건 무리가 있겠고, 더 많은 작품을 보면 스타일이 분명해지겠죠. 새로이 알게 된 작가가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몹시 짜릿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짜릿한 소설들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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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7-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마지막이 최고의 강점같더군요^^

비로그인 2007-07-0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맨마지막에서 짜릿했어요. 다시 읽어보려고 했는데 다른 책이 손짓해서 그만두었지만..요. =..=;

jedai2000 2007-07-0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동감입니다. 가만히 보면 작가가 무척 머리를 많이 굴린 작품이예요. 신경써서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했더군요 ^^

새초롬너구리님도 이미 보셨군요. 와, 미스터리 무척 사랑하시는 분 같아 굉장히 반갑네요. 저도 미스터리에 살고 죽는 놈이라, 동지분 만나면 무척 반가워요 ^^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셜록 홈스 깨나 읽은 사람이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 꿈은 홈스 같은 명탐정이었다. 비범한 두뇌에 강렬한 개성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나자빠지는 어려운 문제를 좌중 앞에서 멋지게 풀어내 박수갈채를 받는 명탐정 말이다! 그런 점에서 추리소설은 어쩌면 영웅설화나 판타지에 한 발짝씩 걸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범인을 뛰어넘는 초인의 등장과 그의 영웅적인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독자들이 꾸준히 있는 한 추리소설의 인기는 영원하리라.

그런데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의 남녀 주인공인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다르다. 두 사람은 비범한 추리력과 예리한 관찰력, 논리적인 추론 능력 등 탐정이 겸비해야 할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절대로 추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알고 보니 이제 고등학교 1학년생이 된 두 사람은 중학교 때도 탐정으로 날리다 뼈아픈 패배를 당한 적이 있고 자신들이 많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댔구나, 하는 쓰라린 자각을 해 고등학생이 된 이제부터는 '소시민'으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두 사람이 겪었던 실패담은 이 책에선 나오지 않는다. 아마 시리즈가 더 진행되면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초등학교 때 고바토의 친구였던 겐고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재수없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를 딱딱 풀어내던 고바토가 너무 얌전해진 것이 수상하다. 겐고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고바토를 찾고, 오호 통재라 여전히 들끓는 탐정의 피를 억제하지 못하는 고바토는 그림자같이 항상 붙어다니는 오사나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그러고는 다음 날이면 자괴감에 몸부림친다. "또, 또 추리를 했어!" 하지만 두 사람의 자질이 그리 출중하니 앞으로도 추리는(그리고 반성은) 계속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

예쁜 제목의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은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보니 등장하는 사건들은 절대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학교 친구의 가방을 되찾아준다거나, 봄철에만 한정 판매하는 딸기 타르트를 실은 자전거를 훔쳐간 범인을 찾는다거나,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미술부 선배가 그린 조잡한 그림을 보고 왜 저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내는 식이다.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는 장르인 일상의 수수께끼 계열의 작품이라 보면 틀림이 없겠다.

추리하기 싫어하는 두 탐정의 귀여운 고민과 소박하지만 그 또래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사건들이 쓱쓱 풀려 나가는 재미가 있는 책으로, 전부 5편의 단편이 모여 있지만 각 편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라 장편으로 봐도 무방하다. 너무 짧고 간단한 퀴즈 같은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과 <컨닝 페이퍼의 비밀>은 좀 시시하지만 50페이지를 넘는 나머지 세 사건들은 추리소설의 구조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고 트릭도 그럴듯해 만족스럽게 읽힌다. 나 같은 멋도 맛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타르트가 뭔지 밀푀유가 뭔지 영 다가오지 않지만 그런 쪽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봄에만 파는 딸기 타르트도 몹시 먹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다.

전부 250페이지 분량으로 짧아 가독성도 좋고, 소박하면서도 은근히 유쾌한 분위기가 기분 좋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일상 미스터리라 지금 학교에 다니는 젊은 친구들이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수준이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볍게 읽어볼 만한 청춘 미스터리로 경쾌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장한다. 원래 타르트나 케익 같은 건 매일 먹을 수는 없지만 가끔 먹으면 무지 맛나지 않나. 다들 맛있는 독서 하시길. 

p.s/ 후속편은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이란다. 이쯤되면 가을, 겨울은 어떤 제목으로 나올지 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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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귀여운 코지물인가 보군요 ^^

jedai2000 2007-07-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아주 귀여운 코지 미스터리입니다 ^^

레몬향기 2007-07-0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다르겠지만 한나시리즈랑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꼭 한번 읽어보고싶어요..

jedai2000 2007-07-0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님...한나 시리즈랑 밝고 유쾌한 분위기랑 디저트가 중시된다는 점은 비슷하네요. 사실은 전 한나 시리즈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
 
신화가 된 사람들 - 경쟁에서 이기는 10가지 법칙
진 랜드럼 지음, 양영철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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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번뿐인 인생, 그냥 그렇게 살다 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성공을 원하고 멋있게 사는 걸 꿈꾸는 게 당연하다. 이런 사람들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영악한 출판사들은 성공 지침서 등의 책을 곧잘 펴내 성공에 목마른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고 있는데, 나 역시 그런 흐름에서 자유롭지는 못해 셀프 스터디, 경제 경영 처세서 등의 책들을 한두 권 읽어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우화 형식을 차용한 지침서들은 알맹이는 없고 그저 그런 고루한 교훈들로 점철되어, 본전 생각만 간절할 뿐이었다. 이 책 <신화가 된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콘셉트가 좋은 것 같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으로 라이벌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위대한 스포츠 스타 10인의 삶에서 배우는 성공 비결, 멋지지 않은가? 
 

더구나 스포츠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꼭 성공 지침서로가 아니더라도,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 등의 슈퍼스타의 빛나는 활약이 잘 요약된 이 책을 일종의 가이드북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여러모로 기대를 하고 읽었고, 실제로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아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어 유감이다. 문학의 경우라면 사실 관계가 다소 어긋나도 문학적 허용이라고 봐 줄 수도 있겠지만 실화를 토대로 교훈과 감동을 주는 이런 류의 책에서는 사실 관계를 생명처럼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분이나 편집하신 분들은 인터넷이 깔린 컴퓨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했는지 얼토당토않는 내용이 가끔 나와 눈쌀이 찌푸려진다. 예를 들자면 본문 29쪽에 나온 내용이다. "존 스톡턴은 NBA 사상 최고로 많은 어시스트와 인터셉트 기록을 남긴 선수이다. 그리고 또 역시 NBA 사상 최고로 많은 팀을 오갔던 선수도 존 스톡턴이다." 점심 먹고 막간을 이용해 인터넷 검색을 1분만 하더라도 존 스탁턴이 유타 재즈 팀에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쭉 뛰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아 유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존 스탁턴이 저니맨이라니 오류가 이만저만이어야지.

 

또 타이거 우즈 편에서는, 본문 383쪽에서 "하지만 2000년 6월 우즈가 US오픈에서 페블 비치를 놀라운 15타 차로 누르고 우승했을 때"라고 적어 페블 비치라는 선수를 15타 차로 누른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페블 비치는 프로암 골프 대회가 열리는 골프 코스 이름이다. 기본적인 산수 능력만 있으면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본문 363쪽에는 "1975년 12월 30일 첫 아들이자 외동아들인 엘드릭 타이거 우즈를 얻었다"로 되어 있는데, 본문 386쪽 "이 책이 집필될 무렵 우즈는 마흔 살에 접어들었고"란다. 올해로 따져봐도 1975년생이면 33살이다. 멀쩡한 사람을 순식간에 중년으로 만들다니 우즈가 얼마나 슬퍼하겠나.

 

이외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뜯어봐야 겨우 이해가 되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오탈자나 행바꿈 실수도 무척 많다. 작가의 말을 보면 "편집 작업은 길고 지루한 과정이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엄청난 작업 분량에도 불구하고 최종 편집 작업을 완성해 준 로즈마리 테너에게 특히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그녀의 세심한 끈기가 없었더라면 작업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들쭉날쭉하고, 애매모호하고 소홀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정리되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담당 편집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작가 진 랜드럼은 로즈마리 테너에게는 감사해도 이 책의 한국판 편집자에게 감사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판 편집자의 세심한 끈기와 노력이 부족했기에 <신화가 된 사람들>의 한국판은 들쭉날쭉하고 애매모호하고 소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 비난만 한 것 같아 죄송한데, 이 책의 주제가 결국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불꽃같이 다시 타올라 성공을 일구라는 것이기에 이 책을 작업하신 분들도 좌절하지 말고 더 노력해 다음에는 훨씬 완성도 있는 책을 만들어주십사 하는 부탁을 진심으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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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7-07-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류 목록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ㅎㅎ

Koni 2007-07-0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일침이 강렬합니다.

jedai2000 2007-07-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복의 랑데뷰님...저보다 스포츠에 대해 훨씬 많이 아시니 더 많이 찾으시겠네요.

냐오님...서평단으로 받은 책이라 영 죄송스럽긴 한데, 그래도 구체적인 걸 지적해야 수정도 되고 그럴 것 같아서요. ^^
 
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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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갑이다]는 미야베 미유키가 199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이 작품을 잡지에 연재하기 전까지 단 1권의 책만을 낸 상태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입니다. 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일본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이기에, 최근의 일본소설 유행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12권이라는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명성이 높은 일본 미스터리 여왕의 작품이 또 나온 것입니다.

저는 물론 미야베 미유키를 매우 좋아하고 전설적인 [화차]나 [모방범] 같은 작품들을 아주 높게 평가하지만, 일본에서 근 20년 넘는 시간 동안 변화하고 발전해온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읽어온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단기간에 너무 쏟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더군요. 쉽게 말해 물릴 수 있다는 건데, 어떤 작가도 1년에 10편 이상 읽으면 질리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해서 [나는 지갑이다]도 아주 반색을 하고 책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요즘 너무 읽었어, 더구나 초기작이라니...이런 마음이었죠.

하지만 10개의 단편이 수록된 이 단편집의 첫 편을 읽자마자 내리 끝을 향해 달려가야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속도감 있고, 재미있습니다. 요즘 작품들만큼 단단한 느낌은 없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샘 솟았던 초기의 풋풋한 모습을 엿보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마치 미야베 미유키의 미래의 진화를 예감케 했던 '잃어버린 고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었어요. [나는 지갑이다]는 아주 거칠게 말하면 더 콤팩트하고 재기발랄한 [모방범]이면서, [화차]의 애잔함과 쓸쓸한 분위기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뼈대가 될 만한 것들이 초기작에 모두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독특한 화자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홍보자료 등을 통해 다들 아시다시피 [나는 지갑이다]는 지갑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각각의 배우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내연 관계의 두 남녀를 경찰과 사립탐정이 수사한다는 큰 기둥 줄거리를 바탕으로, 총 4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가운데 이 사건에 얽힌 인물 10명의 지갑이 의인화되어 각자의 주인을 관찰하고, 사건의 진행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등장하는 지갑은 형사의 지갑, 목격자의 지갑, 증인의 지갑 그리고 범인의 지갑까지 다양해요.

물론 지갑은 지갑일 뿐이라 주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은 되지 않고, 그냥 관찰만 가능할 뿐입니다. 이 지갑들은 성격도 말투도 천차만별인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들 주인에 대한 애정이 크고 깊다는 것이죠. 살해당할 위기에 놓인 주인을 걱정하기도 하고, 특히 범인의 지갑은 범인이 원래 그런 일을 저지를 얘가 아니라며 변호하기 바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범인들이 온갖 욕망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잃었기에, 한낱 사물에 불과한 지갑이 보여주는 충성과 연민, 애정이 더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면모를 가진 지갑들이지만 한 가지 더 특별한 건 지갑들의 추리력이 예사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갑이다]는 10개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추적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마지막 편까지 모두 읽어야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끝까지 읽지 않아도, 읽는 내내 재미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각각 30쪽 내외의 짧은 단편들에도 자그만 미스터리들이 하나씩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10개의 작은 미스터리가 물줄기를 이뤄 커다란 하나의 미스터리라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셈입니다.

이렇듯 독자들은 총 11개의 크고 작은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단편들로 편편히 읽어도, 연작 장편집으로 쭉 읽어도 모두 재미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영리한 설정이 돋보이네요. 지갑은 팔도 없고, 다리도 없는 가련한 존재라 주인이 양복 속주머니에 집어넣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단지 듣기만 할뿐이지요. 주의깊게 듣고 주인의 심리를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 멋진 추리를 이끌어내는 지갑들의 추리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제2편 <공갈꾼의 지갑> 편은 물 흐르듯 진행되는 스토리텔링의 결말에 기발한 트릭을 깔아둠으로써 산뜻하게 즐길 수 있어 개인적으로 참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작품들같이 길지도 않고(원래 미야베 미유키가 약간 수다체를 즐겨 사용하지만 최근작들은 너무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선한 구성과 독특한 화자의 등장, 여전한 안타까운 정서와 인간미가 잘 배합된 초기의 수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초기작다운 부족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장점이 워낙 많은 작품이니 세세한 약점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요즘 미야베 미유키에게 좀 질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거나, [화차]나 [모방범]만으로 미야베 미유키를 모두 다 알았다고 자신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분명히 미야베 미유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p.s/ [나는 지갑이다]라는 제목이 재치는 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기나긴 살인]이라는 원제가 더 좋아 보입니다. 마지막 에필로그 <다시, 형사의 지갑>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 나오는 4건의 살인이 모두 1년 6월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벌어졌기도 하거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이 살인사건으로 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 아픔은 길고 길게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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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기 2007-07-0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있는데요.. 특이한거 같아요 지갑들이 말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게ㅎㅎ

jedai2000 2007-07-0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님...그렇습니다. 저도 보다보다 지갑이 주인공인 건 처음이라 당황하면서도 독특해 더 몰입이 되더라구요. 그렇다고 독특한 화자에만 기대 이야기가 허접하지도 않으니 미야베 미유키가 천재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

bongbong 2007-08-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손에 드니 끝장을 보게 만들더군요
누군가와 이름없는 독으로 이뤄지는 시리즈로 살짝 실망한 시점에 역시 미미여사구나하는 느낌을 다시 받게 되었네요.. 한꺼번에 많은 책이 쏟아진다는 느낌이 강하긴한데 안나오는 것보단 나은거 같아요^^
스나크 사냥을 빨리 읽고 싶군요

jedai2000 2007-08-0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die1229님...전 <이름없는 독>은 아직 보지 않고 아껴두고 있는데, 살짝 실망하셨다니 불안해지네요. <나는 지갑이다>는 초기작인데 요즘 작품들보다 오히려 더 재미를 느끼셨나 보네요. 하기야 요즘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죠. <스나크 사냥>도 초기작이고 평가가 상당히 좋으니 볼 만할 것 같네요.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레이븐 블랙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2006년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레이븐 블랙>은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라는 문구를 달고 국내에 소개됐다. 하드보일드부터 사이코 스릴러, 스파이 소설까지 미스터리의 소장르는 무수히 많지만 퍼즐 미스터리야말로 미스터리 팬들의 영원한 고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팬들이 코널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퍼즐 미스터리로 이 장르를 읽기 시작했을 테니까. 요즘의 미국 미스터리 시장을 보면 워낙 영화가 발달한 나라라서 그런지 일단 영화화하기 좋게끔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속도감을 중시하며, 영화의 교차편집 같은 기법으로 깜짝쇼를 펼쳐 독자를 잡아끄는 스릴러가 대세지만, 퍼즐 미스터리 전통이 강한 영국 쪽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하기야 월키 콜린즈부터 코넌 도일, 체스터튼을 거쳐 피터 러브시나 에드먼드 크리스핀, 콜린 덱스터까지 영국 퍼즐 미스터리의 전통이 몇 년이랴. 더구나 영국 미스터리는 여성이 초강세라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햄, 조세핀 테이, 루스 렌들, PD 제임스, 최근의 미넷 월터스 등 그야말로 세계 미스터리를 빛낸 거룩한 이름들이 즐비하다. <레이븐 블랙>의 작가 앤 클리브스는 영국 미스터리의 오랜 두 전통을 계승할 만한 적자로 평가받고 있으니, 퍼즐 미스터리를 쓰는 여성 작가란 이야기다. 영국풍의 퍼즐 미스터리는 역시 약간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뇌 유희를 중시하고, 시골 마을이나 섬처럼 넓지 않은 공간적 배경과 그 안의 좁은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사건이 벌어지며, 용의자는 반드시 작품에 등장하는 소수의 인물로 한정되는 특징이 있다. 물론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공정함은 퍼즐 미스터리의 알파와 오메가다.



<레이븐 블랙>은 스코틀랜드령의 작은 섬 셰틀랜드에서 열여섯 살 소녀가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마음까지 차디 차게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 들판 한가운데서 목이 졸려 죽은 소녀 캐서린은 죽기 전 백치에 가까운 노인 매그너스의 집에 들렀었다. 매그너스의 집에 들어간 것까지는 목격자가 있는데 나온 걸 본 사람이 없으므로 당연히 매그너스가 용의자가 되는데, 한 가지 더 매그너스의 혐의를 굳건히 해주는 이유가 있었으니 8년 전 매그너스 옆집에 살았던 열 살 소녀가 실종된 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도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는 상태였는데 비슷한 일이 또 벌어져서 수사진들과 마을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는 모두 매그너스에게 가 있다. 하지만 지역 경찰 페레즈 형사만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매그너스가 범인이 아닐 거라 생각하며 캐서린의 친구 샐리, 학교 선생님 스콧, 부잣집 망나니 로버트 등을 탐문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전체적으로 아주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차분한 듯 하면서도 힘있게 작품을 이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실제로 거의 단숨에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매 특허였던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전부 아는 좁은 시골 마을을 떠도는 악의와 그 안에 오래도록 숨겨진 비밀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도 현대에 맞게 충분히 잘 살려냈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인다. 살해된 캐서린의 넘치는 에너지와 친구들에게 다가가려고 너무 힘을 주다 오히려 더욱 멀어져버리는 샐리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시체를 처음 발견한 프랜에게 남모르는 연심을 품고 그 곁을 맴도는 페레즈 형사는 소박한 성품 속에 감춰진 열정이 생생해 근래 읽었던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이었다. 친구의 아내였던 프랜에게 결국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페레즈의 담담하고도 씁쓸한 결말도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우수해 과연 수상작감이다, 라는 생각은 들지만 아쉬움도 제법 크다. 퍼즐 미스터리라는 문구에 비춰보면 확실히 좀 섭섭한데, 사실 퍼즐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캐서린을 살해한 범인이 의외의 인물이라 놀랍긴 하지만 페레즈가 추리한 것은 아니다. 사건의 모든 것을 지켜본 한 용의자가 결국 입을 열어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범인을 안 것뿐이지, 단서나 증언을 통해 추리로 도출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 의심이 가는 인물은 있겠지만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 라는 생각은 있어도 왜라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단서가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꽤 잘 읽히는 책이라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고 범인의 이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모든 용의자들의 증언을 꼼꼼히 분석해 허점을 찾고, 물리적 심리적 단서를 이용해 범인을 맞추는 짜릿한 퍼즐 미스터리의 재미는 느끼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좀더 능숙하게 단서와 증언을 배치했더라면 제2의 애거서 크리스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앤 클리브스는 아직까진 약간 부족한 듯하다. 하기사 애거서 크리스티의 경지에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건 아니지...퍼즐적 재미가 떨어지는 것 말고는 분명히 재미있고 훌륭한 소설이니 너무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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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bong 2007-08-10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좀 섭섭하죠..쫌 무난하고..작가가 동일주인공 시리즈로 동일지역의 계절별로 글을 쓴다는데 읽게 될지 모르겠어요

jedai2000 2007-08-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너무 무난해서 약간 실망했습니다만 쉽고 편하게 읽히고 그 섬의 분위기나 인물들이 마음에 들어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음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솔직히 골드대거의 명성에는 약간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