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셜록 홈스 깨나 읽은 사람이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 꿈은 홈스 같은 명탐정이었다. 비범한 두뇌에 강렬한 개성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나자빠지는 어려운 문제를 좌중 앞에서 멋지게 풀어내 박수갈채를 받는 명탐정 말이다! 그런 점에서 추리소설은 어쩌면 영웅설화나 판타지에 한 발짝씩 걸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범인을 뛰어넘는 초인의 등장과 그의 영웅적인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독자들이 꾸준히 있는 한 추리소설의 인기는 영원하리라.
그런데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의 남녀 주인공인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다르다. 두 사람은 비범한 추리력과 예리한 관찰력, 논리적인 추론 능력 등 탐정이 겸비해야 할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절대로 추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알고 보니 이제 고등학교 1학년생이 된 두 사람은 중학교 때도 탐정으로 날리다 뼈아픈 패배를 당한 적이 있고 자신들이 많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댔구나, 하는 쓰라린 자각을 해 고등학생이 된 이제부터는 '소시민'으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두 사람이 겪었던 실패담은 이 책에선 나오지 않는다. 아마 시리즈가 더 진행되면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초등학교 때 고바토의 친구였던 겐고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재수없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를 딱딱 풀어내던 고바토가 너무 얌전해진 것이 수상하다. 겐고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고바토를 찾고, 오호 통재라 여전히 들끓는 탐정의 피를 억제하지 못하는 고바토는 그림자같이 항상 붙어다니는 오사나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그러고는 다음 날이면 자괴감에 몸부림친다. "또, 또 추리를 했어!" 하지만 두 사람의 자질이 그리 출중하니 앞으로도 추리는(그리고 반성은) 계속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
예쁜 제목의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은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보니 등장하는 사건들은 절대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학교 친구의 가방을 되찾아준다거나, 봄철에만 한정 판매하는 딸기 타르트를 실은 자전거를 훔쳐간 범인을 찾는다거나,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미술부 선배가 그린 조잡한 그림을 보고 왜 저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내는 식이다.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는 장르인 일상의 수수께끼 계열의 작품이라 보면 틀림이 없겠다.
추리하기 싫어하는 두 탐정의 귀여운 고민과 소박하지만 그 또래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사건들이 쓱쓱 풀려 나가는 재미가 있는 책으로, 전부 5편의 단편이 모여 있지만 각 편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라 장편으로 봐도 무방하다. 너무 짧고 간단한 퀴즈 같은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과 <컨닝 페이퍼의 비밀>은 좀 시시하지만 50페이지를 넘는 나머지 세 사건들은 추리소설의 구조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고 트릭도 그럴듯해 만족스럽게 읽힌다. 나 같은 멋도 맛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타르트가 뭔지 밀푀유가 뭔지 영 다가오지 않지만 그런 쪽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봄에만 파는 딸기 타르트도 몹시 먹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다.
전부 250페이지 분량으로 짧아 가독성도 좋고, 소박하면서도 은근히 유쾌한 분위기가 기분 좋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일상 미스터리라 지금 학교에 다니는 젊은 친구들이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수준이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볍게 읽어볼 만한 청춘 미스터리로 경쾌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장한다. 원래 타르트나 케익 같은 건 매일 먹을 수는 없지만 가끔 먹으면 무지 맛나지 않나. 다들 맛있는 독서 하시길.
p.s/ 후속편은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이란다. 이쯤되면 가을, 겨울은 어떤 제목으로 나올지 무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