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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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동생과 강아지를 기르게 해달라며 단식투쟁까지 벌인 적이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사반대하시던 어머니는 마침내 허락을 해주셨고, 우리는 큰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올 수 있었다. 조건은 강아지의 뒷치닥꺼리는 전부 우리가 해야한다는 것. 처음엔 무지 좋기만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슬슬 배설물 청소와 놀아달라고 애걸하는 강아지에 질리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는 강아지의 뒷치닥꺼리 건으로 매일 싸우다시피 했고,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강아지는 강제 송환되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생명체를 돌보는 데는 큰 희생과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 1학년을 다닐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 동생이 또 사고를 쳤다. 옛날의 아픈 기억은 벌써 잊었는지 친구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새로 얻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어찌나 귀여웠는지 그 아이(이름은 '궁상이'였다)와 노느라 수업에 지각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궁상이와 동거한 지 한달쯤 지난 5월의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듯이 집에 돌아가보니 강아지는 죽어있었다. 병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찌나 슬펐던지 그뒤로 다시는 애완 동물을 기를 생각이 없다.

 

누구나 살면서 애완동물과 엮인 추억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록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친구의 애완동물을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떠맡은 기억 하나 없을까. 칭얼대고 컹컹 짖으며 놀아달라고 애걸하는 애완동물들이 참을 수 없이 귀찮게 느껴져 그들의 애원을 애써 무시하다가도, 무심코 그들의 눈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그리고 친구와 함께 놀고 싶어하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사람은 뇌구조가 고장난 냉혈한일 것이다. 결국 나의 안락한 시간을 포기하고 동물과 놀아주게 된다. 그때 동물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아아 이런 것이 바로 사랑이로구나, 기쁨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콘라드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는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그리고 있다. 콘라드 로렌츠는 독일의 비교행동학자로 1973년에 동학문으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했다. 과문한 탓에 비교행동학이 뭔지는 잘 모르나, 대충 설명해 보면 진화를 거쳐온 동물의 행동을 분석해, 역시 진화를 거듭한 인간의 행동 양태를 비교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콘라드 로렌츠는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솔로몬의 반지>는 그의 대표작인데, 어렵고 딱딱한 학술서가 절대 아니다. 그가 동물을 관찰하며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들과 동물에 대한 따스한 사랑이 유쾌하고 세심한 필치로 그려진 뛰어난 수필이다.

 

콘라드 로렌츠의 동거인(?)은 수 마리의 개와 수십 마리의 새, 수족관에 든 수백 마리의 물고기 등이다. 만약 동물학자로서만 이 많은 동물들을 키우라고 한다면 그가 누구든 실패하고 말 것이다. 콘라드 로렌츠는 우수한 동물학자로서 뿐이 아니라 애완동물 애호가로서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여 사랑으로 그들을 돌봐줬던 것이다. 이를테면 새끼 새가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굴뚝 위로 올라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새의 주의를 끌어 마침내 무사귀환시킨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멀쩡한 학자가 왜 굴뚝에서 생쇼(?)를 하는지 미친 사람 취급하지만, 그는 행복할 뿐이다. 기르던 원숭이가 쓰고 있던 논문을 갈가리 찢으며 즐기고 있을 때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콘라드 로렌츠의 이러한 동물 사랑은 가끔은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종국에는 깊은 감동을 부른다. 그런데 제목이 왜 <솔로몬의 반지>일까? 본문을 잠깐 인용해보기로 하자.

 

"솔로몬 왕은 짐승,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솔로몬처럼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잘 아는 몇몇 동물과는 나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솔로몬보다 못하지만, 솔로몬처럼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낫다. 솔로몬은 반지 없이는 가장 친한 동물의 말도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신화 속의 솔로몬이 마법의 반지를 이용해 동물과 대화했다지만, 현재의 콘라드 로렌츠는 한결같은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마침내 동물과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솔로몬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콘라드 로렌츠의 귀여운 자만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의 에피소드는 기존의 동물 관련 책내용의 오류를 꼬집는 학술적인 것에서부터, 동물과의 사이에서 겪었던 한바탕 웃음짓게 만드는 내용, 애완동물을 선택하고 키우는 요령 같은 실전적인 정보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유전정보에 깊숙히 자리한 생명과도 같은 먹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자식을 돌보는 물고기의 이야기였다. 먹고 살기 급급해 제자식도 버리는 인간들도 많은 판에, 인간에 비해 뇌크기가 비교도 안되는 한낱 물고기가 입에 든 먹이를 뱉어버리고, 새끼 물고기를 먼저 구하는 결말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야 말았다.

 

작가 콘라드 로렌츠는 우수한 학자일뿐 아니라 뛰어난 문필가였다. <솔로몬의 반지>에 나오는 온갖 인용들을 보면 고전이나 인문학에도 소양이 깊은 것 같다. 도대체 한국의 그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로부터는 언제쯤 이런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수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존의 성과 위주 교육의 탓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가십 한 가지. 그렇게 동물을 사랑했던 마음 따뜻한 사나이 콘라드 로렌츠는 나치 동조자 혐의도 걸려 있다. 그가 연구한 비교행동학이라는 것도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 그 우열을 가린다는 점에서 웬지 나치의 '우생학'의 위험한 향기가 풍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혐의일 뿐이니 그냥 흥미거리로만 생각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솔로몬의 반지>속의 콘라드 로렌츠의 모습을 보면 그가 악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마음 속에 악(惡)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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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6-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리뷰 당선 축하!!! ^^

oldhand 2006-06-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축하드립니다. 벌써 두번째죠? ^^

jedai2000 2006-06-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감사합니다. 항상 축하해주시고,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

올드핸드님...감사합니다. 작년에도 한 번 됐으니 통산 세 번째네요. ^^

상복의랑데뷰 2006-06-1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잠정 은퇴가 아쉬울 ^^;;

jedai2000 2006-06-1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가끔씩은 쓸 테니까요. 하지만 플레잉 코치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