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 - 파인딩 하루키 여정을 따라
신성현 지음 / 낭만판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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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일본 간사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읽은 책이다.

저자는 하루키에 대한 팬으로서 인터넷에 파인딩 하루키(finding-haruki.com)라는 하루키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하루키여행법]이라는 하루키가 쓴 책을 따라 실제로 하루키와 관련된 곳을 여행을 했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 대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어린 시절을 대부분 보낸 고베지역을 시작으로 하루키나 그의 소설과 관련된 지역을 소개하고 있다.

단지 지역이나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하루키의 소설들과 인터뷰까지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하루키의 소설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곳에 소개되고 있는 지역들은 대부분 일본의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하루키가 살았던 작은 동네들...

다녔던 학교나 도서관, 카페, 빵집...

그리고 소설에서 나왔던 병원이나 버스 정류장등...

아주 평범한 일본의 거리나 건물들이다.

하루키와 관련이 없었다면 아무도 찾지 않을 평범한 장소들이다.

그런데 이런 장소에서 복잡한 관광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보통 일본 사람의 감성과 마주하게 된다.

그 감성은 하루키의 소설 들에 나와 있는 감성과 연결이 된다.

마치 저자가 하루키의 감성으로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도 그 감성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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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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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지만...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하루키가 성장기를 보낸 고베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데뷔작의 배경지를 방문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어쩌면 하루키 자신일지도 모르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이면 고향 바닷가 마을로 돌아 온다.

방학동안은 주로 바닷가의 J바에서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쥐는 꽤 부유한 집안의 출신이고, 주인공과는 술을 마쉬고 차를 운전하다가 공원의 원숭이 우리에 부딪히면서 친해졌다.

주인공과 쥐는 모두 인생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 고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만 않지만 둘 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쥐는 자신이 부자인 것을 비롯해서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다니던 대학도 포기한다.

주인공 역시 그런 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현실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술에 취해 쓰러진 여자를 집에 데려다 준다.

그리고 얼마 후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만난다.

주인공은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그녀의 아픔을 알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은 일관된 스토리는 없다.

마치 하루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이것 저것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주로 쥐와 바닷가 카페에서 만나 여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생각,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세 명의 여자의 이야기를 회상한다.

한 명의 고등학교때 사귄 여자친구였고...

다른 한명의 길거리에서 만난 가출 히피 여자였으며...

마지막 한 명의 대학때 여자 친구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을 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두 가지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데릭 하트필드'라는 작가이다.

이 작가는 책의 처음과 끝에 언급된다.

주인공이자 저자는 그에게서 글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는 생전에 별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쓸쓸히 죽었고, 그의 묘지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곳에 묻혀 있다고 말한다.


또 하나는 '켈리포니아 걸스'라는 노래이다.

어느 날 주인공에게 라디오 디제이가 전화를 걸어 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 노래를 선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녀가 고등학교때의 친구였음을 알았다.

(그녀가 하루키의 고등학교때 연인인지, 단순히 고등학교때 만나 여자인지는 소설에서 정확히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그녀를 만나려고 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와 함께 계속해서 이 노래가 회상된다.



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알게 해 주는 열쇠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그의 소설에서 다시 한 번씩 언급이 된다.

또한 J라는 친구, 그리고 J의 여자 친구도 다시 언급이 된다.

이 책은 하루키가 왜 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해 준다.


물론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하루키의 감성이 최고조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바람소리처럼 들려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일본의 고베에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바닷가 냄새가 났고...

바닷가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바닷가 냄새가 났고...

바람이 하루키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 같았다.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방문했던 소설의 배경 장소 사진을 몇 장 올려 본다.





하루키 소설의 배경이 된 고베의 바닷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J카페의 배경이 된 하프타임 재즈카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친구 쥐가 술취한 채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공원의 원숭이 우리...

그 원숭이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하루키를 기념하기 위해 원숭이 우리만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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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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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기사를 관심있게 보던 중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가 최근에 대두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 부터 계속해서 제기 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 제기를 한 사람 중에 정문순 평론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평론이 실린 작품이 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이 책은 다루고 있는 책들이 주로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과 같은 여성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이전에는 주로 역사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태백산맥과 토지를 비롯한 보통 한 편이 10권 정도 되는 역사소설을 읽으며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역사소설들이 사라지고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상 나 역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 그 중 몇 몇 작가들의 작품은 무척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작가들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었다.

'혹시 내가 그때 생각없이 작품들을 읽고 좋아하지 않았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제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정문순 평론가가 10년 가까이 쓴 평론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1990년대 문학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먼저 이 책에서는 1990년대에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저자는 1990년대의 문학환경을 '무주공산'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1980년대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시대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통한 문학적 낙관주의가 사라지고, 문학을 통한 문제 해결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가운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1990년대에 여성 중산층이 출판시장의 주 독자가 되면서 상업적인 부분과 맞아 떨어져서 여성 작가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속에서 등장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저자는 '감정의 낭비와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한다.

즉 이전의 소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루었다면,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개인의 삶과 감정 문제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저자의 평론에 여러 번 등장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외땅방]의 한 구절이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중략 -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정치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인 소소한 문제가 더 중요한 여성적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은희경 작가의 [마이러니티]에서도 이와 비슷한 부분을 인용한다.


"써머타임이 실시되고 있었으므로 퇴근 시간인데도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다. 시위군중들도 가득 메워져 있는 거리였다. 월급쟁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심사가 좋지 않은 두환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저건 또 뭐 하는 부대냐, 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리자 내가 넥타이부대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 네 사람도 옷차림에서만은 넥타이 부대의 정규군 차림이었다. 우리는 시위대 썪여서 걸었다. 적당한 술집을 찾아 퇴계로나 명동 쪽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시위대와 행로가 비슷했다. 조국과 도환은 취했다. 어깨동무를 한 그들은 시위대가 구호를 외칠때마다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뒷부분은 따라하고 복창했다."


저자는 작가가 역사적인 날을 친구의 아내의 장례식날로 설정함으로서 의미없는 날로 격상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저자는 공선옥 자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녀가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1980년대의 문제의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지영작가에게는 반쪽정도의 점수밖에 주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그녀가 80년대의 문제의식을 이어오면서도 당시 문학의 문제적인 낭만주의가 뭍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어떻게 표절했는지를 자세히 언급한다.

이 책에 인용한 두 책의 글들은 요즘 한참 언론에서 등장하고 있는 글이었다.

저자는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단순히 [우국]의 한 문장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모티부까지 모두 유사하다고 말한다.


"[전설]은 명백히 일본의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작이다.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 구테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도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 버린다.(P30)"


또 작가는 이런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당시의 문단의 분위기가 당대의 작가들을 표절 유혹에 빠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나름 90년대 문학을 많이 읽고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이 책에서 인용되는 책들 중 읽은 책이 몇 권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들의 작품에 다시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신경숙 작가의 작품들은 거이 읽어보지를 않았다.

유난히 반골?성격이 강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좋거나 재미있게 보았다는 소설이나 영화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좋아하던 작가의 작품도 그 작가가 인기를 얻고 대중화가 되어 너도 나도 좋다고 하면 읽기가 싫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여성 작가 중에서 가장 앞서 나갔던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거이 접하지를 못했었다.

이제 그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독자들이 그녀에게서 멀어졌으니 다시 그녀의 작품을 읽으려 한다.

(이건 내 자신도 이해 못하는 심리이다.ㅠ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왜 우리에게는 약자를 이렇게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약자를 억압하는 대상 역시 증오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놀랐다.

자신의 주장을 반대하고, 자신을 해하려 했던 마을 사람들을 미워하는 자녀들에게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사는 마을 사람임을 따스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는 아버지의 시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90년대 문학의 사회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인 감정문제에 치우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제기를 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각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 시각이 또한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든다.

개인의 감정의 문제에 치우쳤던 90년대 여성작가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고...

그들의 감정문제에 동감했던 90년대의 중산층 여성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다.

90년대의 문학이 한 부분으로 치우쳤지만, 그 치우쳤던 부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일부분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감정에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그런 소설로 위로와 힘을 얻었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과 마음에 동감하던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다시금 1990년대 한국 문학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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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본능 -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며 현실을 부정하도록 진화했을까
아지트 바르키 & 대니 브라워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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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가장 큰 난제는 왜 인간만이 지적인 존재로 진화를 했느냐는 것이다.

 

진화론에는 여러 가지 난제가 있다.

왜 그렇게 넓고 넓은 우주에 왜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는가? (물론 지금까지 인간이 탐구한 행성을 대상으로만...)

또한 그 지구의 많은 생명체 중에서 왜 유독 인간만이 지적인 존재로 진화를 했는가?

인간이 침팬치에서 진화를 했다면 왜 침팬치는 더 이상 진화를 하지 못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특이한 대답을 내 놓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아지트 바르키라는 인도출신의 의사이자 과학자가 이미 타계한 대니 브라워라는 미국의 분자생물학자의 이론을 다듬어 낸 [부정본능]이란 책이다.


먼저 이 책은 앞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진화론이 맞다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 중 왜 유독 인간에게만 지적인 존재로의 진화가 일어났는가?

저자인 아지트 바르키는 이 대답을 우연한 만남에서 찾았다.

그가 2005년 애리조나 강의 후 우연히 잔딧밭에 앉아 있다가 대니 브라운이란 교수가 그의 이론에 공감을 표하며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한다.

그는 인간만이 독특한 존재로 진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보다는, 다른 존재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진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된다고 말한다.

생각의 전환이자,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을 하자는 것이다.

대니 브라운은 이미 그 답을 찾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대니 브라운의 이론을 구체화시킨 책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체가 진화를 하면서 한 가지 벽에 부딪힌다고 주장한다.

그 벽이란 바로 존재의 필멸성을 깨닫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는 결국에는 죽는다는 절망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 필멸성을 깨닫는 과정을 마음이론이라고 한다.


마음이론(ToM)이란 나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듯 타인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고 생각하듯이 타인도 존재하고 생각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이론은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필멸성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지적인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이론의 발전때문인데...

그렇다면 다른 생명체는 왜 이런 마음이론이 발전하지 못했을까?

(이 책은 다른 생명체가 마음이론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동물들의 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가 바로 필멸성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이 마음이론적인 부분에서 진화를 해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 동물은 죽음의 현실에 직면하여 모험을 하기를 거부한다.

즉 다른 숫컷과 목숨을 걸고 경쟁하여 암컷을 차지하기도 거부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닥칠 수 있는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거부한다.

그로인해 자신의 진화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마음이론의 진화를 그 동물에게서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이런 필멸성을 부정하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종교이다.

어느 문화나 종교가 있고, 종교는 대부분 영혼불멸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런 필멸성의 부정으로 인해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후대에 진화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필멸성에 대한 부정본능은 유전자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전해져서 우리 인간은 현실적인 위협을 부정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을 것을 부정하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자녀를 낳고, 건강을 해칠 줄 알면서도 담배를 피며, 지구가 파괴되는 줄 알면서도 지구를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런 필멸성을 바로 인식하게 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죽을 줄 안다면 세상을 더 가치있고, 진실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백만장자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돈을 죽기 전에 많은 사람을 위해 쓰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물질을 모으는데만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를 당혹케 한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우주의 빅뱅에서 발생한 먼지와 같은 존재이며, 결국은 그렇게 사라질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화론에 대해 동감하지를 않는다.

그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많은 우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숫자로 샐 수 없고, 심지어 인간의 인식능력을 벗어나는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확률로 설명하자면 백만 분의 일 정도가 아니다.

분모가 되는 숫자에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숫자를 넣어야 그 확률에 비슷하게나마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 있는 생명체가 아메바로 진화하는 확률 역시 앞의 확률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매 단계마다 이런 천문학적인 확률이 필요하다.

결국 진화의 모든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성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단어이다.

이 책은 이런 우연이라는 단어를 '부정본능'이란 단어로 대체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인간 안에는 이런 부정본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본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들어왔는지를 이 책은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우연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인간 안에 있는 부정본능을 본성적을 아주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지트 바르키라는 학자가 이미 타계한 대니 브라워의 이론을 체계화해서 그의 이름을 공저로 책을 출한한 것이다.

타인의 아이디어는 학술적 성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도용하는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잠시 10분 정도 만난 잘 알지도 못하는 학자의 이론을 자신의 것으로 도용하지 않고...

그 학자에게서 출발한 이론임을 밝히는 저자의 학문적인 태도가 매우 존경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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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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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살아 온 인생에서 요사이 깨닫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품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쉬운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편을 가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편과 네편으로 나누기를 좋아하며, 내가 어느 한 편에서 서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내가 속한 편이 좋은 지점을 점하고 있거나, 승리를 잡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들 열심히 승리자의 편에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내가 승리자의 편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 비하하고 업신여긴다.

그럼으로서 비로서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저들과 다르다는 것, 저들 위에 있는 것에 대해서...


드디어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었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무언가 뿌듯한 감정보다는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이 더 생긴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인 메이콤이라는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스카웃 핀치라는 어린 소녀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스카웃 피치는 막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어린 소녀로서 네 살 위의 오빠인 젬 핀치와 아빠인 래들리 핀치와 흑인 가정부인 캘퍼니아 아줌마와 살고 있다.

핀치 가문은 그 지역에서는 꽤 유서 깊은 가문이고, 아버지 래들리 핀치는 명망있는 변호사였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스카웃의 시각에서 메이콤 마을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핀치 가문의 사람들에게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래들리 핀치가 강간 혐의를 받고 있는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 핀치 가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시작한 어두운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부터 '깜둥이 애인'이란 비하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되고,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낀다.

스카웃 역시 오빠와 함께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자 모든 정황상의 증거가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 청년의 무죄로 드러난다.

그러나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톰 로빈슨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로빈슨은 감옥을 탈출하다가 총에 난사당해 처참하게 죽는다.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8세의 어린 소녀인 스카웃의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점은 작가의 묘사력일 것이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를 어린아이인 스카웃의 시각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각이 너무 뛰어나다.

물론 이런 묘사력을 좋은 문장으로 변역한 번역가의 공로도 클 것이다.

그 묘사가 너무 자연스럽고 재미있어서 소설이 술술 읽혀진다.


또한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본 어른들의 성품, 특히 위선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변론을 구경갔다가 톰 로빈슨이 사형을 구형받는 장면을 목격한 스카웃과 젬은 낙심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스카웃은 분명히 무죄인 사람이 어떻게 사형을 구형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흑인이란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마을 사람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집에서는 고모가 교회 선교회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다과회를 하고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의 한 마을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가까운 흑인들을 경멸하며 톰 로빈슨이 사형을 당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또한 학교 스카웃의 학교 선생님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을 만행으로 여기며 '우리 민주주의'라고 칠판에 쓰며 미국인은 그렇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흑인의 사형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그를 욕한다.

어린 스카웃과 오빠인 젬에게는 이런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젬은 어린 나이로 깨달은 세상의 모습을 스카웃에게 이야기 해 준다.


"스카웃, 그거 알아? 난 이제 모두 알겠어. 요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알아낸 거야.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인간이 있어, 우리나 이웃 사람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숲 속에 사는 커닝햄 집안 같은 사람들(가난한 집안)이 있고, 쓰레기장에 사는 유얼 집안 사람 같은 사람들(술주정뱅이 가장으로 인해 정부의 지원으로 사는 집안)이 있고, 흑인들이 있어......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커닝햄 집안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커닝햄 집안 사람들은 유얼 집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유얼 집안 사람들은 흑인들을 증오하며 얕보지" (P418)


스카웃의 고모는 스카웃이 요조숙녀가 되기를 바라며 커닝햄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이야기 한다.

왜 커닝햄 집안 아이들과 어울려서는 안 되는지를 계속해서 묻는 스카웃에게 고모는 따끔하게 이야기 한다.


"놀아선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지, 왜냐면, 그 애는......... 쓰레기 같은 애니까. 그러니까 너는 그 애하고 놀아선 안되는 거야. 난 네가 그 애하고 어울리며 행동거지나 본받고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게 그냥 나두지 않을 테야"(P415-6)


이 부분을 읽으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젬이 말하는 세상, 고모가 말하는 구별....

이것을 스카웃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결국 스카웃도 네 살 많은 오빠가 이해하는 세상을 곧 이해하게 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스카웃과 젬과 함께 법정 구경을 같던 친구 딜이 흑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검사의 태도에 놀라 속이 메스꺼워서 밖으로 나가자, 돌퍼스 레이먼드라는 아저씨가 그에게 콜라를 주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글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P372)


다행히 스카웃과 젬에게는 아버지 레들리 핀치가 있었다.

그는 흑인의 변호를 맡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아이들을 증오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게 한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래들리 핀치가 스카웃과 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다.



얼마전에 지방에 내려가서 몇 년간 산 적이 있었다.

그곳은 신도시가 조성되며 같은 단지에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는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옛 주거지들이 있었다.

빈민가라고 까지는 부르기는 뭐 하지만 무척 낙후된 주거지였다.

그 곳에서 분양아파트 사람들은 임대아파트 사람들 사이에 담을 설치한다.

그리고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분양아파트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놀면 항의를 하고 쫓아낸다.

아파트단지 밖의 아이들이 분양아파트나 임대아파트에 놀러와도 마찬가지이다.


더 우스운 것은...

그곳은 동구라고 불리는 곳인데...

서구사람들은 동구사람들을 못 산다고 무시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쪽 아이들가 놀지 말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 도시는 또 서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서울 사람들 안에는 다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진다.

강남 안에도 다시 구별이 나누어진다. 


문제는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것들이 우리의 세계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고...

그 자녀들이 또 그 자녀들에게...


왜 미국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지 우리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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