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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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고 이윤정씨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지 아직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이윤정씨는 1997년 삼성 반도체 온양 공장에 입사하여 고온테스트 (MBT burn-in)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의 검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벤젠 등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퇴사후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2010년 갑자기 악성 뇌 종양 진단을 받았다. 결국 여덟 살, 여섯 살 아직 어린 아이 둘과 남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 정애정씨처럼 고 이윤정씨도 무척 건강했다고 한다. 본문에도 언급되듯이 신체검사를 거쳐 매우 건강한 사람들만 노동자로 고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몸의 변화, 위험 징조를 미리 느끼지만,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밖으로 알리지 못한다. 몇몇 친한 사람들끼리만 쉬쉬하거나, 소문처럼 떠도는 말들에 귀를 닫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삼성이기 때문이고, 지금 이 직장을 그만두면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정애정씨와 황민웅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사내커플이다. 둘 다 무척 건강한 체질이었지만, 남편 황민웅씨가 신설라인의 셋업멤버로 차출되어 평소보다 극도로 나쁜 근무환경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다행히 정애정씨는 다른 직업을 얻어 공장을 나오지만, 남편은 결국 어린 두 아이와 자신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책을 덮고 무거운 마음으로 반올림 온라인 까페에 접속했다. 한동안 고 이윤정씨의 사연이 메인에 떠있었는데, 그새 또 새로운 사망소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 윤슬기씨의 사망소식은 삼성 직업병 제보 중 56번째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삼성 LCD 천안사업장에서 일하다가 근무 중 쓰러져서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13년간 수혈에 의존하여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바로 어제인 6월 2일에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역시 그동안의 희생자들처럼 아직 젊디 젊은 나이였다.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삼성에게 버림받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잠시 눈을 감고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란 이름을 처음 본 것은 『Challenging the Chip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세계적으로도 반도체 및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인체에 유해한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몸을 보호할 적절한 보호장구는 갖추지 못한 채 작업환경으로 투입되었고, 그로 인해 각종 심각한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공장들을 철수하고 대부분 제 3세계 국가들로 옮겼던 것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기업들은 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낮은 급여를 받고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심각한 질병에 걸리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랍고 화가나는 일은 많은 나라의 사례들이 대부분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례에서도 기업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책은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이란 책이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의 부제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인데, 나중에 그 이름으로 다시 책이 한권 더 나온다. 삼성의 티비 광고 문구인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을 비꼬아 서 만든 이 카피는 정말 이 사태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은 르포작가 희정씨가 쓴 책이다. 희정씨는 이 책을 통해 <노동자 시인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하기도 했다.

 

『먼지 없는 방』의 뒷부분에 정애정씨가 스스로 말하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반도체 공장의 먼지 없는 방은 공사현장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화학약품을 쓰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뒤는게 깨닫는다. 그렇다 클린룸(먼지 없는 방)은 웨이퍼(반도체의 재료)를 위한 클린룸이었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린룸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발암물질인 벤젠을 비롯한 온갖 독성 화학물질이 떠도는 죽음의 방인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아니었다면, 노동자들은 스스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찾고, 동료들 사이에서 알리고, 교육하여, 회사에 올바른 작업환경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노조설립을 원천봉쇄하고, 백혈병과 뇌종양을 비롯한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작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외면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차라리 덜 우습다.

 

지난 1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선언’이 세계 최악의 기업을 선정하는 ‘공공의 눈’(Public Eye) 온라인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는 부디 세상이 모두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망자들과 현재 투병중인 환자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보상과 산재인정을 해주고,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보다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고, 그들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엇이며, 인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교육해야 할 것이다. 제발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가 개선되어 더 이상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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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06-04 11:19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제 글이 비록 졸고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대신 널리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쉽싸리 2012-06-0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은 문제가 많지만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가 밝지 못할 겁니다. 힘든 싸움을 하시는 분들에게 건투를...

감은빛 2012-06-07 17:29   좋아요 0 | URL
반올림과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벌써 여러해째 외롭게 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요.
부디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공감하여,
삼성이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랍니다!
 

비우기, 버리기, 내려놓기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면 요새 3 Job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첫번째는 돈버는 직장 일이고, 두번째와 세번째는 돈 못버는 일이다.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과 녹색당 일이 그것들이다. 한 친구가 그랬다. "넌 어떻게 그렇게 돈도 안되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 모르겠다. 살면서 돈 되는 일을 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것이 나름 재밌고, 보람도 있었지만 어느순간부터 한계가 느껴졌다. 일단 체력의 한계가 왔다. 새벽까지 밤 잠 못자고(혹은 안자고) 뭔가를 하는 일이 거의 특기에 가까운 나에게도 지금처럼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두번째로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늘 뭔가에 치여서 급하게 처리하고 또 다른 급한 일을 맞이하다보니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점점 더 나 자신에게 투영해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피곤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내 잣대로만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구나! 내가 나를 자꾸만 고집할 수록 모든 일이 자꾸만 더 어렵게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비우고, 나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나 자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서서히 나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노찌따

 

주말이었던가? 아내는 어딘가 약속(혹은 모임)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어느 오후,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근처에 놀러가는 중이었다. 작은아이에게 어디가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웃으면서 "노찌다(녹색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아이가 끼어들어 녹색당 가는 거 아니라고 말했는데, 작은아이는 "노찌따 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었다. 한참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시 작은아이에게 어디 놀러왔냐고 물었다. 역시 아이는 이번에도 "노찌따"라고 답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역시 어디 공원에 바람이나 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작은아이에게 어디 놀러가냐고 물었다. 역시 돌아온 대답은 "노찌따"였다. 어쩌다 작은아이에게 놀러가는 곳은 모두 녹색당이 되어버렸을까? 아마 작년 가을부터 창당준비과정에 참여하면서 회의나 모임에 나가야 할 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아이에게 녹색당이 놀이터와 거의 비슷한 의미이듯이, 큰아이도 녹색당에 함께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거기 가면 많은 이모들과 삼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뭔가 먹을 것도 잔뜩 주고, 함께 놀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5월 초에는 실제로 아이 둘을 데리고 녹색당 지역 모임에 참여했다.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려와서 대충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바쁘게 움직이면서 아이들에게 녹색당에 놀러갈 거라고 했더니 두 녀석이 손을 맞잡고 껑충껑충 뛰면서 좋아했다. 물론 모든 녹색당 모임이 녀석들에게 재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큰아이의 경우 조금 더 크면 이제 더이상 아빠를 따라다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늘 따라와서 투정부리지 않고 잘 지내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나에게도 녀석들처럼 녹색당이 놀이터와 비슷한 의미가 되어, 모임이나 행사에 나가는 것이 재밌고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맡고 있는 역할이 너무 무거워서 벅차고 힘겹다고 느껴지는 요즘 그런 바램이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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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2-05-30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부러운데용 ㅎ

감은빛 2012-06-04 11:2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뭐가 부럽다는 걸까요?
아이들이랑 놀러다니는 모습이?
그거라면 라주미힌님도 그리 멀지 않았어요! ^^

꼬마요정 2012-05-3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럽습니다.^^

감은빛 2012-06-04 11:21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님. 안녕하세요.
어떤 점이 부러운건지 모르겠지만,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2-05-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찌타^^ 아이들이 크면 이 가치와 아버지가 주셨던 무언의 가르침이 남아있겠지요. 부럽습니다.3

감은빛 2012-06-04 11:2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던 참입니다.
그래도 녹색당이 이 절망적인 세상에 작은 희망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블랑카님. 고맙습니다!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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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란 단어를 접하면 나는 자동적으로 여성의 벗은 몸을 떠올린다. '욕구'나 '욕심'과는 달리 끝글자가 망으로 끝나면 늘 그거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나라는 인간을 겉에서 부터 하나씩 벗겨보면, 명예에 대한 욕구, 물질에 대한 욕구, 술이나 음식에 대한 욕구 등을 다 벗겨내면 가장 은밀한 곳에 꽁꽁 감춰놓은 것이 바로 여성의 몸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방금의 표현을 보면 앞에 있는 흔히 남들이 짐작할 수 있거나, 드러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욕구라고 썼지만, 맨 마지막에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닌 한 드러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욕망이라고 썼다. 왜그랬을까? 모르겠다. 암튼 나는 이 책을 보자마자 '욕망'이란 단어 때문에 살짝 성적흥분 상태에 빠졌다가 곧 돌아왔다. 어떤 욕망을 해도 괜찮다는 걸까? 어떻게 괜찮다는 걸까?

 

다시 나를 벗겨보면, 가장 겉에서 드러나는 것은 명예에 대한 욕구(줄여서 명예욕)다. 평소에는 짐짓 겸손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잘난척 하기를 즐긴다. 늘 나는 잘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남들에게 존중받기를 원하고, 내가 이룬 결과나 성과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대학 다닐때 후배들과 함께 MBTI를 했을때, 강사님이 내 유형을 설명하면서 '잘난 척 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표현했는데, 그때 많은 후배들이 공감했고, 나는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땐 내 스스로 잘난척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떠올려보면 내 말과 행동들로 후배들이 그렇게 느낄 이유는 충분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명예욕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새삼 놀랄 때가 있다.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스스로를 낮춰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재밌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에 물질에 대한 욕구라고 적었지만 이건 아마 돈에 대한 욕심일 것이다. 가끔 사람들 앞에서 잘난척 할때 종종 '나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래 엄밀히 따지면 돈 자체에 대한 욕심은 비교적 없는 편이다. 한번도 돈이 많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다만 나도 갖고 싶은 것들은 많다! 그런데 내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조금 다르긴 하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직장일 때문이나 예의상 얼굴을 비춰야하는 동문모임 같은 곳에 가면 대개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자동차. 집. 고급 정장. 구두. 지갑 등등 사람들은 더 비싸고, 더 좋은 것들을 자꾸만 원한다. 내 경우에는 남들처럼 자동차나 집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책 욕심이다. 읽지도 못할 책을 자꾸만 사모으는 것을 보니, 책 읽기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저 책을 수집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강한 것은 바로 육체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이른바 성욕이라 부르는 그 갈망이 내가 가진 다양한 욕구나 욕망 중에서 가장 강할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재밌는 일이 생각났다. 알라딘 서재를 만들어두고 아주 가끔 그러니까 거의 1년에 한 두개의 글을 쓰면서 여러해를 보냈다. 그때는 따로 관리하는 블로그들이 있었다. 그 공간들은 주로 생활글이나 사회문제를 언급하는 곳이었다. 상대적으로 책에 대한 글은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라딘 서재는 거의 쓰지 않았다.(그땐 알라딘 서재에서는 책 얘기만 해야지 하는 까닭모를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략 2010년 가을쯤부터 본격적으로 서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전에 쓰던 블로그 서비스가 문을 닫았다. 다른 서비스의 블로그로 옮겨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조차 싫어졌다. 뭔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고 싶은 차에 내가 공저자로 포함된 책이 출간되었고, 알라딘에서 그 책이 언급되는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서재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이 서재는 비교적 조용한 곳이지만, 그때는 활동 초기였으니, 내 글을 읽는 이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마 2011년 1월 1일이나 2일에 쓴 글어었을 것이다. 옛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글 속에 내가 '자위행위'를 한 사실을 언급했다. 글을 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올려놓고 다음날 다시 읽다가 조금 망설여졌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누가 읽기 전에 그 부분을 지울까 생각했는데, 이미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안 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읽고도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그래 읽었다고 곡 아는 척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냥 놔둬도 괜찮겠다 싶었다. 다시 찾아보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그 글에는 적어도 서너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아무도 그 부끄러운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싶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공공연하게 내 개인의 욕망을 드러낸 것은 그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가끔 글을 쓰다보면 어 이런 표현 해도 괜찮을까 싶을 때가 있다. 솔직하게 써놓고 이 공간에 굳이 내 개인을 솔직하게 다 까발릴 이유가 있을가 싶어서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김두식 선생은 솔직하기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욕망이 없이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없는 것인양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욕망해도 괜찮다! 드러내도 괜찮다! 나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고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잘 몰랐던 전혀 다른 나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 와 함께 김두식 선생의 책 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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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25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지인들하고 만나 이야기하다가 지인 한분이 아, 난 정말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돈 가지고 태어난 팔자 같아, 이러더라구요.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그 때 엄마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나도,나도란 말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전 책보다 돈이 더 좋아요. 한 50억만 제 통장에 찍혀 있으면 좋겠네요. 딱 50억.

감은빛 2012-05-30 16:59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러다가 굶어 죽겠구나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
저라고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예요.
책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외에도 가끔 사고픈 것이 있거나,
꼭 나가야 할 돈이 있는데,
돈이 없을때는 몹시 슬프기도 하더라구요.

50억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 상상도 안되요! ^^

프레이야 2012-05-2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솔직한 글에 뭔지 모를 감동이^^
누군가 저에게 "욕망하는 것을 써라"는 조언을 해 줬는데 그게 벌써 몇 해 전이에요.
희망, 소망과 욕망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문득 이런 의문이..

감은빛 2012-05-30 17:00   좋아요 0 | URL
저도 한번쯤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네요.
희망, 소망, 욕망이라!

cyrus 2012-05-2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에 대한 김은빛님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이 생각났어요.
인간은 먹고, 자고, 섹스하는 등 일단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에서부터
마지막인 자아실현 완성을 위한 욕구까지 있는 걸 보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욕구와 욕망은 절대로 땔래야 땔 수 없는 심리적 반응인거 같습니다.
이것 또한 제대로, 긍정적으로 배출한다면 책 제목처럼 '욕망해도 괜찮겠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우리나라 사회가 폐쇄적인 면이 있다보니
오히려 욕먕, 욕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게 되고요.

어쨌든 욕망을 드러낼 줄 아는 행위, 무척 공감합니다. ^^

감은빛 2012-05-30 17:04   좋아요 0 | URL
이 사회는 유독 돈에 대한 욕구만 인정하고 드러내도록 권하는 사회지요.
다른 많은 욕구나 욕망에 대해서는 시루스님 말씀처럼 폐쇄적이거나 보수적이죠.
욕망을 표현하되, 그럴만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잘(!) 하면 되겠지요.
물론 그것은 무척 어렵... 아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글샘 2012-06-0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구랑 욕망은...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으데요...
사회적으로 금지된 정도, 결핍의 정도가 낮은 게 '욕구'라면,
강하게 금지된 것이나 거의 보충의 가능성이 낮은 거라면 '욕망'이 아닐까 싶은...

저 구분이 외국에서 나누던 거였을 거예요. 한국어로 하면 더 애매해 져서...
애정남한테 물어봐야하는데, 코너 끝났죠.

욕구 want :
a state of extreme poverty 심히 가난한 상태
the state of needing something that is absent or unavailable 결핍이나 불가능으로 무언가를 원하는 상태
anything that is necessary but lacking 필요하지만 결핍된 것
a specific feeling of desire 기대하는 특별한 느낌

욕망 desire :
the feeling that accompanies an unsatisfied state 불만족상태가 일으키는 느낌
expect and wish 기대하고 바라는 것
express a desire for 열망의 표현


감은빛 2012-06-29 11:37   좋아요 0 | URL
댓글이 상당히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욕구와 욕망이 '정도의 차이'로 구별되는 개념이었군요!
자세히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을 읽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몇 분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욕망'하면 왠지 성적인 욕구가 먼저 연상된다구요.
저만 그런 건 아닌가봐요.
 

별명 부르는 가족

 

어려서부터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거나 필명을 쓰는 것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별명을 부르는 것은 그닥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별명이란 것을 스스로 짓는 경우보다는 대개 친구들이 놀리듯이 붙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지금 쓰고 있는 '감은빛'은 온라인에서 필명으로 쓰기 위해 스스로 지은 것이고, 그 전에 불리던 별명은 '갈매기'였다. (야)구도(시)로 유명한 부산의 상징, 갈매기. 형들은 '갈매가'(갱상도 특유의 억양이 중요포인트!)라고 불렀고, 후배들은 '갈매기 오빠야'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서울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이 별명이 내 외모나 내 말투와 그닥 와닿지 않는다는 평을 자주 듣게 되면서, 그리고 그 별명을 주로 부르던 사람들과 더이상 자주 만나지 않게 되면서 스스로도 안쓰게 되었다.

 

엊그제였던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큰아이가 뛰어나오며 우리 집에서는 이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단다. 엄마는 '한알', 큰아이는 '딸기', 작은아이는 '당근'이란다. 무엇을 기준으로 지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다들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땀에 젖은 웃옷을 벗고 있는데, 큰아이가 빨리 내 별명을 정하라고 난리다. 그 순간 '갈매기'가 떠올랐으나, 다들 2글자 별명이니 부르기 쉽게 맞춰야겠다 싶었다. 뭐가 있을까? 일단 옷부터 벗고 하면 안될까? 시간을 끌면서 고민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다가 뭐를 연상해서 그랬는지 큰아이가 '감자'라고 불렀다. 그러자 아이엄마는 대뜸 반발하며 '감자'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런 아저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오래전에 쓰던 온라인 별명 '흰긴수염고래'를 떠올리며, '고래'라는 별명을 쓰겠다고 큰아이에게 말했더니, 이번에도 아이엄마는 곧바로 '술고래'라고 받아쳤다. 그래! 역시 그 반응이 나올줄 알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엄마가 '매기'라고 불렀다. '갈매기'에서 앞글자 빼고 '매기'란다. 이쯤되면 나도 거의 포기상태. 뭐 좋다. '매기'든, '감자'든, '고래'든 뭐든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아니 세개 다 별명으로 쓰면 어떤가?

 

아침에 큰아이 학교 교문 앞에서 "딸기씨, 재밌게 놀다와!" 그랬더니, "매기씨, 다녀올게요!" 하고는 장난스런 웃음을 짓는다. 개구쟁이 녀석!

 

찌쭝과 땀똔

 

가족들 호칭 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은 발음이다. 큰아이는 함미(할머니)를 먼저 발음했고, 하뻐지(할아버지 - 이 발음은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를 나중에 발음했다. 동생네 조카들은 둘다 함미(할머니), 하삐(할아버지)라고 발음했다. 재밌는 건 우리 작은녀석은 거의 처음부터 원 발음에 가깝게 말했다. 함머니(할머니)와 하라머지(할아버지). 특히 할아버지 발음은 글자가 4개이므로 대부분 처음에는 2글자나 3글자로 줄이는 듯 한데, 요 녀석은 일찍부터 4글자의 발음을 들려줬다. (큰아이에 비해) 말이 늦은 편이지만 알아들을만한 단어를 구사할 때는 제법 원 발음에 가깝게 말하는 편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는다.

 

그럼 가족들을 부르는 말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당연히 삼촌이다! 큰아이는 신기하게도 삼촌을 '찌쭝'이라고 불렀다. 그 발음이 너무 재밌어서 자꾸만 삼촌을 불러보라고 해놓고, 온 식구들이 모두 웃곤 했다. 작은아이는 '땀똔'이다. 역시 말하는 시점이 늦은 대신 원 발음에 가깝다.

 

지난 [뗀뗀님과 넨넨님] 글 마지막즈음에 좋아하는 먹거리에 대한 '유아어'를 떠올리면서 우리 작은아이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공갈젖꼭지'를 뜻하는 '뚜뚜'를 적어놓았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이후 잘 생각해보니, 요 녀석이 좋아하고 유난히 찾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줍'이다! 이게 뭘 말하는 걸까? 생협에서 박스채 시켜먹는 '배즙'을 말한다. 이 배즙은 달인 배즙이 아닌 생 배즙이다. 큰아이는 달인 배즙의 경우 잘 안먹는데, 생 배즙은 종종 먹는다. 그리고 작은아이는 아주 생 배즙의 귀신이라고 할만큼 좋아한다. 뭔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비줍'을 찾으며 울어댄다. 기분이 안좋으니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배즙으로 기분 전환을 하겠다는 뜻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발달단계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큰아이는 어떤 물건을 볼때마다 무조건 '엄마꼬', '아빠꼬', '함미꼬', '안야꼬(자기꺼)' 등으로 분류를 하고는 확인하듯이 물어보곤 했다. 무엇이든 물건을 보면 무조건 자신이 생각하기에 주로 쓰는 사람걸로 분류해냈다.

 

물론 작은아이도 짧은 기간동안 '엄마꼬', '아빠꼬'를 했지만, 길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게모야?'라는 질문을 더 많이 했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질문, 한번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 처음에는 아이 말투를 따라해가며 재밌게 대답하다가도 세번, 네번 심지어 열댓번씩 질문이 반복되면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다. 점점 굳어져가는 표정과 말투를 느끼면서도 아이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때쯤 대답을 멈추고 가만히 있으면 제 풀에 지쳐 아이가 먼저 물건의 이름을 말하곤 한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아이의 이름을 말하는 시기와 발음의 차이이다. 큰아이는 비교적 빨리 자기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안야'(물론 유아어)라고. 또박또박 발음했다. 우리가 뭔가를 대신 해주려고 하면 '안야가! 안야가!'를 큰 소리로 외쳤다. 자기가 하겠다는 소리다. 자기 물건은 '안야꼬!'라고 강조하면서 절대 안주려고 했다.

 

그에 비해 작은아이는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또박또박 한 글자씩 불러줘도 발음이 모호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자기 이름에 가까운 발음을 시작했다. '이떵이'(역시 유아어)이라고 말이다. 요 녀석도 요즘 '이떵이가! 이떵이가!'를 외치며 자기가 양말을 신겠다거나, 바지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물론 아직 혼자서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것이라고 생각되는) 물건에 대해서도 '이떵이꺼!'를 분명하게 외치며 안뺏기려고 한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큰아이보다 개월수로 대략 3~4개월 이상 늦은 것 같다.

 

대신 작은아이는 확실히 행동발달이 빠르다. 큰아이도 아침마다 무겁다고 투덜대는 책가방을 작은아이가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무척 놀랐다. 큰아이는 지금도 거의 하지 않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행동도 작은아이는 겁도 없이 거침없이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역시 사람들은 다 저마다 개성을 갖고 태어나는구나! 새삼 아이들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나 역시 늘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뭔가 남들보다 잘 하는 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용기를 얻으며 또 한번 열정을 태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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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5-2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큰애때는 제법 꼼꼼히 기록한 게 많은데, 작은애 기록은 별로 없어 늘 미안해요. 님의 페이퍼를 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감은빛 2012-05-24 09:59   좋아요 0 | URL
저는 큰아이 때도 많이 써놓지 못했구요.
작은아이도 여전히 많이 쓰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조선인님이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봄나무 2012-05-2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사시는군요!

감은빛 2012-05-30 16:55   좋아요 0 | URL
재밌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hnine 2012-05-2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땀똔'이 무엇인지 제목만 보고 알았어요 ^^
'찌쭝'은 정말, 재미있는 연구대상인데요. 어떻게 그렇게 발음하게 되었을까...

감은빛 2012-05-30 16:56   좋아요 0 | URL
앗! 제목만 보고!
그렇죠. 땀똔은 아무래도 쉽게 알 수 있죠.
찌쭝은 저도 늘 궁금해하고 있어요.
정작 큰아이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구요. ^^
 

며칠 전 아내가 말했다. 큰아이 반 엄마들이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는데, @@만원 미만의 선물은 해도 소용없다며 얼마 이상을 내야 한다고 말했단다. 가난한 형편에 선생님 선물로 그런 큰 돈을 쓸 여유도 없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스승의 날'이라는 형식적인 날 그리 큰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 나라의 공교육이라는 것이 참 암담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면서, 이 지옥같은 학교 생활을 헤쳐나갈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애초에 커피(공정무역)나 차(유기농) 따위의 간단한 선물을 생각했던 아내는 그런 표도 안나는 선물은 하지 말라는 다른 엄마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 역시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포장해준 손수건이나 양말 한 켤레를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땐 대부분이 양말이나 손수건이었던 것 같다. 다만 형편에 따라 상표(메이커)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선택의 폭이 넓어졌겠지만, 큰 돈을 들이지 않는 한 선물은 대개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학자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혹은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 생활을 좀 했었다. 학원 강사도 선생님이라고 스승의 날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제법 규모가 있는 보습학원으로 유명한 우범지역(즉 가난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수업을 맡았으며,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처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묘했다. 학원 선생님까지 챙겨야 하는 어머니의 수고로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신경써야겠다는 의무감 등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여전히 선물의 대세는 양말이었다. 양말 선물세트가 2개와 와이셔츠 1벌을 받았다. 그리고 담임을 맡지 않았는데도 몇몇 여학생들에게는 카드와 편지, 꽃 한송이 등을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도 인기에 따라 선물의 편차는 무척 크다! 대개 여선생님들 보다는 남선생님들이 더 선물을 많이 받거나, 더 좋은 선물을 받고, 학생들에게 편지나 카드나 꽃 등을 받을 때도 남선생님들이 더 많이 받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원강사를 시작한 한 남선생님은 키도 크고, 얼굴도 비교적 준수한 편이어서 들어오자마자 그 학원 최고의 인기 선생님으로 등극했는데, 스승의 날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 꽃다발과 케이크가 여러개였고, 크고 작은 포장된 상자들이 제법 쌓였다. 그 친구는 받은 선물들을 한번에 집으로 가져갈 수 없어서 책상위에 쌓아놓고 여러날에 걸쳐서 옮기느라, 우리의 질투심에 더욱 불을 질러댔다.

 

그리 오래지 않은 기간동안 여러 학원을 옮겨다니며 담임을 맡았던 게 너댓번 쯤 된다. 몇 차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기억나는 선물은 역시 양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조용한 편이어서 차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치고보니 성적이 무척 좋지 않았다. 전화상담 결과 부모님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다. 아이는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시장에서 가게를 하시는 데, 새벽에 일찍 나가시고, 밤 늦게 돌아오셔서 아이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이왕 학원에 보내고 있으니,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기를 바라셨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이가 더 빗나가지 않기를 바랬다. 학원 강사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개별적으로 공부를 좀 더 봐주는 것으로 그 아이를 붙잡으려 했다. 처음에는 성공이었다. 거의 전 과목을 1대1로 봐주었더니, 기말고사에서 그 아이의 성적이 확 올랐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까지 학원으로 끌어들여서 더욱 열심히 다니는 듯 했다. 다음 해 그 아이가 중3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 담임을 맡았다. 그 양말은 그해 스승의 날에 받은 것이다. 전화를 통해 작년에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우리 아이가 성적이 많이 올라서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성적은 다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1학기를 마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를 대신하여 담임이 된 친구와 친하게 지냈기에 종종 그 아이의 소식을 물었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으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조금 불량해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을 더 학원으로 데려와서 같이 다니고 있으며, 예전보다 수업태도도 많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돌아왔다. 안타까웠다. 그 친구 역시 학원 방침에 따라 부모님과 전화상담을 종종 하는데, 예전 담임이었던 내 얘기를 가끔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르바이트로 잠깐 스쳐가는 학원 강사였는데, 그 아이와 부모님들께는 또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채 2년이 안되지만, 그때 받은 양말은 한 4~5년쯤 신었던 것 같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양말을 찾아 신다가 문득 그 양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 아이가 생각났다.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이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도 못 알아보겠지. 부디 더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았기를,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그 아이을 떠올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옷을 껴입곤 했다.

 

선물이라는 건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면 잠시 선물했던 사람을 떠올리고, 그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그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선물 아닐까? 값비싼 선물들이 잔뜩 받는 선생님이라면 과연 나중에 그 선물로 인해 아이들을 떠올리고, 아이들의 안부를 궁금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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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16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글은 참 감동적이네요.
근데 촌지와 관련해서 사실 서울의 몇몇 지역은 뭐 그냥 한번 인사가는데 몇 십만원은 기본이라고 하더군요.그래선지 몇 지역은 5년이 한도라고 합니다.정말로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는 많은 교사분들이 몇몇 미꾸라지 선생덕분에 도매급으로 욕을 먹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감은빛 2012-05-18 14:21   좋아요 0 | URL
촌지 문제는 마치 다 해결된 것인양,
이제는 그런 선생님은 아예 없는 것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보니 여전히 촌지 문제는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승의 날 선물은 차라리 상징적인 문제이구요.
소풍, 견학, 체육대회 등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행사들에
아이들 간식이나 선생님 식사 등이 부모들의 몫으로 떨어지고,
교실청소나 급식담당 등의 자잘한 일들에 학부모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참, 우습지도 않은 현실입니다.
부모들이 학교에가서 아이들, 선생님들 뒷바라지나 하고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미국의 어느 도시에 학교촌지가 번지기 시작했다네요.처음엔 미국교사들이 질겁을 했는데 나중엔 적응이 되어 은근히 바라는 교사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웃은 기억이 있습니다.알다시피 미국교사들은 방학 때는 급료를 못받아 수입이 낮으니 한국학부모들이 주는 돈이 살림에 보탬이 된 게 아니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이런 것도 문화수출인가요...

감은빛 2012-05-18 14:24   좋아요 0 | URL
허! 참 자랑스러운 한국문화의 세계화로군요!
미국에서는 교사들이 방학때 급료를 못받는 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교사가 최고라는 인식이 있는데,
(공무원이고, 방학도 있잖아요!)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겠군요.

마녀고양이 2012-05-17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 일체 선물 금지 공문이 5년째 날아오고 있어요.
심지어 카네이션도 안 된다고 하네요, 비싼 선물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슬프지만
이렇게 일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날아오는 것도 슬퍼요.... 자연스럽지 않아요. ㅠ

감은빛 2012-05-18 14:25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지 않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이라면 주고 받는 것이 정상일텐데,
그것을 강제로 막는 다는 것도 참 웃기는 짓이네요.
부모와 학부모는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