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버리기, 내려놓기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면 요새 3 Job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첫번째는 돈버는 직장 일이고, 두번째와 세번째는 돈 못버는 일이다.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과 녹색당 일이 그것들이다. 한 친구가 그랬다. "넌 어떻게 그렇게 돈도 안되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 모르겠다. 살면서 돈 되는 일을 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것이 나름 재밌고, 보람도 있었지만 어느순간부터 한계가 느껴졌다. 일단 체력의 한계가 왔다. 새벽까지 밤 잠 못자고(혹은 안자고) 뭔가를 하는 일이 거의 특기에 가까운 나에게도 지금처럼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두번째로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늘 뭔가에 치여서 급하게 처리하고 또 다른 급한 일을 맞이하다보니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점점 더 나 자신에게 투영해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피곤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내 잣대로만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구나! 내가 나를 자꾸만 고집할 수록 모든 일이 자꾸만 더 어렵게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비우고, 나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나 자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서서히 나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노찌따
주말이었던가? 아내는 어딘가 약속(혹은 모임)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어느 오후,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근처에 놀러가는 중이었다. 작은아이에게 어디가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웃으면서 "노찌다(녹색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아이가 끼어들어 녹색당 가는 거 아니라고 말했는데, 작은아이는 "노찌따 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었다. 한참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시 작은아이에게 어디 놀러왔냐고 물었다. 역시 아이는 이번에도 "노찌따"라고 답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역시 어디 공원에 바람이나 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작은아이에게 어디 놀러가냐고 물었다. 역시 돌아온 대답은 "노찌따"였다. 어쩌다 작은아이에게 놀러가는 곳은 모두 녹색당이 되어버렸을까? 아마 작년 가을부터 창당준비과정에 참여하면서 회의나 모임에 나가야 할 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아이에게 녹색당이 놀이터와 거의 비슷한 의미이듯이, 큰아이도 녹색당에 함께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거기 가면 많은 이모들과 삼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뭔가 먹을 것도 잔뜩 주고, 함께 놀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5월 초에는 실제로 아이 둘을 데리고 녹색당 지역 모임에 참여했다.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려와서 대충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바쁘게 움직이면서 아이들에게 녹색당에 놀러갈 거라고 했더니 두 녀석이 손을 맞잡고 껑충껑충 뛰면서 좋아했다. 물론 모든 녹색당 모임이 녀석들에게 재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큰아이의 경우 조금 더 크면 이제 더이상 아빠를 따라다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늘 따라와서 투정부리지 않고 잘 지내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나에게도 녀석들처럼 녹색당이 놀이터와 비슷한 의미가 되어, 모임이나 행사에 나가는 것이 재밌고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맡고 있는 역할이 너무 무거워서 벅차고 힘겹다고 느껴지는 요즘 그런 바램이 더욱 절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