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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욕망'이란 단어를 접하면 나는 자동적으로 여성의 벗은 몸을 떠올린다. '욕구'나 '욕심'과는 달리 끝글자가 망으로 끝나면 늘 그거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나라는 인간을 겉에서 부터 하나씩 벗겨보면, 명예에 대한 욕구, 물질에 대한 욕구, 술이나 음식에 대한 욕구 등을 다 벗겨내면 가장 은밀한 곳에 꽁꽁 감춰놓은 것이 바로 여성의 몸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방금의 표현을 보면 앞에 있는 흔히 남들이 짐작할 수 있거나, 드러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욕구라고 썼지만, 맨 마지막에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닌 한 드러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욕망이라고 썼다. 왜그랬을까? 모르겠다. 암튼 나는 이 책을 보자마자 '욕망'이란 단어 때문에 살짝 성적흥분 상태에 빠졌다가 곧 돌아왔다. 어떤 욕망을 해도 괜찮다는 걸까? 어떻게 괜찮다는 걸까?
다시 나를 벗겨보면, 가장 겉에서 드러나는 것은 명예에 대한 욕구(줄여서 명예욕)다. 평소에는 짐짓 겸손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잘난척 하기를 즐긴다. 늘 나는 잘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남들에게 존중받기를 원하고, 내가 이룬 결과나 성과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대학 다닐때 후배들과 함께 MBTI를 했을때, 강사님이 내 유형을 설명하면서 '잘난 척 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표현했는데, 그때 많은 후배들이 공감했고, 나는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땐 내 스스로 잘난척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떠올려보면 내 말과 행동들로 후배들이 그렇게 느낄 이유는 충분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명예욕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새삼 놀랄 때가 있다.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스스로를 낮춰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재밌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에 물질에 대한 욕구라고 적었지만 이건 아마 돈에 대한 욕심일 것이다. 가끔 사람들 앞에서 잘난척 할때 종종 '나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래 엄밀히 따지면 돈 자체에 대한 욕심은 비교적 없는 편이다. 한번도 돈이 많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다만 나도 갖고 싶은 것들은 많다! 그런데 내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조금 다르긴 하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직장일 때문이나 예의상 얼굴을 비춰야하는 동문모임 같은 곳에 가면 대개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자동차. 집. 고급 정장. 구두. 지갑 등등 사람들은 더 비싸고, 더 좋은 것들을 자꾸만 원한다. 내 경우에는 남들처럼 자동차나 집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책 욕심이다. 읽지도 못할 책을 자꾸만 사모으는 것을 보니, 책 읽기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저 책을 수집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강한 것은 바로 육체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이른바 성욕이라 부르는 그 갈망이 내가 가진 다양한 욕구나 욕망 중에서 가장 강할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재밌는 일이 생각났다. 알라딘 서재를 만들어두고 아주 가끔 그러니까 거의 1년에 한 두개의 글을 쓰면서 여러해를 보냈다. 그때는 따로 관리하는 블로그들이 있었다. 그 공간들은 주로 생활글이나 사회문제를 언급하는 곳이었다. 상대적으로 책에 대한 글은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라딘 서재는 거의 쓰지 않았다.(그땐 알라딘 서재에서는 책 얘기만 해야지 하는 까닭모를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략 2010년 가을쯤부터 본격적으로 서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전에 쓰던 블로그 서비스가 문을 닫았다. 다른 서비스의 블로그로 옮겨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조차 싫어졌다. 뭔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고 싶은 차에 내가 공저자로 포함된 책이 출간되었고, 알라딘에서 그 책이 언급되는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서재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이 서재는 비교적 조용한 곳이지만, 그때는 활동 초기였으니, 내 글을 읽는 이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마 2011년 1월 1일이나 2일에 쓴 글어었을 것이다. 옛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글 속에 내가 '자위행위'를 한 사실을 언급했다. 글을 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올려놓고 다음날 다시 읽다가 조금 망설여졌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누가 읽기 전에 그 부분을 지울까 생각했는데, 이미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안 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읽고도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그래 읽었다고 곡 아는 척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냥 놔둬도 괜찮겠다 싶었다. 다시 찾아보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그 글에는 적어도 서너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아무도 그 부끄러운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싶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공공연하게 내 개인의 욕망을 드러낸 것은 그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가끔 글을 쓰다보면 어 이런 표현 해도 괜찮을까 싶을 때가 있다. 솔직하게 써놓고 이 공간에 굳이 내 개인을 솔직하게 다 까발릴 이유가 있을가 싶어서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김두식 선생은 솔직하기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욕망이 없이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없는 것인양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욕망해도 괜찮다! 드러내도 괜찮다! 나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고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잘 몰랐던 전혀 다른 나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 와 함께 김두식 선생의 책 다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