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병이 하나 있다.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병.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병. 이것은 머리가 나쁘다거나 기억력이 안좋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다른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으나, 유독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니 그런 듯하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중학교 때였던 듯 하다. 당시 유행하던 최진실, 왕조현, 소피 마르소 등의 책받침을 보면서 같은 사람의 다른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화장법이 바뀌거나 머리 모양이 바뀌면 도무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런 나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자꾸만 같은 사람의 다른 사진이 들어간 책받침들을 모아와서는 질문하곤 했다. "이 사람하고 이 사람하고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다른 사람!" 그러면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나는 그게 왜 우스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저 녀석들 눈에는 이게 같은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 나는 오히려 그게 궁금했다.

 

대학 때였다. 학생회 활동 등으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역시나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덕분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은(아마 평생 잊지 못할듯) 한동안 친하게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대화도 많이 나눴는데, 다시 한동안 못 만났다가 어느날 우연히 학생식당에서 딱 마주쳤을때의 일이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는 사람일거야, 그런데 동기야? 선배야? 아님 후배야? 얼굴로 보아 후배는 아닌 것 같고, 동기 아님 선배일텐데, 말을 놓아야 해? 아님 높여야 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돌면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반가운 웃음이 아직 그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한 내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아직 안돼! 니가 누군지 떠올리지 못했어! 다가오지마!' 그러나 그는 곧 내 앞에 서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전해왔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말투에서 말을 높일지 낮출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안녕, 잘 지냈어."라는 평범한 인사말만 갖고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어, 어" 라고 얼버무리듯 입을 열었고, 내 곤혹스러운 표정을 읽은 그는 잠시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정말 쥐구멍이롣 있다면, 머리만이라도 숨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의외로 빨리 그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뭐야! 너 나 못알아보는거야? 참, 나. 어이없네!" 잠시 혼자말로 뭐라고 궁시렁거리던 그는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더니 곧 떠나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남아 계속 그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그 마지막 경멸을 담은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그 이후로도 가끔 학교에서 마주쳤는데, 이젠 그 쪽에서 아예 내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기억은 어느날 갑자기 망치에 맞은 것처럼 떠올랐다. 그는 동기였다. 즉 말을 놓아도 되는 상대였다. 짧은 기간 여러번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들이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의 이름만은 생각나지 않았다.

 

역시 대학때였다. 마지막 2년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서 호출이 와서 저녁 시간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 쪽을 쳐다보았으나, 여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 여동생은 당시에 거의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하고 있었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그래도 동생을 알아보지 못한 사실은 어쩔 수 없었다. 집 근처에 다 와서 복잡하던 버스 안이 한적해졌을 때, 자리에 앉아있던 동생이 "오빠야!"하고 불렀을 때까지도 나는 동생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내 동생이랑 비슷하네. 누구를 부르는 거지?' 싶어서 주위를 돌아볼 뻔 했다. 다시 한번 동생이 "오빠야!"를 부른 다음에야 얼른 정신을 차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사람을 착각하거나 잘못 알아보고 실수한 일이 무척 많다. 도무지 셀 수도 없다. 거래처를 방문했다가 담당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젊은 여직원들의 얼굴들을 열심히 살폈는데, 바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그 사람인 줄 모르고 30분 넘게 기다렸던 적도 있었고, 다른 거래처에서는 담당자인줄 알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가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이어서 엄청 무안했던 적도 있었다.

 

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녹색당에서도 여러번 그런 일이 있었다. 한번은 당원들끼리 함께 FTA반대 집회에 나가기로 하고, 좀 늦게 집회장소에 도착했다. 전화로 위치를 확인해서 당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 자리에는 다른 당원들은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고 있던 한 여성당원이 있었다. 집회가 일단락되고 행진이 시작되면서 그 여성당원이 내게 다가와서 반갑게 말을 붙였는데, 이번에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역시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이미 표정관리하기에는 늦어버린 상황. 그는 내가 적당한 반응을 보이지 못하자 그냥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간 듯 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생각하느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가 "말을 걸었는데, 반응이 없길래, 아, 못알아보시는구나! 싶었어요"라고 쿨하게 말했다. 그의 그런 태도 덕분에 나는 더 부끄러워져서 여러번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며칠 전에는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탈핵파티가 열렸다. 그 유명한 '햄머링 맨' 근처 거리에서 집회 겸 문화제를 열어서 참석했는데, 거기서 낯익은 여성 활동가를 한 명 만났다.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길래, 나도 정중하게 "안녕하세요!"라고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아마 활동하다가 만난 사람들 중에 한 명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가 "아니, 왜 이렇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세요? 지금 나 못알아보시는거죠?"라고 정색을하면서 물었다. 그제야 뜨끔해진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살피면서 "아니예요. 기억나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메모리에서 '여성활동가' 항목을 뒤져서 나오는 얼굴과 이름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분명히 낯이 익었다. 내가 활동했던 몇 개의 교집합을 차례로 떠올리다가 마침내 맞는 항목을 골라냈다. 환경단체 활동할 당시에 같은 기수로 교육을 받았던 동기였다. 그가 나보다 어렸기에 아마 당시에는 말을 놓고 지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왜 깍듯하게 인사하냐?"를 물었던 거겠지. 그러나 여전히 그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남자 아이를 하나 발견했다. 그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중간쯤 되어 보이니 대략 대여섯살 쯤 된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새 우리가 다들 결혼하여 아이들이 자라고 있을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새삼 지나간 시간을 느끼면서, 그와의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역사가 워낙 오래되다보니,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많이 받았다. 어떤 이는 내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관심을 좀 가지라는 요구를 했고, 어떤 이는 그냥 포기하라는 주문을 했다.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을 하다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많고, 앞으로도 활동을 중단할 생각은 없으므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망신을 당하게 될까 싶어서 늘 불안하다. 그러나 며칠 전에 마주쳤던 동기와 헤어져서 돌아오면서 이건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병이구나 싶었다. 그냥 포기하라는 조언을 했던 친구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 하다. 다만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라는 친구의 조언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2-07-1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감은빛님. 저도 언젠가 같은 내용으로 페이퍼를 쓴 적이 있어요. 의외로 이런 증상을 가지신 분들이 많군요. 안면인식장애 말입니다. 제 경우에도 친구 얼굴을 못알아봐서 엉뚱한 사람한테 말걸고 그랬더랬어요. 하핫.

모두에게 적용되는건 아닌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이들의 얼굴은 아주 잘 기억나거든요. 그런데 어떤 이들의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앞머리가 있었지 머리가 길었지 스포츠머리였지, 이정도의 어떤 윤곽은 기억하지만 얼굴형태는 뿌옇다고나 할까요. 이미지만 남아있을때도 있고, 어떤 경우엔 이미지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저도 상당히 애먹는답니다. 특히 제가 지금 하는 일에서는 얼굴을 잘 기억해야 하는데, 그걸 통 못해서 누군가 찾아올때마다 동료직원을 쳐다봐요. 그러면 동료직원이 입모양으로 누구라고 말해주죠. orz


저는 사람 얼굴뿐만 아니라 모든 그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에요. 그림 기억을 전혀 못해요. 만화책은 재미있게 읽어도 전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요. 이쪽으로는 뇌가 발달하기를 멈춘듯 해요. 제 경우엔, 관심과는 별개로 말이지요.

감은빛 2012-07-13 11: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저와 같은 불치병을 갖고 계시군요.
(불치병에 반갑다는 표현을 써서 좀 그렇지만)
이거 정말 반가운데요!
다락방님이 쓰신 글을 찾아 읽고 싶네요.

시간날 때 검색해보겠습니다.

라주미힌 2012-07-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사람들을 익숙하게 하는 것도 방법인거 같아요;; 적극적으로 알려서.. 흐흐
저도 핸디캡이 있는데, 어쩔 수 없죠 뭐.. 본인들이 익숙해져야지 -_-;;

감은빛 2012-07-13 12:00   좋아요 0 | URL
저는 가능하면 사람들이 제가 못알아본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너무 미안하잖아요.
그렇지만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더라구요.
라주미힌님도 조금은 증상을 갖고 계신가봐요. ^^
저만큼 심하지는 않겠죠?
 
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비가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듣다가,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었다. 어느 술집에선가 가져온 작은 성냥갑을 열어 성냥 하나를 그었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불꽃이 타오른다. 잠시 불꽃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얼른 불을 붙였다.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의 퀴퀴한 냄새와 여름 장마 기간의 특유의 비 냄새와 담배냄새가 뒤섞였다. 하얀 연기를 창밖으로 뿜어내면서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어두운 골목 저 편에 노란 전구 하나가 갓을 쓰고 전봇대에 위태롭게 매달려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 위쪽에서부터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빗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큰 소리로 깔깔대며 떠드는 목소리가 둘, 아니 셋인지도 모르겠다. 곧이어 창문 아래로 노란 우산, 빨간 우산, 줄무늬 우산이 지나간다. 셋이었다. 담배를 끄고 펼쳐진 공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글자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날아가는 글씨들. 뭐라고 썼던 걸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그 공책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아직 내 자취방에 컴퓨터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인터넷서점에 서평을 한번 써보라고 권한 친구가 있었다. 그게 뭔데? 물었더니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수 있는 서점인데,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 적립금을 얼마인가 주는데, 나중에 그 돈을 모아 책을 살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돌아왔다. 넌 책을 많이 읽으니, 책 소개하는 글을 쓰고 그 돈으로 다시 책을 사면 좋은 거 아니냐며 설득을 했다. 그래 그거 괜찮겠네. 그렇게 대답은 해놓고도 오랫동안 인터넷서점에 서평을 쓰지는 못했다. 그때는 뭔가 바쁜 일들이 있었다. 연애와 학회 활동과 사회에 대한 고민들로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책을 읽고 짧게라도 느낌을 남기는 일에는 관심이 생겨서 컴퓨터도 없는 자취방에서 혼자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낯설지만 당시에는 공책에 뭔가를 써야할 일이 많았다.(자취방에 컴퓨터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단편들을 공책에 필사하기도 했고, 어쭙잖은 글 솜씨로 소설을 끄적이기도 했다. 지금은 반대가 되었지만, 그때는 컴퓨터로 자판을 두드리면서 곧바로 글을 쓸 때는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한 두 문장을 두드리고는 한참을 고민하고 또 한 두 문장을 두드리곤 했다. 그때는 오히려 공책에 글씨를 쓸 때 문장이 바로 바로 떠올라서 한 번에 글을 완성해버리기도 했다.

 

왜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냐면, 최근에 유명한 서평블로거인 파란여우(윤미화)님의 신간 『독과 도』를 읽고, 내가 서평이란 걸 쓰기 시작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1년 쯤 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글 실력은 코 박고 죽기에도 모자란 접시물과 같아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내 글 따위로 감히 파란여우님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는 민망하다.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내 기억의 한 자락을 꺼내보았다.

 

빨간 띠지의 메인 문구는 “서평의 고수 ‘파란 여우’가 보내는 인문 공감 에세이”이다. 그 표현 그대로 파란 여우님의 글은 인문학의 지식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한껏 담은 에세이가 맞다. 하나의 글에 언급된 책이 보통 두세 권이고, 다섯 권을 언급한 글도 두 개나 있었다. 거기에 다양한 사회문제를 버무린 그의 글 솜씨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길게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한번 읽어보자. 그리고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자. 그래서 책을 읽는 다는 행위가 이 불편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나무 2012-07-0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은빛 2012-07-09 14:51   좋아요 0 | URL
^^

루쉰P 2012-07-0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감은빛님 모처럼 왔네요 ㅋ 죄송요.
역시나 오랜만에 오니 소설과 같은 도입부부터 좋네요. ㅋ 남자가 담배를 피는 모습부터 모두 상상이 되네요. 흠~담배 피고 싶어 지네요...ㅋ
휴..저도 진짜 돌아와야죠 ㅋㅋㅋ 멘붕 됐어요. 요즘 말로 ㅋ

감은빛 2012-07-09 14:53   좋아요 0 | URL
와우! 이거 백만년만의 방문이죠?
저도 글 쓰면서 담배가 피고 싶었답니다.
요즘 제 상태가 요샛말로 멘붕이랍니다.
루쉰님도 저도 어서 멘붕에서 돌아와야 할텐데요.
힘 내봅시다!
 

나는 방금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다.


책 만지는 일을 하루이틀 해본 것도 아니면서 가끔 이렇게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곤 한다. 조심성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 약 1년쯤 전에도 서두르다가 손가락을 깊게 베인 적이 있었다. 1년만에 다시 깊은 창상(베인 상처)을 입었다. 고작 종이에 베인 정도를 창상이라 표현한 것은 살갖이 좀 깊게 벌어져서 잘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상처가 아물려면 아무리 트롤(아내는 상처가 빨리 낫는 편인 나를 보고 트롤이라고 부른다.)이라 불리는 나라고 해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베인 상처를 입고 보니, 상처가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들면서 갑자기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잠시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까 종이에 베일때에도 그랬다. 아무생각없이 종이를 꺼내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날카로운 종이 날에 베이는 순간, 문득 감각이 예리해지면서 찰나의 고통과 함께, 머리 속으로 생각이 빨라졌다. 일단 상처를 확인. 살갗은 벌어져있지만, 아직 피는 올라오지 않았다. 곧 피가 솟아 올라오리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피가 솟아올라서 작업하고 있던 책을 못쓰게 만들기 전에 빨리 휴지를 찾아야 한다. 일단 피가 올라오면 먼저 지혈부터 해야겠지. 아니 그전에 물로 한번 씻고 소독을 하는게 더 좋을까. 소독약이 있었던가. 아니 없는 것 같아. 지금은 약국에 갈 여유가 없으니, 빨리 휴지를 찾아 지혈부터 하는게 더 좋을거야. 아주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빠르게 스쳐간다. 잠시후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해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휴지를 찾아 손가락을 감싸쥔다. 따뜻한 핏물의 온도가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두어 차례 크게 베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다 늘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무언가 만들기 위해 문구용 칼을 긋다가, 동생이 갑자기 발로 차고 지나가는 바람에 왼손 엄지를 그어버렸다. 뭔가 따끔한 감각이 잠시 들었다가 말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잠시 후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가 방 바닥에 흘러 주변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지만,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칼에 베이고, 아픔을 느끼고, 피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그 짧은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던게 기억이 난다. 이게 정말 베인건가. 피가 안나니까 그냥 살짝 아프고 만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암튼 그 상처는 아주 컸다. 지금도 손가락의 절반가량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다.

 

대학시절 농활가서 왼손 검지를(또 왼손이다. 이 수난의 왼손!) 낫에 베였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한 순간의 따끔한 아픔이 지난 후에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갑 때문에 상처가 직접 보이지 않아서 혹시 큰 상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가져봤다. 하지만 잠시 후 피가 솟기 시작하자 순신간에 장갑이 붉게 물들어버릴 정도로 상처는 컸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나이였다면 당연히 병원을 갔어야 했다. 나는 솔직히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저절로 아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깊이 벌어진 상처가 저절로 아물거라는 철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농활 인원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선배들도 후배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며칠 더 일을 했다. 한 선배는 설겆이 하기 싫어서 일부러 다친게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농활을 끝내고 돌아올때까지도 손가락은 낫지 않았다. 상처를 본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며 당장 병원으로 데려갔다. 파상풍 때문에 자칫하면 큰일 날뻔 했다고 의사도 야단을 쳤다. 내가 시간을 끌었던 탓에 상처부위를 매끄럽게 꿰매지못하고 살갖의 일부를 잘라냈다. 덕분에 나는 손가락을 매끄럽게 굽히지 못하게 되었다. 약 1년 정도 왼손 검지를 늘 펴고 살았다. 검지 손가락의 윗부분을 주욱 가로지르는 이 흉터는 엄지에 난 매끄러운 곡선의 흉터와 달리 지그재그, 삐뚤빼둘이다. 꿰멘 흔적도 양 옆으로 남아있어 아주 보기 싫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 손에 자잘한 흉터들이 여러개있다. 이런 상처들은 언제 어디서 다쳤던 것인지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늘 다친 상처는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작년에 다친 상처도 이 보다는 더 컸는데, 흉터가 남지는 않았다. 어라 그러고보니 그때 다친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다쳤다고 인식하는 순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 처럼 느껴지는 것.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인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누군가가 차에 치이거나,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런 장면을 종종 보여주는 것 같은데, 이건 내가 그런 장면을 많이 봐서 그렇게 착각을 하는건지. 아니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겪기 때문에 작가들도 보편적인 경험의 결과로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건지 모르겠다.

 

 

※ 작년 가을(10월 25일) 다른 블로그에 쓴 글. 해당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어서 여기로 옮겨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쁘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다.

뭔가를 하다보면 늘 또다른 무언가를 잊어버린다.

예전에는 꼼꼼하게 해야할 일들을 체크해두고,

잊지 않고 챙기고,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해치웠다.

나름 유능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어이없는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게다가 이 정도쯤 되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대충 눈치를 채는 듯 하다.

저 인간이 요즘 좀 이상하구나! 싶을 것이다.

 

힘들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마음이 힘든 것은 견디기 어렵다.

최근 몇 달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어이없는 실수들은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살짝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분명히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하나도 즐겁지 않을걸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왜 늘 한숨을 쉬고 있을까?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왜 읽을 시간이 없을까?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왜 쓸 시간이 없을까?

왜 하고 싶은 일들을 맘껏 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제 한 친구에게 걱정과 우려가 섞인 충고를 한참동안 들었다.

나에게 뭔가 기대를 갖고 있던 친구.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길로 가고 있는 나를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왜 내게 그런 기대를 갖게 되었을까?

나는 그의 기대에 맞춰주어야 했던 것일까?

아니 지금이라도 맞춰줘야 하는 걸까?

 

최근 한 후배에게 상담요청이 들어왔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고 지난 겨울에 처음 만나서,

그동안 몇 번 만나지도 못했지만,

하지만 그 후배는 내게 큰 신뢰를 보내는 눈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 10년 전에 내가 겪었던 일과 거의 비슷했다.

다행히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여,

내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나름의 충고를 들려줄 수 있었다.

비록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보내주는 신뢰 때문이었는지, 나는 진심으로 그가 이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기를 바랐다.

제발 나처럼 일을 잘못 풀어서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최근 몇몇 사람들이 내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기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런 기대들이 나의 '꼰대 의식'을 자극하여

마치 내가 뭐라도 되는 양 한껏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못난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다시 우울해지곤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게 기대를 거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런 고민들을 풀어보고 싶어도 선뜻 말을 걸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는 냉정하고 차갑게 그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라고,

내게는 바보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이 마치 나를 비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뭐 하나 잘난 것도 없으면서 마냥 잘난척 하는 애송이는 아닐까?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게 되면,

늘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답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 역시 남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지금의 내 선택은 내가 원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원했던 것일까?

 

친구의 책상에서 우연히 [은퇴의 기술]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동갑이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이가 벌써 '은퇴'를 생각할 나이인가?

물어보고 싶었으나 다른 대화를 하느라고 기회를 잃었다.

입으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내뱉으면서

손으로는 주르륵 책장을 넘겼다.

눈은 하릴없이 페이지들 사이로 옮겨다녔다.

 

그러다 문득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흥미에 재능을 연결하라!"

번역어 특유의 뭔가 어색한 느낌 때문에 오히려 더 이 말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며칠 전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당신과는 대화하기가 어렵다.

당신은 너무 '정치'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할 지 모르겠다."

그랬던가?

나는 '정치'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었던가?

그가 종종 '녹색당' 이야기를 물어서 말해준 것 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그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그래서 내가 먼저 정치 이야기를 꺼낸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나는 정치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었구나!

 

과연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내 흥미와 내 재능이 만날 수 있는 일은 과연 뭘까?

 

이 책에서는 사람을 6개의 분류로 나누고 있다.

좌뇌와 우뇌의 발달 여부가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사색적, 관계지향적, 활동적 성향을 또 하나의 기준으로 두었다.

 

1. 분석적이고 사색적인 사람

2. 조정하고 조직하는 사람

3. 기교와 기술이 있는 사람

4. 영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

5. 격려하며 영감을 주는 사람

6. 쾌활하게 행동하는 사람

 

나는 과연 어디에 해당될까?

경우에 따라서 1번, 2번, 4번, 5번이 될 수 있는 듯 하다.

6개의 유형 중에 4개의 유형에 겹치는 사람.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인가보다.

 

이 책은 이어서 각 유형별로 어떤 일에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내용은 너무 방대하여 여기에 다 소개하기 어렵겠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만 유용한 게 아니라,

삶의 태도를 고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적절한 생각할 꺼리들을 던져준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하게 천천히 고민해보련다.

 

과연 나의 흥미와 재능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긴 호흡으로 생각해봐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브굿 2012-06-29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마흔도 안 됐지만 은퇴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직/직장생활보다는 개인/독립적인 일을 하고 싶다.

감은빛 2012-06-29 11:3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부분은 '은퇴'가 아니라 '독립'의 개념인 것 같네요.
찾아보시면 개인/독립적인 일들도 종류가 많더라구요.
원하는 방식의 일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blanca 2012-06-2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제 자신을 잘 모르겠어요.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내가 원하는 내가 정말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일인 것 같아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2-06-29 11:35   좋아요 0 | URL
어려운 일이죠.
저는 지금까지는 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보니 그게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정말 잘 모르겠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
권경희 지음, 임동순 그림 / 미디어일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책상위에서 노란 표지의 책을 만났다. 아마 아내의 책이겠지 생각하며 잠깐 살펴봤다. 제목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이고, 말풍선 안에 ‘알콩 달콩 깨알 같은’이란 글씨가 들어가 있다. 덩치가 큰 고양이 아래에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란 문구가 또 들어있다. 아, 만화였구나. 그러고 보니 표지가 만화 그림체였다. 주인공이 분명해 보이는 두 여성은 무려 원더우먼의 복장을 하고 곡괭이와 쇠스랑을 들고 밭을 누비고 있다. 날씬한 고양이 한 마리도 역시 원더우먼 복장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

 

원더우먼은 어렸을 때 AFKN을 통해 가끔 보았던 만화다. 슈퍼맨과 배트맨과 그 외에 민망한 스판 바지를 입은 이름 모를 몇몇 영웅들이 등장하곤 했던 만화. 영어로 된 만화라서 내용은 전혀 몰랐다. 여름 방학 때 몇 주간 외갓집에 머물 때에는 영어를 잘했던 외삼촌이 가끔 내용을 알려주곤 했지만, 동시통역을 한 것도 아니고 대충 돌아가는 내용만 알려준 것으로는 만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만화를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고 재미였다. 어른이 되어 다시 원더우먼을 만난 것은 ‘원더걸스’라는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저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었던 거였구나. 새삼 옛 만화 생각을 해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여성이라는 의미로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일까? ‘귀촌일기’라는 제목만 봤다면 곧바로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만, 만화라는 점과 ‘귀촌일기’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하고 유쾌한 그림과 문구들 덕분에 호기심이 동했다. 다른 할 일을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아, 이 만화 정말 재밌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몰입을 시작하여 한참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문득 휴대폰 문자 알림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을 읽었다. 이쯤에서 그만 읽고 원래 하려던 일을 해야 하는데, 두 원더우먼과 두 고양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모니터는 3차원 파이프가 무한 반복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책은 이제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지금 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고, 머릿속도 이미 이 책 내용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컴퓨터를 그냥 꺼버리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마흔 살 권씨는 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왔다. 농사에 대해서는 책으로 읽은 것이 전부였다. 서른여섯 임씨는 만화를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다가 권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귀촌을 작당한 지 한 달 만에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내 주변에 몇 해째 귀농이나 귀촌을 머리나 입으로만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물론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님을 잘 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을 한 달 만에 결행한 이들 두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혹은 그만큼 대책 없고 생각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여자 두 사람이 고양이 두 마리와 시골에서 농사짓고 그림(임씨는 만화) 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고 답답하고 힘든 여정이 그려질 거라는 약간의 편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는 유쾌하고 재밌었다. 물론 어렵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제법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담아내는 태도는 단순히 그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태도와 방법들은 유쾌하고 따뜻했다. 일관되게 보이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은 돈이 없어도 상관없고,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에도 개의치 않았다. 제일 마지막 장의 제목인 ‘정말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꼭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잘 살고 있었다.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임씨의 잡초 요리 레시피는 재밌었지만, 당장 도시에서는 재료를 구하지 못해 시도해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진들과 인터뷰를 통해 만화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어 본 것도 좋았다. 재미도 있고 배울 점도 있었다. 무심코 집어든 책 한 권이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꼭 추천해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