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 개정판
박경화 지음 / 북센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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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아침. 전쟁을 치르듯 아이 둘을 준비시키고,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선다. 바지를 입고 나면 항상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핸드폰과 지갑이다. 어쩌다 핸드폰을 두고 나온 날에는 무척 불안하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온다. 만약 버스나 지하철을 탄 후에 핸드폰을 두고 온 사실을 깨닫는다면 하루 종일 온갖 상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나를 급하게 찾고 있으면 어떡하지? 게다가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부터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전화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하고, 채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나 드라마 혹은 야구 중계를 본다. 전자책을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핸드폰.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을까?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1994년 친구 명의로 된 무선호출기(삐삐, Pager)를 처음 쓰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일상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게 말이다. 그 전까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집 전화를 이용하거나, 편지를 쓰거나,(이때는 아직 이메일도 없었다) 그가 주로 다니는 곳에서 시간 맞춰 기다려야 했다. 가령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가 다니는 교회 주변에서 얼쩡거리거나, 헤어질 때 미리 정해둔 시간(주로 밤이었다)에 그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기 위해 밤새도록 공책을 찢고 또 찢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삐삐라는 것을 갖게 되면서부터 아무 때나 연락이 가능해졌다. 물론 삐삐는 핸드폰처럼 바로 통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서, 연락을 받으면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걸거나,(그러고 보면 당시엔 공중전화도 참 많았고, 커피숍 같은 곳엔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이기도 했다) 녹음된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숫자로 된 비밀 암호를 읽으며 혼자 즐거워하기도 했다. 삐삐는 직접 통화가 아니기에 묘한 즐거움과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수업 중이나 회의 중에 음성메세지가 도착하면, 누가 보낸 것일까? 뭐라고 남겼을까?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공중전화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참아야 했다. 메시지를 받고 급하게 공중전화로 달려갔는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면 다른 공중전화를 찾거나, 당장 확인을 포기하고 나중에 집에 가서 확인해야 했다. 술 한 잔 살 테니 나오라는 선배의 메시지를 집에 와서야 확인한 순간에는 땅을 치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숫자로 만든 다양한 메시지가 통용되었다. 대표적으로 급할 때는 누구나 전화번호 뒤에 8282를 붙였다. 사귀는 여자 친구와는 정해놓은 암호를 주고받기도 했다. 1111은 지금 당장 네가 보고 싶어! 1004는 나의 천사! 등등 창의력을 발휘한 다양한 숫자들이 연인들 사이에서 오늘날의 문자메시지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아마 1999년 혹은 2000년쯤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핸드폰을 쓰기 시작한 것이 겨우 십 수 년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은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부터 초등학생까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핸드폰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언뜻 보기에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핸드폰과 고릴라의 관계를 풀어놓으며, 핸드폰이 일상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도록 변해버린 모습들도 지적한다. 그 외에도 산에 올라 “야호!”하고 지르는 소리와 산새들의 숫자에 대한 관계. 북극곰과 지구온난화의 관계, 귀신고래와 유전개발, 해양오염의 관계 등 생태계 문제. 물 부족, 합성섬유, 비닐쓰레기 등 환경문제. 내복 입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손수건 사용하기, 아껴쓰기, 다시쓰기 등의 생활 속 실천의 문제. 음식물쓰레기, 도시 조명(빛공해),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사용 등 살림살이 문제 등의 다양한 환경, 생태 문제들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2006년 초판 발행 후에 지금까지 여러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추천도서로 선정도 많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아이들은 부디 지금의 어른들처럼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아이들과 나아가 그들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망가진 상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지금 당장 이 책을 구해 읽으시라. 그리고 여기에 나온 내용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시라. 우리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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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좀비라는 단어 떠올리면 나는 게임이나 영화에서 특유의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징그럽고 무서운 살아있는 시체보다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라는 아일랜드 록밴드가 먼저 생각난다. 언젠가 드라마 주제곡으로 유명해졌던 [Ode to my family]라는 곡을 부르는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을 티비 화면으로 보면서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던 이후로 나는 제법 오랫동안 크랜베리스의 팬이었다. 독특한 창법과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담은 [Zombie] 라는 곡을 오랫동안 좋아했다.

 

뜬금없이 좀비 얘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지금 내 상태가 그에 가깝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 이틀 연속 밤새 술을 마시고, 곧바로 출근했더니, 몸은 사무실에 앉아 있으나, 정신은 몸을 반쯤 떠나있고, 팔 다리가 흐느적거리고,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고 일어나서 걸으면 그 모습이 영락없는 좀비다!

 

어제 밤 늦게 회의를 마친 시점의 나는 전날 밤을 새웠으니 뒷풀이에 잠깐 들렀다가 곧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오늘은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일어서리라 마음 먹었다. 12시가 가까운 시점이었고, 택시비도 없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만 더 있다가 갈까? 조금만! 으로 생각이 바뀐다.

 

어제는 특히 꼭 풀어야할 이야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풀긴 풀었으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가 정리가 되었으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아침 6시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하철을 타면서 유난히 길고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하루를 머리속으로 그려봤다. 아!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쓸데없는 이야기

 

어느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다가 문득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많이 고민했던 것이고, 지금도 역시 그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사랑이란 감정과 좋아한다는 감정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얼마나 어떻게 다른 걸까?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우정. 호감. 이끌림. 사랑. 남녀를 불문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현 관계에서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싶다.

 

 

 

 

 

 대학시절 열심히 읽고 고민했던 책이다.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장 어딘가 구석에 꽂혀 있을텐데,

 시간 날때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부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부럽다!

 '새'를 인연으로 만나 결혼하고,

 매일 함께 새를 보러다니고,

 다친 새를 돌보고,

 희귀 새를 연구하는 삶이란

 얼마나 멋질까!

 

 

 

꽤 오랫동안 '사랑'이란 감정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내게 사랑이란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보고싶은 면만 바라보았던 착각.

 

더불어 좋아한다는 감정, 역시 착각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떤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는 내 착각 속에서만 그런 면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글쎄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꼽으라면,

 바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을 꼽아도 되지 않을까?

 

 이 분들의 삶의 태도, 즉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닮고 싶지만, 역시 나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더 내려놓고, 더 버리고, 더 누그려뜨려야 하는데,

나는 늘 욕심과 욕망에 휩싸여 매 순간을 보내는 듯 하다.

 

 

 

 

모르겠다. 고민을 거듭해도 답은 없다.

애초에 답은 없는 거다!

이 의미 없는 페이퍼를 그냥 지울까? 올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크랜베리스에 대한 추억 때문에 올린다.

왜 이러냐고? 난 지금 좀비다! 그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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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7-2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나갈려고 했는데 감은빛님의 글이 절 잡는군요. 이 댓글만 달고 나가야겠어요.
크랜베리스, 보컬의 맑은 고음을 좋아했어요. 전 좀비보다 드림스를 더 좋아했는데....^^

사랑이나 좋아하는 감정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셀레고 두근거리는 감정은 사랑이 더 쎄긴 하죠. 저는 사람들한테 너 아니면 절대 못 산다는 사랑을 믿지 말라고 하거든요. 그건 병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이나 좋다는 감정이나 적절한 선에서 시작하고 마무리져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결혼 십년 넘으면 사랑보다 그냥 좋다는 감정으로 사는 것 같긴 해요. 제 경우를 보더라도. 흐흐.

감은빛 2012-07-23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Dreams] 좋아했어요. 그보다 [Zombie]를 좀 더 좋아하긴 했지만요.
사실 돌로레스의 목소리는 무거운 곡보다는 밝고 경쾌한 곡에 더 잘어울리는 느낌이긴해요. 크랜베리스의 곡들은 무거운 곡의 비중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아서 그점이 좀 아쉬웠죠. 저는 [I just Shot John Lehnon]이란 곡도 무척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돌로레스 목소리에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안들어요.

저는 요즘 총체적인 관계에 대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결혼관계, 혈연관계, 친구관계를 모두 포함해서 말이죠. 뭐가 사랑이고, 뭐가 우정이고, 뭐가 호감인지? 내가 왜 누군가를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규정해보려 하고 있어요. 쓸데없는 짓이고, 불가능한 짓이겠지만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21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력이 대단하시네요~ㅎㅎ 저같음 길에서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사랑이란거 좋아하는건 어느정도의 착각이 동반되야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착각이 없다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잖아요...^^

감은빛 2012-07-23 14:52   좋아요 0 | URL
사실 이틀 연속 밤새 술마시고 곧바로 출근하는 일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었던 일입니다.
최근에는 3일 연속 밤새 술을 마셨는데요. 이틀째까지는 정상 출근했구요.
3일째는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집에서 뻗어서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체력이 좋은 건 아니구요.
그냥 자주 그런 짓을 해서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이나 우정이나 그냥 좋아하는 감정이 모두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착각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지난 주말 삼척과 영덕으로 '탈핵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획되었던 '희망'버스가 여러 다른 분야로 전파되어 또다른 희망을 실어나르고 있다. 내가 탔던 '탈핵 희망버스'는 3차였고, 강원도 골프장을 막기 위한 10차 '생명버스'가 이번 주 토요일(21일)에 출발한다. 그러고보니 21일 평택에서는 '쌍차 문제 해결을 위한 범 국민 공동행동'이 열린다.

 

본격 더위가 시작될 무렵 여기저기 현장들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밀양에서는 다시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었다. 분신하신 이치우 어르신의 동생, 이상우 어르신의 밭에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계삼 선생님의 편지에 따르면 이상우 어르신은 공공연히 다시 공사가 시작되면 구순 노모를 업고 와서 같이 죽겠다는 말씀을 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과연 한전은 '정말 죽는지 안죽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을까?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다!

 

두물머리에서는 '행정대집행'이 눈 앞에 닥쳤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삼일 전 기습적으로 공사를 감행했고, 매일 같이 여러 활동가들이 포크레인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한편 어제는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앞에서 '세계최초 유기농 집회'가 열렸다. 공사 대신 농사를 짓겠다는 두물머리 유기농 농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끝내 포크레인으로 짓밟겠다는 저들 역시 과연 인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8월 4일부터 5박 6일간 '평화 대행진'을 준비중이다. 1만명이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해군기지를 막아내자는 취지다. 과연 1만명이 걸으면 해군기지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휴가기간에 1만명을 모을 수 있을까? 최근 들은 소식에 의하면 해군 측은 이미 구럼비 바위가 다 파괴된 것처럼 떠들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10분의 1도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 평화대행진이 성과를 내어 이 국면에 변화가 생기기를 바란다!

 

 

 

7월 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집회에 탈핵시민 17만명이 모였습니다.

(촬영: 노다 마사야 野田雅也) 출처- 페이스북 

 

 

한편 최근 일본의 반핵 집회에는 17만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접했다. 17만명이라! 이 나라에서 그 정도 인원이 모였다면 고리원전도 폐쇄하고, 삼척, 영덕 신규 원전도 막아내고, 현재 짓고 있거나 지을 예정인 신규 원전들도 모두 중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저 위에 언급한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짧게 서두를 적으려고 했는데, 이걸로 하나의 글이 될 분량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지금 총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제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나는 삼척에서부터 1박 2일간 자의반 타의반 녹색당 깃발을 책임지는 '깃돌이' 신세가 되었다. 학생운동 시절 이후로 매우 오랫만인 것 같다. 애초에 버스를 타려고 마음 먹었을 때, 이번에는 아이들을 떼놓고 홀로 가는만큼 기록을 좀 꼼꼼히 해놓았다가 후기 성격의 글을 하나 쓸 예정이었다. 가능하다면 기사 형식의 글을 하나 써서 기고도 해봐야지 생각하면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깃돌이' 신세가 되면서부터 기록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후기는 포기하고 그냥 이 순간을 즐겨야지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그날 버스에서 마저 읽었던 [체르노빌의 아이들] 서평과 엮어서 간단하게 후기 성격의 글을 하나 썼다.

 

 

 그 글에 알라디너 '봄나무'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셨다. 동화는 워낙 잘 살펴보지 않아서 여태 몰랐던 책인데, 관심이 간다. 조만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어쨌거나 녹색당 깃발을 들고 있는데, 아이를 데려온 여성 한 분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인사를 꾸벅 하신다. 방향으로 보아 나를 향해 하는 것이 분명한데, 과연 누굴까? 일단 반사적으로 따라 인사를 꾸벅 했다. 누굴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시 후 그 여성은 여전히 반가운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온다. 오지마! 오지마!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야! 그런데 정말 누구지?

 

"녹색당 당원이세요?" 어, 첫 마디가 의외다. 혹 모르는 사이인데 그냥 깃발을 보고 반가워 인사를 한 것일까? 제발 그런 상황이기를 바랬지만, 잠시 후 두번째 말씀에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저 혹시 기억안나세요?" 흠 과거 어딘가에서 만난 분인데, 녹색당에서 만나서 의외다! 혹은 녹색당에서 만나서 반갑다! 뭐 이런 뜻이었나보다. 어쨌거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른채,(아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고개만 절래 절래 흔들었다.

 

지금껏 조용했던 여성분의 말투가 갑자기 높아졌다! "나, 털털이떡 누나야!"라고 말했는데, 솔직히 그 순간에는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그 말을 잘 못 들었다. 누구라고 말했는지 듣지도 못했으면서 "아!" 감탄사를 한번 날려주고, 반가운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이 자동으로 이어졌다. 머리속으로는 여전히 그가 누군지 찾기 위해 메모리를 뒤지고 있었다. 여성은 그제서야 환한 웃음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보니 저 웃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떠오를 듯 말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원망하며 머리를 쥐어 뜯고 싶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난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비닐 우비를 입고 있었다.

 

여성이 몇 개인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겨우겨우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그의 입에서 누군가의 별명이 나왔다. 딩동댕! 드디어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십수년전 문학 동호회에서 활동할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누나였다. 비로소 앞에 그가 말한 별명이 뭐였는지 생각났다. '털털이떡' 독특한 별명이어서 쉽게 잊을 수 없었던 그 이름을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나저나 이게 몇 년만이야?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므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2년은 된 것 같은데!

 

그때부터 내 표정도 진심으로 반가운 표정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우린 긴 시간의 간극 때문에 무얼 물어야 할지 몰라 조금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다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 사이 누나와 함께 온 일행들(그 분들은 경남녹색당 당원들이었다.)과도 인사를 나누고, 누나의 아들이라는 꼬멩이의 머리도 한번 쓰다듬었다. 몇 살인지 물었더니,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란다. 어! 우리 큰애랑 똑같네!

 

식당 앞에서 각자의 일행을 찾아 헤어지고 나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 누나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 보았다. 흐릿한 기억들. 그러고보면 온라인 문학 동호회의 특성 탓인지, 이웃도시였지만 어쨌거나 도시가 달랐기 때문인지 자주 만나던 사이는 아니었다.

 

밤늦게 행사가 끝나고 각자의 '희망버스'를 타고 각자의 숙소로 헤어지기 직전, 누나와 다시 한번 마주쳤다. 어느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묵게 될지 서로 모르는 상황. 어쩌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안녕!

 

지친 몸을 버스에 던져넣었다가 숙소라는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간신히 버스 밖으로 몸을 꺼내어 나오는데, 어라! 밀양에서 온 '희망버스' 1대가 같은 숙소앞에 서 있다. 혹시! 하는 예감은 역시! 로 돌아왔다. 누나가 이미 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숙소에는 밀양, 부산, 울산 등에서 온 '희망버스'참가자들이 배정되어 있었고, 우리 차에 타고 있던 소수의 서울 참가자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뒷풀이. 누나는 아까 제법 서운했던 모양이다. 내가 하나도 안 반가워했다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미안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람 못알아보는 '불치병'에 걸린 나 자신을 치료할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12년만에 만난 누나는 느낌이 참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문학적 소양과 문장력 때문에 참 높아보였던 누나였는데, 지금은 그저 동네 아줌마 같은 친근한 느낌이다. 그 와중에 누나는 나와 같이 온 일행들에게 수다를 떨고 있다. '문학동호회에 함께 있었지만, 그때 글은 별로였어요.' 어! 지금 내 험담하고 있는거야? 그래 뭐 인정!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 글은 늘 별로였다. 누나의 멋진 시와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에 비하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음날 영덕 일정을 소화하면서 밀양팀과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80대 최고령 어르신 참가자들부터 765 송전탑 싸움을 어렵게 이어가고 계신 어르신들이건만 표정은 밝았고, 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새삼 나태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반성하고 좀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누나와 누나의 꼬멩이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또 언젠가 만나겠지. 아, 페이스북에서 소식 접할 수 있으니 뭐 작별이라는 단어의 애틋한 느낌이 많이 줄었다. 털털이떡 누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할게!(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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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7-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말인지는 몰라도 인디언 어느 부족은 오랜만에 만나면 멀리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데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부른다더군요. 흔히들 말하는 안면인식장애가 있거나 감은빛님 같이 가끔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디언들의 지혜가 아닐까요? ^^

감은빛 2012-07-19 16:12   좋아요 0 | URL
아, 그거 정말 굉장한 지혜로군요!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저에게는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또 하나의 '불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좌절합니다.
이름을 듣고서도 가까이서 얼굴을 보면 못알아보는 것은 똑 같을 것 같아요. ㅠ.ㅠ

카스피 2012-07-1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남 얼굴을 잘 기억하질 못해 난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ㅜ.ㅜ

감은빛 2012-07-23 14:23   좋아요 0 | URL
앗! 카스피님도 저와 같은 병을 갖고 계셨군요!
알라딘에 의외로 같은 병을 가진 분들이 많군요.

다락방 2012-07-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과 저는 이런 상황을 일상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군요 ㅠㅠ

감은빛 2012-07-23 14:27   좋아요 0 | URL
일상적으로도 자주 겪지만,
이번 건은 좀 더 극적인 경우였어요.
상대방은 어떻게 나를 몰라보냐고 서운해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더라구요.
이럴때는 참 억울해요!

달사르 2012-07-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게 오픈하고, 손님으로 와주신 이모 얼굴도 못 알아봤는데요..ㅠ.ㅠ

카스피님하고 다락방님하고 감은빛님하고, 저 하고..안면인식장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그지요? 여기 알라딘만 해도 벌써 이만큼이나 되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몰라보면 참 서운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눈이 나빠서 그래, 안면인식장애다, 어쩔래! 배째라 식으로 되려 당당하게 대하거든요. 미안한 표정은 짓지 않구요.

사실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과의 좋았던 것도 기억하지만, 나빴던 것도 죄다 기억한다는 건데..어차피 얼굴맹이라면 그 사람과 나빴던 걸 까먹어주는, 저질 기억력을 되려 기특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애요.

기억력이 좋아서 타인과 껄끄러운 거 까지 다 기억이 나서 사람 만나기 괴롭다...는 분도 저는 종종 보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질 기억력 플러스 얼굴맹인게 얼마나 다행인지..싶더라구요. 감은빛님, 우리 얼굴맹 이거..복 받은 겁니다. ^^

감은빛 2012-07-23 14:38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몇 년만에 길에서 삼촌(실제론 5촌당숙)을 만나 누구였더라?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대개 제가 경험했던 분들은 무척 서운해하더라구요.
이 글의 주인공인 누나는 엄청 서운해했구요.

어쨌거나 알라딘에서 같은 증상을 가진 분들이 여럿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만 그런 불치병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군요!
 
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 7월 14일(토) 오전 8시 30분 삼척으로 떠나는 ‘탈핵 희망버스’ 안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서너 달쯤 전에 3분의 2정도 읽다가 다른 일들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상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다가 지금껏 잊고 있었다. 전날 밤 오랜만에 아이들도 없이 홀가분하게 버스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책이라도 읽어야지 생각하면서 짐이 많을 테니 얇은 책을 위주로 살피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탈핵 희망버스’와 ‘체르노빌의 아이들’ 딱 어울리는 조합이다.

 

1986년 4월 26일(토) 새벽 1시 30분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트에서 3km 떨어진 ‘블라디미르 리치 레닌 핵발전소 4호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소설은 프리피야트(책에는 ‘프리프야트’로 나온다.)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이반이 폭발장면을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후 이반의 가족들이 프리피야트를 탈출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핵발전소의 폭발 순간을 프리피야트 주민들이 목격하고 곧바로 피난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체르노빌 사고 20년 후에 제작된 [체르노빌 전투 The Battle of Chernobyl]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4만3천여 명의 프리피야트 주민들은 모두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 소련 정부에서 보낸 피난을 위한 버스가 도착한 것은 폭발 30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버스가 도착하고 7시간이 지난 27일 오후 2시 경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책에는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가 책을 쓴 정확한 시간이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의 책 발행 연도가 1990년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는 1988년에서 1989년 즈음에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당시에 그는 체르노빌 폭발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폭발과 동시에 주민들이 피난을 떠난 과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실제로는 훨씬 더 황당하게도 폭발이 일어나고 아침을 두 번 맞을 때까지도 주민들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으며 피난명령조차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소설의 첫 장면은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또한 방사능 전파 속도가 무척 빠르고 그만큼 방사능에 의한 피해가 드러나는 속도도 빠르다. 피난민들이 군인들의 통제 때문에 붙들려 있던 농장에서 생후 8개월 된 아기가 숨지는 장면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슬픈 장면인데, 이때가 폭발 후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반면 [체르노빌 전투]에 의하면 폭발 이틀째인 27일 오전에도 주민들은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5살이었던 유리 마첸코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가 발전소 직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탁아소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반면에 소설 속 이반의 아버지인 안드레이도 발전소의 직원으로 나온다. 소설에서 안드레이는 이 상황에 대해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인물로 나온다. 현실과는 무척 다른 장면이다.

 

이 작품은 소설적 재미나 문학적 완성도를 기대할 수는 없는 글이다. 어디까지나 핵폭발의 위험성을 널리 알린 작품으로 그 가치를 매겨볼 수 있다. 글 자체는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지만, 소설의 묘미라고 볼 수 있는 묘사가 무척 부족하고 글의 전체적인 구성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나 역시 재미나 완성도를 기대하고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불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문학적인 가치를 고려했다면 훨씬 더 널리 알려지고 읽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을 뿐이다.

 

2012년 7월 14일 오후 2시경 버스에서 책을 덮으며 이 정부가 핵발전을 계속 고집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곧이어 ‘탈핵 희망버스’는 삼척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원전백지화 기념탑’에서 간단한 행사를 갖고 이어서 시내에 도착하여 거리행진과 탈핵 문화제를 펼쳤다. 놀랍게도 많은 삼척 시민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솔직히 싸늘하고 냉담한 반응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었다.) 많은 삼척 시민들과 전국에서 모인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탈핵의 의지를 뜨겁게 불태우며 즐거운 마음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공연자들과 참가자들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 문화제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가슴에 새겨졌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영덕으로 건너가서 신규원전 건설예정지를 걸었다. 안타깝게도 신규원전이 들어설 자리는 ‘영덕블루로드’라는 이름의 관광지였다.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 등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며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걷는 길이 요즘 유행이라던데, 여기 영덕에도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 잠시 걸었음에도 그 해안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바윗길을 따라 해안을 걸으며 발밑에서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면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 에메랄드 빛 바다 색깔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부디 삼척과 영덕의 신규 원전이 취소되어 그 아름다운 해안 길을 아이들과 함께 다시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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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2012-07-1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저는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어요. 참 잘쓴 작품이더라구요. 열심히 사시는군요!! 저도 지켜보며 지지할게요 감은빛님 홧팅!!

감은빛 2012-07-18 16:17   좋아요 0 | URL
봄나무님께서 잘 쓴 작품이라 하시니 저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책도 권해주시고, 응원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2-07-1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대규모 반핵시위를 벌였다지요.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도 이 소식을 보고 무언가 느꼈으면 좋겠는데 여론이나 대중들의 반응은 좀 썰렁하네요 ^^;;

감은빛 2012-07-18 16:19   좋아요 0 | URL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접했는데 17만명이 모였다고 하더군요.
여기엔 유명한 가수나, 소설가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구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11때 대대적으로 집회를 했는데,
전국에서 다 모아도 채 1천명이 안되었지요.

이번에 삼척에서는 대략 3백여명 모였던 것 같아요.

2012-07-18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8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7-1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한겨레21에서던가요. 삼척과 한수원 관련한 기사들을 보았었는데, 참 어찌되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쿠시마를 보고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전적으로 탈핵, 탈원전 지지합니다. 저번 총선때 녹색당 지지했어야 했는데,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감은빛 2012-07-19 15:38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탈핵 지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핵발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선거에서의 선택이야 전적으로 유권자 본인의 몫이므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들으면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지요.
녹색당이 앞으로 좀 더 잘해서 탈핵을 위한 힘을 모으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7-1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로세 다카시는 저 책 외에 원폭실험한 곳에서 영화촬영한 배우들이 모두 이상한 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었다는 내용의 책도 썼죠.그게 <위험한 이야기>일 겁니다.

감은빛 2012-07-19 15:39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책도 있군요.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랬다. 비가 내리면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빗소리는 저절로 내 주의를 빼앗아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었고,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잊혀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머리속에서 리플레이 되곤 했다. 비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리플레이되는 기억에 따라 내 기분이 바뀌어 간다. 쓸쓸하고 외로웠던 기억들, 아프고 슬펐던 순간들, 기뻤던 기억들이 나를 그때 그 순간의 감정 속으로 빠뜨리곤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가 생각난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대략 2년쯤 전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야근을 하고 돌아와 설겆이와 손빨래 등의 집안 일을 조금 하고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어떤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 새벽에 폭우를 뚫고 먼 거리의 편의점까지 다녀오기가 망설여졌다. 술에 대한 욕구가 좀 더 강했다면 그래도 집을 나섰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나보다. 나는 그냥 창가에 앉아 멍하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슬프고 안타까운 기분에 휩싸여 자꾸만 같은 장면을 되새기고 있었다. 어차피 잠들지 못할거라면 뭐라도 하자 싶어서 컴퓨터를 켜고 트위터에 짧막하게 그 기분을 남겼다. 그런데 잠시 후에 김보일 선생님으로 부터 답이 왔다. 비가 오고, 어떤 기억 때문에 술이 땡기지만 자신은 지금 멀리 강원도 어딘가에 연수를 와 있어서 함께 술을 마시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씀이었다. 그날 밤 바로 그 순간에 선생님도 나처럼 비와 어떤 추억으로 인해 잠들지 못하고, 술 생각이 간절하지만 술을 마시기는 어려운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어제 밤에도 폭우가 내렸다. 가볍게 마시고 일어서야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술자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조금씩 길어졌고, 누군가 반가운 이가 근처에 있다는 소식에 딱 한잔만 더 하기로 마음먹고 반가운 얼굴을 보러 갔다. 오랫만에 만난 만큼이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고,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밤을 새워 회포를 풀고 싶지만, 몸이 너무 피곤햇다. 아침에 출근해야 할 일이 걱정되어 일어선 것이 대략 2시 반이 넘어서였다. 아마 그때쯤 시작된 것 같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하필 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비가 미친듯이 쏟아진다고 투덜투덜 화를 내며 택시를 기다렸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몸을 씻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나서 의자에 털썩 앉았는데, 몸의 피곤함과는 상관없이 잠이 오지 않았다. 비가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법 마신 술도 소용이 없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2년 전의 그날 밤이 생각났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같은 기분에 빠져있던 나와 김보일 선생님은 그날 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아마 음악을 들었거나 다운받아놓은 영화를 보았을거다. 선생님은 연수원 숙소에서 무얼 하셨을까? 다음에 만나게 되면 묻고 싶었으나, 여태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새벽 3시 반, 이미 너무 늦어버린 이시간 피곤한 몸과 취한 정신은 휴식을 원하건만, 빗소리는 자꾸만 나를 붙잡고 있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지쳐 잠들 것인가? 읽다만 책들 중에 하나를 꺼내려고 책장을 살피다가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가방에서 퇴근 길에 사온 [빅이슈]를 펼쳐 책장을 넘기다가 곧 다시 덮어버렸다. 그래도 2년 전 그날 밤에 비해 다행인 것은 내가 이미 어느정도 술을 마시고 돌아온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술의 힘을 빌어 잠이 올거라고 확신하고 누워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왕이면 슬프고 아픈 기억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을 꺼내보려고 애쓰며 빗소리와 어둠을 응시하다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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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1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주무신건 아니예요?
정말 잠들기 싫은 날 있어요.
근데 딱히 할 건 없는데 잠 자기는 싫은...
술 한 잔 걸치고, 누군가는 마음 속에 기억나고, 세상은 적막하고...^^
잘 지내시죠? 여전히 그곳은 비가 오나요?

감은빛 2012-07-17 15:45   좋아요 0 | URL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밤에 활동하는 체질이었어요.
부모님께서는 늘 저를 '올빼미'라고 불렀죠.
요즘도 술과 관계없이 새벽 2,3시가 기본입니다.

'잘'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저냥 지내기는 합니다.
안부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