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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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고 이윤정씨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지 아직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이윤정씨는 1997년 삼성 반도체 온양 공장에 입사하여 고온테스트 (MBT burn-in)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의 검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벤젠 등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퇴사후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2010년 갑자기 악성 뇌 종양 진단을 받았다. 결국 여덟 살, 여섯 살 아직 어린 아이 둘과 남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 정애정씨처럼 고 이윤정씨도 무척 건강했다고 한다. 본문에도 언급되듯이 신체검사를 거쳐 매우 건강한 사람들만 노동자로 고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몸의 변화, 위험 징조를 미리 느끼지만,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밖으로 알리지 못한다. 몇몇 친한 사람들끼리만 쉬쉬하거나, 소문처럼 떠도는 말들에 귀를 닫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삼성이기 때문이고, 지금 이 직장을 그만두면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정애정씨와 황민웅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사내커플이다. 둘 다 무척 건강한 체질이었지만, 남편 황민웅씨가 신설라인의 셋업멤버로 차출되어 평소보다 극도로 나쁜 근무환경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다행히 정애정씨는 다른 직업을 얻어 공장을 나오지만, 남편은 결국 어린 두 아이와 자신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책을 덮고 무거운 마음으로 반올림 온라인 까페에 접속했다. 한동안 고 이윤정씨의 사연이 메인에 떠있었는데, 그새 또 새로운 사망소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 윤슬기씨의 사망소식은 삼성 직업병 제보 중 56번째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삼성 LCD 천안사업장에서 일하다가 근무 중 쓰러져서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13년간 수혈에 의존하여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바로 어제인 6월 2일에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역시 그동안의 희생자들처럼 아직 젊디 젊은 나이였다.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삼성에게 버림받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잠시 눈을 감고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란 이름을 처음 본 것은 『Challenging the Chip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세계적으로도 반도체 및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인체에 유해한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몸을 보호할 적절한 보호장구는 갖추지 못한 채 작업환경으로 투입되었고, 그로 인해 각종 심각한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공장들을 철수하고 대부분 제 3세계 국가들로 옮겼던 것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기업들은 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낮은 급여를 받고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심각한 질병에 걸리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랍고 화가나는 일은 많은 나라의 사례들이 대부분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례에서도 기업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책은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이란 책이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의 부제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인데, 나중에 그 이름으로 다시 책이 한권 더 나온다. 삼성의 티비 광고 문구인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을 비꼬아 서 만든 이 카피는 정말 이 사태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은 르포작가 희정씨가 쓴 책이다. 희정씨는 이 책을 통해 <노동자 시인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하기도 했다.

 

『먼지 없는 방』의 뒷부분에 정애정씨가 스스로 말하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반도체 공장의 먼지 없는 방은 공사현장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화학약품을 쓰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뒤는게 깨닫는다. 그렇다 클린룸(먼지 없는 방)은 웨이퍼(반도체의 재료)를 위한 클린룸이었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린룸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발암물질인 벤젠을 비롯한 온갖 독성 화학물질이 떠도는 죽음의 방인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아니었다면, 노동자들은 스스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찾고, 동료들 사이에서 알리고, 교육하여, 회사에 올바른 작업환경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노조설립을 원천봉쇄하고, 백혈병과 뇌종양을 비롯한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작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외면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차라리 덜 우습다.

 

지난 1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선언’이 세계 최악의 기업을 선정하는 ‘공공의 눈’(Public Eye) 온라인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는 부디 세상이 모두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망자들과 현재 투병중인 환자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보상과 산재인정을 해주고,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보다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고, 그들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엇이며, 인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교육해야 할 것이다. 제발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가 개선되어 더 이상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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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06-04 11:19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제 글이 비록 졸고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대신 널리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쉽싸리 2012-06-0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은 문제가 많지만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가 밝지 못할 겁니다. 힘든 싸움을 하시는 분들에게 건투를...

감은빛 2012-06-07 17:29   좋아요 0 | URL
반올림과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벌써 여러해째 외롭게 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요.
부디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공감하여,
삼성이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