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무대 위의 문학 1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 다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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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조용한 아이였다. 목소리도 작았고, 늘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 학급문고를 열심히 읽었다. 당시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않는 내가 참 이상하다 여겼던 듯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편지가 하나 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혹은 5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에서 가장 활달하고,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가 보낸 편지였다. 아니 편지라기보단 쪽지에 더 가까웠다.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반 아이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받은 쪽지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너는 왜 피구를 같이 하지 않니? 너를 처음 봤을 때 피구를 잘 할 거 같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대략 저런 얘기였다.

 

암튼 나는 그닥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상태를 요새 말로 하면 ‘왕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처음 ‘왕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건 어릴 때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맘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따’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친구들 모두를 ‘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친구들이 말을 시키거나 귀찮게 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다.

 

그러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 때 나름의 괴로움과 고민이 있겠지만, 그런 과정은 그냥 성장통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단계가 단순한 따돌림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동반된 괴롭힘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를 폭력의 길로 이끈 것도 그런 과정들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려서부터 조용한 아이였지만, 누가 나를 건드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지만, 깡다구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주위에서 소문난 깡패학교였다. 일부 덩치 큰 아이들이 매일 키 작은 아이들에게 푼돈을 뺐거나,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거나, 학용품을 빼앗았다.

 

중학교 1학년 때 1년 동안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도시락 반찬을 뺐거나, 누군가 툭 건드리거나, 욕하거나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마다 맞대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녀석들도 내 성질을 알게 되어 더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학년이 바뀌면 또 새로운 녀석들이 또 나타나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3학년 때는 싸움의 횟수가 확실히 줄긴 했는데, 1ㆍ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안 건드렸던 것도 있었고, 나의 일화를 소문내줬기 때문이기도 했고, 초기에 태권도부에 속한 한 놈을 박살 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학교 태권도부는 전국대회에서 늘 상위권에 오르는 나름 실력 있는 운동부였다.) 아, 그리고 늘 작았던 키가 중2 때 확 크면서 신체적인 조건이 좋아졌던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폭력에 맞서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학창시절은 보냈지만, 내 주위 키가 작았던 아이들 중에는 상습적으로 돈을 뺏기고,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때는 아직 왕따나 빵셔틀 따위의 말도 없었고, 그런 개념도 없었는데,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작은 놀림과 푼돈을 뺏기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나처럼 예민하지만, 나처럼 폭력으로 맞서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시절을 버티기가 참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폭력 중에는 교사들이 휘두르는 폭력도 비중이 높았다. 몇몇 교사들은 깡패가 알면 친구 먹자고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남자교사들뿐만 아니라 여자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여자교사는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매일 했는데, 그것을 아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나이 많은 한 여교사는 남학생의 생식기를 쥐고 손톱으로 힘껏 누르는 체벌을 주기도 했다. 남자 교사들이 각목이나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학교 자체가 거의 변태와 깡패들의 소굴이었다. 그런 교사들을 견디는 것도 사실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왕따와 아이들의 자살과 학교 폭력과 교실 붕괴에 대한 소식들을 들으면 양가감정이 든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교육환경과 현실을 겪게 해서 미안하고 같이 아프다가도, 내 학창시절과 비교해가면서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뭐 어쨌거나 아프다. 우리 아이들이 곧 자라서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더욱 아프고 답답하다.

 

이 이야기는 처음에 연극대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일본에서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는 먼저 낭독회를 열었다. 연극 공연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단지 낭독회를 열었을 뿐인데, 많은 관심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극본을 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라고 한다.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다. 그만큼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뒤표지에도 적혀있듯이 설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싶은 의심이 들다가도, 현실은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몇몇 사례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짧은 이야기이고,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장소는 단지 방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과연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짧은 내용 속에서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나 싶다. 애초에 소설이 아니라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갈등구조가 더 잘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 아이들 그리고 아이의 고통과 고민을 덜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부모들이 한 번쯤 읽어보고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싶다. 이 책이 어떤 해결책을 내주기 때문에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딱 이거다 선언할 해결책은 없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해결책만 바라보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좀 더 다각적인 고민이 우선 필요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실제로 노력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친구를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그런 현실에 내몰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고, 교사들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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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2-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네요. 이 책이 아니라 앞부분의 이야기요 ^^ 제가 소설가라면 한번쯤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은.
이 책도 재미있을까요?

감은빛 2012-12-28 11:56   좋아요 0 | URL
오! 영광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찍어주셨으니, 이제 쓰시기만 하면 되겠네요! ^^
이 책은 흥미롭지만, 솔직히 재밌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니까요.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이 2012-12-2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데요.
분명 저도 문제가 꽤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냈건만 어른이 되고보니 무심하네요;;
그때의 어른들처럼, 반성해야겠어요.

감은빛 2012-12-28 13:03   좋아요 0 | URL
정도의 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춘기에 조금씩 반항을 하지 않나 싶어요.
하필 그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 갇혀서 압박을 받아야 하니 말예요.
이 심각한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할지 막막하네요.

마녀고양이 2012-12-2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 주문했는데, 그 전에 이 리뷰를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읽고 싶네요...

감은빛님, 편안한 연말되시고 즐거운 일 듬뿍 생기는 새해 되셔요.

감은빛 2013-01-02 11:3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어느새 새해가 되었어요.

달여우님, 올해 좋은 일이 가득가득 몰려오기를 바랍니다!

뽀로롱 2013-01-3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교우관계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지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학창시절이 좋았고 돌아가고 싶다는 말들을 하지만, 아니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감은빛 2013-02-04 10: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뽀로롱님.
동지를 만난 기분이라니, 무척 반가운 말씀이셔요! ^^
먼저 인사 남겨주셨으니, 저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리랑 2013-03-1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보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말도 없으면서 동시에 힘도 없어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중 한명이었습니다.ㅠ 님의 글을 보니 학창시절의 어려웠던 기억이 좀 나네요^^ 하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추억할수있는 리뷰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역시 당시 선생님의 체벌도 심했었는데 저희 학교에도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하면서 즐기는 여자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영어선생님이었는데 매일 스무명 이상씩은 1인당 3대 이상씩 맞았던 것 같은데 맞으면서 중간중간 눈떠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있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감은빛님과 제가 같은 선생님을 만났던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감은빛 2013-03-28 13: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것은 아닌지,
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양손으로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렸던 여 선생님이
아마 수학이거나 생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영어는 아니었어요.
같은 선생님은 아니니, 그 시절 그런 식의 체벌을 '즐겼던(!)'
여선생님이 한 명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군요.
스트레스를 아이들 뺨에다 풀었던 그 여선생님은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이젠 많이 늙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