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은 보폭을 가늠하기엔 너무 빠르고,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낯빛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흘낏 내 눈을 의심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어폰을 귀에 꽂았거나 핸드폰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방관자가 되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탐색하는 것. 구보가 오늘의 도시를 걷고 있었더라면 관찰자의 시선을 일상의 또 다른 재미로 즐겼을 것이다. 소설가 구보는 아무런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나날을 보낸다. 스물여섯 살인데 장가를 가지 않았으며 가족으로는 어머니와 조카, 형수뿐이다. 구보 씨가 부양해야하는 가족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부하고 온 아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믿지 못하지만 별 타박은 하지 않는다.

 

구보는 집을 나와 천변 길을 따라 광교를 향하여 걸어간다. 한낮의 거리에서 격렬한 두통을 느낀 구보는 무조건 전차를 탔다가 1년 전 소개받았던 여성을 우연히 본다. 소개받은 후로 연락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지내는 자신을 자학하기도 하다, 조선은행 앞에서 내려 장곡천정으로 향한다.

 

다방에 들어가 가배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 일어서서 골동품 가게를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간다. 친구는 방금 나갔다는 점원의 얘기를 듣는다. 할 수 없이 다시 걷는다. 그러다 금전적으로 출세한 친구를 만나 다방으로 끌려간다. 출세한 친구의 옆에는 예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 여자를 보며 ‘분명 황금과 육체를 바꿨을 것이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시 조선은행 앞에까지 간 구보는 친구를 만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논하는 등 담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급한 약속이 있어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난 둘은 대창옥에서 식사를 하고, 과거 연애하였던 여성에 관하여 생각한다.

 

다시 친구와 술집에 간 구보는 술집 여종업원을 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어느 날, 상복을 입은 여성이 ‘여급 대모집’이라고 적힌 광고를 보다가 자신의 나이를 한탄하며 돌아서던 장면이다. 구보는 생각한다. ‘여기 이 여자들과 그 아낙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새벽 2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차와 술과 여자, 거리의 풍경을 실컷 구경하며 만감이 교차하던 구보는 ‘생활인으로서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어찌 보면 시시껄렁한 이야기다. 소설 쓰는 청년이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 술 마시고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무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몇몇의 낯선 어휘를 제외하면 이 소설의 배경은 오늘이라고 해도 믿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가까운 과거의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근대의 풍경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근대는 온갖 물질문명의 세례 속에서 마치 축복처럼 다가왔었다. 그러나 근대의 메커니즘이 언제나 밝은 면을 지녔던 것만은 아니다. 합리적이고 잘 구획된 인공적인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불행히도 근대인은 철저히 분할된 공간 속에,그리고 꽉 짜인 시간표 속에 종속된 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고 결국 불신과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의 기획은 분명히 신화와 미신이 지배하는 봉건사회로부터 인류를 한 차원 진보하게 만들었다.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며 음험한 자연세계를 규칙과 질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근대 도시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문제는 합리와 효율을 높이고, 보편성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 새 각자가 지닌 본래의 고유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공간이나 시간도 모두 그 고유한 특수성을 잃고 보편적인 단위로 환산되고 만다. 근대의 보편적 기획은 자칫 획일화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고, 그 지점에서 주체와 타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타자를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차이를 지닌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으려는 편견은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을 소통 부재의 삶으로 내몰리게 한 것이다.

 

모더니즘은 원래 현실을 추상화한다는 개념에서 나왔다. 리얼리즘 문학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 모더니즘 문학은 인간의 정서를 중시 여기면서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모더니즘은 근대 산업 사회에서의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소외감을 드러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그 당시의 소설가 구보를 통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거나 무기력한 상태로 방관자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소외 문제라는 것이다.

 

구보 씨는 ‘산책자’가 되어 서울의 거리를 걷고 있다. 전차와 재즈, 최신 유행의 모던 걸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하수구 시설이 되지 않아 똥냄새가 넘쳐나고, 골목 안에는 ‘문맹’의 어머니들이 돈 벌고 들어오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아무리 소설을 써도 돈이 되지 않는다. 한 가족을 벌어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원고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신문사로, 총독부 청사로 구직활동을 벌여보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무조건 거리로 나서 보는 것이다.

 

허나 어쩌란 말인가. 돈이 있어야 장가를 가고, 멋있는 여자를 들일 텐데. 이게 소설가 구보 씨의 한탄 섞인 독백이었다. ‘하지만 예쁜 여자는 못 얻어도 좋다. 생활인으로 돌아가 소설을 쓰리라’는 다짐을 잊지 않는다. 그에게 막장드라마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자본 앞에 자존심을 던져버린 마스터베이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에 ‘쿵’ 하고 운석이 떨어진다. 직경 70m에 이르는 거대한 운석을 인간은 “우주의 배설물”이라고 했다. 큰 운석에서 나오는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이것을 옮기거나 파괴하는 게 불가능하자 사람들은 콘크리트와 시멘트, 석고를 차례로 덮고 마침내 유리를 씌운다. 운석은 너무나 예쁜 축구공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예쁘게 만들어졌던 큰 운석이 갑자기 없어졌다. 외계인이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예쁜 것을 다른 외계인 손님에게 팔았다. 그리고는 이 외계인은 같은 방법으로 지구의 다른 곳에도 운석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인간들은 또 그 큰 운석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려고 같은 방법으로 예쁜 유리막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외계인들은 하나의 거대한 진주를 탄생시킨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에 수록된 단편 ‘냄새’의 내용이다.

 

데뷔작 『개미』에서 베르베르는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발밑에도 독립된 우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가끔씩 등장하는 인간의 손길은 이들에게 불가사의한, 또는 전지전능한 것으로 비쳤다. 한편 『나무』에서는 ‘개미’적 상상력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인간세계는 사람보다 더 우월한 존재의 관찰이나 놀림감이 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세계 밖으로 나온’ 작가는 그것이 어느 정도 ‘아이의 시선’ 과도 같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아이의 눈으로 들여다보았기에, 인간의 세계는 오히려 인류 문명의 미숙성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낯선 눈으로 본 우리 종(種)은 확실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다.

 

만약에 베르베르의 단편 ‘냄새’처럼 외계인이 별 부스러기를 찾으려는 지구인, 아니 한국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튼튼한 유리막 안에 보관된 별 부스러기를 몰래 가져가거나 혹은 UFO를 타고 지구로 내려와 찾으러 올 수도 있는 상상도 해본다.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티끌 한 점 없는 보자기처럼 펼쳐진 사막" 위에 뿌려진 새까만 조약돌을 발견했다. 그는 『인간의 대지』에서 "사과나무 아래 보자기를 펴놓으면 사과가 떨어진다. 별 밑에 펴놓은 보자기에는 별 부스러기들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운석도 이만큼 확실하게 자기 출신을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당시의 인상을 전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들은 지상의 돌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지구상의 암석보다 철 함유량이 높고 단단하며 뜨거운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표면이 녹아 떨어진 후 만들어진 검은 막(융용각)이 있으며, 대개 자석에 들러붙는다.

 

 

 

 

 

 

 

 

 

 

 

 

 

 

 

 

사실 운석이 지구인들한테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운석의 실체를 몰랐던 과거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신(神)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기원전 205년의 일이다.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대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로마 공화국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때 하늘에서 유성우가 내렸다. 로마 원로들은 신탁을 구했고, 그 결과 '어머니 돌'을 로마로 옮겨오면 한니발을 무찌를 수 있다는 예언이 나왔다. 그 돌은 당연히 운석이었다. 로마군은 돌을 옮긴 뒤 카르타고로 진격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돌은 이후 500년 동안 로마에 모셔졌다."(『하늘의 불』 31쪽)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할 때 퍼붓던 유성우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막는 '어머니돌'로 사용했다. 1976년 중국 지린성에 전체 잔해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그중 한 개는 무게가 무려 1천800㎏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마오쩌둥이 하늘의 신임을 잃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해 9월 마오쩌둥이 사망했다.

 

운석 사냥꾼은 20g도 채 넘지 않은 부스러기라도 찾기 위해서 자석을 동원한다. 자석이 없다면 별 부스러기인지 그냥 돌 부스러기인지 눈으로 판별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운석 사냥꾼이 아닌 이상 이 별 부스러기의 경제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소속 과학자인 장 피에르 뤼미네의 경험담처럼 아무리 우주에서 온 돌이라고 해도 지구에 있는 다이아몬드 보석과 비교 당하고 무시받기도 한다.

 

"13g짜리 아옌데 구립운석 조각을 구입해 여자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그는 진주나 다이아몬드 같은 지구 보석을 더 원하는 듯했다. 얼마 뒤 그 운석을 돌려받았다. 여자친구는 아옌데 운석이 지구보다 훨씬 더 오래된 우주의 돌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하늘의 불』 73쪽)

 

천문학자다운 선물이다. 별 부스러기 하나 찾는 것도 어려운데 그걸 여자친구에 선물로 주다니. 정말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천문학자 남자친구가 준 운석 조각이 다이아몬드만큼 값비싼 가격으로 매겨질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니, 한 번도 쓰지 않은 로또를 거절한 셈이다. 그걸 받았더라면 다이아몬드 몇 개는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운석의 가치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로 매겨지겠지만, 참고로 작년 초 러시아에 떨어진 운석우에서 나온 작은 운석 조각의 가격이 한화로 1천만원이다. 이번에 운석의 경제적 가치가 매스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운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천문학자가 최고 일등 신랑감 순위 1위로 단숨에 급부상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 진주에 발견된 운석 소식 이후로 해외 운석 사냥꾼부터 시작해서 운석의 가치를 알고 몰려드는 일명 초짜 운석 사냥꾼들까지 가세해 별 부스러기를 찾는데 혈안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 황금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는 ‘골드러쉬’가 있다면 지금은 ‘운석러쉬’ 열풍이다.

 

그러나 탐사객들이 자주 오게 되면 그 곳에 사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조용했던 시골 동네에서 운석 하나 때문에 외지인들이 몰려오면 거주민의 본업인 농사일이나 치안에 좋지 않은 민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석에 눈이 먼 사람들도 문제지만, 운석 소식 이후로 우주의 돌이 한순간에 ‘로또’, '보물'로 돈이 되는 물건으로 소개하는 언론도 ‘운석러쉬’ 열풍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만약에 베르베르의 단편처럼 운석에 고약한 냄새가 났더라면 지금의 ‘운석러쉬’가 있었을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 될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어 하는 탐욕을 가진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니까. 냄새를 막는 유리막에 담긴 운석 조각을 진주처럼 여기는 외계인처럼 지금도 진주에는 운석 사냥꾼들은 ‘돌이 아니라 돈’ 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류시화, ‘패랭이꽃’ -

 

 

 

‘눈에 밟힌다'는 말이 있다. 발에 밟히듯 살에 닿아 사무친 것, 그래서 살에 박히듯 잊히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지키지 않은 약속, 가지 않은 길. 시간이 약이라지만, 새 시간의 물살에도 지워지지 않고 어룽대는 저 강바닥의 밑그림에는 약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몸젠의 로마사 2 -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 몸젠의 로마사 2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cene #1  로마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로마제국은 세계역사 중에서 가장 강하고 오랫동안 존속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탄생해 기원 후 476년 서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약 120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존속했다. 동로마제국이 유지됐던 시기까지 포함하면 약 2200년 이상을 대제국으로 존재한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 서구인들에게 로마의 역사는 그다지 호의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로마의 쇠망을 조금 더 늦췄을 뿐”이라고 폄하한 토인비를 비롯해 많은 서구 역사가들은 “공화정시대는 존경하지만 제국이 되자마자 로마의 타락이 시작됐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로마처럼 당대 최강의 국력을 지니고서도 장기간 존속한 조직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마’는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로마 시내를 뒤덮고 있는 웅장한 건축물들이 가지는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열등한 민족인 로마인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바로 로마의 ‘생존과 성공 DNA’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테베라 강 유역에서 시작된 작은 공동체가 지중해는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정확한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 즉 유연함이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국가나 조직은 물론 개인 안에서도 갈등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변화를 능동적으로 반영하는 체제를 준비하는 유연함, 그리고 그러한 유연함이 지배하는 문화의 필요성이 바로 로마가 공화정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과정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Scene #2  견제와 균형 시스템으로 발전
 
로마제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시스템의 힘에 의해 성장했고 발전을 거듭했다는 점이다. 로마는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을 지닌 한 사람에 의해 지배된 ‘전제군주 시대’도 경험했지만 많은 지도층과 시민에 의해 국가가 운영됐을 때 조직력은 더욱 충만했다. 장군 한 사람보다 수많은 시민군이, 군주 한 사람보다는 수많은 집정관들이 로마 힘의 원천이었다.

 

왕정, 귀족정, 민주정 원리가 혼합된 정치체제가 성공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왕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통해 국가 기초를 만들어 나갔으며, 성장기에는 귀족과 평민이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조화를 유지하면서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1인 지배에 의해 정치적 균형이 무너지고 국가가 개인에 의존하게 되면서 로마는 발전의 에너지를 잃어갔다.

 

로마 정치체제는 집정관에 초점을 맞추면 왕정처럼 보이고 원로원 기능에만 주목하면 귀족정처럼 보인다. 또 민회를 중시하는 사람은 민주정이라고 평가한다. 수많은 집정관이 해마다 바뀌었는데도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가 어느 한 부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가 시스템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말해주고 있다.

 

공화정 시기 집정관은 왕을 대신했는데 민회에서 선출돼 원로원 승인을 얻어 취임했다. 그 절차는 왕과 마찬가지였지만 종신제였던 왕에 비해 임기가 1년밖에 안됐다. 다만 재선은 허용됐고 연령은 40세 이상으로 제한됐다. 게다가 정원이 두 명이었고 동료 집정관 생각이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집정관이 동의하지 않는 한 정책은 집행되지 않을 정도로 견제와 균형 원리에 충실했다.

 

로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도가 호민관이다. 로마는 공화정 초기인 BC 494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호민관은 평민으로 이뤄진 민회에서 선출했으며 민회 의장으로 민회를 소집하고 주재했다. 호민관은 민회에서 독점적으로 법률을 발의할 수 있는 권리와 때에 따라 원로원을 소집하고 청원할 권리가 있었다. 또 집정관 및 정무관의 결정이나 다른 동료 호민관의 결정이 평민의 권익에 배치될 때에는 거부권을 행사해 무효화하거나 중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민관의 중요한 역할은 평민의 요구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었다. 집정관이나 정무관의 전횡을 막아달라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평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평민이 언제든 찾아와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호민관은 밤낮 자기 집 문을 열어 놓아야 했고 도시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다. 호민관은 위협을 받지 않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의 신체는 신성불가침으로 선포됐다.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의무 수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로마는 호민관을 매년 선출해 평민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계급 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로마가 국가 운영의 묘를 살리면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호민관이 평민과 귀족의 완충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Scene #3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으며 꾸준히 로마는 이루었다

 

우리는 흔히 “로마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경구를 자주 인용하곤 한다. 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로마는 계속 성공만 해왔을까.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쪽이다.

 

로마도 인간이 만든 제국인 이상 실패가 없을 수 없다.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길었다. 하지만 그들이 짧게 성공했다 멸망한 동시대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다른 점은,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던 데 있다.

로마가 천년 이상 존속한 이유는 결코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개선해왔기에 번영을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미덕을 로마의 역사에서 찾고 있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로마의 모든 사회지도층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가 벽을 쌓고 살듯이 초기 로마도 귀족과 평민의 갈등이 심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권력에 눈이 먼 일부 혈통귀족들은 평민의 생활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신경 썼을 뿐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이 제정됨으로서 귀족과 평민의 대립을 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시 귀족과 평민의 갈등은 로마 사회의 일치를 해치는 주범이었다. 리키니우스법에 따라 평민도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어 모든 국가 요직도 평민에게 개방됐다. 귀족. 평민 간 결혼도 합법화했다.

 

개혁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개혁은 반드시 기득권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개혁이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 집단이 등장했지만 그러한 노력을 꺼려 쇠퇴해갔고 그 노력을 아끼지 않은 소수만이 미래를 개척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인들은 구조조정의 달인들이었다. 어떤 정치시스템이나 조직시스템이든 처음부터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을 불행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기가 ‘선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시행되는 과정에서 ‘악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만든 자의 의지대로만 되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은 시스템 자체에 있다기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있다. 왕정, 귀족정, 민주정, 독재정으로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변화한 그리스와 비교하면 오랜 기간 동안 왕정, 공화정, 제정으로 바뀐 로마의 정체(政體) 변화는 둔한 소처럼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테오도르 몸젠은 로마 정체의 변화를 ‘로마 혁명의 보수성’이라는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한번 개혁의지를 다지면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기원전 4세기 7개월간 켈트족의 침략을 받아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로마가 이를 극복해간 과정이 좋은 예다. 20년 만에 로마의 복구가 어느 정도 끝났지만, 조금만 회복되면 반성의 자세를 금방 잊는 다른 민족과 달리 로마인들은 로마 부흥-방위체제 확립-내정 개혁 이라는 개혁 프로세스를 단호하게 밀고 나갔다.

 

Festina lente(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으며 다만 꾸준히). 로마는 그렇게 내부 갈등을 극복하고 변화를 이루었다. 로마와 같은 노력과 시간과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본받을 점은 본받되 로마를 모방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융화와 접점이지만,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알베르토 자코메티」

 

 

거의 철사처럼 된 자코메티의 조각을 보면, 마른 나무 막대기 하나로도 인간을 말할 수 있는 그 소통의 힘과 명쾌한 시각적 표현에 마음이 와 닿는다. 부피도 무게도 없는 유령 같은 그의 조각에서 진정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1901년 스위스의 유명한 화가 아들로 태어난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2차세계대전 전후의 정신적 위기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인간의 고뇌와 불안을 그만의 섬세한 감각과 통찰력으로 표현해 낸 20세기 조형미술의 대가이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종종 실존주의 문학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특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들고 나온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부정의 시작이며 무(無)로 가는 여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실존주의 운운하지 않더라도 수척한 자코메티의 인물조각을 한번쯤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볼륨을 상실한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서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쉽게 겹쳐 볼 수 있게 된다.

 

자코메티는 말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 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라고. 모든 사물이 지니고 있는 덩어리(Mass)와 양감(volume)에서 존재의 무게감을 덜어내 버린 유령과도 같은 그의 조각들은 존재의 가벼움’이며 ‘소통의 부재’에 관한 것이다. 예술을 통한 작가의 시선은 종종 우리를 재구성해주고 비밀스러운 상처를 찾아서 아물게 해준다.

 

만약 삶이 어느 날 쓸쓸함과 덧없음에 절망하고 있다면, 불안과 고독을 시각적인 비움과 절제로 해석해낸 자코메티처럼 한번쯤은 인생의 해묵고 질펀한 부분들을 과감히 잘라 무게감을 덜어본다.

 

“아! 우리의 존재는 아주 가볍구나“ 낮은 한숨과 함께 새털같이 날아가 버릴 우리 존재의 우연성을 실감할 때 우리는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던 진정한 희망을 불현듯 감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