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 류시화 ‘소금인형’ -  

 

 

 

                

 

 

 

새들처럼 지저귄다. 오늘도 사진만 남아있는 남의 책을 뒤적거려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 사람과 접속하고 저 친구와 문자를 날리면서도 마음속은 늘 공허하다. 내적인 허탈감에서 벗어나려고 또 다른 새들과 만나고 무리지어 다니며 능력과 세를 과시해 본다.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를 끌고 다니며 얹힌 내용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을 붙잡아 앉히고 인생의 의미에 진지해지기를 두려워한다. 끝없이 할 일을 만들고 쓰러지듯이 피로해야 만족한다. 너도나도 내다버린 우리의 소중한 가치는 무게를 지니지 못하고 가벼워져 둥둥 떠다닌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독을 멀리하고 싶어 한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외부 세상으로부터 멀미를 느껴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에 머무르려는 사람들도 더러 생겨난다. 이 불안한 느낌은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배급된다.

 

차라리 혼자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내 삶이 소금인형처럼 녹아버릴까 봐 두려운 자, 사랑을 얻기 위한 절규에서 벗어나고픈 자들의 자해행위이자 도피행위이다. 나 홀로의 삶은 자유롭다.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거나 세련된 삶인 것만은 아니다. 독립적인 삶은 스스로를 무장하고 훈련할 수 있는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자신에게 침잠하여 얻어지는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즐겨 보려는 것이,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이들의 노력이다. 자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용기 있게 뛰어든 소금인형은 바다로 내려가 흔적도 없이 자신을 녹여 버린다. 당신의 핏속으로 뛰어들어 미련 없이 녹아버린, 류시화의 시에 안치환의 목소리를 입힌 노래가 가슴에 녹아내리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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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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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불행해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는 버려진 것 같은 자신의 삶을 예수와 비교한다. 시골길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예수를 생각한다. 따뜻한 곳에 살았으며 십자가에 일찍 못 박힐 수 있었던 예수를 부러워한다. 살아갈 이유와 버틸 힘이 없음에도 목을 맬 노끈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인생길에서 그가 하는 일은 한가지다.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무엇을? 그는 고도를 기다린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서사는 오직 ‘기다림’뿐이다.

 

한 그루의 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와 블라디미르는 낡은 옷과 해진 중절모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닳아가는 신발은 작아 불편하다. 낡은 넥타이는 생에 대한 마지막 격식과 예의인 듯 끝까지 풀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 이들은 세상 위에 내던져진 인간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이들의 말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목적이나 대상이 없기에 이들의 말은 하나의 축으로 집결되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 사방에 흩어진다. 고독한 인간의 말은 맺히는 곳 없이 허무하게 사라진다. 이들의 대화는 질문과 답의 구조를 취하나 시종일관 소통이 불가능하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그럼에도 엉뚱한 대답만을 이어간다. 소통의 부재는 이들만의 특징이 아니다. 극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포조와 럭키 역시 자신의 말만을 뱉어내기에 바쁘다. 말을 하지 않던 럭키는 어느 순간 입을 연다. 그의 말은 해괴한 극의 상황을 패닉상태로 몰아넣는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힘으로 말리기 전까지 쏟아져 나온다. 결국 이들에게 완벽한 소통이란 불가능하며 더불어 자신과의 소통도 이루지 못한다.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한다.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인간이 세상과의 부조화 속에서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뱉어낸다. 그 말은 무의미하고 그 무의미를 통해 의미를 이뤄나간다. 무의미와 의미는 끝까지 충돌한다.

 

이들이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끊임없이 기다리는 고도란 과연 무엇일까? 고도가 누구인지, 오기는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구원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한 가닥의 실마리가 있으나 그것 또한 확실치 않다. 독자(혹은 연극을 보는 관객)은 그들과 함께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가 끝나도 고도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도를 기다릴까?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구원해줄 무언가, 이를테면 고도 같은 것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이들의 기다림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가 확실한지조차 알 수 없다. 습관이 되어버린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반복하는 '말놀이'는 고도가 실제로 온다면 끝날 터이다.

 

그러나 고도가 내일 올 것이라는 전갈을 알리는 소년만이 등장한다. 소년의 등장으로 1막이 끝나면 새로운 기다림이 시작되고, 2막의 마지막 역시 유예되는 기다림을 알리는 소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소년 또한 현실의 인물인지 환상속의 기대가 만들어낸 허상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어쩌면 소년은 기다림의 절망 속에서 고도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찾기 위한 블라미디르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중요한 것은 기다림 자체가 아니라 기다리는 태도인 것이다. 이들은 어제를 잊고 꿈을 잊고 현실을 잊으면서도 자신들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은 놓치지 않는다. 목을 매고 싶을 지라도 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고도를 기다리는 것, 그것은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대변한다.

 

어긋나는 이들의 대화와 망각은 관객들을 허무하게 만들면서도 웃음을 이끌어낸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알쏭달쏭하게 느껴지는 허소(虛笑). 그 웃음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든다. 희망이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결국 우리의 문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절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서 고도를 기다리는 독자나 관객들에게 그 기다림이 계속될 것이라는 무서운 메시지를 남긴다. 독자는 오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책을 붙들고 기다린다. 관객들은 극장을 나오고서도 고도를 기다린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것을 모른다. 알고 있었다면 작품 속에 써 넣었을 것이다.” 작품을 매년 한번씩 또 읽어도 나는 고도를 모른다. 고도는 과연 올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올 것인지. 때로 기다림은 기다림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기도 한다. 전망도 없고 기대도 없는 상황에서 기다림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기다리지 않으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오기를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게 만드는 작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무하다고 해서 삶을 놓아서는 안 된다. 삶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할수록 삶은 발견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그들이 ‘말장난’이라는 유희를 발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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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4-05-0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7번째 단락에서 '디디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의 디디는 무엇을 말하는것인가요?!

cyrus 2014-05-05 09:31   좋아요 0 | URL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며> 우리나라 연극 버전의 블라디미르의 이름입니다. 예전에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공연의 감상까지 곁들이다보니 이름을 잘못 썼군요.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안나푸르나 2014-11-29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한동안 고도를 그렸던 기억이 있네요
아니 고도를 기다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요?

cyrus 2014-11-29 09:1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읽을 때마다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장소] 2015-01-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그 디디..!!
 

 

 Scene #1  예술, 미적 상실의 시대

 

 

 

 

 

 

 

 

 

 

 

 

 

 

 

 

1962년, 앤디 워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화랑에서 캠벨 수프 깡통을 실크 스크린 방식으로 그린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길 건너 경쟁 갤러리는 실제 깡통을 쌓아놓고 “우리는 진짜를 단돈 29센트에 판다”는 문구로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아서 단토는 워홀의 깡통 그림을 웃으면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비누상자인 브릴로 상자를 똑같이 만들어 전시한 워홀에 대해 아서 단토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철학적 지성을 가졌다고 말했으니까.

 

 

        

 

 

앤디 워홀  「캠벨 수프 깡통」 1962년 / 「브릴로 상자」 1964년

 

 

진품과 똑같이 여러 개 그린 캠벨 수프 깡통과 브릴로 상자의 모사본을 높이 쌓아서 슈퍼마켓의 창고처럼 전시한 브릴로 상자는 워홀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예술품이다. 그렇다면 왜 공장 사람들이 만든 캠벨 수프와 브릴로 상자는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단토는 ‘창작자의 의도’를 작품의 한 근거로서 제시한다. 예술가가 제목을 달아 작품으로 전시함으로써 어떤 물리적 대상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론적 기능’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주관적 의도나 의미가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주관적 의도가 객관적인 맥락 속에서 수용돼야 한다는 점을 단토는 강조한다. 그 ‘객관적 맥락’으로 단토가 지목하는 것이 예술계(예술가, 예술비평가 등), 예술사, 예술이론이다. 그것이 이해될 때, 수프 깡통 같은 평범한 사물이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토는 예술은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가 왔기 때문에 예술의 영역과 정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을 의미한다. 해방된 예술가들은 이제는 자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예술이 끝났다는 의미보다는 예술의 목적이 상실된 것이다. 어떤 양식이 어떤 양식보다 미적으로 낫다는 판단이 무의미해진다. 예술가 자신이 스스로 미술을 시각의 문제가 아닌 철학의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화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는다. 자신의 소박성과 고뇌, 철학을 조형언어인 그림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화가들 스스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느꼈던 행복의 20세기는 지났다. 워홀의 선구적인 작업 때문에 이제 무엇이든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고고한 예술의 산정에서만 놀던 예술이 일상생활로 하산한 격이다. 기존의 영역에서만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치기에는 한계가 왔을 뿐더러, 예술과 상품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가 됐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파괴된다.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로, 무엇이든 작품 대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Scene #2  예술은 죽었다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1969년

 

 

영국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작년 5월 12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4240만 달러(1528억)에 낙찰됐다. 이 낙찰가는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0만 달러(1200억)에 팔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의 가격을 갱신한 것이라 한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미술시장의 뉴스는 보통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과연 무엇이 이토록 가격을 폭등시키는 것일까? 영국의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인 매튜 키이란은 그의 저서 <예술과 그 가치>에서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실현할 수 있는 가치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치들이 미묘하고 복잡한 상호관계를 이루며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원본성, 일품성, 상상력, 독창성, 진실성, 도덕성 따위의 요인들이 예술의 가치를 만드는 다양한 요인들이며 결과적으로 인문학 이론에 정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가 인문학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런던이나 뉴욕에서 전해오는 작품가격의 고공행진 소식을 제대로 납득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예술의 가치는 인문학적 혹은 미학적 가치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것처럼 오늘날 현대미술의 현장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과 경제의 메커니즘이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장에 올라온 작품이 비싼 것은 상업적 메커니즘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경매회사라는 거대자본업체의 시스템은 작품에 아우라를 만들어 내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그런데 그림 경매에 나서는 큰손들은 현대미술의 오묘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는 것일까? 그림을 자신의 미적 취향을 위한 컬렉션이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그림을 사들인다. 이들의 미적 기준은 그림 값이 얼마냐 오르느냐 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예술은 바로 무가치, 무의미, 비의미를 요구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이미 무가치한 데도 더욱 열렬하게 무가치를 지향한다. 일종의 반대추론을 이용한 교묘한 속임수다. ‘무가치하다’고 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미술관 갤러리의 분위기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포장하는 평론가들이 합세하면 대중은 주눅이 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마저 갖게 된다. 이를 두고 조직적인 전문가 범죄라고 보드리야르는 일갈한다. 실제로 수백억, 수천억의 돈이 오간다.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꽝인 것, 그러나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 없기에 모호하게 아이러니와 지적 유희를 방패삼아 자기유용성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하고 있는 것, 이것을 보드리야르는 현대 예술의 운명적 귀착점으로 봤다. 종말의 시작을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등장한 60년대로 잡고 있다. 브릴로 박스는 캠벨 수프 깡통과 더불어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본격적으로 무너뜨린 작업이었다. 한마디로 ‘뭐든지 예술이 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신선한 예술은 이제는 일률적으로 돼 버린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워홀과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은 모방에 불과할 뿐이며 새롭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을 ‘암세포의 증식’으로 비유함으로서 ‘무가치’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너무 많아서 예술은 죽는 것이다.” (보드리야르)

 

 

 

 Scene #3  예술가들은 우릴 보고 비웃지

 

 

 

 

 

 

 

 

 

 

 

 

 

 

 

현대미술의 무가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몰래카메라 실험 하나 소개하겠다. 두 마리의 침팬지가 물감으로 마음대로 그리도록 한다. 침팬지가 마구 그린 그림 두 점을 가지고 부자 동네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이름은 <제3세계에서 온 미개인전>. 그림의 화가가 침팬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그림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재미있게도 관객들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봤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명망 있는 어느 주간지의 미술평론가는 ‘유럽 화가, 특히 말레비치와 미로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만족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 그림들을 감상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몰래카메라의 실험 결과를 통해서 우리, 심지어 미술평론가마저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보드리야르의 지적대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현대미술에 대해서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미술평론가들의 모습은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나체의 임금님이 착한 사람만 보이는 멋진 옷을 입었다고 말하는 신하와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술평론가들은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유머 작가 에프라임 키숀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이러한 평론과 알 수 없는 현대 예술들을 두고 통렬한 비판과 풍자를 던진다. 현대미술 비평가들은 천문학적인 작품가격과 알 수 없는 평론으로 관객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평론가들의 권위와 미술품시장에 많은 부분 좌우되는 현대미술의 기만성을 비판한다. 현재에 와서 현대 미술에서는 시선을 끌기 위한 의미 없는 기획들이 재생산될 뿐, 아름다움이란 도무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지속된 그의 현대미술 비판들을 통해서 그는 많은 ‘대중’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지지를 받았지만 많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예술 이해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예술을 모르는 속물’ 취급을 받아야 했다.

 

다시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들자면, 침팬지의 그림에 대해 ‘나는 저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비평가들이나 미술을 좀 안다는 고고한 사람들에게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폄하하겠지만, 실상 지극히 당연한 생각인 것이다.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현대예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겁에 질려서 “나는 전혀, 아무것도 모릅니다” 라고 외칠 뿐이다.

 

책의 제목인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피카소가 자신의 유언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비웃었다는 가정에서 나왔다. 키숀에 따르면, 실제로 재능으로 충만했던 피카소는 대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저 뭔가 자극을 원하는 시대와 영합했을 뿐이고, 이 유언장에서 그러한 자신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피카소,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중에서)

 

이 모호한 유언장을 피카소의 생애를 통해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현재 피카소가 스스로 기대했던 것 그 이상, 혹은 뭔가 다른 것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그림값과 이름값으로 재벌과 미술평론가들에 의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Scene #4  예술의 종말이 곧 예술의 민주주의?

 

이들이 공유하는 예술 개념과 예술 이론에 의해 작품이 해석되어지고 예술작품으로 지위를 얻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경계하게 되는 것은, 예술이 부와 고상함, 그리고 학식을 상징하는 차별화에 이용됨으로써 특정 집단, 특정 계급의 전유물로 독점화된 채 머무르는 것이다.

 

 

 

 

 

 

 

 

 

 

 

 

 

 

 

 

서평가 로쟈는 단토의 ‘예술의 종말’을 소개하는 글(‘앤디 워홀의 비누상자’, 한겨레, 2008. 5.27)을 일상적인 사물이 예술작품이 되는 이 종말의 시기를 누구나 예술창작자가 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의미, 곧 예술의 완성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컨템퍼러리 미술이 워홀과 뒤샹 이후로 여전히 일상적인 것들이 예술작품으로 변용되고 있을 정도로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나 현대미술을 여전히 어렵게 생각하는 우리가 예술창작자가 되어서 ‘예술계’의 수용 범위로 진입되기에는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즉 예술의 종말은 예술의 민주주의 그리고 예술의 완성으로 이르지 못했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울지 몰라도 관객 또는 예비 예술창작자가 되기 위한 일반인들은 예술계가 만든 그들의 경계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오늘날의 예술은 완성되었다기보다는 예술가, 전문가 그리고 예술을 아는 척하는 엘리트들만 향유하는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객을 모독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아름다움으로부터 추방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사라져 버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아직도 입을 열 엄두를 못하고 있는 이른바 교양을 지닌 식자층이다.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169쪽)

 

단순히 미술작품만이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예술이라도 그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인간의 삶과 정서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점점 더 알 수 없다고 느끼며 전문가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실로 비극적인 일이다.

 

단지 수십억을 호가하고 저명한 언론으로부터 극찬 받은 작품에 딱히 감동 받지 않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부족한 문화적 소양 탓을 할 필요는 없다. 진짜 부끄러워야 할 사람은 미술에 ‘미’자도 모르면서 돈으로 그림을 사들이는 재벌과 뭣도 모르면서 현학적인 문장만 늘어놓은 전문가들이다. 우리가 동시대의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종말’이다. 예술이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뻥이라서 예술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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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 되다 -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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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정직하게 그린 여왕의 얼굴

 

피카소는 인물화(portrait)는 ‘주관적 기록’이라고 했다. 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작가의 눈과 마음으로 느낀 가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초상화, 인물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서히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는데, 통치자나 종교적 지도자들을 그리던 관습은 점차 폭을 넓혀갔고, 사진이 발명된 19세기부터는 가히 폭발적으로 확대된다.

 

명함판 사진이 유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알려진 명사의 사진은 하루에 몇 천 장씩 팔려나가는 일종의 품귀현상도 빚었다. 인물의 이미지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는 사진의 대중화와 맞물렸고, 좋아하는 사람,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은 복잡한 감정의 문제와 함께 부흥했다.

 

이렇게 사진이 인물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대체하면서 회화에서 인물화는 그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듯 보였지만, 1970년대 이후 다시 인물화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 중에 주로 인물 초상화를 그린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가 루시안 프로이드(1922~2011)이다. 낯선 이름일 수 있겠지만, ‘프로이드’라는 성(姓)을 보는 순간 유명한 정신분석학자가 먼저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당신이 생각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 정신분석학자의 이름을 ‘프로이트’라는 영문 표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간혹 ‘프로이드’라고 표기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책의 제목을 고려해서 ‘프로이드’로 통일해서 쓰겠다)

 

 

 

 

루시안 프로이드  「엘리자베스 2세」 2001년

 

 

그래도 이 사람이 ‘듣보잡’(듣도 보지 못한 잡놈) 화가라고 생각하는가. 프로이드는 영국의 최고 화가답게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그리기도 했다. 그가 그린 영국 여왕의 초상화로 영국 언론과 문화계가 떠들썩할 정도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1년에 제작된 영국 여왕의 초상화는 자신의 특유한 자연주의 기법으로 그린 가로 15.2㎝, 세로 23.5㎝의 작은 유화이다. 초상화에 나타난 여왕은 단호하며 웃음기가 없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당시 이 그림을 평한 더 타임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려진 영국 여왕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아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언론은 프로이드의 영국 여왕 초상화를 가장 훌륭한 왕실 초상화라고 찬사도 나오는 반면, 대중지 선(Sun)은 여왕의 품위를 손상시킨 프로이드를 런던타워에 투옥해야 한다고 혹평했다.

 

여왕 얼굴을 너무 '정직하게' 그렸던 탓일까. 사실 프로이드가 바라본 여왕 얼굴은 아름답고 기품 있는 표정이 아니다. 깊게 파인 주름에 고집 센 중년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프로이드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그림을 그렸다. 여왕을 미화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신비의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여왕의 실제 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니 여왕을 신격화하는데 익숙해졌던 사람들 입에서 여왕 모독죄라는 혹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더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황제의 얼굴에는 권위와 권력을 곳곳에 투영시켜야 했다. 때문에 늙지도 않고 인간적인 고뇌도 느껴지지 않는, 신 같은 인간으로 그려지는 것이 관례였다. 어디 황제의 얼굴뿐이겠는가. 모델 입장에서는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멋지게 그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Scene #2  화가와 모델, 서로 그림이 되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기쁘게 느꼈던 특별한 경험이 언제일까? 오랜 시간 끝에 그림 한 점이 완성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감 아니면 모델이 자신의 초상화에 흡족해서 화가에게 수고비를 줄 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만 아무래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에 어울리는 모델을 발견하고, 그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과정이 아닐까?

 

화가의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 가족은 화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선뜻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가까이 이해하기도 한다. 그림이 너무 독창적이어서 제 아무리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화가는 이들을 끊임없이 설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몸소 증명한다. 화가의 이력과 내면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일수록 그 화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특별히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이들을 만나 기쁨을 맛본다면 창작열이 솟구칠 것이다. 화가와 모델의 혼연일체, 일심동체. 그런 모델과는 당연히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세월 속에 우러난 장맛처럼 모델의 겉모습과 작가의 내면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화가와 모델의 혼연일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프로이드와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일 것이다. 게이퍼드는 프로이드에 관한 책을 쓰고 준비하는 동안 스스로 화가의 모델을 자처한다. 화가 앞에서 미술 평론가가 아닌 모델이 되어 초상화가 제작되는 것. 참으로 흥미로운 제작 과정이다.

 

미술사에 보면 유명 화가들이 남긴 초상화 중에는 종종 평론가를 모델로 삼아 그린 것이 있다. 이런 그림들은 화가와 평론가 사이에 친분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미술 평론가라는 직업은 화가에게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주고 찬사를 보내는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미안에 맞지 않으면 혹평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옹호한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세잔에게만 악의적으로 혹평을 하자 서로 관계를 단절한 예술사의 에피소드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루시안 프로이드  「파란색 스카프를 맨 남자」 2003~2004년

 

 

인지도 높은 이 미술 평론가가 프로이드의 그림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프로이드을 소개하는 책을 집필할 수 없었으며 직접 그의 모델이 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이퍼드는 2003년 11월 28일부터 2004년 7월 4일까지 런던에 있는 노화가의 작업실에서 모델로서 30회 정도 만났다. 그 만남의 과정 중에 프로이드가 게이퍼드를 모델로 한 초상화가 바로 「파란색 스카프를 맨 남자」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 한 점을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7개월 정도. 미술에 무지하고 모델비를 챙기는 것이 목적인 모델이라면 이 7개월의 제작 과정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퍼드에게 이 7개월이라는 시간은 소중하고 흥미로웠다. 그가 만난 당시 프로이드의 나이는 82세. 대화 내용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프로이드의 생애와 예술론, 시대정신, 지인들과의 관계,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소소한 습관 등을 더욱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노화가에 대한 단순한 전기 수준을 넘어 그의 은밀한 심리적 생태적 상태와 지적 면모까지 생생한 육성과 행동을 통해 그려낸 한 편의 사실적 그림인 셈이다. 화가 프로이드가 모델 게이퍼드의 얼굴을 그리고 있을 때, 모델은 펜을 붓으로 삼아 자신을 바라보는 화가의 초상화를 한 권의 책으로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Scene #3  인간에 대한 열정적 표현

 

컨템퍼러리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불만 중 하나는 작가들이 추하고 섬뜩할 정도로 혐오스러운 이미지들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미술을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쾌감을 자극하고 꿈자리를 고약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루시안 프로이드  「잠자는 사회복지 감독관」 1995년

 

 

프로이드의 그림 또한 여전히 고귀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틴 게이퍼드의 책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이지만) 뉴욕 경매에서 생존작가 최고가 경신을 기록했던 1995년 작 「잠자는 사회복지 감독관」을 보라. 살이 비곗덩어리처럼 부풀려져 숨쉬기도 힘들어 보이는 뚱뚱한 여인이 소파에서 누드로 잠자는 모습을 그렸다.

 

도저히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힘든 이 그림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림의 경제적 가치를 먼저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드가 이 뚱뚱한 사회복지 감독관, 그것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그녀를 그린 의도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예술의 가치가 적어도 미(美)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시기에 미와 조화가 미술의 중요한 추동력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이드는 이러한 편견을 공격하면서 추해 보이는 형상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려 한다.

 

 

 

 

루시안 프로이드  「벗은 남자, 뒷모습」 1991~1992년

 

“모델 작업을 마친 뒤 나는 가능한 내 모델들의 느낌과 감정에 동감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작품이 내게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작품이 모델들에게서 비롯되기를 바랍니다.” (루시안 프로이드, 17쪽)

 

 

프로이드에게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예술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와 추라는 외적 허상들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실재)을 얼마나 깊이, 밀도 있게 파고드느냐 하는 점이다. 그 실재는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하고 오묘한 세계다. 프로이드의 인물화는 메모리칩처럼 진실의 미세한 정보들이 얼마만큼 압축돼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루시안 프로이드  「쉬고 있는 화가의 어머니 I」 1976년

 

“몇 년 전 어머니를 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과거 그 어느 때에도 그리고 그때 이후로도 그렇게 슬펐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입은 원피스에 있는 페이즐리 무늬를 그리고 있었는데 내가 느끼는 슬픔이 페이즐리 형태에 투영될까봐 걱정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마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루시안 프로이드, 72쪽)

 

그렇다고 모든 화가가 초상화 작업에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초상화가 모델로부터 비롯되기를 원했다. 계산적인 구성을 밀어내고 ‘진실의 어색함’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진짜 ‘사람’을 그리는 것이다. 그의 바람은 고흐가 자살하기 한 달 전 여동생에게 쓴 편지와 통한다. “무엇보다 큰 열정을 품게 되는 대상. 초상화다. 한 세기 뒤 사람들에게 유령처럼 보일 초상화. 사진의 유사성이 아니라 인간의 열정적 표현에 의한.”

 

나는 드로잉과 채색만큼이나 대화가 모델 작업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초상화는 대상에 대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이때 대상은 활성과 움직임이 없는 살아 있는 동상일 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음직이고 말하고 반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략) 그(모델)의 눈과 입, 얼굴 표정의 유동적인 지형학이 이미지를 밀랍 인형이 아닌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마틴 게이퍼드, 19쪽)

 

프로이드의 모델이 되는 동안 게이퍼드는 느꼈다. 노화가가 끝까지 인물화 제작을 고수하는 이유를. 프로이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사람의 마음, 감춰둔 이야기,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화폭에 담는다. 모델의 감정에 동감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훈련 덕분에 프로이드는 그것들을 하나의 ‘진실’로 끄집어내서 인물화로 구현한다. 그는 피카소처럼 주관적인 직관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인간의 초상과 누드 등을 대상으로 그들의 모습이 아닌 삶 자체를 인물화에 투영시키려고 한다. 화가와 모델 사이에서 오고가는 진솔하면서도 유쾌한 열정적 표현이 꾸밈없는 진실한 그림을 완성하도록 만든다.

 

만약 프로이드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게이퍼드의 초상화 연작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프로이드가 사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모델로서의 게이퍼드의 활동은 접게 된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시간이 지난 뒤에 유령처럼 보일 수 있는 초상화를 그리는데 성공했다.「파란색 스카프를 맨 남자」와 반쯤 그리다만 미완의 작품까지 프로이드의 작업실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인물화들은 화가, 아니 그림을 좋아하는 인간의 열정적 표현을 보여주는 위대한 족적이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마지막 예술의 불꽃을 되살려주는 일생의 모델을 만날 수 있었고, 게이퍼드는 그림에 스며든 화가의 열정, 치열한 직업의식을 글로서 영원토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아마 앞으로 프로이드-게이퍼드 조합 같은 멋진 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적인 예술을 만나가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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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란 무엇인가 -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2014. 3.13 /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문학 특강 제6강 후기)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에서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는 피습당해 숨지기 직전 자신의 몸을 ‘비트루비우스의 비례도’처럼 눕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떠올리라는 암호다.

 

 

 

 

비트루비우스는 기원전 1세기의 건축가로 ‘자연이 빚은 인체비례’를 강조했다. 이를 재발견해 다빈치가 그린 그 비례도에는 가장 아름다운 체형은 ‘8등신’이라는 내용이 있다. 밀로의 비너스상은 대표적인 8등신 조각상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들은 미(美)의 표상으로서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 이러한 조각상에 대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문화와 언어 및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유사한 공감대로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름다움’을 가리켜 고대 그리스인들은 ‘칼로스(kalos)’라고 불렀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이 곧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선한 미’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이런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canon)’이다. 조각가인 그는 황금 비율(1:1.618)을 인체 조각에 적용했다.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비율을 '황금비'라고 주장했으며 이를 정오각형의 별을 통해 설명했다. 정오각형에서 짧은 변과 긴 변의 길이의 비는 5:8로 약 1:1.618의 비율인데, 이 비율이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이러한 미의 이상 혹은 비례가 유일한 미의 가치 기준인가. 그것은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기준이 민족이나 지역,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말하기란 까다롭다(non so she, 말할 수 없는 것). 미학사를 보면 미의 정의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가령 중세 때 미는 현세보다 내세에 맞춰져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부터 미는 대체로 예쁜 것이었고, 고대 그리스 예술을 동경하기도 했다.


14세기와 15세기에 접어들면 이탈리아에서의 원근법 발견이나 새로운 회화술의 확산, 피렌체의 수사, 사보나롤라에 의해 조장된 신비주의적 분위기 등의 영향으로 미에 대한 개념이 크게 바뀌게 된다. 당시의 미는 완벽한 수준으로 확인된 규칙에 따라 모방하는 것을 최고의 미로 간주한다. 유럽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는 르네상스기의 세밀화, 인물화는 이와 같은 미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르네상스기는 후대의 미가 어떻게 전개돼 갈지를 알려주는 데 손색이 없다. 엄격한 비례와 균형, 그리고 세밀한 묘사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기의 미와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중심에서 이탈해 불안정하고 충격적인 모습을 지닌 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접어들게 되면 미는 미학적 주관주의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흄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는 사물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다. 미는 오로지 사물을 응시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며, 모든 정신은 미를 서로 다르게 지각한다. 어떤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부분을 다른 사람은 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 개인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에 만족해야 한다.” 이후 인상파 화가들은 하루 중 어떤 시간에 본 풍경, 해안선, 인물의 인상을 자신이 받아들이는 데로 그림으로써 자신의 그림 속에 영원한 무엇인가를 표현하기를 바라게 된다.
 
19세기로 오면 미적 범주에 ‘추’(醜)도 포함된다. 이런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들어설수록 심해진다. 그만큼 미의식이 부정적으로 되는 것이다. 현대예술의 미는 너무 분화돼 심지어 미 없이도 이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것이 내 느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의 상대성이 이를 말해준다. 가령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목이 길수록 미인으로 간주해서 심지어 30cm나 되는 긴 목을 가진 여성이 있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 앞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부인이 죽어 슬픈 사람의 눈에는 그 풍경이 아름답게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도 느끼는 것, 즉 객관적으로 공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나와 대상은 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칸트는 이것을 ‘주관적 일반성’이라고 표현했다. 미는 내가 느끼는 것(주관적)이면서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고 생각하는(객관적) 것이다. 따라서 미는 감각과 사고, 개인과 사회를 잇는 일이 된다. 이 매개 속에서 미는 현실을 성찰한다.

 

이러한 예들은 미학적으로 말하면 미적 향수 혹은 미적 판단과 관련된다. 칸트는 인간이 미를 판정하는 능력, 즉 취미 판단을 다룬 바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고 했을 때, 그 판단이 보편타당한 근거를 어떻게 지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는 “취미 판단은 미적이다”라면서 취미 판단은 ‘쾌 혹은 불쾌의 감정’에 관련되며,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구상력이라고 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칸트가 말한 무관심성의 개념이다. 즉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가 아닌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감각적인 욕구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나오는 그림의 떡(畵中之餠)처럼,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에 들어 있는 떡을 보고 군침을 흘리면 제대로 된 감상은 어렵다. 이때 실제적인 욕구를 억누르고 대상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 대상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감각만의 미는 반쪽의 미다. 감각이 사유와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미는 거짓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자신과 타자, 현실과 이념을 잇고, 모든 사람이 공유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에는 이런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감각은 사고되지 않고, 외양은 내면과 겉돌기 때문이다. 예쁘고 젊고 날씬하고 섹시한 것이 미의 전부라고 여기는 사회는 가련하다. 가는 허리와 쌍꺼풀진 눈만이 미의 표본이라 불린다면, 우리는 이 표본을 누가 만들어내는지 물어봐야 한다. 유행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자기 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미는 어떻게 생각하고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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