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베르 씨
장 자끄 상뻬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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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베르 씨》(열린책들, 1999)장 자크 상뻬(Jean Jacques Sempe)의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상뻬의 첫 번째 그림책인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Rien n’est simple, 국내 미출간)이 1962년에 발표되었고, 《랑베르 씨》는 1965년에 발표된 네 번째 그림책이다. 《랑베르 씨》는 상뻬의 대표작 《얼굴 빨개지는 아이》(별천지, 2009)보다 넉 달 늦게 국내에 출간되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1969년에 발표된 그림책인데, 우리나라에선 이 책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다 보니 《랑베르 씨》를 주목한 독자의 리뷰가 많지 않다.

 

 

 

 

 

 

랑베르 씨는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주인공인데도 말이 거의 없다. 그림의 절반이 ‘피가르 식당’에서 수다를 떠는 단골손님들의 말들로 채워져 있다. 단골손님들은 매일 늘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1936년 프랑스 좌파 정권이 수립한 인민전선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는 손님들이 있고, 다른 쪽 식탁에서는 1950년대에 활약한 축구선수들과 당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축구팀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이 앉아 있다. 랑베르 씨는 항상 자신과 함께 식탁에 앉은 동료들의 대화를 경청한다. 랑베르 씨도 식당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지만, 존재감이 없다. 가끔 랑베르가 제시간 늦게 식당에 도착하면 단골손님들이 그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러나 손님들은 랑베르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손님들의 관심 대상은 랑베르가 아니라 ‘정치’와 ‘축구’였다. 랑베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손님들은 정치와 축구에 대해 말하느라 바쁘다.

 

어느 날부터 랑베르는 플로랑스라는 여성과 사귀게 된다. 랑베르의 연애 사실을 알아차린 손님들은 다시금 조용한 사내에 주목한다. 동료들은 플로랑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식당에 온 랑베르에게 다가가서 그녀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재촉한다. 평소에 랑베르를 알고 지낸 동료들은 축구 얘기를 접어두고, 자신들이 연애하면서 만났던 여자들을 주제로 대화한다. 재미있게도 연애하는 랑베르가 주변 사람들의 대화 주제를 바꿔놓은 것이다. 확실히 단골손님들은 ‘연애꾼’ 랑베르에 주목했고, 그가 식당에 나타날 때마다 반갑게 맞아준다. 그러나 랑베르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랑베르의 결별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예전처럼 축구 얘기를 한다. 그렇게 랑베르는 자연스럽게 ‘존재감 없는 평범한 사내’로 돌아온다.

 

알라딘에 공개된 《랑베르 씨》의 책 소개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진부한 일상에 새콤한 양념처럼 곁들여진 랑베르의 에피소드. 여기에 그의 식당 동료들의 은근한 우정이 짭잘하게[1] 가미된 감칠맛 나는 이야기.

 

 

상뻬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풍경과 얼굴들에 집중한다. 《랑베르 씨》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 미세한 변화를 느끼는 그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그렇지만 나는 ‘식당 동료들의 은근한 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의 우정은 여성을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분류하는 남성 간의 연대, 즉 ‘호모소셜(Homosocial)’에서 이루어지는 ‘쉰내 나는 우정’이다. 남성들은 호모소셜 속에서 여성들은 품평과 희롱의 대상으로 소비한다. 호모소셜은 ‘내(남성)가 너를 남자로 인정한다’는 남성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존재감 없던 랑베르가 연애하기 시작하자 동료들은 그를 ‘남자’로 인정하고, 그(의 연애)에 호기심을 느낀다.

 

자, 지금부터 나오는 말이 당신의 분노를 유발하고, 당신의 뒷목을 잡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시대착오적인 언어들’식당 손님들이 사적으로 나눈 대화체, 남성우월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뻬의 문장에서 나온 것이다.

 

 

“아버지들은 딸 단속 잘 하라고!”, “여자들은 그저 처신만 잘하면 돼!” (75쪽)

 

 

“난 항상, 여자들은 정복해야 한다는 걸 원칙으로 삼았지.” (83쪽)

 

 

랑베르는 별말 하지 않았지만 그가 우리의 우정으로 기운을 되찾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남자들 사이의 우정은 중요하니까. 게다가 우정, 그것밖에는 없다. 인생의 온갖 크나큰 골칫거리는 여자들로부터 비롯한다는 건 누구나 뻔한 얘기다. (90쪽, 상뻬)

 

 

축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이었다. 그건 무엇보다도 단결심을 필요로 한다(여자들은 그 단결심이란 걸 이해하지 못한다). 축구란 늘 함께 모여 경기를 벌이는 걸 좋아하는 열한 명의 친구들이다. (100쪽, 상뻬)

 

 

지금으로 보면 상당히 수준 떨어지는 발언들이다. 이 절판된 책이 재출간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상뻬는 여성이 축구가 필요로 하는 단결심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썼는데, 지금까지 프랑스 여자축구가 거둔 뛰어난 성적을 생각하면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 프랑스 여자축구 대표 팀 최고 성적

 

2008년 FIFA 칠레 U-20 여자 월드컵 4위

2011년 FIFA 독일 여자 월드컵 4위

2012년 FIFA 아제르바이잔 U-17 여자 월드컵 우승

2014년 FIFA 캐나다 U-20 여자 월드컵 3위

 

 

 

 

올해 8월 5일부터 한 달간 프랑스에서 FIFA U-20 여자 월드컵이 치러진다. 내년에 있는 FIFA 여자 월드컵의 개최국도 프랑스다. 상뻬 할아버지는 지금도 정정(亭亭)하신데 조국에서 치러지는 여자축구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경기를 보고 나서 본인의 펜에서 나온 시대착오적인 언어를 정정(訂正)했으면 좋겠다.

 

상뻬 할아버지, 정정(亭亭/訂正)하세요!

 

 

 

 

 

[1] ‘짭잘하게’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은 ‘짭짤하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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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3-0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사람들 중에서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외국의 옛) 철학자도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지요. 그 시대 문화의 영향 탓일까요? 어째서 글은 훌륭하게 쓰면서 여성 비하를 하는 (우리나라) 작가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면서, 인간은 알 수가 없도다, 그랬네요.

cyrus 2018-03-02 08:01   좋아요 1 | URL
시대가 변하면 인물, 문화에 대한 평가는 달라집니다. 이제는 여성 차별, 여성 비하와 연관된 발언 및 행위들에 문제 삼아야 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 ‘스몰토크’에서 《젠더 무법자》 읽기 마지막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제 모임에도 새로운 한 분이 참석했지만,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석하신 정회원 세 분이 개인적인 일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잠시 레드스타킹의 곁을 떠나시는 분들을 위한 송별회도 마련했어요.

 

레드스타킹 정회원 중에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제는 특별히 트랜스젠더를 주제로 한 독립영화 한 편을 봤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각자 영화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젠더 무법자》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트랜스젠더 영화가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기보다는 비트랜스섹슈얼(Non-transsexual)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트랜스젠더 영화를 재미있게 시청한 분이 있었지만, 영화 속 대사나 연출 장면 등이 산만해서 영화에 나오는 트랜스젠더들의 삶에 감정 이입하기 어려웠다고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대사 및 행동을 독창적으로 분석한 분들의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 모든 의견들이 영화 줄거리와 관련이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이매진, 2016)

* 애너매리 야고스 《퀴어 이론 : 입문》 (여성문화연구소, 2012)

 

 

 

영화에 나오는 트랜스젠더들은 유색인종 MTF트랜스젠더입니다. 어떤 분은 유색인종 트랜스젠더가 백인 MTF트랜스젠더보다 궁핍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에 참여했던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들의 암울한 현 상황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LGBT 운동의 역사를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대사건입니다. 스톤월은 미국 뉴욕에 있는 게이 바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서 따온 것입니다. 뉴욕에서는 동성애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뉴욕시가 공공시설이 동성애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주류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성 소수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스톤월 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톤월 인은 경찰의 단속을 피해 불법으로 운영하는 게이 바였습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 경. 경찰들이 게이 바를 불시에 단속했고, 경찰의 단속에 크게 반발한 성 소수자들은 몸싸움을 불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이 사태에 자극받은 수천 명의 성 소수자들은 7월 3일까지 거리시위를 벌였습니다. 스톤월 항쟁 이후로 성 소수자들은 자신들에 향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대중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스톤월 항쟁 이전에 게이,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메타쉰 협회(Mattachine Society)’와 ‘빌리티스의 딸들(Daughters of Bilitis)’입니다. 메타쉽 협회는 1951년에 설립된 게이 남성 중심의 단체였고, ‘빌리티스의 딸들’은 레즈비언 운동 단체입니다. 이 두 단체는 주류사회로 편입되기 위한 동성애 옹호 단체였을 뿐 ‘동성애 해방’을 위한 단체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정체되었던 성 소수자 해방 운동에 다시 불을 지핀 사람들이 바로 ‘스톤월 인’에 난동을 부린 성 소수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스톤월 항쟁은 이성애 섹슈얼리티 중심 주류사회에 혼란을 주고,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사회제도를 거부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운동입니다.

 

 

 

 

 

스톤월 항쟁을 주도한 성 소수자 중에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은 너무나도 쉽게 잊혔습니다. 롤랜드 에머리히(Roland Emmerich) 감독은 스톤월 항쟁을 다룬 영화 <스톤월>를 제작했는데요, 이 영화가 백인 게이 남성, 백인 트랜스젠더 중심의 스톤월 항쟁을 묘사한 것에 대해 성 소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레드스타킹을 널리 알리기 위해 레드스타킹 로고가 있는 스티커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책 두 권에 레드스타킹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스몰토크’에 페미니즘 책들만 모은 작은 책장이 있어요. 책장 안에 《퀴어페미니스트 펢》 2017년 11월호 특별판을 발견했습니다. ‘특별판’이다보니 대구 서점, 책방에 팔지 않는 책입니다. 이런, 알라딘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군요. 서울에 있는 페미니즘 강연에 참석한 레드스타킹 정회원이 직접 구입한 책입니다. 이 한 권의 책은 페미니즘 독서문화와 퀴어 문화가 척박한 대구에 ‘단비’ 같은 존재입니다. 집에 가서 읽어보려고 챙겨왔습니다. 이 책에 관심 있으신 분은 ‘스몰토크’를 찾아주세요!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3월 레드스타킹 선정도서마리아 미즈(Maria Mies)《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입니다. 드디어 이름만 듣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3월 12일 월요일부터 첫 모임이 시작되고요, 1장까지 읽으면 됩니다. 어딘가에 혼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대구 시민 여러분, ‘스몰토크’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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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3-01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사는 친구에게 알리겠습니다.

cyrus 2018-03-02 08:0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페크님. 네이버 검색창에 ‘북클럽 레드스타킹‘이라고 입력하면 레드스타킹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나옵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모임 일정, 페미니즘 관련 행사 소식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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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눈이 휙휙 돌아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며, 급속한 산업화, 빈부 격차의 심화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언급된 현상들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변화가 미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느냐이다.19세기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이다. 버틀러는 1872년에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소설 《에레혼》(김영사, 2018)을 발표했다. 에레혼(Erehwon)은 ‘No Where’(이 세상에 없는)를 거꾸로 쓴 제목이기도 하지만, ‘Now Here’, 즉 ‘지금 여기’라는 뜻도 된다. 즉 이상세계는 없을 수도 있지만 바로 내가 있는 이곳이기도 하다는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 식민지에 거주하는 양치기다. 그는 거대한 산맥 너머에 있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한다. 양치기는 ‘초복(Chowbok)’이라는 별명을 가진 늙은 원주민에게 접근하여 산맥 너머에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기로 한다. 양치기는 초복을 여행 동반자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나 초복은 산맥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채 도망치고 만다. 혼자서 산맥을 넘은 양치기는 에레혼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에레혼은 모든 것이 영국과는 반대이다. 에레혼에서 질병은 죄악이다. 질병에 걸리면 구속되어 장기간 복역 생활을 해야 한다. 반면 강도, 사기 등을 저지르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병원에는 ‘교정관’이라는 직함을 가진 의사가 있는데, 교정관이 되려면 특정 기간에 온갖 나쁜 짓을 하면 된다. 에레혼 사람들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증상이 생기면 아픈 티를 내지 않게 철저히 숨긴다.

 

에레혼에서는 기계를 찾아볼 수 없다. 사용하지 않는 기계는 ‘오래된 기계’로 분류되어 박물관에 진열된다. 이곳에서 기계를 설치하거나 사용하면 중범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는다. 에레혼 사람들은 기계를 싫어한다. 에레혼의 영주는 양치기가 가지고 있던 시계를 보자마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왜 에레혼 사람들은 기계를 싫어하는 것일까? 《에레혼》의 23~25장인 ‘기계의 책’은 에레혼 사람들의 반 기계주의를 보여주는 글이다. <기계의 책>은 에레혼의 반기계파가 쓴 논문이다. 5백 년 전에 기계파와 반기계파 간의 내전이 일어났고 반기계파가 승리한다. 양치기는 <기계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그 내용이 《에레혼》의 23~25장이다. 사실 23~25장은 버틀러의 에세이 <기계 사이의 다윈>을 보완한 글이다. 버틀러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에 큰 감명을 받아 ‘기계가 발전하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진화론을 대입했다. 그는 이 ‘기계의 책’이라는 글을 통해 기계 문명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기계와 인간은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이다.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기계의 완전한 멸절을 제안하지 못하지만, 기계가 더욱 완벽하게 우리를 독재하지 못하게끔 우리에게 없어도 될 만큼은 기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57쪽)

 

지금 이 시간에 기계에 종속되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살아 있는 내내 밤낮으로 기계만 돌보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계에 노예로 구속된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기계 왕국의 발전에 평생을 헌신하는 이들도 늘어난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기계가 인간보다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 명백하지 않은가? (259쪽)

 

 

버틀러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진화하면서 발전하는 ‘공진화’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대를 앞서간 예측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가 인간 진화의 경로를 바꿀 것이며 훗날 인간은 기계에 종속된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심취한 빅토리아 시대 지식인들은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거로 기대했다. 하지만 버틀러는 인류의 진보를 믿는 진화론자들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기술 문명의 발전이 곧 이상향을 실현할 것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디스토피아를 제시했다. 동시대 진화론자들은 버틀러가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했다고 비판했지만, 《에레혼》을 읽다 보면 버틀러가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몸이 수백만 년에 걸친 우연과 변화의 결과로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265쪽)

 

 

버틀러는 ‘진화=진보’라는 단순한 낙관론에 경도되지 않았다. 그는 낙관론에 반기를 들고 진화의 우연성을 주장한다. 버틀러가 생각하는 진화는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필연적인 진보’와 거리가 멀다. 우연성은 진화의 주된 동력이며,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인간은 우연성이 빚은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다. 버틀러는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보다 백 년 앞서서 진화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에레혼》의 해제는 과학 칼럼니스트 이인식이 썼다. 이인식은 《에레혼》이 인공지능의 미래를 예측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에레혼》에서 드러난 버틀러의 ‘반기계주의’가 기계문명을 예측하는 미래학,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택해야 할 갈림길, 즉 기계가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를 고민한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Now-Here(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에레혼》은 ‘시대를 앞서 간 미래소설’로 재평가를 받고 있지만, 풍자소설로서의 문학적 가치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래서 이 책의 구성 방식이 아쉽다. 빅토리아 시대는 국내 독자에게는 생소한 역사의 한 페이지다. 그래서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에레혼》을 읽으면 버틀러의 풍자 정신을 이해할 수 없다. 역자는 《에레혼》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버틀러의 의도가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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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2-2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특이한 책이네요.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봐도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그렇고. 일단 보관함으로 보냈습니다.ㅎㅎ

cyrus 2018-02-27 12:13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분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옛날 소설이 다 그렇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라 볼 수 없어요. 좀 지루한 내용도 있어요. ^^;;

2018-02-28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01 08:10   좋아요 0 | URL
그분이 쓴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칼럼 몇 편은 읽어봤어요. 그 분이 요즘 미래학에 꽂혔는데 우리 같은 일반 독자가 보기에 그 분의 글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지난주 월요일(2월 19일)에 진행된 레드스타킹 《젠더 무법자》 두 번째 시간 공식 후기입니다. 작성자는 채령님입니다. 이 날, 저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출처는 레드스타킹 공식 트위터, 공식 인스타그램입니다.

 

*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이번 모임에서는 <젠더 무법자> 4, 5, 6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자는 앞선 장들에서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이분법이 무수한 젠더와 정체성을 지우는 폭력적 체제를 지탱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는데요, 이번 장부터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ex.컬트) 젠더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려 한 것 같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제시하고 하나를 고르기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최선의 선택을 이끌어 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정체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법적 젠더 체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이분법적 젠더 체제에서 가려지고 오도되고 지워진, 제대로 호명조차 할 수 없는 젠더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는 ‘시스젠더 헤테로 섹슈얼 여성’인 제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치열히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서 저는 퀴어-트랜스젠더들과 연대를 쌓고 함께 남근중심 가부장제를 타파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쪽이었습니다만, 타자와 나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부재한 채 막연히 평화주의적 연대를 부르짖은 것 같아 대단히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더 많이 읽고, 만나고, 공부해야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모임에 모인 토론자들은 모두 페미니스트이지만 그동안 비교적 LGBT이론(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였고, 적지 않은 영역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마침 새로 모임에 참여하신 분께서 주변에서 보고 들은 퀴어-트랜스젠더 지인들의 사례를 들려주셔서 이해가 풍성해졌습니다.

 

트랜지션(transition, 성별을 바꾸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적 차별이 없다면 트랜지션을 하지 않게 될까?” 그리고 “의료지원이 충분히 된다면 트랜지션을 더 많이 하게 될까?”라는 질문들이 나왔는데, (새로 오신 분께서) 그건 지극히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 따르는 문제이기에 굉장히 어렵다고 답해주셨습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자신이 가진 남성의 신체적 특질(페니스)이나 여성의 특질(부드러운 유방)을 사랑하면서도 수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에 방해가 되는 신체를 혐오하여 수술을 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으며, 패싱이 자연스러운 경우 굳이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구체적인 성소수자 지원 정책에 대한 논의도 있었고, 수술 이후에 과거의 자신을 지워내는 외로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을 시도해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과거를 잊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며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어 이들이 과거의 자신을 언제까지라도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또 하나 새로웠던 이야기는 퀴어-트렌스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도 종종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배제가 일어난다는 사실(ex.티부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견해입니다만 저는 이 이야기가 오늘날의 젠더 해방 운동이 모든 집단을 하나의 깃발 아래에 모아내거나 젠더 정체성 하나에 의지해 혐오에 대한 처방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4장이 대한 토론이 마무리될 때 즈음 “여러분은 본인의 성별에 대해 의심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워낙 지배적인 남성-여성(혹은 양 극을 전제한 양성) 젠더 체제 속에 살아온 탓인지 의구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힘들기는 합니다만, 과거는 물로 현재도 여전히 본인의 성별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제 경우에는 몸이나 성적지향 보다는 ‘젠더 역할’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늦은 나이에 얻은 자식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저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다”는 말, ‘남성을 위한 축복들’을 듣고 자랐습니다. 게다가 옷이나 장난감을 구매할 때에도 제가 원하는 것을 마련해주셨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남자아이의 것으로 여겨지는 자동차와 로봇, 푸른색의 옷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며 가슴이 봉긋해지고 월경이 시작되고, 설거지통에 충분히 키가 닿는 나이가 되자 이전에 전유하던 것들을 더는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의 무수한 가능성이 쓰레기통에 처박힌 것 같은 비참함을 느꼈지만 우습게도 교복‘스커트’를 입으면 되바라진/선머슴 같은 여자애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에, 스커트 아래에 숨겨져 있던 내 어린 시절의 (소위 말하는) ‘남성적인’ 가능성들을 기꺼이 쟁취하려는 욕망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얻는 것 같은 안도를 느꼈습니다.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퍼포먼스, 그것을 수행하는 역할을 설명할 언어가 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는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사실은 너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닐까요.

 

논의의 장이 바뀌어 사도마조히즘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기 시작했을 때 몹시 흥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S/M플레이에 대한 섹스판타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토론자분들이 S/M플레이에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가난하고 어린 여성’의 지위에서 경험해온 평범한 이성애적 성관계 경험은 제게 굉장히 폭력적이고 통제불가능한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명확한 합의가 전제된 ‘놀이’로서의 S/M플레이가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께서 우려되는 지점을 설명해주셔서 금방 S/M플레이에 대한 조심스런 시각에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남성중심 젠더위계가 이토록 절대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S의 역할을 여성이 M의 역할을 할 때에 룰을 무시하고 자행되는 폭력-강간에 대한 에어백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합의된’ 관계 내의 모든 폭력에 법적으로 관대한 국가에서라면 즐거워야 할 놀이는 너무 쉽게 공포의 장으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SM은 플레이어들이 놀이를 ‘젠더 초월자’로서 향유하도록 하며, 규정된 젠더 역할과 정상적 섹슈얼리티를 비웃을 힘을 가집니다. ‘이분법적 젠더체제를 깨어 부술’ 강력한 샤먼(shaman: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역할을 맡은 자, 무당)는 인 것입니다.

 

두서도 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도 없이 길어지니 제가 너무 피곤해서 급하게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레드스타킹 책모임에서는 대단한 이야기/질문/반성들이 오고갔습니다. 창조적인 공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몹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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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단 두 줄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파르르 떨게 했던 시가 또 있을까요? 정현종 시인의 시는 수수께끼입니다.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이 시에는 정답이 없어요. 시의 의미는 시를 읽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격 분석에 사용되는 로르샤흐 검사처럼 똑같은 얼룩무늬를 보면서도 각자의 해석이 달라지듯이 같은 시를 읽어도 저마다의 해석은 다릅니다.

 

 

 

 

 

 

 

 

 

 

 

 

 

 

 

 

 

 

 

* 장 그르니에 《섬》 (민음사, 1997)

* 정현종 《나는 별 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95)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산문집 《섬》(민음사, 1997)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섬’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그르니에는 애초에 ‘섬’의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르니에의 애제자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섬》의 서문에서 스승의 글이 읽는 사람 스스로 좋은 대로 해석하도록 맡겨둔다고 썼습니다. 카뮈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서재를 탐하다’ 책방에서 우주지감 회원님들과 《섬》을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누어보니 혼자 책을 읽으면서 스쳐 지나간 문장들을 다시금 살펴보게 됩니다.

 

 

 

 

 

 

 

 

 

 

 

 

 

 

 

 

 

 

 

*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님이 가져온 책]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책세상, 2012)

* [‘우주지감’ 회원님이 가져온 책] 박웅현 《책은 도끼다》 (북하우스, 2011)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님은 젊은 시절 카뮈가 스승에게 보낸 편지 구절 일부, 그리고 카뮈가《섬》을 읽고 난 뒤에 쓴 단상 속 구절을 인용, 낭독했습니다. 카뮈는 《섬》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써놓은 감상문에 실존에 관한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이○○님은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2011)에 인용된 김화영 교수의 문장을 읽어줬습니다. 《섬》을 번역한 분이 김화영 교수입니다. 이○○님은 그르니에가 지중해를 여행하면서 발견한 철학적 사유가 무엇인지 설명했습니다.

 

박○○님은 『고양이 물루』에서 물루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보면서 슬펐다고 합니다. 불교, 힌두교에 관심이 많은 신○○님은 《섬》을 읽으면서 불교와 힌두교 사상과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상상의 인도』를 읽고 나서 인도 철학서, 인도의 고대 경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님께 힌두교를 알기 위해 읽을 만한 책이 뭐가 있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신○○님은 아주 명쾌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인도에 직접 가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인 걸까요?

 

천○○님은 《섬》 118쪽에 있는 평범한 문장을 보자마자 크게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얘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을 때면 누구나 그러듯이 우리는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부활의 섬』 중에서)

 

 

평소 사람을 만날 때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려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소재가 바로 ‘날씨’입니다. 초면인 사람과 만날 때 대화에서 그날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마침 오늘 아침 대구에 눈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직장 동료를 만나자마자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어요. “오늘 아침에 내린 눈 봤어요?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 위에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니까요”

 

 

 

 

 

우주지감의 선택

 

 

 

 

 

 

 

 

 

 

 

 

 

 

 

 

 

 

 

 

 

 

 

 

 

 

 

 

 

 

 

 

 

 

 

 

 

 

 

 

 

 

 

 

 

 

 

*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님이 읽은 책] 김한민 《비수기의 전문가들》 (워크룸프레스, 2016)

* [장OO님이 읽은 책]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 [이OO님이 읽은 책] 알랭 드 보통 《관계》 (와이즈베리, 2017)

* [신OO님이 읽은 책]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 (청어람미디어, 2013)

* [최OO님이 읽은 책]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2017),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문학사상사, 2015)

* [이OO님이 읽은 책] 홍명진 《쉬는 시간에 읽는 세계화》 (인물과사상사, 2010), 서영채 《죄의식과 부끄러움》 (나무,나무, 2017), 최우성 《동화경제사》 (인물과사상사, 2018)

* [cyrus가 읽은 책]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열다북스, 2018)

 

 

 

《섬》에 대한 대화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9시 30분경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각자 한 사람씩 요즘 읽고 있는 책(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분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습니다.

 

이○○님(김화영 교수의 글을 들려준 분과 성만 같을 뿐, 이름이 다른 분입니다)은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시리즈’를 읽고 있습니다.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님은 김한민 씨의 그림소설을 추천했습니다. 실은 《비수기의 전문가들》(워크룸프레스, 2016)은 올해 8월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선정도서입니다. 신○○님은 크리슈나무르티(Krishnamurti)의 글을 읽으면 ‘삶’,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님은 작년에 나온 《노르웨이의 숲》(민음사, 2017) 리커버판 표지가 좋아서 구입했다고 합니다. 또 요즘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자신만의 소확행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님은 세 권의 책을 소개해주셨는데요, 특히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문학 비평서로 《죄의식과 부끄러움》(나무,나무, 2017) 을 추천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읽는 세계화》(인물과사상사, 2010)는 청소년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비록 이 책에 실린 통계자료는 시의성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님은 이 책에서 세계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을 살피는 데 유용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동화경제사》(인물과사상사, 2018)는 다소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지만, 저자의 직업이 기자라서 ‘기자식 글쓰기’의 지루함이 느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민음사, 2003)

 

 

새벽 12시에 책방이 문을 닫았습니다. 우주지감은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일상이 있는 ‘각자의 섬’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달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선정도서는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언니의 《오만과 편견》(민음사, 200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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