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 향기나는 여왕 선덕
이적 지음 / 어문학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신라의 27대 왕인 선덕여왕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지도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르지만,

……

여왕은 시대의 굴레를 또 여자라는 굴레를, 고귀한 모란의 자태와 향기로 살아갔다. 여왕은 인생이라는 주제를 어떨 때는 굴레로, 어떨 때는 모란으로 변주하면서 시대를 이끈 것이다."  (5)

 

 

지난 달, 소설 <선덕여왕, 한소진, 해냄>을 흥미롭게 읽었다. 선덕여왕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기존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뒤로 미룬 채, 흥미로운 전개에 바쁘게 읽었다. 그리고 tv드라마를 통해 '선덕여왕'을 만났다. 그런데 책과 드라마의 설정이 확연하게 다르다. 드라마는 천명과 덕만 두 자매가 쌍둥이로 나온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천명이 언니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에는 덕만이 맏딸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허구와 흥미 위주의 소설, 드라마로 인한 역사적 왜곡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허구적 상상력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된 것이 나에게 혼란을 주었고, 이렇게 '역사가의 눈으로 본' 선덕여왕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선덕여왕, 이적, 어문학사>는 선덕여왕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역사적 사료와 유적을 통해 선덕여왕의 시대와 인물들을 규명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덕여왕의 실체, 즉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한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팩션과 학술 논문의 결합을 꿈꾼다고. 그래서일까? 기존에 읽었던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들과 맞물리면서,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도식화되고 점점 뚜렷하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선덕여왕과 미실에 중점을 두고 읽었기에, 다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부족하다 여기던 찰라에, 여왕을 중심으로 한 시대와 주변 인물들이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소설에서 다소 아쉬웠던 부분들(특히, 선덕여왕 시대의 삼국관계, 그리고 수많은 전쟁)도 또한 많이 해소되었다.

 

많은 설화(모란꽃설화, 천사옥대설화, 도화랑설화, 대세와 구칠설화, 여근곡설화)들을 소개하면서, 역사적 사실, 그리고 정치, 사회적 역학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모란꽃설화라 할 수 있다. 부제 '향기나는 여왕 선덕'과 표지의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소설에서도 이야기가 전개된지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당에서 보낸 그림 속 모란꽃을 보면서 나비가 그려지지 않은 것은 자신을 비하한 것이라며, 향기가 나지 않는 모란은 선덕여왕 그 자신이라며, 크게 화를 내던 장면의 이야기가 모란꽃설화로 실제 그 의도를 여러 방면에서 나타내고 있었다.

 

" …… 신라나 고려의 백성들은 부처님의 보호를 빋으며 살아가는 희망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선택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 백성들이 오로지 기댈 수 있던 것은 누구도 빼앗지 못할 희망 그것이었다." (219)

 

선덕여왕 시대의 김춘추와 김유신은 내게 별개의 인물들이었다. 선덕여왕의 시대를 꽃피는 신귀족세력인 김춘추김유신의 이야기, 그리고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첨성대, 자장과 통도사 등등 그 시대의 역사적 유물들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 감춰진 많은 의도, 의미를 파헤치고 있었다. 신라 불국토화의 정치적 의도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극한의 어려움에 처하면 으레, 종교에 마음을 쏟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개인뿐이 아니라, 한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가 보다. 삼국의 혼란기였던 선덕여왕의 시대, 잦은 전쟁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왕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왕권강화의 방안은 역시 '불교'라는 종교적 힘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던 힘없는 백성이 있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불교인도에 대한 것도 많이 알 수 있었다.

 

" …… 여왕과 지지자들이 여왕을 신성화하는 과정에서 여자이라는 불리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적극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 설화의 창조자들은 당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여왕의 자질에 신라 고유의 여성관과 토착신앙이 스며 있는 불교관을 더해 여왕의 예언가적 능력을 강조하였다." (269)

 

역사적 왜곡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면서, 소설과 드라마를 즐기고 싶다. 그런 점에서 소설<선덕여왕, 한소진, 해냄>의 근거를 알 수 있어 다행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근거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사료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 그리고 부정적 견해들이 우세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이야기를 떠올리니, 오히려, 선덕여왕을 만난 것이 더욱 행복해졌다.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또한 흥미롭고 쉽게 역사에 다가가고, 또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면, 금상천화가 아닐까? 그래서 역사가의 눈으로 본 향기나는 여왕 <선덕여왕, 이적, 어문학사>이란 역사서를 읽은 동안 너무도 즐거웠다. 물론 많은 숙제들도 또한 남겨졌지만, 또다른 책을 통해, 차차 해결되리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중에 하나는 선덕여왕이 아니더라도 잊혀져 가는 진설을 찾아내어 전하는 것이다. 그 전설이 아직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더라도 후대 어느 순간에 역사로 되살아나 우리의 역사를 되살리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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