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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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자욱의 얼굴

찬란하게 눈부신 봄날이라고 하기엔 많이 춥다. 앙상한 나무에 새싹을 돋워줄 맑은 햇살이 그립다. 아직도 겨울인가 싶은 날엔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 그립다. 아이들과 서점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은 베스트셀러 코너. 이 책, 마치 누군가가 할퀴기라도 한듯한 상처 자욱의 얼굴 그림이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작가 이름이 반갑다. 아 잊고 있었다.

삶이 고단할때, 행복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질때 가끔 책이든, 사람이든 위안을 받고 싶다. 이성으로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내 삶이 더 우울할 뿐이고, 차라리 상처 투성이의 삶을 보면서 '그래 이보다는 낫다'는 위안이 더 현실적이다.  

나는 아직 삶을 모른다

책을 덮고 며칠은 열세살 소녀의 여운이 떠나지 않았다.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온 삶을 소비해야 하는 그녀에게 ' 나는 치마보다도 다리에 쫙 달라붙는 스타킹이 신고 싶었다' 는 소박한 바램마저 사치일 뿐이다. 노숙을 하고, "씨발, 뭘 봐."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 뱉으며, 단돈 몇푼 때문에 몸을 팔면서도 죄의식은 전혀 없는 그냥 하루 일과일 뿐이다. 믿고 의지하던 키다리 아저씨 같았던 '흰얼굴'이 기자라는 것을 알았을때도 시니컬하다. 그녀에게 과연 미래는 있는 것일까?

요즘도 부모의 도움없이 과연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비싼 등록금, 방값, 생활비는 가끔 뉴스에 보도되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내내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사립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그 아이들이 과연 졸업은 할까 하는 걱정이 된다. '엄마들'에는 대리모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여대생이 나온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는 위안을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범위안에서 무리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부채를 떠넘기고 도망간 가장과, 50이 넘은 나이에 목욕탕 때밀이리를 해야 하는 엄마 사이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는건 무책임한 것이리라. 

'순애보'는 주인공 '나'를 휴게소에 덩그라니 남겨둔채 사내와 바람이 나서 도망간 엄마 대신에 휴게소에서 만난 남자를 '아빠'라 부르며 함께 사는 이야기다. 밤마다 바다가 보이는 항구에 가는 것이 그나마 그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말을 더듬지만 착한 치우와 가정을 꾸몄다면 나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환상통' 정말 불행은 함께 오는 것일까? 암은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고 하지만 엄마와 딸이 순차적으로 암에 걸려 서로의 병간호를 해주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더군다나 불임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암을 발견했다면, 이어지는 남편과의 이혼은 꼭 해야 할까? 하는 반문이 남지만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우리네 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시선을 허공에 둔 엄마의 두 눈가가 검었다. 은희야. 엄마가 길게 발음했다. "억울하지 않니?"  
   

'오늘처럼 고요히'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아이도 있는 엄마가 남편 몰래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몸을 파는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더군다나 남편이 죽고 남편의 형과 함께 사는 것이 요즘 세상에 가능할까?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화가 나고 짜증도 울컥 치밀었다. 천안함의 침몰이라는 대형 사고, 온갖 암투로 상처를 주는 정치권, 눈을 뜨면 어두운 이야기뿐인 요즘 꼭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할까 하는 이기심도 작용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도 분명 존재하는 처절한 삶의 모습들이다.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될 우리 이웃들의 모습인 것이다. 사회면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 사고가 참으로 많다. 

두 어린 딸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도 아이들에게 예쁜 글, 아름다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크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일깨워주고,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은 곳이라고 알려주어야 겠지. 이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성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의 어릴적 불우한 성장과정 속에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현재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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